마조록(馬祖錄) 시중(示衆)

2009. 1. 6. 15:4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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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조록(馬祖錄) 시중(示衆) 2-2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를 닦는 것입니까?"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 
닦아서 체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었으니 
다시 부서져 성문(聲聞)과 같아질 것이며, 
닦지 않는다 하면 그냥 범부이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성(自性)은 본래 완전하니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 
한 생각 망념이 3계 생사의 근본이니, 
일념이 없기만 하면 즉시 생사의 근본이 없어지며 
부처님(法王)의 위 없는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될 것이다. 


도는 닦는데 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닦지 않으면 그냥 범부라고 말씀하시니 질문한 스님은 더욱 궁금하여 다시 묻는다.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겠습니까?"] 답하데 [자성(自性)은 본래 완전하니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자성(自性)이란 자기의 성품(性品)이니 법계(法界)에서 보면 법성(法性)이요. 사람들에게서 보면 본성(本性)이며 도(道)에서 보면 도(道)이고 진리에세 보면 진리(眞理)의 당체(當體)이다. 이 자성(自性)을 체득한 사람을 붓다라 하고 그 성품을 다 드러냄을 불타(佛陀)라고 한다. 즉 자성청정심(自性淸精心)이라 하여 누구의 자성이든 법성이든 진리든 본성이라 하든 그 당체는 무구청정(無咎淸淨)하여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고, 허물도 없고, 더러움이 없다. 그래서 자성은 본래 완전하다고 말씀하셨다.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만 하면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선악은 양변이니 고저(高低). 장단(長短) 대소(大小). 원근(遠近). 명암(明暗). 생사(生死) 시비(是非)등 모든 것을 분별하는 인식작용은 바로 이것과 저것이라는 양변을 기준으로 차별상을 도출하여 본다 인식한다고 한다. 인식하면 있다하고 인식못하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미묘한 작용에 위하여 일어난 모든 마음의 작용으로 일어난 제상은 그 자체의 성품이 공하고 오직 지금 여기 그대로 드러나 있을 뿐이다. 그 자체의 상은 전부 내 마음의 지음의 그림자 임으로 그것을 가지고 시비분별을 하여 국집함으로 차별상에 떨어져 희노애락의 고(苦)와 희(喜)를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일으난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은 전부 허망한 것이다. 그러니 이 허망한 제상에 차별상을 내지 않으면 즉 한 생각도 지음이 없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것은 억겁의 습이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화두를 들고 마음과 관계없는 곳으로 마음을 쓴다든지 그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관(觀)하는 방법으로 마음의 작용을 잊어버리고 무관심하므로써 공부를 지어감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마음과 무관한 일을 지어 스스로의 마음을 잊어가는 방법을 익혀 그 방편을 따라 수행하는 사람을 들어 바로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 생각 망념이 3계 생사의 근본이니,] 한 생각이란 한 마음의 지음이다. 즉 한 생각을 지음이란 스스로 짓고 경계따라 일어나니 한 시도 그냥 있지 않는다. 습연(濕緣)에 따라 일어나는 한 생각이 바로 망념인 것이다. 그래서 한 마음을 일으키면 집착하여 상이되고 상에 집착하여 가지가지 행을 하니 우리의 인식작용이 전부 즉 3계를 만들고 부수며 지었다 허물었다. 모았다 흩었다. 쥐었다 놓았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한 생각 망념이 곧 범부가 말하는 세상이며 삼계이니 삼계생사(三界生死)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념이 없기만 하면 즉시 생사의 근본이 없어지며 부처님(法王)의 위 없는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일념은 한 생각이며 지음이 없어면 하는 말은 곧 무심(無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마음이 끊어진 자리, 생각이 끊어진 자리인 무념처(無念處) 무심천(無心天). 적멸처(寂滅處) 등 수없는 말로 말을 하나 다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기만 하면 바로 무념처가 드러나니 이것을 들어 부처님(법왕:法王)의 위 없는 이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며 그렇게 되면 부처님의 위 없는 진귀한 보배 즉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이룬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심(無心)이 증득될까? 나무아미타불_()_

- 원오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