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 06:0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중생(衆生)의 삶은 업(業)을 짓는 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것이 악업(惡業)이 됩니다. 불교공부는 그런 우리의 처지를 살펴보고 뉘우치고 참회(懺悔)하여 어두운 악업에서 벗어나고자 함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다 청정(淸淨)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밝은 삶, 청정한 삶이 불교입니다. 불교와 사람 사는 일은 곧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삶의 이런저런 모습을 살펴서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길로 나가야 합니다. 탐심(貪心)에 대한 인도(印度)의 우화를 한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한 수도승(修道僧)이 길거리에 사원(寺院)을 두고 그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사원은 시내에 있었기 때문에 그 수도승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수도승이 사는 집 앞에 매춘부가 살았습니다. 매춘부의 집에는 항상 사내들이 들락날락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수도승이 매춘부를 불러서 몹시 꾸짖었습니다. "그대는 죄인(罪人)이다. 그 죄(罪)의 대가를 어떻게 받으려고 하는가?"
가난하고 불쌍한 매춘부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몹시 부끄럽고 뉘우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容恕)를 빌고 참회(懺悔)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춘업은 그녀의 직업이었으므로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일을 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불전에 나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수도승은 자기가 매춘부에게 충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태도가 변하지 않고 직업에 충실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춘부가 하루에 몇 사람의 사내를 상대하는지 헤아려 보기로 하자.'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수도승은 그녀의 집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 들어갈 때마다 돌을 쌓아 나갔습니다. 수도는 하지 않고 사람 숫자만 세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돌무더기가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매춘부를 불렀습니다. 수도승은 돌무더기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돌무더기는 그대가 상대한 사내의 숫자다. 돌무더기만큼 많은 죄를 지었다. 이래도 더 이상 악마의 짓을 뉘우치지 않겠단 말인가."
돌무더기를 보자 가엾은 매춘부는 심한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절망적인 입장이 되어 진실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 했습니다.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드디어 불쌍한 여인의 기도가 성취되어 그날 밤 죽음이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동시에 수도승(修道僧)도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되었답니다.
저승을 관장하는 사자(使者)는 깊이 회개하고 참회한 여인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염라대왕은 수도승의 영혼을 지옥(地獄)으로 끌고 갔습니다. 매춘부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는 것을 본 수도승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게 바로 하늘의 심판이란 말인가. 저승의 심판이란 말인가. 나는 금욕과 절제와 가난 속에서 살았는데 지옥으로 끌려가고 있다. 저 매춘부는 일생 동안을 간음죄만 지었는데도 천국(天國)으로 데려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인과(因果)의 법칙이란 말인가." 이렇게 수도승이 외치자 염라대왕은 말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공명정대하다. 네가 일생 동안 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너는 평생 수도승이란 자만심과 명예(名譽)를 얻기 위해 살았다. 그래서 하늘이 너에게 이런 벌을 내린 것이다.너는 단 한번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춘부는 비록 몸으로는 죄를 지었으나 마음으로는 밤낮 기도를 했다. 보라, 이 지상에서 너의 육체는 그녀의 육체와 달리 취급되었다. 너의 육체는 한번도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꽃다발로 장식하고 경건함 속에서 성지로 가지만 매춘부의 육체는 아주 많은 죄(罪)를 지었기 때문에 독수리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매춘부의 마음은 너무나 순수(純粹)했기 때문에 천국으로 갈 수밖에 없고 너의 마음은 그녀가 죄를 짓고 있는 숫자만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해서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정말 매춘업을 한 사람은 매춘부가 아니라 바로 수도승 너 자신이다." 이렇게 저승사자는 수도승의 항의에 대답(對答) 하였습니다.
우리가 업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밖으로 나타난 모습들, 다시말해 우리에게 인식되어진 행위들로만 죄를 짓고 복을 받는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 우화가 보여주듯이 알고 짓는 죄업과 모르고 짓는 죄업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잘 살펴야 합니다. 어리석은 중생이기 때문에 잘 한다고 해도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그 자신에게 좋지 못한 일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뜻에서 늘 참회하고 마음을 항상 훌륭하고 성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과 자기 자신의 행위를 비교하며 뉘우쳐서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참답고 훌륭한 영혼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이 윤회(輪回)의 정형(整形)입니다.
씨에서 싹이 눈을 뜰 때는, 여러 가지 조건(條件)을 필요(必要)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윤회는 연기설을 바탕으로 합니다.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그 것을 돕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공기, 바람, 물, 습도 등의 조건에 의해 싹이 성장하고 싹이 성장하려면 씨앗은 없어지게 됩니다.
싹이 성장하려면 씨앗이 없어져야 한다는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씨와 싹의 관계에 있어서 씨가 없어지는 점에서 볼 때는 지속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싹이 돋는 점에서 볼 때는 단절된 것이 아닙니다. 자아(自我)가 없다고 하면서도 업보(業報)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씨와 싹의 관계'와 같습니다.
씨와 싹의 관계에서 볼 때 씨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씨의 입장에서는 씨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으나 싹의 입장에서는 씨 없는 싹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씨의 입장만 두고 보면 전생(前生)과 금생(今生)이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싹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단절(斷絶)이 아닙니다.
전생이 씨앗이라면 금생은 싹입니다. 또 금생이 씨앗이라면 다음 생은 싹이 됩니다. 싹의 입장에서 보면 씨를 통해서 오늘의 싹이 있는 것입니다. 또 오늘의 씨를 통해서 내일의 싹이 있는 것이므로 윤회(輪回)라는 것은 아주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生)도 같은 이치(理致)입니다. 유식철학(唯識哲學)에서는 그와 같은 문제를 아주 미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윤회를 이해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대장엄경론>에서 밝힌 윤회에 대한 교설은 매우 중요합니다.그것은 곧 부처님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씨와 싹의 관계처럼 한 인간의 삶도 육신의 죽음으로 인해서 간단히 없어지는 이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윤회"는 우리의 삶에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우선 윤회사상 속에는 나이를 부정하여 영원히 젊게 살 수 있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꿈과 희망과 기대를 갖고 밝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다고 윤회를 단지 밝게 살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윤회설은 영원히 사는 힘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나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이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밝은 앞날을 만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여기서 밝은 앞날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젊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영원히 밝은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밝은 앞날을 가꾸는 의지로서 윤회설은 아주 중요한 삶의 교훈(敎訓)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열반경(涅槃經)>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몸과 마음이 갖가지 일을 저지르므로 이 인연으로 하여 생사에 유전(流轉)해 삼악도에 떨어져 여러 고통을 골고루 받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윤회하는 실체를 살펴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삼악도를 윤회하는 것은 깨어있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갖 업을 짓게 되고 그 업을 통해서 과보를 받으며 여기저기를 다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 저런 문제에 끄달려 다니는 일이 윤회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열반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범부(凡夫)는 몸과 마음에 괴로움을 만나면 갖가지 일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몸에 병이 나거나 마음에 병이 날 경우 몸, 입, 생각(身 口 意)을 통해서 갖가지 악을 짓는다. 그러므로 세 갈래로 윤회하여 갖은 괴로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세 갈래는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합니다. 우리도 업에 의해 좋지 못한 갈래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악의 대가로 받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올바른 진리의 가르침을 통해서 꿈을 깨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깨어있는 삶을 성취할 때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끝)
- 무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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