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떨어질 때까지 가족에게 삼배하라

2009. 8. 14. 22: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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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 떨어질 때까지 가족에게 삼배하라●
        - 우룡스님
        나는 불자들에게 늘 부탁을 드려왔습니다. “법당에 와서는 무릎을 안 꿇을 지라도, 아침저녁으로 내 자리에서 내 가족에게 삼배씩은 꼭 해라. 그렇게 하면 지나간 날의 원결이 다 풀어지고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말을 조금 바꾸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나’가 떨어져 나가는데 있다. ‘나’를 항복 받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나’를 항복받기 위해서는 가장 은혜롭고 고마운 ‘나’의 가족에게 삼배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가 붙어있으면 내 아내, 남편, 아들딸에게 무릎이 굽혀지지 않지만, ‘나’가 떨어지면 내 가족 앞에 스스럼없이 무릎이 굽혀진다. 무릎이 잘 굽혀지는 만큼 ‘나’가 더 떨어졌다는 증거이다.” 불교의 목표는 무아(無我)의 체득입니다. 무아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말해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까닭은 ‘나’라는 아상(我相)을 떼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럼 ‘나’를 비우는 가장 빠른 길은 무엇인가? 바로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는 ‘나’의 가족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본위로 생각합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갑니다. 나를 중심에 두고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들과 내 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 앞이나 부처님, 자연물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쉽게도 조아리지만, ‘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가족에게는 무릎이 잘 굽혀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족을 향한 오체투지(五體投地)가 쉽게 된다면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내가 그만큼 향상되었다’는 것이며, 지난날의 잘못 얽혀진 인연도 바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실로 나를 풀고 남을 풀고 지나간 시간에 맺었던 원결을 풀고 현재의 좋은 삶을 이루어내는 데 있어 가족을 향해 아침저녁으로 삼배를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왜? 이것이 ‘나’를 비우는 가장 지극한 예불이요, 가장 빠른 수행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 가족들은 모두 살아 있는 부처님입니다. 그들이 참부처임을 안다면 법당에서 수 천 배씩 절 했다고 자랑하기 보다는, 가장 은혜 깊고 고마운 내 가족에게 무릎을 꿇어 절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끼리 서로 절하는 이것이 서로의 존경을 주고받는 상호 존경이며, 이것이 수행의 시작입니다. 내 가족 앞에 스스럼없이 무릎을 꿇을 수 있으면 바로 ‘나’가 떨어져 나가고, ‘나’가 떨어져 나간 그것이 ‘나’를 항복받은 상태입니다. ‘나’가 떨어져 나가면 ‘나’의 욕심과 고집이 사라져 지혜가 샘솟고,인연이 깊은 남편, 아내, 아들, 딸을 향해 절을 하게 되면 지나간 시간의 원결이 풀어져 가족이 화목해지는데, 안팎으로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방에 혼자 있을 때,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족 한사람 한사람에게 3배씩 하는 것! 이것이 어려워 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디 가족을 향해 절을 하면서 참회하고 축원하십시오. “미안합니다. 복이 없는 나 때문에 당신을 고생시키고 괴로움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순탄하십시오.” 이렇게 축원까지 하다 보면 각종 재앙이 저절로 사라져 가정이 정말 화목해집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바라지도 않았던 ‘운이다, 재수다’하는 것들이 자연히 모여들게도 됩니다. 나의 절에 다니는 부산 괴정동의 어느 보살님이 체험한 이야기입니다. 보살의 시어머니는 일흔 살이 조금 넘어 치매에 걸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며 온 집안을 엉망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보살은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어, 남편과 의논을 한 끝에 시어머니를 병원에 입원 시키고 간병인을 붙여 시중을 들게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결이 되었는지 나에게 오는 다른 신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충고를 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바로 네 어머니이지 않느냐? 네 어머니를 네가 시중들지 않고 누구에게 맡긴다는 소리냐? 힘이 들어도 네가 해야지,어떻게 남의 손에 맡길 수 있느냐? 네가 지금 그 일을 회피하면 이것이 원인이 되어 과보를 받게 된다. 네가 나중에 나이 들어 아파 누울 때, 너의 아들, 딸이 네 곁을 떠나버리는 결과가 네 발등에 떨어진다는 것을 왜 생각을 하지 못 하느냐? 우리 스님께서 가족들에게 절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더냐? 그러니 시어머니 방 쪽을 쳐다보면서 아침에도 삼배하고 낮에도 삼배하고 저녁으로도 삼배를 드려라. ‘당신께 잘못한 것, 모두 참회 드립니다. 용서 하십시오’하면서 절을 해야 된다. 아이들에게도 시키고, 남편도 하루 세 번 어머니께 삼배를 드리면서 참회하도록 당부해라.” 이 말을 듣고 며느리 되는 보살은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서 대소변 수발을 하면서, 하루 세 차례 시어머니를 향해 삼배를 드리며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그러기를 만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한낮쯤 되었을 때, 시어머니 방의 청소를 하고 뒤치다꺼리도 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시어머니 방으로 막 들어가고자 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방에서 이미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꿈이 아닌 생시에 방문 앞에서 서로 딱 마주보게 되었으므로, 그 보살은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불렀습니다. “아, 할매!” “오냐, 나 이제 간다.” 그 말만 남기고 시할머니는 문을 열고 밖으로 싹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 이후, 치매에 걸려 횡설수설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던 시어머니의 치매증세가 다 없어져 정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온 가족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웃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때 감당 못하겠다면 시어머니를 병원으로 보내 간병인에게 맡겨 놓았다면, 지금까지 그 상태가 그대로 게속되었겠지만.... 기껏해야 하루에 세 차례 삼배씩의 절을 1백여일 계속하여 이러한 영험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험담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가르침 몇 가지가 숨겨져 있습니다. 단순한 삼배가 치매라는 중병을 낫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떠한 원리가 숨겨져 있는가? 첫째는 절을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치매에 대한 자세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치매를 돌보는 것이 힘들어 병원에 입원시키고자 했던 며느리가 인과의 도리를 깨닫고, ‘기꺼이 모시겠다’는 자세로 마음을 돌린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 어려움을 면할 방법부터 생각합니다. ‘나’의 편안함, ‘나’의 소중함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이상은 결코 편해질 수가 없습니다. 피한다고 편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가 강하면 강할수록 ‘나’는 오히려 더욱 힘들고 고달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풀고 업을 녹이고자 하면, ‘나’를 죽이고 기꺼이 받고자 해야 합니다. ‘나’를 항복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며느리가 실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어머니를 밤낮으로 수발하면서, 원망이나 신세한탄보다는 참회와 축원을 드렸습니다. 하루 세 차례씩 삼배를 올리며 정성껏 참회하고 축원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아상(我相)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였고, 그 잘났던 ‘나’가 무너졌던 것입니다. 그 결과 기적이 얼어났습니다. 시할머니가 천도되고 시어머니의 치매가 완치되어, 평온하고 웃음이 넘치는 가정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기적입니다. 대영험입니다. 이러한 기적과 영험은 우리가 ‘나’를 잊고 정진할 때 찾아드는 것입니다. ‘나’가 무너뜨려질 때 저절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상을 버리고 정성을 다하면 크나큰 힘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