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소멸 십악참회 기도

2009. 11. 18. 19:1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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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있고 내일이 있다면, 지나간 작년도 있었고 다가올 내년도 있습니다.


어릴 적이 있었고 현재가 있다면 늙어 노후가 있을 것이니, 이를 과거, 현재, 미래라 한다면 지금 살아가는 금생이 있다면 과거 생이 어찌 없을 것이며, 이생을 마치면 내생이라는 다음 생이 왜 없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영혼이라는 주인공은 끝없이 윤회를 거듭하는 영겁의 시간 속에서 그래도 전생에 지은 바 선업이 있어 욕계라는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으나,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는 세 가지 업으로 지은바 복들은 고만고만해서 중생 중생들의 살아가는 모습들은 좋은 일 한번 있으면 뒤따라서 궂은 일 한번 따라오고, 즐거운 일 한번 생기면 괴로운 일이 바로 찾아오니 이 모든 것이 다 과거 전생에 또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오면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씨 뿌려왔던 과거 전생의 업으로 인함이라,


잘되면 자기 잘난 줄로만 알고, 주변사가 안 풀리고 꼬이면 다 조상 탓으로 돌리는 사람 사람들의 이기심이 스스로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전번 8월 27일에 제 3차 천삼십일 기도를 회향했고, 이제 윤 7월 기도가 10월 8일에 회향을 하게 되면 잠시 쉬었다가 “생자와 망자를 위한 일체 업장소멸 십악참회를 위한 제 4차 천삼십일 기도”를 봉행하고자 합니다.


대저, 인간들 삶의 역사는 모두가 身口意 三業이라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윤회의 밭에 업의 씨를 뿌려 지금 이 순간까지의 자신의 삶을 꾸려왔고, 그 살아가는 모습은 생노병사와 희노애락 우비고뇌의 뒤범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욕지 전생사이면 금생수자시요, 욕지 내생사이면 금생작자시며 욕지 노년사이면 초년작자시라,”


지금 살아가는 현실의 내 모습을 보면 과거 전생에 운명의 밭에 내가 어떤 씨를 뿌렸었고, 어떻게 농사를 지었던 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죽어 다음 생이 있어 다시 태어난다면 어디에 어떻게 태어날 지는 지금 내가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내 인생의 밭에 업의 씨를 뿌리고 지혜로운 농사를 짓고 있는가를 스스로 느낄 줄 안다면, 다음 생에는 지금처럼 조상 탓을 한다거나 부모를 원망하는 박복한 인연은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부처님 회상에 출가하여 위로는 불전의 은혜와 아래로는 시주은혜를 갚고 요익중생을 하기위해 이번 기도는 인연되신 분들 모두가 신구의 삼업으로 지어온 열 가지의 십악을 참회하고 소멸시켜주는 일체업장 십악참회 기도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십악 중에 신업이라, 몸으로 짓는 세 가지가 있으니 바로 살생을 한 악업과 도적질한 악업, 삿된 음행을 한 악업을 소멸시키고자 백일씩 나누어 삼백일 동안 세 가지 악업소멸을 위한 업장소멸 참회기도를 한 후, 다음 사백일 기도 또한, 구업이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 거침없이 해왔던 거짓말과 교묘하게 사기치고 이간질하고, 험한 말을 했던 입으로 지은바, 네 가지의 악업을 소멸시키고자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삼백삼십일은 모든 말과 행동은 생각의 지배를 받아서 행해지는 의업의 종인지라 일곱가지의 악업을 만들어내는 의업으로 인한 탐심과 화를 내는 진심과 자기가 주인이라면서도 유혹을 어쩌지 못하고 악업을 저지르고 마는 치심이라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저질러온 악업을 소멸하는 백삼십일 업장소멸 참회기도를 봉행하고자 합니다.


“자비도량 참법”이라 하여 살아 있는 자신 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선망부모조상을 위해 업장을 소멸하고 죄업을 소멸하는 참회기도를 할 때는 이 참법을 위주로 참회기도 들을 합니다.


여러분들 눈으로 지금 앉아계시는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옆에 앉아계시는 낯익은 분들이 바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옆에 분들의 마음도 보이시나요?

아마 안보이실 겁니다.

심지어 자신의 마음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 경계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있으니 마음이고 생각이라 부르는 거지, 죽으면 그게 바로 귀신이고 영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모두가 자기 안에 귀신과 함께 있고 이 육신 안에 자기의 영혼을 담고 있으면서 귀신 따로, 영혼 따로 생사를 분별을 하면서 지내는 것입니다.


제가 혼자 기도하면서 가만히 관을 하면 기도하는 제 뒤에서 무수한 영가 분들이 기도에 동참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지 육신이 없다 해서 다르게 보지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기 이 법회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의 몸 안에 함께 있는 것이 바로 그 주인공들일 뿐인 것입니다.


당부드리건데 생사를 따로 구별 짓지 마시고 다만 육신이 없어 보고 듣고 말하고 접촉하고를 못할 뿐이지, 주인공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보건만, 다만 입이 없어 말을 못하는 뿐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여섯가지의 감각기관에 의한 분별작용으로 의업을 일으켜 신업과 구업으로 일상을 살아갈 뿐이란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부처님 전에 공양물을 올리면서도 한 티끌도 머무름 없는 지극함이 우선되어야하고 영단에 잔을 한 잔 올리면서도 지극하고 간절함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일상은 밝아지고 인연된 영가들은 이생에 대한 애착과 집착과 원결들을 풀어버리고 가벼운 혼이 되어 제 갈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을 함께하고자 기도를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비도량참법은 10권으로 되어있으며 6세기에 양나라 무제에 의해 여러 학승들이 편찬한 것으로, 이 책의 이름은 자비로운 도량에서의 참회법이라는 뜻입니다.


이 책의 첫머리에 실린 <전>에서는 무제가 황후 치씨의 죽음으로 하여 슬픔에 잠겨있던 어느 날, 큰 뱀이 나타나서 자기는 치씨의 후신이며 생전에 시샘이 많아 사람들에게 모질게 굴었기 때문에 뱀으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지난 날의 온정을 생각하여 자기를 위한 공덕을 이루어달라고 하자, 무제가 스님들을 청하여 의논한 후, 스님들의 의견에 따라 여러 불경들에 실린 참회문들을 추려서 10권의 책을 편찬하여 기도를 해주자, 이로 하여 치씨는 도리천이라는 하늘 세상에 태어나면서 무제에게 다시 나타나 감사 함을 보였다는 내용으로, 양 무제와 황후 치씨의 인연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자비도량참법”으로 살아생전에 죄업소멸을 위한 기도를 한 사람은 그 죄가 없어지고 복을 얻으며, 돌아가신 선망부모 조상을 위해 그 영혼을 제도해주는 기도로 예로부터 행해왔던 기도법입니다


그러면 이 기도만 하면 이미 저질러진 인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악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냐,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 의문은 바로 여러분들이 기도 때 마다 줄줄이 외우시는 천수경에 답이 있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라 죄의 자성 본디 없고 망령된 마음 따라 일어난 것, 망령된 마음만약 없어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네, 죄도업도 없어지고 마음 또한 공하여야 바로 이를 이름하여 진참회라 하는 도다.

“참회진언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이처럼 입으로만 하는 건성참회가 아니라 일념즉시 돈탕제가 될 정도로 공의 세계에 들어갈 만큼의 일념참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자비참법의 내용을 보게 되면 이 참법을 대하게 됨으로 스스로 기쁨이 넘치게 되니 자경(自慶)이라 하여,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삼보에 귀의한 이후부터 지극한 도덕을 믿을 줄을 알고 의심을 끊어 참회하였으니, 죄업과 번뇌가 모두 없어졌을 것이요, 계속하여 발심하고 실행할 것을 권장하였으니, 원결이 이미 풀리어 소요자재하여 장애될 것이 없으리라.

어찌 사람마다 환희 용약하여 스스로 기뻐하지 아니 하리요. 


이제 그 뜻을 말하리라.


경에 팔난(八難)을 말하였으니, 一은 지옥이요,二는 아귀요, 三은 축생이요, 四는 변지(邊地)요 五는 장수천(長壽天)이요, 六은 사람이 되었으나 난치의 병으로 불구가 됨이요, 七은 사견가 (邪見家)에 태어남이요 八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나는 것이니라.


이러한 팔난이 있으므로, 중생들이 생사에 윤회하면서 벗어 나지 못하느니라.

우리들은 여래의 말법 중에서 나서 부처님을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경사가 오히려 많으니라.

“난(難)”이란 말은 마음에 죄가 있음이니, 마음으로 의심하면 난이 아닌 것도 난이 되고, 마음에 의심이 없으면 난이 되지 않느니라.


어떻게 그런 줄을 아는가.

여덟째의 난에 부처님이 계시지 않을 때 나는 것을 난이라 하였거니와, 성동노모(城東老母)는 부처님과 한 세상에 나서 부처님과 한 처소에 있었으나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마음으로 의심하면 난이 되고 다른 세상에 난다고 해서 난은 아니니라.


또 파순은 나쁜 생각을 가졌다가 살아서 지옥에 빠졌고, 용왕은 법문을 듣고 문득 도를 깨쳤으니, 반드시 천상이나 인간에 났다고 해서 난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느니라.


마음이 진실로 선하지 못하면 태어남도 다를 것 없나니,

천상의 귀한 몸으로도 지옥에 떨어지고, 축생의 천한 몸으로도 도량에 오르나니,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마음이 삿되면 가벼운 난도 무겁게 되고, 마음이 바르면 무거운 난도 장애가 되지 않느니라.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마음이 장애되는 탓으로 간 곳 마다 난難이 되거니와, 마음이 바르기만 하면 난도 난이 되지 않나니, 이 한 가지에 따라야 할 바가 있느니라. 


그러므로 부처님 앞과 부처님 뒤도 정법 아닌 것이 없고, 변지와 축생도 모두 도를 얻는 곳이니라.


이제 만일 마음이 바르면 八난이 다시없을 것이요,

만일 의혹하면 한량없는 난이 될 것인즉, 이렇게 기쁘고 다행한 일이 적지 않건마는 대중이 날마다 만나면서도 알지 못할세,

이제 대강 소견을 말하여 스스로 기쁘고 다행한 일을 보이리니, 만일 기쁘고 다행한 줄을 알면 모름지기 출가할 마음을 닦을지니라.

( 네 가지의 출가 )


어떤 것을 스스로 경행(慶幸)한 일이라 하는가.

부처님 말씀에, 지옥을 면하기 어렵다 하였으나 우리는 이미 이 고통을 면했으니, 첫째 경행한 일이요, 아귀를 벗어나기 어렵다 했으나 우리는 이미 그 괴로움을 여의었으니 둘째 경행한 일이요, 축생을 버리기 어렵다 하였으나 우리가 그런 과보를 받지 아니 하였으니 셋째 경행한 일이요,

변지에 태어나면 인의(仁義)를 모를 것인데 이미 근역(槿域)에 함께 있으면서 도법이 유행하며 친히 미묘한 이치를 들으니 넷째 경행한 일이요,(법회에 참석한 이치, 법문을 듣는 이치) 장수천에 나면 복을 지을 줄을 모를 것이나 우리는 벌써 좋은 인을 심었으니 다섯째 경행한 일이요,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렵고 한번 잃으면 다시 만나지 못하는데 우리는 각각 사람이 되었으니 여섯째 경행한 일이요,

六根이 불구면 선근에 참여키 어려운데 우리는 이미 청정하여 깊은 법문을 향하였으니 일곱째 경행한 일이요, 세상에 지혜 있고 말 잘하고 총명한 이는 도리어 난이 되는데 우리는 일심으로 정법에 귀의하였으니 여덟째 경행한 일이요, 부처님 앞과 부처님 뒤에 나면 난이 되고, 혹은 부처님을 뵙지 못함이 더 큰 난이라 하는데 우리는 이미 좋은 원을 발하고 미래세에 중생을 구제하게 되었으니 여래를 뵙지 못한다고 난이 될 것이 아니며, 한번 형상을 뵙고 한번 정법을 들었으니 옛날 녹야원에서 설법함과 같느니라. 

죄를 멸하고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만이라,

부처님을 뵙지 못한다 해서 난이라 할 수 없으며, 부처님 말씀에 부처님 뵙는 것이 어렵다 하였으나 우리는 이미 불상을 대하였으니 아홉째 경행한 일이요, 부처님 말씀에 법문 듣기가 어렵다 하였는데 우리는 이미 감로수를 먹었으니 열째의 경행한 일이요, 부처님 말씀에 출가하기가 어렵다 하였으나 우리는 이미 불법에 귀의하였으니 열한 번째 경행한 일이요, 부처님 말씀에 자기를 이롭게 하기는 쉬우나 남을 이롭게 하기는 어렵다 하였는데 우리가 오늘 한번 뵙고 한번 예배한 것까지도 모두 시방의 일체 중생 에게 회향하니 열두 번째 경행한 일이요, 부처님 말씀에 애써 노력하며 괴로움을 참는 일이 어렵다 하였는데 우리는 오늘 각각 부지런히 선한 일을 하였으니 열세 번째 경행한 일이요, 부처님 말씀에 경을 독송함이 어렵다했으나 우리는 경전을 무시로 읽고 보나니 열넷째 경행한 일이요,

좌선이 어렵다 하였으나 지금 잡념을 쉬고 뜻을 정한 이가 있으니 열다섯째 경행한 일이니라.


오늘, 이 도량의 동업대중이여, 이와 같이 스스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 진실로 한량이 없나니, 변변치 못한 말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사람이 세상을 사는 데 괴로움은 많고 낙은 적으니, 한 가지 기쁨과 한 가지 즐거움도 오히려 얻기 어렵거늘, 우리가 이제 여러 가지 장애가 없음을 얻었으니 이것은 모두 시방 삼보의 위신력이니라.


각각 지성으로 이 은혜를 생각하고 다 같이 간절하게 오체 투지하고 일체 중생과 시주 단월과 선지식. 악지식과 천인과 신선과 호세 사천왕과 총명하고 정직한 선한 이를 권장하고 악한 이를 벌주는 이와 주문을 수호하는 이와 오방용왕과 팔부용신과 모든 마왕과 염라왕과 태산부군과 오도대신과 十八옥주와 그 모든 권속들과 삼계 육도의 무궁무진한 불성 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지성으로 시방의 다함없는 모든 삼보께 귀의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자비하신 마음으로 기피하여 섭수하시며, 부사의한 신통으로 보호하고 구제하사 천인과 신선들과 일체 신중과 삼계육도의 일체 중생들로 하여금 오늘부터 생사의 바다를 건너서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며, 행과 원이 만족하여 십지에 오르고 금강심에 들어가 등정각을 이루게 하여지이다.

수승한 자비참법의 요지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약 16년 전에 제게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때 경기도 일원의 소도시에서 조그만 포교원을 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 거주하는 신도가 전화가 왔었습니다.

한국에 왔는데, 내일 일본에 들어가기 전에 스님 뵙고 불사금을 시주하고 싶다는 전화였습니다.

지금도 어렵지만, 당시 어렵게 꾸려가는 살림에 돈 준다는데 멀고 가까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당장 가겠다고 하고 택시를 대절해서 서울의 약속장소를 가는데, 그 때가 약간 늦은 밤이었는데, 택시 기사가 합승을 해도 되겠냐고 묻기에, 아! 기사님도 수입이 좋으셔야죠, 하고 합승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 기억으로는 술이 거나하게 드신 중년의 샐러리이었는데, 택시를 타더니 뒷좌석에 제가 있는 것을 보고는 감사하다, 죄송하다

를 연발하더니, 근데, 스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 말씀하십시오. 하고 저는 속으로 불교에 대해서 뭘 물으려는 줄 알았더니 웬걸, 묻기를 스님 혼자 사냐? 그럼 혼자 살지요. 당시에 포교원에 공양주가 없어서 대중이 없이 혼자 지내고 있었고 법회 땐 신도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빨래는 어떻게 하느냐? 제가 세탁기가 다 해주죠.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 먹게 되면 먹고 주로 생식을 합니다. 했더니, 근데, 스님 딱 한 가지만 묻겠다는 거예요.


택시기사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됬다는 식으로 라듸오도 꺼버리고 취객과 저와의 대화를 듣기만 하고요.


스님, 남자지요? 예!

그럼 스님 인간적으로 묻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더니 스님도 남잔데 가끔은 생각이 나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뭐가요? 했더니 아, 스님도 남잔데 여자 생각은 않나느냐고요, 하더니 그게 발끈 서면 어떻게 해결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망설임도 없이 뱉어주기를, 설 일을 안 만들면 되지 왜 만들어 놓고 해결을 못해 괴로워하냐니깐, 그때부터 그 양반이 자기 내릴 때가 됬는데도 안 내리면서 저를 붙잡고 한 시간만 이야기 좀 하자, 안됩니다. 제가 좀 바빠서요. 했더니 그럼 십분만, 그도 시간이 안됩니다. 했더니 연락처를 달라고 해서 명함을 줬으나 그 뒤로 꿩 궈먹고 말았는지 소식이 없었습니다만,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저지르지 않으면 일일이 호시일이건만, 부질없는 눈앞의 탐욕이라는 욕심으로 저질러진 다음에 괴로움에 떨어지고야 맙니다.


지혜로움과 편안함은 자기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망념된 자기욕구를 이기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전백장과 후백장의 불낙인과와 불매인과의 고사)

 

 

 

 

 

 우리집...이해인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는 말은
음악처럼 즐겁다

 

멀리 밖에 나와
우리집을 바라보면
잠시 낯설다가
오래 그리운 마음

가족들과 함께한 웃음과 눈물
서로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이던
부끄러운 순간까지 그리워
눈물 글썽이는 마음
그래서 집은 고향이 되나 보다

 

헤어지고 싶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금방 보고 싶은 사람들
주고받은 상처를
서로 다시 위로하며
그래, 그래 고개 끄덕이다
 

따뜻한 눈길로 하나 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언제라도 문을 열어 반기는
우리집 우리집

우리집이라는 말에선
늘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고마움 가득한 송진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