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기도 성취의 근거

2009. 10. 6. 09:1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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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기도 성취의 근거 1. 기도 성취의 원인 대저 모든 존재와 사물의 실질은 형상이나 물질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쓰는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움직여 기도하면 사물이 움직이고 만물이 응하게 됩니다. 마음은 그 바탕이 진리이며 부처님의 공덕 생명입니다. 이 진리와 부처님의 위신력을 쓰는 기도에서 모든 소망은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모든 존재는 진리를 여의지 않았고 일체 사물은 그 내용이 마음인 까닭에 마음을 움직여 만물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 성취의 방해 요인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처님의 크신 은덕 진리의 막힘 없는 위력을 믿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어떠한 명분으로든 화합하지 못하고 대립심을 갖는 것입니다. 미워하거나 대립심을 가지고는 기도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2. 믿음과 신비 불법을 믿고 성실하게 닦아 간다는 것은 진리를 행하고 마음속에 진리를 이루어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불자님들께서 불법을 믿으면서 생활 주변이 순조롭다는 것은 성실한 생활로 불법을 닦으신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음에 신비스럽고 다행스러움을 만나는 것은, 첫째로 불법이 마음에서 이루어져감으로 그 위덕이 생활에 나타난 것으로 봅니다. 불법은 합리나 논리를 초월하였으므로 불법의 위덕이 나타나는 곳에 합리나 논리를 초월합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불가사의 또는 신비로 느끼는 것이지만, 불법 공덕의 당연한 나타남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둘째로 청정한 원을 세우고 성실하게 닦아 가는 사람에게는 불보살님과 성현의 가호가 있습니다. 성현의 가호력 또한 불가사의합니다. 이러할 때 특히 주의할 것은 이러한 신비롭고 다행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이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를 어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삿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정법에서 오히려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불법을 신비나 불가사의로만 받아들이지 마시고 더욱 일심으로 성실한 수행을 지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3. 기도의 성취 우리가 참되고 능력이 향상하고 우리의 생활이 행복해지며 나라나 이웃에게 이익을 줄지언정 적어도 해를 주지 않는 모든 서원은 성취됩니다. 다만 부처님을 의심하거나 정진을 게을리 하며 때를 가리지 않고 마음이 바뀌는 사람은 기도가 성취되기 어렵습니다. 또 원하는 바 기도 내용이 자신의 판단에서는 비록 옳은 것이라 하더라도 밝고 넓은 지혜의 눈으로 볼 때 본인에게 이롭지 못할 때에는 기도 성취의 상황이 본인의 소망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가’아가씨에게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한 것이 ‘다’아가씨 가 나타나서 원만하게 사랑이 결실되는 따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사에 구하는 바가 있어 기도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부처님의 대지혜와 대자비를 굳게 믿고 자신의 정당한 기도가 모두 성취됨을 확신하되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절차와 과정과 시기는 전적으로 부처님께 맡기는 마음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자비심에 기대어 자기 욕망대로 부처님의 위신력을 좌우한다는 불손한 태도는 못씁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자비하심과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커다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며 기도는 시종 깊은 감사 속에서 한다는 점입니다. 4. 기도 성취의 기한 기도를 하면 부처님을 상대하고 진리를 상대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오직 일심으로 정진할 뿐이요, 그 이하는 진리의 흐름에 맡겨 두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무아(無我)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아로서 기도할 때 참으로 크신 공덕에 감응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간을 두고 기도하겠지만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진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기도 성취에 기한을 고집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진리의 세계에 이루어진 소망이 우리의 감각 현상 위에 나타나자면 시간도 과정도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 위신력으로써 원만히 조절되어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기한은 부처님 지혜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5. 기도가 성취되지 않을 때 부처님은 나를 가장 완전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진리로운 인도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세계에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기도하여 명확한 영험을 느낄 수 없더라도 더욱 감사하고 희망을 불태우고 정진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남을 돕겠다고 생각하고 작은 일이라도 곧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웃에게 봉사하고 부처님에게 감사하는 것이 소망을 담는 터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에서 받은 착한 인연은 비록 그것이 소망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진리에서 비추어진 은혜임을 알고 충실하게 섬겨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실마리가 되어 마침내 구하는 바 큰 원을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6.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는 소망은 도덕적으로 바른 소망이어야 합니다. 도덕 질서에 위배되는 소망은 진리와 어긋나므로 실현될 수 없습니다. 기도가 원래 진리에 있는 진리적인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기도의 목표도 진리에 부합되어야 하고 기도 또한 진리와 같은 높고 맑고 너그러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손해를 주는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타인의 인격을 견제하는 소망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비록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기도라 하더라도 거기에 자신이 품은 감정이나 고집이나 적개심 등이 첨가되면 안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호의를 갖기를 바란다는 것은 타인의 자유의사를 방해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 폭력입니다. 그런 기도가 이루어질리 만무합니다. 혹 때로는 강한 염력(念力)으로 일시적으로 소망을 이룬 듯 할 때도 있지만 그런 성공은 새로운 파탄을 부르게 됩니다. 그것은 커다란 진리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므로 일시적 염력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道文 혜산스님의 기도수행법 에서

이외수의 생존법

 

              하 악 하 악 /이외수

 

 

 

 

 

지대공감 자작속담

악플 끝에 살인나고 친플 끝에 정분난다.

 

 

과학자 이론에 의하면 어떤 사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어떤 방법

으로도 알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할 수 없다.

그 이론을  사람과의 만남에 적용시키면 어떤 사람을 알고 난 다음에는

알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결론을 유추해 낼 수 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따위로는 완전무결하게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은 소중하다.

비록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이라도 가급적이면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서로를 배려하자. 하악하악

 

 

 

 

 

오석같이 경도가 높은 낱말이 있는가 하면

찰떡같이 점성이 높은 낱말도 있다.

저 혼자 반짝거리는 낱말도 있고,

저 혼자 바스러지는 낱말도 있다.

언어의 맛을 볼 줄 모르면 언어의 맛을 낼 줄도 모른다.

건성으로 읽지 말고 음미해서 읽으라.

분석 따윈 집어치우고 감상에 열중하라.

 

 

때로는 글 한 줄이 남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놓기도 한다.

나중에 잘못된 내 글을 발견하면,

바지의 남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로 인파가 들끓는 거리를 활보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글쓰기가 내 직업이다. 후덜덜.

남대문을 조심하면서 새벽부터 자판질.

 

(악플- 자신이 천박하면서도 단세포적인 두되를 가졌다는 사실을 발악적

으로 과시함으로써 치떨리는 소외감과 패배감을 졸렬한 우월감과 정의감

으로 환치시키고 싶어하는 인터넷 찌질이들의 유독성 토사물.)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내 글을 허락도 없이 게재하시는 분들이 있다.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만 내 글을 사랑해 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눈감아

드릴 때가 많다. 그러나 출처를 안 밝히거나 오자 탈자 투성이거나 심지어는

남의 글과 교접을 붙여서 전혀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면 면상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자기 자식 납치해다가 눈알 빼고 코 뭉개고 심지어는 다른 놈 팔 다리 붙여

놓으면 부모로서 기분이 어떨까를 한번쯤 생각해 보라. 퍽!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태산같이 높은  지식도 티끌 같은 깨달음 한 번에무너져버

리나니, 오늘도 몽요담 돌거북은 번개 한 번에 삼천리를 두루 살피고 돌아온다.

 

 

 

 

 

"다른 코끼리의 반밖에 안 되는 코를 가진 코끼리를 만나면 당신은

어떤 말로 위로를 해주실 건가요." -하악하악/이외수-

 

         

          senghwabook cafe 

           그림;수채화/정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