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는 무엇 하러 다니는가?/성수스님

2009. 1. 30. 12: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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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에는 무엇 하러 다니는가? / 성수스님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는 거여. 사람이 사람짓을 하면 사람이 되고 사람이라도 소짓을 하면 소가 되는 거여. 원효대사도 말씀하시기를
        "소가 물을 먹으면 단 젖이 되고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나온다"고 하셨다. 다 같은 땅에서 크는 식물도 고추는 맵고 수박은 달아
        고추 마음을 쓰기 때문에 독하고 매워지고 수박 마음을 쓰기 때문에 수박은 시원하고 달아. 그러면 우리 사부대중은 어떠냐? 우리 사부대중도 부처의 마음을 쓰면 부처가 되는 거여. 어떻게 부처의 마음을 써야 되느냐 하면 애기가 장판바닥에 똥을 탁 싸놨는데 똥 싼 자리를 들고서도 그 애기가 밉다는 생각은 그만두고 참는다는 생각도 없이
        어린애 궁둥이를 톡톡 두드리면서 볼때기를 싸 감고 뽀뽀 꺼정 하는 엄마의 마음
        같은 생활이 바로 부처의 새끼가 되는 거여. 만약에 마음 가운데 조금이라도 불평이 있다든지 원망이 있다든지 하면 그건 부처 하고는 십만 팔 천리여. 여러 가지 배울려고 하지 말고
        내 자신이 자신을 짓밟지 말고 귀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여. 하루 아직(아침)에 화를, 원망을, 불평을 세 번만 하면
        그날은 마음에 꾸정물이 까라앉지 않해. 머리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아픈 데가 자꾸 생겨서 필경은 병원에 가야 돼. 그 병을 만드는 놈은 누구냐? 바로 나여! 자신이 자신의 병을 만들어서 의사한테 목을 매단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여. 어린애가 장판바닥에 똥 싼 그 자리를 든 엄마의 모습과 같이 원망, 불평이 뚝
        끊어지면 거기에는 병마가 몸에 침범을 못해. 나는 말만 그러는 게 아니고 이십 오년 동안 병원에 안 갔어도 칠십이 넘어도
        요렇게 짱짱하고 분 안 발라도 반들반들 하잖어. 우리 부처님 마음을 가지고 살면 정말 내 좋고 남도 좋고 다 좋은 거여. 얼굴 찡그려 가지고 불평, 원망하며 살아봐. 어느 누가 좋다고 하는고. 부처님한테 가서 복은 태산같이 빌어 놓고 빈 복, 있는 복, 준 복도 관리를 못해. 진심(화내는 맘)을 한번 팍 내어 뿔면 태산같이 빌어놓은 복도 하루 아직에 다 무너지는 거여. 있는 복이라도 자알 관리를 하고 보호 잘해서 자알 가지고 써 보래이 정말 사는 재미가 오도독 오도독 나는 거여. 모두 사는 거 보면 다 바보여. 바보짓 하고서도 부처님 앞에 가서 복 달라고 엎드려 사정하는 꼴을 보면 내가 부처라도 콱 쥐어박고 싶은 심정일 거여. 그러니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가질 줄 알아서 이 몸을 청정하게 해야 하는 거여. 그래서 이 몸을 진여탑이라고 하는 거여. 이 진여탑을 잘 보호하고 가꾸지도 않으면서 남의 돌탑, 목탑, 그런데 가서 꾸벅꾸벅 절을 해대는 사람은 참말 어리석은 사람이여. 정신은 산 부처고 활불이여. 생각은 철학이고 이 몸은 물질과학이여. 몸뚱이만 다듬고 입히고 애껴주는 거 보면 장관이여. 그러면서도 정신은 쉬게 할 줄도 모르고 있는 줄도 몰라. 물질이 소중 하냐, 정신이 소중하냐? 정신이 없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지도 못하는 물건 이 팔, 다리는 암만 있어도 무용지물이여. 팔이나 다리가 떨어져도 이 몸뚱이는 살 수 있지만
        정신은 5초만 없어도 송장 되는 거여. 이 내 정신이 내 한테 얼마만치 가치가 있는지 소중한지, 이것도 모르면서 부처님께 와서 절을 꼬박꼬박 하는 걸 보면 우스운 거여. 사람은 자기의 가치를 스스로 찾고 살아야 되어. 신라 때 선덕여왕은 자기 관리를 참말 제대로 해 낸 여자였어. 우리나라 여자들은 누구나 한번 쯤 선덕여왕릉에 가서 "어떻게 해야 자기 분수에 맞게 자기 자리를 찾고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봐야 되어. 맨날 남자한테 찔찔 끌려가지고 허덕허덕 사는 여자는
        여자 될 자격이 하나도 없어 왜 자기 가치를 못 찾아 먹고 사느냐 이거여. 또 시집을 가서는 남편이 잘해 주느니 못해주느니 하면서 원망, 불평하고 사는 꼴을 보면 그 또한 우스운 거여. 남자를 위해서 시집가는 게 아녀. 지가 여자니께 남자를 따라 간 거지 여자 아니면 남자를 뭐 하러 따라가겠어? 지를 위해서 시집을 갔으면 불평할 필요도 없고 원망할 필요도 없는 거여. 남자는 또 돈 몇 냥 벌어와 놓고는 "당신을 위해서 돈 벌어왔다"고 유세를 떨거든. 그것도 싱거운 짓이여. 지가 남자니까 여자가 필요해서 모셔다 놓고 끙끙 벌어다 먹이면서도 당신을 위해서 한다는 건 싱거운 사람이여. 둘 다 결혼 시작할 때부터 자기를 위해서 결혼한다는 생각을 갖고 하면 원망, 불평이 뚝 끊어지고 거기가 바로 극락이 되는 거여. 이처럼 자기 정신이 소중한 줄 알고 제대로 한번 살아 보래이. 제법 사는 법을 알고 턱 살면, 죽을 때 죽을 줄 알고 척 죽는 거여. 불법(佛法)은 살 때 멋지게 살다가, 갈 때 아들딸 척 불러 놓고 손 턱턱
        흔들고 말야, 싱긋이 웃고 가는 생사자재법(生死自在法)이여. 부처님께서는 회향을 잘하셨기 때문에 삼천년을 존경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절해야 하는거여. 이 세상 인류 가운데 죽을 때 부처님처럼 "내가 간다"하고 웃고 가신 분이 얼마나 되어? 생사 자재법을 제대로 이루고 가신 어른이기 때문에 우리가 존경하는 거여.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절 하지도 안 할끼고 당신도 절 받을 자격이 없어. 그럼 우리는 절에 뭐 하러 가느냐?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걸 배우러 가는 거야. 그래서 절에 오면 이 어른한테 그걸 물어서 가르쳐주면 고맙다고
        절을 해야 되는데이것도 저것도 안 가르쳐 주는데도 절을 꾸벅꾸벅 해대는거 보면 참 싱거운 사람들이여. 목적과 희망과 원하는 것이 있어서 절에 왔으면 반드시 물어보는 거여. 아는지 모르는지 맨날 그러면 다 소용없어. 우리 부처님은 확실히 모르고, 크게 모르는 것을 분명히 깨달으셨어. 안 늙고 안 죽는 것을 깨달으신 거여. 그걸 물으러 절에 간다는 개념만이라도 분명히 갖고 가르쳐 달라고 졸라야 되여. 상주설법(常住說法)이야. 부처님은 그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앉아 계신거여. 그 양반이 밥만 똑똑 따 먹는 양반이 아녀. 물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 밤낮 가만히 앉아 계시니 그냥 심심한 거여. 가르쳐 달라고 사정사정하다 안 되면 눈물로 사정하고 알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면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거여. 애원하다 안 되면 저절로 항의가 나와. "네 이놈, 부처야! 대자대비 어디다 팔아먹었느냐?"고 벽력같이 항의하면 부처님이 입장 곤란해서 말없이 알려주고
        소리 없이 들려주고, 그대로 보여주는 거여. 그래서 '상주설법'이라 하는 거야. 그것을 배우겠다는 생각 없이 절에 오는 사람들은 전부 헛걸음이여. 달마대사가 9년을 면벽(面壁)한 것은 9년을 수도한 게 아니여. 이미 인도에서 인정받은 달마가 왜 앉아 있었느냐? 사람을 기다린 거여. 당시 천하의 멋쟁이, 중국의 한량들이 다 와서 2년, 3년만에 다 떨어져 나갔는데 혜가대사 만은 9년 동안 사정한 거야. 그랬더니 9년 만에 한마디 턱 일러주는 것이, "일언지하 돈망생사(一言之下 頓忘生死)"여. 생사 밖의 도리를 잘 알라는 거여. 이 한마디 일러준 걸 가지고 '동토불교(凍土佛敎)를 살린 거여. 불교는 이처럼 잘 안 일러주는데 매력이 있는 거야. 부처님이 절에 앉아서 알려 줄 사람을 기다리시는데 맨날 절만 꾸벅꾸벅 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한번 생각해 봐야 되여. 오늘 부텀 여러분들도 집에 가서 스물 네 시간 가운데 오 분만 이라도 내 정신을 뺏기지 말고 놓치지 말고, 잃어버리지 않는 연습을 해야 돼. 오 분도 자기가 자기를 지배하지 못하면 부처님 앞에 합장할 자격이 없어 . 흐리멍텅한 게 부처님법이 아녀. 가장 정확하고 가장 밝고 가장 현명한 것이 부처님 법이라. 절이 뭐하는 곳인지 자기가 뭐 하러 가는지
        이것도 모르고 간다는 건 불교인이 아니여. 예전에 내가 조계사 주지할 때 외국에서 신부나 수녀들이 오면 조계사 구경시키러 우리나라 신부들이 데려 오거든. 들어오라고 하면 안 들어 올라고 해. 그럼 "이 집 문턱에 발 들여놨으면 집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 하고 억지로 끌고 들어가서 차 한 잔 대접하지. 그리고는 "종교인 간의 장벽을 트자"고 제안해서 종교협의회를 만들기로 했어요. 종교협의회를 갖기 전에 신부. 목사. 수녀 오십여 명이 조계사 법당으로 내한테 그 이유를 물으러 왔어. 그런데 머리 속엔 '우리가 물으러 오긴 왔지만 부처 자랑 되게 할거다'라는 생각을 칠십 프로는 갖고 있더라고. 저 칠십 프로를 비워내야 내 말이 백 프로 들어갈 것 같어. 그래서 내가 턱 나가서 '내가 열아홉 살에 중이 됐는데 내 부모보다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중이 됐다. "고 했더니 '저거 봐라. 부처 자랑 시작했다'고 생각하더라고.
        그렇게 삼십 프로를 모아 백 프로를 꽉 채워놓고는 "45년. 그렇게 좋아하며 믿고 살아온 45년을 오늘에 와서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부처한테 몽땅 속았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이 그냥 놀라 자빠지는 거야. 그래 나도 가만히 좀 안정하고 있다가 "아담과 이브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굳이 먹어서 천당과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는데 선악과 먹기 전에는 거기가 어디냐?"하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땅에 탁 엎드리는 거야. 그래서 "그거를 모르면 나처럼 속는 놈이 된다."고 내 속았다고 한 것까지 보태가지고 그들한테 폭 덮어 씌어 버린거야. 그러니 꼼짝 못하고 당하는 거여. 종교인이라면 '종(宗)'자가 뭔지 '교(敎)'자가 뭔지 잘 알고 믿어야지 그것도 모르면 바보 온달이여. 원효대사의 그 좋은 '활구'법어는 어디다 팔아먹고, '제대보살 마하살 하사오니' 어짜고저짜고 중국말만 할 게 아니라 모르면 스님들께 물어가지고서라도 똑바로 믿어야 하는겨. 물에 물탄 것처럼 시브적시브적 살지 말고 하나라도 똑똑히 묻고 배워서 믿어주기를 바라며 좀 알고 사는 불자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마 음

 

털고 나면 가벼워진다고 했던가

비우고 나면 홀가분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무엇을 그리 지고 갈려 했단 말인가

또 무엇을 그리 가져 갈려 했던가

 

비워내는 마음도 털어내는 속내도 모두가 순간인 것을...

 

털어서 가벼워지고

비워서 홀가분해질

마음이라면왜 진작에 털고 비워내지 못했을까

 

털어도 쌓이는 먼지처럼

비워도 채워지는 삶의 연륜처럼

털어지지도 비워지지도 않는 것이 마음이구나

 

- 원성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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