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3. 21:1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염불 불보살 이야기
물 속의 그림자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큰못에 가서, 물 속에 있는 순금의
그림자를 보고는 금이 있다고 외쳤다.
그리고 곧 물에 들어가 진흙을 헤치면서 금을 찾았다.
그러나 찾지 못하고 몹시 피로한 채 도로 나와 앉아 있었다.
조금 있다가 물이 맑아지자 금빛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다시 들어가 진흙을 헤치고 찾았으나 또 찾지 못하고
지쳐 버렸다.
아버지가 아들을 찾으러 왔다가 거기서 아들을 보고 물었다.
"너는 무슨 일을 하였기에 그처럼 지쳐 있느냐?"
아들이 말하였다.
"물 속에 순금이 있기에 물에 들어가 진흙을 헤치고 찾았습니다.
그러나 금은 얻지 못하고 이처럼 지쳤습니다."
그 아버지는 물 속의 그림자를 보고, 그 금은 나무 위에 있는
금인데 그 그림자가 물 속에 나타난 것임을 아들에게 알려 주었다.
"이것은 반드시 새가 금을 물고 가다가 나무 위에 둔 것일 게다."
그는 아버지 말을 따라 나무 위에 올라가서 그 금을 얻었다.
어리석은 저 범부들도
무지하기 그와 같다.
'나'가 없는 다섯 가지 쌓임 가운데
제멋대로 '나'가 있다 생각하나니
저 순금 그림자를 본 사람이
부지런히 애써 그것을 찾았으나
한갓 수고하고 소득이 없음과 같아라.
- 백유경(百喩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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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나의 모습인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거울을 비유하여 거울 속의 물체를 움직이려면 거울을 잡고 흔들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생활 속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거울에 비친 세상이 좋고 그 세상을 갖고 싶으면 거울 앞에서 뒤돌아 거울 앞 세상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거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현상은 거울 속이나 밖의 모습은 똑같은데 거울 속에서 해결해 나가려하니 대부분 잘 풀려가지 않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릅니다. 정신이 깨어있는 사람은 거울에 비치는 영상을 보는 즉시 자신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토대로 잘못된 것은 고쳐나갈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거울을 고치려 할 것입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화장품을 자신의 얼굴에 잘 바를 것입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 직접 화장을 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인 관계에서는 후자의 모습으로 대부분 하고 있습니다.
동기감응(同氣感應),끼리끼리(氣理氣理)의 법칙에 의해 자신의 에너지(업)와 같지 않은 것은 나타날 수 없으며 서로 다른 에너지는 동시에 만나 병존하지 못하기에 내 앞에 일어난 일, 나와의 인연된 것들은 모두 거울 앞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과 같은 이치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비방하는 사람이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마저도 나의 에너지(업)와 같은 것입니다. 그들과의 문제에서 상대를 대상으로 변화시키려하고 잡고 흔들면 일은 더욱 악화가 됩니다. 마치 물에 비친 금덩이를 찾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면 물이 흔들려 금덩이 모습은 없어지고 그 안에 있던 흙탕물이 일어나 금의 실체를 놓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을 비방하고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를 설득하려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의 모습과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려 노력하는 편이 났습니다. 그가 아무리 나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한다고 해도 결국 그 모습이 나에게도 있는 모습이니 그 만의 허점이나 과오일 수 없습니다. 특정한 사람의 행동이나 주장들이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깊은 곳의 모습임을 무의식적으로 알기에 그를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상황이든 외부의 나타나는 모습이 자신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차리고 자신의 내면을 보는 일에 집중한다면 아마도 세상에서 다툼은 사라질 것입니다.
다툼의 시작은 분별에서 비롯됩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 전체로써의 하나 라는 것을 안다면 서로 싸우지 않을 것입니다. 팔과 다리가 서로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다고 서로 다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 인종, 지역, 민족, 가치관이 다르다고 생각하면 다투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하나-한아(韓我)로써의 존재-한아님,하나님,한님,한을님,하느님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서로에게 겨눴던 화살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상대를 통해서 자신의 비춰진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글도 마찬가지고 말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대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대상을 통해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진짜가 됩니다. 마치 거울을 보면서 거울의 유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고 그 것을 파악하는 정신의 작용이 당연한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은 경계가 없어 이 말을 이해하지만 현실에서는 금방 망각하고 상대의 말에, 주장에, 모습에 울고 웃고 흥분하는 일을 반복합니다. 이런 이론과 실재의 차이를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갖다 주는 것은 하느님도 상제님도 부처님도 여호와도 그들의 말씀도 아니기에 내가 누구를 따르고 믿고 의지 하느냐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굴러다니는 돌을 신으로 알아도 그것을 통해 자신을 잘 관조할 수 있다면 그 돌멩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신들보다 더 훌륭한 신이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신의 모습 가지고 우열을 나누고, 특히 다투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가 소유한 장난감이 더 좋은 것이라고 싸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 안의 일이나 내 밖의 일은 같은 뿌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어느 쪽도 맘에 들지 않고 싫다하여 끊어버리거나 제거하면 둘 다 생명을 잃게 됩니다.
세상은 유일한, 전체이기에 하나 일 수밖에 없는 큰(韓) 나(我)만 있습니다.
한아님.
가섭산 수진암 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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