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지식과 외도 같은 선지식

2009. 11. 2. 17:2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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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지식과 외도 같은 선지식

수행특명/선문염송 제121칙 : 마전(磨甎)

 

 마조가 좌선을 많이 했는데,
회양선사가 어느날 벽돌을 가지고 가서 그의 암자 앞에서 갈았다.

이를 본 마조가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하십니까?”

그러자 선사가 말하였다.
“거울을 만들려 한다.”

마조가 다시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어찌 거울이 되겠습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해서 어찌 성불할 수 있겠는가?”

마조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되겠습니까?”

선사는 말하였다.
“비유하면 수레에다 소를 매서 끌게 하는데,
수레가 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되겠는가,
수레를 때려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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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기발하고 그럴듯 하지만, 문제의 주제와 비유는 맞지 않다.

괜한 괴변으로 수행을 희롱하고 있는 것을 의심 없이 가르침으로 받아지니면 안될 것이다.

이것은 근본 정도불교를 애매하게 외도화 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선 어록중에 

하나의 예다.

 

왜냐 하면 마조가 좌선하고 있을 때 "수레에다 소를 매서 끌듯이" 수행을 하고 있다고

판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와 수레의 관계처럼 몸과 마음은 이분법으로 단순하게

볼수 있는 것도 아니며 더우기 좌선 수행을 벽돌과 유리의 관계 처럼 비유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 

왜냐하면 벽돌은 전혀 유리가 될 수 없는 것이지만, 좌선 수행은 깨달음을 전혀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대문이다.

 

 만약에 이렇게 묻는 다면??

  "스님 수레에 야생마를 매여 놓았는데 그래도 말에 채찍을 가해야 합니까???" 하고,

 

아직 길들어 지지않은 야생마에 채찍을 가하면 원하는 길을 찿아 갈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리고 좌선 수행자를 모두 그렇게 무조건 경책하여 좌선하는 수행자 옆에서 벽돌을

갈면서,, 거울을 만든다는 엉뚱한 괘변으로 아직 수행에 익숙치 못한 사람에게 혼란을

준다면 보리수 아래 앉아 좌선 수행하든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을 무어라 해야 할 가요,,?

왠 벽돌을 갈아 거울 만들고  있느냐고 할 수 있을까??

 

달마가 9년 면벽피 하든 곳에 가서 벽돌을 한번 갈아봤으면 어떠했을고??? 마음을

모르고 몸을  모르면서도 참 선지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몸과 마음에 대한 정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나타난 괴짜의 현상일 뿐이다.

 

나는 이런 엉뚱한 괘변으로 오히려 전통성을 무시하고 언뜻 듣기에 기발한 방편인 듯 한 어록들을 

의심 없이 받아 가지고는 앵무새 처럼 법문 할 때 마다 감초처럼 선학의 지침으로 삼기를 가르치는

자를 선지식으로 인정할 수 가 없다. 정도(正道) 수행의 기본은 계.정.혜 삼학으로 행.주.좌.와.

불퇴정진 하는 것이다. 반듯이 좌선 수행만을 고집 할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좌선 수행은

몸과 마음을 섭수하는 수행의 기본임이 분명하다 할 수 있다.

 

미망 중생들의 탐진치로 오탁에 물든 들뜨고 살란한 마음을 고요히 다루어 섭수 하는 것이 계행이요, 

계행을 인하여 선정을 이루는 것이며 선정에서 참 지혜가 나투는 것이다. 마치 구름이 겆친곳에

달이 나타나고 고요한 물결위에 달이 떠듯이.... 흙탕 물 처럼 흐린 중생의 마음을 맑히려면 고요한

곳에 앉아 마음을 한곳으로 모아 섭수 해야하는 것이며, 그것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기본 수행이 되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


 우리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사람 
그 어느 누구도 나와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시대에 태어나 같이 살아간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주위 사람들을 
너무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아주 커다란 인연의 끈으로 만난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내 못남을 스스로 꾸짖는 것이지요
 

 빌 오히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참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특히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마다 많은 에너지를 얻게 된다
또한 
거기서 받은 에너지의 일부를 
다른 누군가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서로 어깨를 기대고
체온을 나누며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사람의 손이 
따스한 체온을 나누며 서로 깍지를 끼고 살아가라고 
다섯 손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행복비타민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