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보현행원품강의]제1장2-4 왜 화엄조사들은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

2009. 11. 18. 19: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화엄경·보현행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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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왜 화엄조사들은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 보현행원을 정립하는데 실패했는가?

 

 

 

어떤 가르침이 수행법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의례가 필요합니다. 즉, 그 가르침을 담을 수 있고 구현할 수 있는 반복적 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현행원은 우리가 일반 불교 수행에서 보는 그런 구체적 틀이 없습니다. 보현행원이 좋기는 좋은데, 보현행원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를 물을 때, 마땅히 알려줄 지침이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경제불은 어떻게 닦는 것이며, 칭찬여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 틀이 없는 것입니다. 독경이라면 경을 읽으면 되고, 염불이라면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참선이라면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되는데, 부처님을 공경하고 찬탄하라고 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과거 화엄학자들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그래서 무던히도 명확한 행원 수행의 틀을 만들이 위해 노력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균여대사의 보현십원가도 하나의 사례입니다. 구체적 행원 수행법의 정립이 어려우니 대사께서는 노래를 지어 노래로써 보현행원을 수행하게 하신 것은 아닌가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보현행원 자체가 생명의 노래이기 때문에 노래로 행원 수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 대표적인 예로 송나라 화엄승 진수 정원(1011-1088)의 '보현행원수증의'를 들 수 있습니다. 수증의란 불교 사상과 이론을 많은 대중이 생활 속에서 되새기고 그것은 생활 속에 체현하여 자기 생활을 바꾸어 가도록 하는 신앙 의례라고 합니다.

 

 


그래서 진수 정원은 통서연기(通敍緣起), 권수이익(勸修利益), 단좌사유(端坐思惟) 등의 열 가지 차례에 의해 행원을 닦아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을 상징하는 불상과 단(檀)을 차려 놓고 화엄경에 나오는 법좌인 7처 9회의 법회를 표현하는 그림을 걸어 두고, 그 앞에서 향과 꽃, 등불을 밝혀 공양하고 경문 독송 및 발원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활 속에 깃든 작은 잘못에서부터 진리에 어긋난 모든 버릇을 고쳐 없애 끝내 화엄이 말하는 행원의 세계에 들어라가고 합니다.

 

 

 

이 수행법은 제가 볼 때 매우 정교합니다. 진수 정원이 굉장히 신경 쓰서 고안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어쩐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경에 나오는 행원 열 가지도 어찌 보면 번잡(?)스러운데, 다시 열 가지 차례를 만들고 그 하나 하나를 익혀야 하며 거기다  관법까지 익혀야 하니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정교한 수증의가 보편적 행원 수행법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끝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보현행원은 왜 화엄 수행법으로 정립되는데 실패했을까요? 단지 이런 이유에서일 뿐일까요?

 

 

 

 

수행으로서의 보현행원이 성립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보기에는 보현행원의 무 실체성(無實體性)에 기인합니다.

 


 

보현행원은 실체(?)가 없습니다. 딱히 무엇을 보현행이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집어서 말할 만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전부, 모든 것이라는 것. 둘째는 무아상(無我相), 즉 나라는 아상이 없는 것입니다.

 


먼저 '실체가 없다' 는 말은 '모든 것'이란 말도 됩니다. 즉, 일부가 아니라 전체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가령 무예의 고수는 특별한 무기나 기예만이  무예가 아닙니다. 평범한 행 하나 하나, 일상의 도구 하나하나가 모두 고수에게는 필살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전부가 무기입니다.

 


또 부처님 시대의 명의 기바 이야기에서 보듯, 명의의 눈에는 약초 아닌 풀이 없는 것입니다. 산하대지의 모든 풀이 모두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딱히 명약이란 것이 없습니다.

 

 

 

또한 부자는 굳이 통장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세상 돈이 전부 자기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도 특별한 신분증이 필요없습니다. 나라 안팎이 모두 알기 때문입니다. 빈 의자가 만인을 앉힐 수 있는 것도, 비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실체가 거기에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곳곳에 나투실 수 있는 것도, 관세음보살님이 천수천안으로 중생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가실 수 있는 것도, 부처님 보살님이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이 있고 실체가 있다면 무애한 나툼이 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보현행이 실체가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수행을 포함한 모든 행, 모든 삶이 보현행원이란 말도 됩니다. 그러므로 행원에서는 딱히 수행과 삶의 구별이 없습니다. 일상 삶이 바로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선에서 그렇게 주장하는, 그리고 수행의 가장 높은 형태인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수행이 보현행원에서는 초보자도 이룩되는 것입니다. 행원의 무실체성 때문에 굳이 삶에서 수행을 짓지 않아도, 그리고 삶과 수행을 구분하지 않아도 수행이 바로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로 인해 이런 무실체성이야말로 일반인들이 보현행원을 수행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된 것은 참 아리러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실체가 없음은 나라는 것이 없음을 뜻하는데, 이러한 행원의 무아상(無我相)성이야말로 행원이 수행으로 정립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저는 봅니다.

 

 

 


무릇 하나의 수행이 수행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틀을 가져야 합니다. 일정한 틀이란 수행으로서의 카리스마, 상(相)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주력 수행이라 하면 주력만이 갖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참선도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수행들은 그런 틀을 중심으로 막강한 설득력과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일반인들은, 이러한 틀을 중심으로 밖으로만 향하는 자기 마음을 모으고 흩어지는 자신을 추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러한 일은 수행으로 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현행원은 그러한 틀, 그러한 상이 없습니다. 즉, 금강경에 나오는 대로 무아상(無我相)인 것입니다.  많은 대승 경전들이 무아, 또는 무아상을 가르치는데, 그러나 그런 것은 가르침으로만 머물며 실지로는 오히려 아상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절을 많이 하면 '절을 잘 하는 아상(?)'이 만들어집니다. 참선도 염불 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수행을 하면 할수록 수행이란 상이 더 확실히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도를 이뤘다는 것도, 깨쳤다는 것도 사실은 아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상이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룬 도가 있고 깨친 바가 있다면 그것은 벌써 상이요 주객의 분리입니다. 그러니 이룰 도가 없고 깨친 바가 없는 경지를 많은 수행자들이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보현행원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보현행원을 하면 할수록 나라는 실체(我相)가 없어집니다. 오직 온 세상 가득한 부처님만 남습니다. 그러니 수행이란 상이 만들어지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행원에는 수행이란 게 아예 존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 말은 반대로, 행원을 수행적 측면에서 접하는 경우, 무엇을 가지고 보현행원 수행이라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옵니다.

 

 


이 부분은 보현행원에 발심한  많은 분들이 만나는 딜레마인데, 이러한 딜레마가 보현행원의 진실로 뛰어남에  기인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상이 클수록 수행으로 각광받고, 아상이 사라질수록 수행으로서의 가치(?)는 사실 상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대한민국 국민'이라 할 때 국민의 실체성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사는 사람', 또는 '어느 동에 사는 사람'이라 하면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 오나 '대한민국' 혹은 '인류', 이렇게 말하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울사람, 어디 사는 사람', 이렇게 구체화시키면 이해는 쉽고 이해관계에서 구체적 이익을 얻기는 쉬우나, 그만큼 차별과 대립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 관점에서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국민, 또는 인류 차원에서 접근해야 좀더 보편적이고 평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익은 전체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그만큼 멀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은 인류애를 외치지만 실상은 개별적 차별화에 좀더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지로 보현행원을 하다 보면, 두 가지 중요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 나라는 것(我相)이 저절로 사라집니다. 둘째, 온 세상이 부처님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 말은 결국 '주객(主客)의 소멸'입니다. 즉, 세상을 대립하게 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이 소멸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부처님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되기에 너와 나의 구별과 대립이 사라지며, 아상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주관과 객관이 '부처님'이란 단어 속에서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보현행원을 하면 할수록 무엇이 보현행원만의 특성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세상 모든 것, 모든 일, 모든 존재가 보현행원이기 때문입니다. 삶도 보현행원, 진리도 보현행원, 번뇌도 보현행원, 깨달음도 보현행원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딱히 무엇을 집어 이것만이 보현행원이다! 라고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 수행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보현행자는 절을 해도 보현행원, 참선을 해도 보현행원의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일체 만물을 공경하고 찬탄하는 그 마음으로 가득 찬 자리에서 절이 나오고 염불이, 참선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행원만의 특성인데, 이런 이유로 보현행원은  불교의 모든 수행법과 원융 회통하게 됩니다(나중에 설명드릴 예정임).

 

 

 

 

행원의 무아성! 저절로 소멸되는 수행의 상(修行相)이, 보현행원 수행자들이 만나는 가장 큰 딜레마이며, 또한 행원을 하나의 틀을 갖춘 수행으로 정립하는데 실패한 결정적  원인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실지로 가장 보현행원적으로 살아 가셨던 역사 상의 원효성사나 균여 대사, 그리고 근래엔 광덕스님의 경우, 나라는 것은 일체 잊고 오직 중생만을 위해 사신 분들입니다. 수행자의 본분인 수행마저 포기(?)하시고, 오직 중생만을 위한 삶을 걸어가신 분들로 문자 그대로 무아의 삶을 사셨기에, 원효성사나 균여대사같은 경우는 법을 이은 제자가 전무하며, 광덕스님 역시 잊혀진(?) 수행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 불교의 현실이라면 너무 심한 말씀이 될까요?

 

 


*註


1.보현행원을 하면 부처님으로 가득차게 된다는 것은, 행원품이 '이 세상은 수많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믿음(信)으로 시작되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부처로 변한다는 것은, 나와 부처 사이에 티끌만한 간격도 없다는 말도 됩니다.

 


이것은 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어떤 수행을 해도 나와 부처 사이에 간격이 없어야 합니다. 불교 수행은 그런 것을 강조합니다.

 

 

 

가령 염불을 해도 염불하는 내가 따로 있고  염불 듣는 부처님이 따로 있다, 고 생각하고 염불하면 여법한 염불이 되지 못합니다. 나와 부처님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참다운 염불입니다. 참선도 독경도 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수행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구분이 확연히 있습니다. 피조물은 결코 창조주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주객이 끝까지 분리되는 것입니다.

 

 

 

 

2.주객이 사라진다는 것은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이 세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찰자가 관찰할 때 객관적 세계가 비로소 전개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앞의 보이는 산, 강물들이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논리입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도 이해를 하지 못한 부분인데,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실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관찰하지도 않았는데 우주는 어째서 실존하는 것일까요? 나중엔 언급이 되겠지만, 그것은 이 세상이 우리 혼자 사는 세계가 아니라, 수많은 중생들의 연기적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3.화엄은 언제나 모든 사물, 사항을 통째로, 전일적(全一的) 관점에서 보게 합니다. 이것은 화엄의 세계에서는 주객의 분리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객의 분리가 없기에 언제나 세상은 진실 그대로 보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지혜를 불교에서는 '반야'라 합니다. 즉, 화엄관(華嚴觀)을 가지면 반야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이렇게 보면 결국 화엄관=반야안입니다.

 

 


화엄경이 '부처님으로 가득찬 경전', 또는 '부처님밖에 없는 경전'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대립이 소멸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화엄의 세상은 주객의 분리가 없는 세상이란 것입니다. 존재하는 분은 오직 한 분, 부처님뿐이며 존재하는 세상도 부처님 세상뿐입니다. 그것은화엄의 세계가 진리 그 자체라는것을 뜻합니다.

 

4.보현행원 수행 중에 만나는 무실체성은 보현행자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고비 중의 하나입니다. 이 고비를 넘겨야 진정한 행원의 광활한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

 

 

 

삼천포 대교 
 



한국 남녀 세계1위 기록들

 

@ 한국 여성만을 . 위한 셰계 유일의 제도

 

여성부 : 여성부가 설치된 국가는 한국과 뉴질랜드 전 세계 딱

두개국이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여성공무원수는 46명, 한국은 102명

예산은 한국이 3배이상이다.



○ 혼인빙자 간음죄 : 전세계 대만과 한국에만 존재한다.

대만은 벌금형 위중임에 반해 한국은 징역형이 가능

하는 등 처벌 수위가 훨씬 높다..

2). 자유와 낭만 그리고 여운이 있는 길..




○ 생리휴가제도
: 전세계에서 한국만 존재 한다.

 

3). 십리 벚꽃길..

○ 여성할당제 : 한국 공무원시험 여성할당제(30%)는 세계

최고 수준

 

4). 빛의 축제.. 바다위의 도로..


◎ 한국 여성 세계 1위 부문

 

성형 수술 (17%)

제왕절개 수술(39.6%)

여성흡연자 1일 흡연량 24.8개피로 단연 1위

전업주부율(58%)

 .낙태율 (매년 100만건 이상 발생)

5). 새롭게 태어난 동서횡단 첨단 고속도로..



◎ 비공식 한국여성 세계 1위

 

○ 성차별 피해의식

○ 더치페이 안하기

○ 공주병 환자 수

○ 남자 등처 먹는 꽃뱀 수

화장품 사용빈도.

한국 남자 무시하기

남자만 군대가야 한다는 여성 우월적 생각

○ 3D 업종은 으례이 남자만 하는 일로 알기

○ 남자에 기생하기(시집 잘 가 팔자 고치기)


6). 하늘아래 첫동네 심원마을 가는 길(노고단도로)..




◎ 한국 남성 1위 부문

 

○ 40대 남성 사망율

○ 40~50대 여성 대비 남성 사망율(여성의 3배)

○ 남성근로자 OECD 가입국중(여성의 3.3배)

○ 남성혼자 밥벌이 하기

○ 남녀 수명차(7.5년)

○ 예비군 훈련 자비 부담률


7). 문경새재 과거 길..



◎ 한국 남성 세계 유일부문

 

남자만 징병으로 2년 이상 군대가는 국가(징병제 국가는

10개국이 되지만 남자만 2년이상 복무하는곳은 한국 뿐이다.

○ 남자만 민방위 받게하는 유일한 국가

○ 남자만 징병으로 군에가면서 아무런 보상 안하기


8). 확트인 바다의 해상공원도로 백수해안도로..




백수해안도로는 총연장 19km의
  해안도로로서 경관이 우수하고,
해안선을 따라 양도로변에 해당화가 식재되어 있으며, 모자바위, 거북바위
등의 기암 괴석과 칠산도 낙조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되어 있다.


9). 벚꽃 터널..



국내 최고의 벚꽃행사인 군항제가 개최되며, 여좌천을 따라
환경친화적인
보행자 전용도로 설치.
4월이면 도심 전체가 벚꽃물결로 일렁이는 진해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벚꽃 길로 드라마 로망스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10). 명량대첩의 얼이 살아있는 진도대교..



국내 최초의 사장교(1984년 준공)이자 국내에서 유일한 쌍둥이 사장교.
진도대교의 개통으로 진도~광주까지 운행시간이 약 1시간 30분 단축


11). 젊음과 도약의 동대구로..



30년 이상 대구발전을 상징하는 폭 70m의 도로로서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음.
희말라야시다 150여 그루 등 70여종 23천여 그루의 각종 수목류 및 가로수 식재.


12). 섬진강, 철쭉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로..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도로변에 철쭉꽃이 식재되어 있으며, 도로 옆으로
쭉 뻗은 철로 위를 달리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증기기관차 등이
함께 어우러진 곡성군의 대표적 관광도로이다.


13). 40계단 특화거리..



50 . 60년대 어려웠던 시절의 애환과 향수가 짙게 서린 40계단 일대를
당시의 생활상을 테마로 하여 조성한 부산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복합거리.
옛 부산역과 부산항을 상징하는 기찻길.
바닷길을 주제로 40계단 광장 등 4개 쉼터를 조성하였으며, 다양한
조형물 설치.


14). 물(物)과 수(水)가 흐르는 길..



40년간 고가도로로 복개되어 있던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도심공간 조성,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
환경친화적 도시공간 조성, 서울의 역사성/문화성 회복, 주변지역 개발에 기여.


15). 이어짐과 어울림의 길..



청주의 관문인 진입로 가로수 길로서 1948년에 식재된
1,500여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청주인터체인지~가경천 죽천교까지
총 6km에
걸쳐 터널을 이룸. 전국 진입로 중 가장 운치 있는 길로 손꼽히며,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16). 천년 세월의 농다리..



고려초기 임장군이 축조하였다고 전해지며(성산지, 1932), 본래는
28칸으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25칸만 남아있고 길이는 93m에 이름.
교각의 폭과 두께가 상단으로 갈수록 좁아져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도록
설계되었으며, 충북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17). 옥정호의 물안개와 호수 주변의 숲이
아름다운 옥정호 순환도로.


옥정호는 섬진강 다목적댐 건설로 인해 생겨난 호수로서 맑고 깨끗한
 넓은 호반과 운암대교 등이 어우러진 주변경관이 빼어남.
옥정호 순환도로변에 있는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옥정호의 풍경이 절경이다.


18). 깊은 산길(한계령)..



내설악과 남설악을 잇는 도로로서 7형제봉과 주전골 등
남설악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고,
한계령 � ㅋ�한계령휴게소)에서 바라보는 비경이 매우 뛰어나다.


19). 전 국토의 일일 생활권시대를 개막한 국가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전 국토의 일일생활권 시대가 개막되었으며,
지역 개발과 국가 경제발전 촉진 등에 기여함으로서 기능적 .
상징적인 의미를 지님. 수도권과 영남공업지역 및 부산항 등의 수출입항을
연결하여 물류수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 대동맥이다.


20). 유채꽃 노란 도화지에 그려진 도로..



제주도 남제주군에 위치한 약 7km구간의 도로는  많은 유채꽃이
식재된 유채꽃 도로.
맑은 공기와 함께 넓은 들판의 경치가 아름다운 최적의 드라이브 코스이며,
도로를 달리다 보면 미래 항공관과 작은사슴이와 큰사슴이 오름경관이
한눈에 들어와 절경을 더한다.


21). 서민들을 위한 삶의 휴식공간 한강시민공원길..



한강이 지닌 개발 가능성 극대화를 위해 강동구 하일동 ~ 강서구 개화동
41.5km에 걸쳐 조성한 시민공원으로 하루 수만명, 연간 4천만명 이상이 이용.
다양한 문화레포츠 시설과 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사진제공 ; 한국 도로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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