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불수행/허운화상

2009. 11. 11. 19:5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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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행과 불수행/허운화상

    제5부 수행과 불수행(不修行)

     

    수행한다고 하거나 수행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모두 부질없는 말이다.
    그대와 내가 자신의 이 마음빛[心光]을 사무치기만 하면
    그대로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수행한다고 하거나 수행하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하신 경우를 보라.
    출가하여 도를 묻고 6년 고행을 거쳐 도를 깨닫고 나서
    밤에 샛별을 보면서 탄식하시기를,
    '기이하고 기이하도다.
    온 세상의 중생들이 모두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가지고 있는데도,
    다만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만약 망상만 여읜다면 곧 청정한 지혜[淸淨智], 자연스러운 지혜[自然智],
    스승 없이도 스스로 아는 지혜[無師智]가 저절로 현전할 것을......' 하셨다.
    그 후로 49년간 설법하시고 나서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 하셨다.

    그 뒤를 이은 조사들도 한 맥으로 법을 이어가면서 모두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이 셋이 차별이 없다[心佛衆生三無差別]'거나,
    '곧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견성성불하게 한다'고 인정하셨으며,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설명해 주기도 하고
    방망이[棒]를 휘두르거나 고함[喝]을 지르기도 하셨으니,
    이는 모두 공부하는 이들의 망상과 분별을 끊기 위함이었다.

    요컨대 그 분들은 모두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도록' 한 것이며
    조금도 방편적인 복잡한 수단[方便葛藤]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수행한다고도 하고 수행하지 않는다고도 한 불조(佛祖)의 뜻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대와 나의 이 현전하는 일념은
    본래 청정하고 본래 구족하며, 두루 원만하여
    묘용(妙用)이 항하사(恒河沙) 같이 한량없어서
    삼세제불(三世諸佛)과 더불어 조금도 다름이 없다.
    다만 선악(善惡)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성불하고,
    앉아서 천하태평을 이룰 수 있다.
    이렇거늘 무슨 행을 닦을 것이며,
    수행한다는 것이 어찌 헛소리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현전하는 이 한 생각 마음이 밖으로 치달아[向外馳求]
    망상과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니,
    무시이래(無始以來)로 생사에 윤회하여
    무명번뇌(無明煩惱)가 더욱 물들고 더욱 두터워진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이 곧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안 다음에는 깨닫지 못하여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며,
    큰 일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리는 결단력[壯士斷腕]도 없어,
    오래도록 망상 집착 가운데서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좀 낫다는 사람들도 종일토록
    이리저리 선(禪)을 찾고 도(道)를 구하여 유심(有心)을 여의지 못하며,
    그보다 못한 사람들은 탐진치애(貪瞋痴愛)가 타파할 수 없이 너무 강하여
    도를 등지고 내달린다.
    이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생사에 유전(流轉)하여 그칠 때가 없으니,
    수행하지 않는다 하면 어찌 공허한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대장부는 바로 알아차려서
    깊이 고금의 사물이 모두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으며
    그림자 같아서 자성(自性)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주관)과 법(객관)이 문득 공해지고[人法頓空]
    모든 반연이 쉬어져서[萬法俱息]
    일념이 만년되고[一念萬年] 곧바로 무생(無生)에 이르러야 한다.

    이런 사람을 옆에서 보면 옷 입고 밥 먹고,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이 보통 사람과 똑같아서,
    남들은 그가 자기의 청정하고 태평한 집 안에 앉아서 무진장의 보배를 누리며,
    무심무위(無心無爲)하고 자유자재하며 동정여여(動靜如如)함을 알지 못한다.
    차고 더움[冷暖]은 오직 자기만이 아는 것이다.
    삼계(三界) 육도(六道)의 인간과 천인, 귀신들이
    비단 그를 엿보고 깨뜨리지 못할 뿐 아니라
    모든 부처와 보살들도 또한 저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이렇거늘 수행한다거나 수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굳이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뜻을 일으켜서
    생사를 뼈아프게 생각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정진 수행하고,
    스승을 찾아 도를 물으며 힘써 참구해야 한다.
    항상 선지식을 구하여 길을 지시받고 정(正)과 사(邪)를 가려야 한다.
    그리고 '끊듯이[切], 갈듯이[磋], 쪼듯이[琢], 다듬듯이[磨] 하고',
    '강물로써 씻고 가을볕으로 쪼여',
    점점 정밀하고 순수하며[精純] 맑고 깨끗한[皎潔] 경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니,
    수행하지 않는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옮겨 본 것으로,
    한갓 어지러운 설명일 뿐이다.
    눈 밝은 사람이 본다면 너절하게 늘어놓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조사(祖師)의 뜰에는 가을이 깊었고
    성인(聖人)이 가신 지는 오래 되었으므로
    보통 근기들을 위하여 부득이 이처럼 늘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진실로 논한다면 수행한다거나 수행하지 않는다거나 모두 헛소리일 뿐이다.
    당장 이 자리에서 일 없다면[直下無事]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本無一物],
    어찌 입을 벌릴 수 있겠는가?

    보살들이여, 알겠는가?    

     
        - 허운화상의 참선요지에서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바라보면서

       

      시:김연춘...노래: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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