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시빌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속 여주인공은
“내 노래가 한국에서도 그렇게 사랑 받고 있는지 몰랐다”며
즉석에서 슬픈 멜로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And the saddest thing under the sun above, is to say good-bye to the ones you love).
청바지와 생맥주, 통기타로 대변됐던 ‘7080’ 세대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명곡
‘더 새디스트 싱(The Saddest Thing)’을 멜라니 사프카<사진>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새디스트 싱’ ‘레인 댄스(Rain Dance)’ ‘롱 롱 타임(Long Long Time)’으로 음악 다방과
심야 라디오를 통해 당시 청춘을 사로잡았던 ‘포크의 디바’..
멜라니 사프카는 1967년 첫 싱글 ‘아름다운 사람들(Beautiful People)을 녹음했으니,
올해로 데뷔 42년째다. 그동안 4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8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지금도 유럽 투어를 비롯해 한 해 150여차례 무대에 서는, 왕성한 현역이다.
‘42년 롱런’의 비결을 묻자 멜라니 사프카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해졌다.
“수많은 팝 스타들이 화려한 광고와 조명 속에 인기를 얻었다가 금세 사라져버립니다.
음악이 산업의 논리에 갇혀버린 거지요. 하지만 홍보 문구와 번쩍거리는 사진만이 진실은 아니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연 소식과 소감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하는 그는
“음악인과 팬이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가수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크 가수’로 불리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멜라니 사프카는
“나는 나 자신을 ‘포크 가수’로만 여긴 적은 없다”고 말했다.
“1960년대 말 데뷔할 당시에 저는 긴 머리에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불렀죠. 어머니는 재즈 가수였고
저도 블루스와 록까지 모두 좋아했지만, 사람들은 제 모습만 보고 ‘여자 밥 딜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3년 전부터 사프카는 기타리스트이자 음반 프로듀서로 성장한 아들과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아들과 함께 곡을 만들고 연주하고 녹음하면서 가수로서 생명력을 다시 찾는 것 같다며 웃었다. - 웹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