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일 대비주 기도회향

2009. 11. 16. 19:30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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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우리가 다음주면 우리절의 제 3차 천삼십일 기도가 막을 내리는 회향하는 날입니다.


오늘 법문은 기도시간이면 어김없이 함께 해 오신 고보살님도 계십니다만, 그동안 기도를 해왔고 동참해왔던 여러분들의 신심과 기도하시면서 과연 여러분들은 얼마나 일상의 삶들이 달라지셨는가를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적어도 천일기도를 해보겠다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시간에 함께 해 오신 고보살님의 대단한 말뚝신심과 주말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어김없이 일요법회와 기도에 참석하여 법문을 듣고 가슴에 새기며 아! 저 말은, 저 법문은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데,.. 하며 공감을 해 오신 여러분들의 의업들이 얼마나 변화해 왔는가를 남에게 들키기는 죽기보다 싫은 나의 내면의 세계를 우리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이 되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절에서 천삼십일 기도를 세 번씩이나 동참하고 해 오신 소위, 대보살 축에 드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러분들께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앉은 자리를 내려다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세 번씩이나 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의 일상의 삶은 과연 얼마나 하고자 하는 바의 성취가 있었으며, 다음 생을 결정지어 스스로 씨를 뿌리는 자신의 의업은 얼마나 달라져 계십니까?


이 자리에서 과연, 나 이렇습니다. 나 이렇게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고 자신 있게 손 한번 번쩍 드실 수 있는 분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십니까?


아마, 안계실겁니다.

왜냐, 이것에 끄달리고 저것에 끄달리고 이것에 매이고 저것에 매이고, 애들 땜시롱, 남편 땜시롱, 온갖 것에 여섯가지의 감각기관이 일상의 수만 가지의 대소사의 대상들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우리의 분별과 욕구와 집착과 애착들로 인하여 우리는 번뇌하고,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욕구에 시달리고 남의 집과 우리 집을 비교하면서, 남의 집 잘나가는 아저씨와 못나게만 느껴지는 우리집 아저씨를 비교하고 잘난 남의자식과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우리집 애들을 비교할 때마다 속 터지는 이 어리석음으로 스스로 번뇌의 불길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번뇌의 씨앗인 것입니다.


지금 오늘 이 순간, 이 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이나, 아니면 남다가는 피서를 가기위해 뒤늦게라도 동해안으로 부지런히 가족을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분들도 계시고 PC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나 이 모두가 우리는 매일 매일을 보내며 우리의 삶은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절대명제를  절절히 깨닫고 통찰하는 사람은 무엇에 그리 애닮을 것도 없고 집착하고 애착할 것도 없음을 잘 알게 됩니다.


언젠가 한참 20대 여자애들이 부모를 원망하고 자기의 처지에 대해 속상해 하기에 모두 차에 타라 하구선, 다 늦은 밤에 속칭, 청량리 588이라는 곳에 차를 몰고 지나가면서 차창 너머로 제 또래의 애들이 속옷만 걸친 듯 만 듯, 야릇한 불빛 아래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늘어지는 곳을 통과해서 오면서 제가 하는 말이 자, 봐라 지금 저기애들은 다 니들 또래 애들이다. 재들은 어찌해서 저기에 와 있고 너희들은 그래도 부모님들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계시기에 너희들은 이 날까지 이렇게 건강하고 저녁이면 한 지붕 밑에 가족이 다 모이는 않느냐, 지금부터는 너희들의 노력이 자기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 엄마 아빠에게 그만 바라지 말거라. 했더니 그 후로 아이들의 삶이 달라졌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무엇에 괴로워하고 마음에 차지 않아 힘들어 하고 계신다면, 이 법회 끝나고 바로 저 벽제 화장장나 수원화장장에 가셔서 두어 시간만 어슬렁거리다 와보십시오.


아마, 부처님께서 오셔서 법문을 하지 않으셔도 스스로 절절히 무상을 깨닫고 괴롭던 마음이 가라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래도 우리가족들 모두가 한 지붕 밑에 모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끼실 것입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는 절절히 느끼고선 되돌아오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반 까먹고 집에 들어와 또다시 눈에 거슬리는 것이 보이는 순간 반에 반 까먹고 다음날이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또다시 온갖 것에 부딪치며 육근이 육경을 대하면서 온갖 망상과 애욕과 욕구와 집착으로 뒤범벅되어 버리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일요일 마다 정신차리게 해주는 것이 바로 법회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자기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예수고 부처고 하나님이고 없습니다. 소위,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생들에게는 오르고 내리고 즐겁고 괴로운 온갖 팔만사천 가지의 고뇌들이 존재하여 우리를 철들게 하고 기도에 매달리게도 하며 우리들 마음이 간절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 집안에 아무런 탈 없이 큰일 없이 법회에 오신 여러분들의 가정의 삶, 이것이 바로 기도의 가피인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이러한 법문을 듣고 스스로 자기의 삶이 우리 가족들의 일상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충만한 불보살님 들의 가피 속에 있음을 자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겁생래 알게 모르게 뿌려온 온갖 인연과 인과의 씨앗들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고 반성하고 감사하고 이후로는 같은 업은 짓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하건만,

 

달을 가르키면 달을 봐야하건만, 달은 처다보지도 않고 손가락 끝만을 처다보는 분들이 있기에 이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 알기로 여러분들의 일상의 삶들이 그리 변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왜냐, 바로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능력이건만, 그동안 천삼십일 기도에 동참하고 천일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에서건, 법당에 오셔서건, 해 오신 보살님들이나 법회에 오신 여러분들의 얼굴을 보면 들어나 보입니다.


아무리 손금을 잘 본다 해도 맞추는 건 20%도 안됩니다.

아무리 관상을 잘 본다 해도 30%도 못 맞춥니다.

아무리 사주를 잘 본다 해도 50%도 못 맞춥니다.

그러나 심상을 볼 줄 안다면 100%인 것입니다.

(白雲仙師 이야기: 나뭇꾼 총각과 장마철 개미떼)


바로 여러분들의 일상의 의업을 바꿀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건만 하지들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일곱가지로  나 아닌 가까운 가족들부터 시작하여 주변사람들에게 될 수 있으면

얼굴엔 和色을 띠고 말은 親切하게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對하면서 편안하고 좋은 마음을 담은 눈으로 바라보며 무엇이든 親切히 잘 가르쳐주고 좋은 자리다 싶은 자리는 나보다 불편함을 가진 남에게 양보하고 참배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방석이라도 권해주는 마음씀씀이가 바로 의업을 수행하는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심상은 달라지고 이에 따라 얼굴에 나타나게 되고 자신의 삶들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천삼십일기도를 세 번씩이나 행해온 우리절

청정도량에 오시는 여러분들은 심상이 달라지시

고 의업들이 달라지셨으리라 여기며 오늘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