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0. 19:34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참다운 방생이란, 죽어가는 생명 살려 보내는 “공덕 중의 공덕”으로,
“방생합시다. 방생합시다. 우리 모두, 우리 모두 방생합시다.
자유와 자재를 바라거든 방생 합시다.
모름지기 살생을 않는 법 방생합시다.
길 잃은 중생을 살려주면 참다운 인연이 맺어지네
방생합시다. 방생합시다. 우리 모두 우리 모두 방생합시다.”
운허스님이 지었던 방생의식 집에 실린 4절로 구성된 방생의 노래 가사입니다.
새를 날려 보내는 조류 방생과 물고기 방생, 최근에는 불우이웃 장애인 등을 돕는 복지활동을 방생의 개념에 포함하여 새로운 방생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은 문자에 매여서가 아니라 그것은 엄밀히 구분하자면 자비행이지 방생일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표현을 한다면 그것은 자칫하면 보시자의 교만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이면 많은 사찰이 방생(放生)기도들을 한다고 엽서들을 보냅니다.
명승지의 사찰주변의 강과 저수지, 바다 어디를 가든 방생 나온 신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만, 당장에 한강변을 가더라도 무속인들이 방생기도를 하고나서 정리하지 않고 어지러이 버리고 간, 온갖 소품들을 보면 어쩔 땐 혐오스럽기 까지 합니다.
본디, 방생이란 죽어가는 산 짐승을 놓아주는 행위로, 살생을 금지하는 소극적 계율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현실에 맞게 방생의 개념을 넓게 갖는다면, 살생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선행에서 생명이 위태로운 것들을 풀어주고 적극적으로는 생명이 제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까지 관심과 노력을 하는 것을 통칭해서 방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생은 물고기나 날짐승만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환경파괴를 반대하고, 인간중심의 인간본위적인 인본주의 사고까지 부정하는 것으로 그 내용이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종교가 발생하는데 있어 지리적이고 기후적이며 풍토적인 면들을 사회과학적으로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부분들이 발견이 됩니다.
중동의 사막에서 발생해서 유럽의 수렵사회에서 발전했던 서양의 종교관념들은 인간의 생명 이외의 축생의 생명들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일용할 양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축생의 생명은 어디서 왔고, 인간의 생명은 어디서 왔습니까?
본디 태어날 곳이 정해져 태어나는 생명은 없습니다.
우리가 외출할 때, 오늘은 어디를 가니깐 가는 곳에 맞추어 옷을 입을 생각이라는 의업을 일으키게됩니다. 결혼식장에 갈 때 입는 옷과, 장례식장에 갈 때 입는 옷이 다르고, 명절 때 입는 옷과 계절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듯이 중생의 생명이 탄생이라는 과정을 거쳐 입게되는 옷은 자신의 과거 전생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는 신구의업에 따라 개 같은 옷도 입을 수 있고, 개만도 못한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며, 돼지 같은 옷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성불을 이루지 못하여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돌고돌아 살아가는 무명 중생들에게 육도윤회의 여행길에서 쉽게 벗어나고 축생의 몸이든 사람 몸을 받았던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방생이라는 자비방편을 우리에게 전해주셨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의식주(依食住)를 제공하고, 병든 사람은 병을 치료해주고, 괴로운 이에게는 괴로움을 없애 주고, 두려움에 떠는 이에게는 두려움을 제거하여 편안하게 살게 하며, 종국에는 생사의 고통이 없는 열반의 세계에 들게 하는 것이 자비방편인 방생인 것입니다.
방생은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오는 오랜 전통으로, 부처님이 어느 날 개울가를 지나가다 아이들이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를 막대기로 찌르는 등 못된 장난을 치며 노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했습니다.
“너희들이 남에게 몹쓸 짓을 당하면 기분이 어떻겠느냐, 좋을 까닭이 없겠지” 아이들은 일제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고기를 개울 속에 놓아 주었다고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방생의식은 없었지만 모든 계율과 수행자들의 삶속에 방생의 철학은 생활철학으로 실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불교의 생명존중 사상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이 안거입니다.
우기(雨期)인 3개월 동안 외출을 하지 않고 한 군데 머물며 수행하는 안거는 사람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까지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처님 당시, 비구들이 맨발로 다닌 것 역시 딱딱한 신발에 밟혀 죽을까 봐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지도론에서는 “모든 죄업 중에 살생의 죄업이 제일중하고 모든 공덕 중에서 방생이 제일”이라고 했고,
범망경에는 “모름지기 佛子는 자비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것을 살려주는 마음을 일으킬 것이니, 일체의 남자는 다 나의 아버지요, 일체의 여인은 다 나의 어머니라, 내가 낳을 때마다 의지하여 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육도의 중생이 다 부모이다. 잡아서 먹는 것은 곧 나의 부모를 죽이는 것이며, 또한 나의 옛 몸을 죽여서 먹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항상 방생을 행할지어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축생을 죽이는 것을 보거든 응당히 방편으로 구호해서 그 고난을 풀어 주고, 항상 보살계를 강설하여 중생을 교화해야 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중생의 마음속에 자비심을 길러주는 방편인 방생의 근거는 어느 경전에 있고 어떻게 우리에게 전해졌는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생의 근간은 금강명최승왕경 권4 ‘유수장자품’에서 비롯됐습니다.
막강한 재력을 가졌으나 인생의 무상과 삶의 유한함을 절절히 깨달았던 유수장자가 부처님의 법을 듣고 환희심을 일으켜 마음 닦는 공부를 하던 중, 이웃나라에 장사를 하기위해 두 아들과 함께 먼 길을 나서 길을 가던 중, 하늘에 독수리와 솔개와 까마귀와 온갖 남의 생명을 먹이로 삼는 새들이 까맣게 한 곳으로 몰려가는 곳을 보고 일행인 하인들과 두 아들을 데리고 그곳에 가보니 조그만 저수지에 물이 말라들어 그 속에 살던 온갖 고기들이 뒤엉켜 있었고, 들짐승 길짐승들은 그 물고기들을 먹고자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 유수장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 내가 부처님의 법을 만나 육도윤회의 법을 알고 생과 사를 벗어나는 진리를 알게 되면서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살았는데 지금이 내가 참다운 자비 행을 할 기회이다.” 하는 마음이 들자, 바로 국왕에게 달려가 백여 마리의 코끼리 떼와 물을 담을 물푸대를 요청했습니다.
유수장자의 선행을 익히 아는 왕은 그 이유를 묻자 유수장자가 그러한 사정을 대충 알려주자 왕은 쾌히 승낙을 하였고, 유수장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코끼리 떼에 물을 가득 담아 먹이로 전락한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늪에 물을 채우고, 고기들에게 먹이를 뿌려주고, 유수장자는 물속에 들어가 여래십호를 정근하고 십이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려주어 물고기들로 하여금 도리천에 나게 하는 공덕을 베풀었다고 합니다.
이 경전이 나온 이후에 물고기를 방생하고 독경하는 방생법회가 생겨 났던 것이며, 오늘날의 방생은 중국 천태종 종조인 천태지의 대사가 방생법회를 처음 실시한 사람입니다.
방생에 얽힌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그 중 중국 북송(北宋)시대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이야기가 가장 유명한데, 연수스님은 출가 전 직업이 창고지기였는데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 공금으로 물고기와 새우 등을 사서 방생을 하다 들켜 사형선고까지 받았을 정도였습니다.
연유를 다들은 관찰사의 배려로 풀려난 스님은 불문에 귀의하였고, 출가 이후에도 밤에는 귀신에게 밥을 주고, 낮에는 방생을 하여 스님이 앉아 정진하면 품 안에 새가 둥지를 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교의 모든 경전이나 원시경전을 보면, 대부분 인과도리가 설해져 있고, 지혜로운 삶에 대해 설하셨습니다.
인과란 인연과보의 줄어진 말로 인이라는 씨앗이 연이라는 조건을 만나게 되면 뿌리를 내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과라는 현상이 생기게 되고 꽃을 감상하거나 열매를 따먹게 되는 것은 보로써 뿌리면 거두고 심으면 나는 자연의 법칙이요, 우주의 질서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돈에 대한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져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은 인과의 도리가 허물어져버린 이 시대의 편리한 종교들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하고선 자신은 회개하거나 참회하여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 거듭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 피해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설명은 인연법까지 설해야하니 길어짐으로 생략하고,
전통적으로는 방생은 음력 정월 보름, 3월3일 삼짓날, 또는 8월15일 방생법회를 가졌으나, 요즘은 방생 일을 특별히 정하기보다 사찰의 편의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음력 정월에 방생을 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이라고 하나, 새해가 시작되는 뜻 깊은 날에 자비공덕을 쌓고자 하는 바램들이 그 주가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고래로 삼월 삼짓날 하는 방생은 반드시 득남한다하여 중시했던 풍습이었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적석도인의 칠종방생(七種放生)을 소개해드리며 방생에 대한 법문을 끝맺고자합니다.
적석도인(赤石道人)은 다음의 일곱 가지 경우에는 꼭 방생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식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방생하라.
세상 사람이 자식을 얻고자 약 먹기에 힘을 쓰나 한 평생을 먹더라도 효험을 보지 못하는 자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병이 있거든 약을 먹고, 자식이 없는자는 전생에 살생을 많이 한 과보이니 방생하라.”고 권한다.
둘째는 자식을 잉태하면 반드시 방생하여 산모(産母)를 보전하라. 잉태하여 자식을 보는 것은 사람과 만물이 다르지 않다.
사람과 짐승도 모두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새끼를 내가 구해 주는데, 내가 자식을 잉태하였음을 아시면 하늘이 어찌 보호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자신은 자식이 태어낳다고 기뻐하며 산모를 위한답시고, 새끼딸린 짐승을 잡아 몸을 보신한다는 어리석음으로 악업을 스스럼 없이 어리석게도 짓고 살아가는 것을 종종 보게됩니다.
셋째는 기도를 행함에 있어 반드시 방생하여 복을 많이 지어라.
태어남을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은 제신(諸神)과 부처님이 동일하다.
이러한 제신과 부처님의 호생지덕을 생각하여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생물들을 살려주어라. 만일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는 염불이라도 해주면 자연히 하늘이 감동하여 그 복을 얻음이 한량없을 것이다.
운전을 하고 가시다가 차에 깔려죽은 축생들을 보면서 주행 중에 어쩔수는 없으나, 한 손 만이라도 가슴앞에 한 손을 들고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열번만이라도 죽어 스처간 축생을 위해 염불을 해주며, "부디 이 작은 염불일지라도 이차인연공덕으로 극락왕생하거라" 하면서 가신다면 무한 공덕을 쌓게되어 여러분들에게 일어날 큰 사고는 작아지고 작은 사고는 피해갈 수 있는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는 미리 업을 닦고자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세간의 자선(慈善)은 방생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내가 자비의 마음으로 방생하면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의 덕을 입을 것이다.
다섯째는 재계(齋戒)를 가짐에 반드시 방생하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계율 지키는 것을 좋아하심은 만물에 자비심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어 움직이는 일체 중생이 태,란,습,화라, 태로 태어나고, 알로 태어나고 습해서 충이라는 생명이 생겨나고, 더운기운으로 태어나는 모든 것들의 자비스러운 아버지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부처님의 자식이 아님이 없다.
진실로 재계를 가지는 날에 방생하면 제불보살이 환희심을 낼 것이다.
여섯째는 복록(福綠)을 구함에 먼저 방생하여 복을 쌓아라.
부귀명복(富貴冥福)은 요행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복을 짓는 자 반드시 명복(冥福)을 얻는다.
사람이 어진 마음으로 생물을 어여삐 여겨 그 목숨을 구제해 주면 나의 구제를 입은 미물일지라도 몸을 바꿔 언젠가 인연의 기회를 보아 보답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일곱째는 염불함에 반드시 방생부터 하라.
세상에 살면서 염불하는 사람은 자비심으로써 방생을 주로 하라.
생물을 구제함이 사람을 구제함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극형(極刑)을 범하는 것은 대부분 온갖 욕심과 충동과 장난삼아 하지만 동물들은 무슨 죄로 참혹한 환난을 만나야 하는가.
어린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생명이 걸려있듯이 우리는 자신의 건강을 찾아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것들의 생명을 죽여 갖은 양념에 절여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온 몸에 퍼진 축생의 아드레날린이라는 독소를 양념 맛에 취하여 먹고있는 우리들의 삶일 것입니다.
적석도인의 말처럼 방생이 아이를 가질 인연을 맺어준다는 영험담이 많아 고려 때는 결혼식순에도 방생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런 풍습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성행해 일본의 명문가에서는 집 근처에 방생지(放生池)를 파 놓고 수시로 방생을 하여 자손이 번창하기를 기도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까지 여자들은 사내아이를 원하면 삼월 삼짓날 방생하고 사월 초파일 까지 한 달 동안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외래어종을 들여와 무분별하게 놓아주는 자비심을 기르는 깊은 자기 수행의 의미보다는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기복적인 잘못된 방생은 하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일들이 벌어지므로 수년 전부터 등장한 조류 방생은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물고기 방생을 주로 했던 반면 일본은 조류방생이 주류라고 합니다만, 오대산 월정사에서는 비둘기들이 쏟아내는 오물로 인해 비둘기 방생을 자제해달라는 기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법주사는 몇 해 전 사슴을 방생하기도 했고 지리산에서는 반달곰을 방생하기도 했으나. 방생하는 행위 후 사후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물고기 방생 대안으로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환경보존에 앞장서기도 한다. 특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비복지 신행을 방생으로 인식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방생하는 날은 보살님들이 가정과 자식으로부터 ‘방생’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성지순례를 가면 법당에 올라가는 것도 무릎에 힘없어 힘들다고 일주문 주춧돌에 궁둥이 붙이고 쉬던 보살들이 방생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가만 보면 잔치 분위기로, 관광버스 춤에다가 버스노래방에 온갖 쇼가 벌어져 사고의 위험도 있고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도 있고 교통경찰들이 단속을 하니 이젠 아예 커튼을 쳐놓고 해대는 차도 있습니다만, 뒤따라 가다보면 방생버스 궁둥이 까지도 신나게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처럼 남편과 자식의 등쌀에서 벗어나 야외에서 맑은 공기를 쐬고 방생을 통해 복을 지었다는 기쁨에 겨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함께 날리는 것까지는 좋은데 “과유불급”이라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다가오는 방생 뒷풀이일 것입니다.
저는 몇 해 전에 참으로 뜻 깊은 거사님의 발원으로 한강을 살리고자 천일 동안의 방생에 뜻에 두고 미꾸라지를 하루에 80㎏씩 한강 변에 매일 나가 방생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기도를 하면서 커다란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하거나 공덕을 짓는 것은 부처님과 장사를 하는 행위입니다. ( 달마대사와 후한 무제의 무공덕 )
이 몸이 사지육신이 멀쩡함을 부모님께 감사하고 잘 건사하여 자기가족과 주변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기의 건강함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다음 생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삶이 윤회의 밭에 씨 뿌리는 행위임을 아신다면 지금 이 순간에 삼보 전에 진실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1 남파에서 천지를 봅니다.주차장에서 저어기 까지만 걸으면 천지___하늘이 내린 물, 그곳을 봅니다
02. 제가 가는 날은 언제나 날씨가 좋았습니다. 복이 많은가 봅니다...ㅎㅎ
03. 동그라미는 천문봉, 선따라 하산, 달문으로 내려 오며 천문봉에서 달문으로의 하산길에는 오르막 없고 조망이 아주 훌륭합니다
04. 타원으로 표시한 곳이 천지 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달문이네요. 오른쪽에서 내려 오는 길이 제법 선명합니다
05. 서파에서 찍은 사진으로 건너편에 천문봉과 달문이네요
06. 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구간으로 계단이 1,236개, 거리가 900m입니다만 애들도 신나게 뛰어 다닙니다.
07. 여기는 찦차로 오르는 천문봉이구요, 중국의 정치가 최고 대빵이 올랐다는 곳이네요-
일출을 핑게로 저곳 다다미에서 재우는 여행사도 있더군요, 물, 전기, 식사, 화장실 모두 뻔할 뻔짜입니다. 고생 찐하게 할걸요...ㅎㅎ
08. 건너는 백두산의 최고봉으로 이름은 병사봉 혹은 장군봉이라 합니다. 천지 물가에 북한 초소?구요. 망원경으로 보면 북한 병사가 보입니다
09. 천지에서 유일하게 강으로 흘러 나가는 달문입니다. 물가에 직접 닿도록 중국에서 허용하는 곳이기도 하구요
10. 비룡폭포(장백폭포) 통행을 제한하여 달문에 사람이 뜸 합니다.
11. 달문에서 승사하를 지나 비룡폭포로 떨어진 물이 저곳으로 흘러 만주벌판을 적시고 송하강과 두만강에 합류하는것으로 압니다만...
12. 백두산 야생화는 사계절 함께 존재하는것도 같지만 조금은 늦게 피는 꽃도 있더군요. 어떻게 그리 철을 잘 아는지...
13. 장백폭포로 하산을 통제할 경우 이곳을 약 한시간쯤 올라야 합니다. 어느 아줌마 에고~힘들어 하더군요
14. 쉬엄쉬엄 뒤돌아 보면서 한시간쯤 가면 되는데... 해발이 높아 숨이 가뿐가 보네요.
15. 윗쪽에서, 아래쪽에서 살폈지만 통제할 이유가 없는데... 오늘까지도 통제한다는 소식입니다.
16. 만병초가 지고, 하늘매발톱이 지고, 좀참꽃이 지고, 두메양귀비도 가고, 지금은 흰오이풀과 비로용담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17. 비룡폭포 옆길을 통제하니 이런 풍경을 만나게 되는군요. 장엄하고... 숙연해 집니다
18. 물안개 퍼지며 우뢰소리 같은 박력은 느끼지 못하지만... 유구히 흘러 우리민족의 젖줄이 되어 줄것을...
19. 우리가 숙박할 호텔입니다. 식사, 잠자리 서울과 거의 비슷하여 편하고 좋은데... 비용이 대단히 비싸댑니다. 앞쪽 파란지붕이 온천이구요
20. 요번에는 백운봉을 오를 수 있는지 알아 보겠습니다. 오를 수 있다면 당근... 올라야죠. 근데 많이 위험하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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