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율의 천안
부처님께서 아나율(阿那律)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하지 않겠는가?"
아나율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하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옛적에 어느 곳을 산책하고 있을 때의 일이
생각나기때문입니다.
그때 엄정(嚴淨)이라는 대범천(大梵天)이 1만을 헤아리는
범천의 무리들과 함께 광명을 밝게 비추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저의 발에 머리를 대고 예배한 다음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천안(天眼)으로서는 어디까지 볼 수 있습니까?'
저는 곧 `대범천들이여, 나는 이 석가모니불토와 삼천대천
세계를 손바닥 위의 암마륵열매[庵摩勒果]를 보듯이 볼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유마힐이 저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아나율이여,
천안(天眼)에 보이는 것은 인연으로 해서 생긴 물체의 모습
입니까? 아닙니까?
만약 인연으로 해서 생긴 물체의 모습이라면 그때 그것은
이교도들의 오통(五通)과 같은 것이요, 만약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면 그것은 곧 무위(無爲)이니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범천들은 그 말을 듣고 일찍이 듣지 못했던
법문이라 여기고 곧 예배하며 물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누가 진정한 천안(天眼)을 가졌습니까?'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부처님이신 세존께서 진정한 천안을 얻으셨으니 항상 삼매의
세계에 계시며 모든 부처님의 국토를 하나로 보고 계십니다.'
이 말을 들은 5백의 범천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유마힐의 발에 예배한 다음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방문하여 문병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 유마경(維摩經)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