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율을 세우지 않고는 충동적인 모든 감관을 지키고 껴잡기 어렵다.
또한 계율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맹목적으로 강요된 것도 오히려
계율 파괴에 우려스러운 결과와 관습을 낫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외도나 여러 삿된 종교에 의한 계율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신앙으로 절제되지 못한 이기적인 인간만의 행복 추구로 인해
얼마나 지구의 환경이나 인류역사가 그동안 파괴되고 오염됐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고, 특정 인간만을 위해 창조됐다는 잘못된 믿음은 환경
파괴와 오염, 종교간 전쟁에 대해서도 조금도 죄 의식을 갇지 못했다.
그렇게 맹목적으로 저지런 무지인들의 역사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 위주의 맹목적인 계율을 고집하고 신앙하여 인간 개인의
욕구와 충동적인 감관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구의 모든 중생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대승적인 진리를 망각하고 자연을 서슴없이 파괴한다면
머지않은 훗날 지구의 후손들은 더 이상 지구에서 생활 할 수 없는 최악의
경우가 도래 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예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만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더불어 살아 가야
할 자연이 파괴 될때 얻는 해택으로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마어마한 관습의 차이를 낸다.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살생한 업, 도둑질한 업, 거짓말한 업, 음행한 업,)
업보가 육도 윤회의 끈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업보윤회설을 당장
사후를 증명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믿지 못한다면 자손들이 대를 잇고 이어
후대를 이어오고 또 이어 갈 것이라는 사실은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르므로 끓어오르는 분노심과 탐욕심을 계로서 다스리고 뜻을 지켜 마음을
고요히 깊은 평정심에 들게 하고 안으로 바르게 관찰하기를 배워 영원한
안식처인 저 도피안에 이를 바른 지혜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자의 할
일이요,
계율을 지켜야 할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