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16. 11:2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라 / 성전스님(남해 용문사 주지)
남쪽의 바다는 순하다. 그것은 마치 처녀같다. 할 말이 많지만 부끄러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처녀를 닮았다. 해가 지는 시간이면 이 처녀 같은 남쪽 바다의 말을 듣는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걸으면 바다는 작은 소리로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그 이야기는 때로 웃음 같기도 하고 때론 누이의 눈물 같기도 하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이 섬마을에 바다가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때 마다 문득 바다가 고맙다. 찾아가면 언제나 그렇게 순한 가슴으로 맞아주는 바다가 있어 내 삶은 촉촉한 감흥으로 언제나 윤기를 지닐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삶의 감사가 어찌 바다에만 국한 되겠는가. 별도 바람도 맑은 하늘도 숲도 내게는 다 그렇게 고마운 것이다.
새벽예불을 나갈 때면 신을 신자마자 나는 하늘의 별들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한다. 저 별들이 너무나 숭고해 보여 차마 별빛 아래를 그냥 지나쳐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벽에 만나는 별들은 내게 부처님이고 한 문자도 없는 빛으로만 가득한 경전이기도하다. 나는 별빛을 경전처럼 머리에 이고 그렇게 법당을 향해 걸어간다. 그 순간 나는 가장 맑은 별빛의 수행자가 된다. 과연 누가 있어 저 별빛의 의미를 알고 머리에 지고 걸어갈 수 있을까. 진정 행복한 사람만이 머리에 별빛을 이고 길을 걸어갈 수 있으리라.
우리 마음을 열 수만 있다면 삶은 온통 감사의 연속임을 알게 된다. 내가 살아있음이 이미 우주의 은혜 속에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의 은사스님은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이런 임종의 말씀을 남기셨다.
"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세상을 살면서 받은 은혜는 태산만큼 이나 큰데 그 은혜에 보답한 것은 시내와 같이 작아 다만 그것이 죄스러울 뿐입니다"
나의 스승은 그래서 누구를 만나서도 겸손하셨다. 그에게는 그 누구나 은인이었고 그 무엇이나 은혜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걸음을 걷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그에게는 은혜로운 일로만 다가섰던 것이다. 그래서 숨을 거두시는 날까지도 그는 세상의 은혜에 다 답하비 못한 것을 못내 참회하고 떠나야만 했다. 인드라의 그물처럼 모두가 연결 되어 있는 존재의 세계에서 감사하지 않은 존재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나의 은사는 존재하는 세계의 실상을 체험적으로 깨달으신 분인지도 모른다. 그런 은사가 우리들에게 내보이신 가르침은 '감사'라는 두 글자로 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
물은 스스로 낮은 곳을 향해 흘러 모든 것을 키운다. 그러나 사람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갈려고만 할 뿐 낮은 곳을 향하려 하지 않는다. 물은 감사의 도리를 알고 사람들은 이 감사로 이루어진 존재의 실상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스스로 평화의 바다와 만나고 사람들은 오르고 오르다 허무를 만날 뿐이다.
지혜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감사하며 살아간다.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라. 삶의 모든 순간을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감사로 가득한 영원을 만날 수가 있고 지금 여기서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절망으로 가득한 영원을 만날 뿐이다.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라. 그 마음에 감동이 흐르고 그 삶에 사랑이 넘치게 되리라.
아, 매화 한 송이 향기를 몰고 내게 온다. 난 그 향기를 머리에 이고 땅을 향해 감사의 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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