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인생난득 불법난봉 - 옥야녀경/광현스님

2009. 11. 8. 20:4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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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무자년 들어 첫 법회입니다.

세월은 나이 먹은 숫자만큼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아마 다들 바쁘실 겁니다.

엊그제 권투챔피언이었던 최 요삼씨가 시합이 끝나고 뇌출혈로 뇌사판정을 받고 생전의 자신의 유언과 가족들의 합의 하에 건강한 장기를 아홉 분의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났습니다.

 

한 기업이 총수가 되었던,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든, 장관이 되었던, 뭔가 한자리 꿰차고 살았던 사람들이나, 시골무지랭이로 살다갔거나, 사람이 살다 마지막 가는 길에 뒤돌아보면 보람지게 살다 남부끄럽지 않게 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차에 치인 채, 앞바퀴에 깔려, 뒷바퀴에 깔려 뒷 차에 또 수백 번을 깔려 형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축생이 있는가 하면, 축생의 몸을 받았다 해도 자의든 타의든 음식의 재료가 되어준 공덕으로 몇 생의 윤회를 거듭하다 다시 삼선도 가운데 인간계에 온다한들, 바로 전생의 축생업력과 업식이 남아 천층만층의 살아가는 바가 다르고 저지르는 인과가 다르지만, 생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젊은 삶이 마지막에 다 주고 갈 수 있을 때, 살아생전의 모든 인과는 다 소멸되고 육신보살의 공덕을 실천했다고 할 것입니다.

 

태어나 알게 모르게 지은 죄와 간간히 건강을 위한답시고 피치 못 하고 먹어 왔던 축생의 주인공들과 악연이 되질 않고 인과를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 모두 최요삼 씨처럼 다 주고 갈 수 있는 그런 마음세계를 가져보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기도하며 자신의 업을 정화시켜가야 할 것입니다.

 

저 팔공산 갓 바위나, 강화도 보문사나 오대보궁에 가서 무릎 닳게 기도하는 신행들이 다 복을 구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나, 대부분은 그렇게들 생각합니다.

 

요즘 기독교를 보게되면 소망이 지나쳐 기복에 빠져들면서 죽은 부처 믿어서 뭐 하냐,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라, 교회 나오면 사업도 잘되고 복 받는다고 갈비집 호객 차원이 아니라 서울역, 용산역 앞에서 군인들 삐끼를 하는 아줌마들보다도 지독하게 길거리 전도를 한다고 인터넷에선 비난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그런다고 복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다고 복을 준다고 하면 그것이야 말로 종교사기극일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탐욕이 가득한 이기적인 중생들에게 지혜로운 생각을 일으켜 탐욕스런 자기를 바로 보도록 해주어 스스로 복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줄 뿐인 것입니다.

이기심으로 가득한 중생들이 행복을 바란다고 행복이 주어 지지는 않습니다.

 

전생의 인연업에 따라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을 누리고 살면서도 자기의 복력은 생각치도 않고 형제간에, 이웃 간에, 동료 간에, 자기네를 비교해가며 시기와 질투라는 오욕에 찌들어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줄 뿐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선근 인연이 있어야 불법을 만날 수 있기에 인생은 난득이요 불법은 난봉이라고 하잖습니까?

그런데 무자년 첫 법회를 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복덩어리들입니까?

 

헌데도 이 법회가 끝나고 문 밖을 나서면서 핸드폰으로 이런저런 집안의 대소사와 업무관계로 김밥 옆구리 터지듯, 속 터지는 일상으로 방금 전까지 선업을 지은 선근공덕은 입으로 다 까먹어버리고, 마음으로 짓 뭉개버리는 것 또한 중생들일 것입니다.

 

오즉하야, 금강경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묻기를 스승님 말씀을 들을 때는 아! 나도 저렇게 해야지 싶다가도 막상 경계에 부딪치면 않되 버리니, 그런 때 어지러운 마음을 어떻게 항복을 받고 또 그 선한 마음을 어디에 머무르도록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바로 이 대목 때문에 금강경이라는 가르침이 시작되는 첫 출발인 것입니다.

그래서 “선현이 일어나 법을 청하는 대목”이라 해서 “선현기청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보리는 기원정사를 기증한 대부호 수달장자(기수급고독원장자)의 동생인 스마나의 아들로 사위국의 바라문 자제로서 기원정사의 준공식에서 부처님의 설법에 감격하고 출가해서 “무쟁제일, 공양제일, 색상제일, 해공제일 등으로 불리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 10대 제자에 들어가는 장로 비구인 수보리가 (장로는 덕행이 높고 나이가 많은 출가 수행자를 통칭하는 말) 일체의 번뇌를 벗어나는 “아뇩다라샴먁삼보리”, 무상정등정각이라는 가르침에 대해서 그 경계를 어떻게 하면 변함없이 지닐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란 말입니다. 금강경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부처님의 답은 금강경 전체에 걸쳐 시작되고 있지만 사실은 수보리의“어떻게”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그래 수보리야! 하고 부르면서 “이와 같이” 라고 하면서 금강경이 시작됩니다만 답은 “이와 같이” 라는 말 가운데서 이미 답은 끝난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에는 곤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하는 자비한 마음이 있는가하면, 이웃을 시기하고 미워하고 가족 간에도 증오하는 중생심도 있는 것입니다.

바로 자비심은 불심이요, 증오하는 마음은 중생심인 것입니다.

 

금강경 전체의 사상은 공사상입니다만, 금강경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멧세지는 바로 “무주상(無住相)”입니다.

내가 누구다 하는 아만의 我相, 생명의 본질은 똑 같건만 축생과 나는 다르다고 여기는 人相. 이 몸뚱어리에 대한 집착으로 나만이 옳다고 여기고 집착하는 소견인 衆生相. 나라는 아는 아직은 더 살 수 있다고 애착하는 壽者相라고 하는 네 가지의 상에서 벗어나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는 육조 혜능대사에게 깨달음을 주었다고 전해지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주시는 답인 것입니다.

 

행함도 없이 복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다면 기복에 떨어져 그저 복을 갈구하기 위해 기도에 매달리는 이기적인 기도를 하기 보다는 다겁생래로 알게 모르게 지어온 온갖 업력과 업식들로부터, 대 자유 대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자기 마음을 닦는 공부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토록 안 먹고 안 입고 아껴가며 가꿔온 가족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죽음 앞에선 아무도 대신 죽어줄 수 없고 함께 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동반 자살을 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깜깜한 무명의 어둠에서 각자의 길을 갈 뿐인 것입니다.

 

때문에 스스로에 복은 스스로 복 밭을 일구고 가꾸어가야 하듯,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지나친 집착과 애착과 번뇌에 빠져 들지 않도록 우리는 무상의 도리를 철저하게 믿고서 지금 이 순간에 부처님께서 내 옆에 계신다면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저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대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행동할 때, 복은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요행수의 복을 주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원하는 이에겐 깨달음에 가는 길을 알려주시고, 업장소멸을 원하는 사람에겐 업장소멸을 성취하는 방법만을 제시해 주실 뿐인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세상부귀영화와 행복을 다 쥐어 주고 싶지만, 그 자식 또한, 부모가 그래왔듯이 다겁생래에 스스로 지어온 업력과 업식에 의해 살아갈 뿐인데도, 자식들에게 업력을 벗어나는 지혜로운 가르침을 전해주는 부모는 없는 것 같습니다.

 

행복을 찾는 건 자식의 몫이고, 부처님 또한 이와 다를게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혜를 터득하고자 노력하고 실천할 때, 우리의 삶은 스스로 존귀해질 것입니다.

 

오늘 법문은 “옥야녀경”이라는 경을 전해드릴 것인데, 결혼을 하고 시집에 들어간 여자가 지켜야 할 법도에 대해서 남겨주신 지혜로운 말씀입니다.

 

이 법문은 젊은 며느리들이 와서 들어야 할 법문입니다만, 우리집안 며느리 만을 떠올리질 마시고 나는 며느리 였을 때 어땧는가를 생각해보시면서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요즘 여성부가 막강해서 이런 법문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습니다.

 

말씀드리자면, 한 가정의 며느리로 들어와 아내로서의 도리를 어떻게 다해야만 할 것인가, 어떠한 믿음을 갖고서 어떻게 인연 공덕을 쌓아야만 부덕(婦德)을 풍요롭게 간직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가르침으로 오탁악세에 가까운 요즘 세상에서 올바른 가정을 가꿀 수 있는 부녀자의 도리를 일곱 가지로 설명해주는 현실적인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이 경의 주인공은 금강경에 나오는 신심이 돈독했던 급고독(給孤獨) 장자의 며느리인 “옥야”라는 여자입니다.

 

요즘 드라마에 잘나오는 잘사는 집 딸이 시집가서 하는 짓하고 똑 같은 짓들이 그 시대에도 있었나봅니다.

 

이 옥야가 장자의 아들에게 시집은 왔으나 친정의 부귀함을 믿고서 아내의 도리를 우습게 아는 행위가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보다 못한 급고독 장자가 부처님께 청을 넣어 가르침을 원하므로 부처님이 부녀자의 도리를 옥야에게 말씀해 주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르침입니다.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에 대해 부처님께서 설한 일곱 가지 아내란 “어머니 같은 아내, 누이동생 같은 아내, 스승 같은 아내, 부인다운 아내, 노비 같은 아내, 원수 같은 아내, 살인자 같은 아내” 등입니다.

 

팔리어 본에서는 살인자 같은 아내, 도적 같은 아내, 지배자 같은 아내, 어머니 같은 아내, 자매 같은 아내. 친구 같은 아내, 노비 같은 아내 등 7종을 열거 하고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 들어보십시요.

 

부처님의 경전에는 항상 현대의 6H원칙이 있듯이 “여시아문이라고 하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하는 첫 대목이 나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이 때 급고독(孤獨園) 장자(長者)는 아들을 위해 며느리를 맞고자 하여 부유하고 귀한 장자의 집 딸을 데려왔다.

그러나 그녀는 얼굴이 단정하기가 제일이었으나 방자하고 오만하여 며느리의 예로써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어 섬기지 않았다. 급고독장자는 집안사람들과 의논했다.

 

“며느리가 오만방자하니, 어떤 방법으로 가르쳐야 할까?

만일 몽둥이로 때린다면 그것은 좋은 법이 아니고, 만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죄는 날마다 더하여질 것이다.

오직 부처님 대성(大聖)만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양을 준비하고, 다음 날 부처님을 청하기로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청을 허락하시고 다음 날 비구들을 데리고 오셨다.

그러나 급고독의 집안사람들이 모두 나와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데도 옥야는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곧 자마금빛의 큰 광명을 발하여 옥야의 방안을 비추고, 부처님의 32상 80종호를 나타내셨다. 옥야는 부처님의 광명과 상호를 보고 깜짝 놀라고 두려운 마음이 생겨 곧 나와 부처님께 예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옥야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의 법도는 얼굴이 단정하다고 교만한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

용모가 단정한 것이 단정이 아니다. 오직 마음과 행이 단정하여야 사람의 경애를 받는 것이니, 이것이 단정함이다.

따라서 얼굴과 몸매가 단정한 것을 의지하여 교만, 방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하면 뒷세상에 비천한 집에 태어나 남의 종이 되리라.” 부처님께서 이어서 옥야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의 법에 세 가지 장애(三障)와 열 가지 악(十惡)이 있는데 어리석은 이들은 스스로가 알지 못한다.”

 

옥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세 가지 장애와 열 가지 악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는 어렸을 때에 부모에게 장애되는 것이요, 둘째는 출가하여 남편에게 장애되는 것이요, 셋째는 늙었을 때에 아들에게 장애되는 것이다. 이것이 세 가지 장애이다.

(이 대목은 요즘 세상에는 씨알도 안 먹힐 대목일 것입니다만,)

 

열 가지 악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낳았을 때에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양육하는 재미가 없는 것이요, 셋째는 시집갈 때 예를 잃을까 항상 근심하는 것이요, 넷째는 곳곳에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부모와 이별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다른 문호에 의탁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임신하기가 어려운 것이요, 여덟째는 생산할 때 어려운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남편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열째는 항상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열 가지 악이니라.”

 

옥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는 세 가지 장애와 열 가지 악을 듣고 몸과 마음이 떨리고 두려워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아내 노릇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부처님께서 옥야에게 말씀하셨다.

 

“아내 노릇하는 법이 다섯 가지가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어머니 같은 아내요, 둘째는 신하 같은 아내요, 셋째는 누이 같은 아내요, 넷째종 같은 아내요, 다섯째는 남편 같은 아내다.

 

무엇을 어머니 같은 아내라고 하는가?

남편 사랑하기를 아들같이 하기 때문에 어머니 같은 아내라 한다.

무엇을 신하 같은 아내라고 하는가?

남편 섬기기를 임금같이 하기 때문에 신하 같은 아내라고한다.

무엇을 누이 같은 아내라고 하는가?

남편 섬기기를 오빠같이 하기 때문에 누이 같은 아내라고한다.

무엇을 종 같은 아내라고 하는가?

남편 섬기기를 첩같이 하기 때문에 종 같은 아내라고 한다.

무엇을 남편 같은 아내라고 하는가?

남편과 친한 사람을 등지고 남편이 멀리하는 사람과 친히 지내는 짓을 영구히 떠나며, 사랑하고 다정하여 한마음에 형상만이 다른 것같이 하며, 높이 받들어 공경하고 조심하여 교만한 마음이 없으며, 안팎을 잘 섬겨 집안이 풍성하게 하며, 손님을 잘 접대하여 좋은 이름이 날리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가장 좋은 부부의 도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옥야에게 말씀하셨다.

“시부모와 남편을 받들어 섬기는 데도 또 다섯 가지 착한 것과 세 가지 악한 것이 있다.”

 

옥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이 다섯 가지 착한 것과 세 가지 악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옥야에게 다섯 가지 착한 것을 말씀하셨다.

첫째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가사를 돌보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자기 입에 넣지 않고 먼저 시부모와 남편에게 드리는 것이요, 둘째는 집안의 물건을 살펴서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요, 셋째는 말을 조심하며 욕된 일을 참고 성내는 것이 적은 것이요, 넷째는 공경하고 단정하고 경계하고 조심하여 항상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한마음으로 시부모와 남편에게 효성하고 공손하여 착한 이름이 있게 하며, 친족을 기쁘게 하여 남의 칭찬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다섯 가지 착한 것이다.

 

무엇이 세 가지 악한 것인가?

첫째는 어둡지도 않아서 일찍 자고 해가 떴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며 남편이 꾸짖고 노하면 도리어 불평하고 욕하는 것이요, 둘째는 좋은 음식은 자기가 먹고 나쁜 음식은 시부모와 남편에게 주며 간사한 낯빛으로 속이고 거짓말하여 요사스럽기가 한이 없는 것이요, 셋째는 생활은 생각지 않고 세간을 돌아다니며 놀고, 다른 사람의 좋고 추한 것을 말하고 남의 장점과 단점을 들추어내 말싸움을 하며, 친족에게 미움을 받고 남의 천대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세 가지 악한 것이다.”

 

옥야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 착한 것과 세 가지 악한 것을 듣고 믿고 공경하고 기뻐하며 뉘우치는 마음이 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어리석고 미련하여 부처님을 뵙지 못하고 법을 듣지 못하였을 때에는 한없는 죄악과 장애를 저지르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을 듣고는 확연히 깨달아서 지난 날 저의 행동이 그른 줄을 알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지난 것을 고치고 앞일을 닦아서 세존의 말씀에 순종하며 다시는 어기지 않겠습니다.

 

바라오니, 세존께서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구제하시어 저의 참회를 들어 주셔서 죄과를 없애고 5계를 받아 제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착하다, 옥야야. 너의 참회를 들어 주겠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고 이제 주는 계법을 공경히 받들어 닦고 행하라. 잘 듣고 잘 생각해 기억하라.”

 

옥야는 말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겁게 받아 가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옥야에게 말씀하셨다.

첫째 계는 몸과 손으로 죽이지 않고 은혜가 여러 생물에게 미치게 하는 것이요, 둘째 계는 맑고 깨끗하고 어질고 겸양하여 도둑질하지 않으며 자기 것을 덜어서 여러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요, 셋째 계는 정숙하고 깨끗하고 음란하지 않아서 행실에 오점이 없는 것이요, 넷째 계는 함부로 말하고 희롱하거나 웃지 않는 것이요, 다섯째 계는 술을 멀리하여 마시지 않으며 여러 죄악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계율을 보호하여 가지되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이 하여야 한다.

몸은 이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위태한 생명은 번쩍이는 번개나 뜰을 지나는 바람과 같음을 스스로 관찰하라.

 

젊고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고 만다.

자태와 얼굴을 믿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상 영화를 버리고 보살의 법과 같이하라. 네가 이제 닦아 행하면 부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불도는 배우지 않을 수 없고 경(經)은 듣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금 부처를 이루고서 좋도록 이루어 놓은 대승의 교법은 남자ㆍ여자 할 것 없이 즐겁게 법을 듣는 자는 소원하는 대로 이루게 할 것이다.”

 

옥야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착한 아내는 무슨 영화를 받고 악한 아내는 무슨 허물을 받습니까?” 부처님께서 옥야에게 말씀하셨다.

 

착한 아내는 이 세상에서 영예를 받고, 친족이 공경하며, 복을 받아 천상에 태어난다.

또 천상에서 수명이 다하면 도로 인간에서 왕후의 자손으로 태어나 나는 곳마다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

 

악한 아내는 사람들이 미워하여 싫어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다들 일찍 죽었으면 한다.

또 목숨이 마치면 지옥이나 출생, 노비로 태어나 그 속을 해매며 벗어날 기약이 없을 것이다.”

 

옥야는 착한 아내와 악한 아내의 법을 듣고는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나서 정성껏 행을 닦아 곧 도의 자취를 얻었다.

옥을 조각하고 비단에 수를 놓아 주보장(珠寶帳)을 만들고, 비단 기와 일산을 달고, 여러 가지 유명한 향을 태우며, 탑을 돌며 염불 소리로 노래하니, 그 소리가 시방에 들렸다.

 

이 모습을 본 가족들도 따라 기뻐하며 묘당(廟堂)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기를, “이 경을 무엇이라고 이름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경의 이름을 옥야라는 이름의 여인을 교화한 경이라고 하라. 만일 여인이 이 경을 듣고, 받아 가져 읽고 외우며, 법과 같이 닦아 행하면 여자의 몸을 버리고 다시는 받지 않을 것이다.”

이 경을 말씀하시자 대중들은 기뻐하며 예배하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것이 바로 옥야경의 내용입니다.

 

보살님들 느껴지는 게 있습니까? 자기 집 개를 주인이 때리고 발로차면 지나는 사람도 그 개를 발로 차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자기 가족들을 남에게 험담하거나 미워하게 될 때, 그 업보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며, 다음 생에는 서로 입장이 바꿔져 고리로 이자 쳐서 웬수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처사님들은 육방예경에 나오는 남편이 아내에게 대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참고하세요.)

 

성불하십시요.

Great Barrier Reef (호주)

Great Barrier Reef (호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자연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대보초)는 면적 20만 7,000㎢. 길이 약 2,000km. 
너비 약 500~2,000m. 나되며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으나 군데군데에 무수히 많은 조그마한 산호초가 바다 
위에 나와 있어 대륙의 방파제와 같은 외관을 한다. 대륙과 사이의 초호(礁湖)는 수심 60m 이하의 대륙붕이며,
해저는 평탄하여 동쪽으로 약간 경사져 있을 뿐이다. 
관광의 중심은 케언스와 브리즈번인데, 관광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50곳 중 2위로 선정될 정도의 위용을 자랑한다.케언즈 앞 바다를 둘러싼 거대한 산호초 군단.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
(The Great Barrier Reef)라 불리는 이 거대한 산호초 장벽은 세계의 다이버들이 가장 동경하는 곳이다

언제나 선샤인, 멋진 하늘!

눈부신 하늘, 별마저 사랑스러운 곳!

언제나 스마일, 여유로운 대자연!

퀸스랜드.

우리들에겐 그리움이 되어버린 여름!

그 그리움 안고

아름다운 첼로 선율 따라

함께 떠나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