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 중생과 부처/성철스님

2009. 11. 22. 20: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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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들꽃사랑마을

    9. 중생과 부처 (1)

    불교라고 하면 부처님이 근본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부처냐”하고 물으면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으나,
    실제로 어떤 것이 부처라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근본 원리원칙을 생각한다면 곤란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번뇌 망상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중생이라 하고
    일체의 망상을 떠난 것을 부처라고 합니다.
    또 모든 망상을 떠났으므로 무심(無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 중생이라는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저 미물인 곤충에서부터 시작해서 사람을 비롯하여
    십지(十地), 등각(等覺)까지 모두가 중생입니다.
    참다운 무심은 오직 제8아라야 근본무명까지 완전히 끊은 구경각(究竟覺)
    묘각(妙覺)만이 참다운 무심입니다.

    그러면 망상 속에서 사는 것을 중생이라고 하니,
    망상이 어떤 것인지 대강 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보통 팔만사천 번뇌 망상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크게 구분하면 두 가지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의식(意識)입니다.
    생각이 왔다 갔다 하며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의식입니다.

    둘째는 무의식(無意識)입니다.
    무의식이란 의식을 떠난 아주 미세한 망상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의식을 제6식(六識)이라 하고
    무의식을 제8식(아라야식)이라고 하는데,
    이 무의식은 참으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8지 보살도 자기가 망상 속에 있는 것을 모르고
    아라한(阿羅漢)도 망상 속에 있는 것을 모르며
    오직 성불(成佛)한 분이라야만 근본 미세망상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이야기 했듯이 곤충미물에서 시작해서
    십지, 등각까지 전체가 망상 속에서 사는데,
    7지 보살 까지는 의식 속에서 살고
    8지 이상 10지, 등각까지는 무의식 속에서 삽니다.
    의식세계든지 무의식세계든지 전부 유념(有念)인 동시에 모든 것이 망상입니다.
    그러므로 제8아라야 망상까지 완전히 끊어버리면
    그때가 구경각이며, 묘각이며, 무심입니다.

    그러면 무심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거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본래의 마음자리를 흔히 거울에 비유합니다.
    거울은 언제든지 항상 밝아 있습니다.
    거기에 먼지가 쌓이면 거울의 환한 빛은 사라지고
    깜깜해서 아무 것도 비추지 못합니다.

    망상은 맑은 거울 위의 먼지와 마찬가지이고
    무심이란 것은 거울자체와 같습니다.
    이 거울자체를 불성(佛性)이나 본래면옥(本來面目)이니 하는 것입니다.
    모든 망상을 다 버린다는 말은
    모든 먼지를 다 닦아낸다는 말입니다.
    거울에 끼인 먼지를 다 닦아내면 환한 거울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동시에 말할 수 없이 맑고 밝은 광명이 나타나서
    일체만물을 다 비춥니다.

    우리 마음도 이것과 똑 같습니다.
    모든 망상이 다 떨어지고 제8아라야식까지 완전히 떨어지면
    크나 큰 대지혜 광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구름 속의 태양과 같습니다.
    구름이 다 걷히면 태양이 드러나고 광명이 온 세계를 다 비춥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도 모든 망상이 다 떨어지면
    대지혜 광명이 나타나서 시방법계(十方法界)를 비춘다 이 말입니다.

    이처럼 일체 망상이 모두 떨어지는 것을 적(寂)이라 하고
    동시에 대지혜 광명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조(照)라고 합니다.
    이것을 적조(寂照) 혹은 적광(寂光)이라고 하는데
    고요하면서 광명이 비치고 광명이 비치면서 고요하단 말입니다.
    우리 해인사 큰법당을 대적광전(大寂光嚴)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란 뜻입니다.
    이것이 무심의 내용입니다.
    무심이라고 해서 저 바위처럼 아무 생각 없는 그런 것이 아니고
    일체 망상이 다 떨어진 동시에 대지혜 광명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사람이 죽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는데
    죽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떨어지면서
    동시에 광명이 온 법계를 비치는 적조가 완전히 구비되어야
    참다운 열반입니다.
    만약 고요함(寂)만 있고 비춤(照)이 없는 것은
    불교가 아니고 외도(外道)입니다.

    일체 망상을 떠나서 참으로 견성(見性)을 하고 열반을 성취하면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대자유인이 되는데
    이것을 해탈(解脫)이라고 합니다.
    해탈이란 결국 기신론(起信論)에서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한대로
    “일체 번뇌망상을 다 벗어나서
    구경락인 대지혜 광명을 얻는다(離一切苦 得究竟樂)” 이 말입니다.

    이상으로써 성불이 무엇인지 무심이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참으로 불교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근본이 성불에 있는 만큼
    실제로 적조를 내용으로 하는 무심을 실증(室證)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근본은 누구든지 다 평등합니다.
    평등할 뿐만 아니라 내가 항상 말하듯이 중생이 본래 부처입니다.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명경(明鏡)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것은 새삼 내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고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말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명경은 본래 청정합니다.
    본래 먼지가 하나도 없습니다.
    동시에 광명이 일체만물을 다 비칩니다.
    그러니 광명의 본체는 참다운 무심인 동시에
    적조, 적광, 정혜등지(定慧等持)이고
    불생불멸(不生不滅) 그대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중생이 참으로 청정하고 적조한 명경 자체를
    상실한 것처럼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무리 깨끗한 명경이라도
    먼지가 앉을 것 같으면 명경이 제구실을 못합니다.
    그러나 본래의 명경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먼지가 앉아 있어서 모든 것을 비추지 못한다는 것뿐이지
    명경에는 조금도 손실이 없습니다.
    먼지만 싹 닦아버리면 본래의 명경 그대로 아닙니까?
    그래서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것은
    명경이 본래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자성(自性)이 본래 청정한데 어찌해서 중생이 되었나?
    먼지가 앉아 명경의 광명을 가려버려서 그런 것뿐이지
    명경이 부서진 것도 아니고 흠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다만 먼지가 앉아서 명경의 작용을 완전하게 못한다 그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다운 명경을 구하려면
    다시 새로운 명경을 만드는 게 아니고
    먼지 낀 거울을 회복시키면 되는 것처럼
    본래의 마음만 바로 찾으면 그만입니다.

    내가 항상 “자기를 바로 봅시다”하고 말하는데
    먼지를 확 닦아버리고 본래 명경만 드러나면
    자기를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라고 할 때에 마음의 눈이란 것도
    결국 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표현은 천 가지 만 가지 다르다고 해도
    내용은 일체가 똑 같습니다. (계속)

     

    * 법문 출처 : 해인지 <해인법문>
                       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가야산의 메아리]

       

 

 

황혼의 부부 달콤한 꿈을 꾸자

 
♥부부의 정을 저축하라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함께할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
젊었을 적에 갖지 못했던 이런 시간이 은퇴 후 갑자기 갖게 되어
당혹감을 갖고 감당하지 못하여 황혼 이혼하는 경우가 있다.

노후엔 자식의 중심에서 부부의 중심으로 바뀔 것을 인식하고
은퇴하기 전부터 부부만의 시간을 갖는 법에 대하여 익숙해야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라.

“수요일 밤 9시는 우리부부 차 마시는 날” 부부의 대화를 통하여
오해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공동의 취미를 가져라.

등산, 게이트볼, 자전거 타기 등을 통하여
같이 활동하여 공감대를 이룰 수 있어
부부간의 정이 더욱 깊어진다.

♥따뜻한 관심을 보여라.

나이 60이 되면 같은 집에 살아도 전날 밤에 배우자가
어느 방에서 잤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은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관심을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마음도 커지게 된다.

♥입으로 애정을 표현하라.

1,2년 산 것도 아닌데 말로 꼭 표현해야하나~~할지모르나
오래된 애정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애정표현이 인색할수록 마음도 굳어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이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음을 자주 많이 표현해야 한다.

♥배우자의 건강을 먼저 보살펴라.

아픈 곳을 챙겨주는 만큼 고마운 것은 없다.
배우자가 아플 때일수록 가장 가까이 가서 자리를 지켜주고
건강에 관심을 가져주라~~
그 마음이 전해져서 그이상의 관심과 애정을 받을 것이다.

♥ 서로에게 편지를 쓰라.

얼굴을 맞대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현은 편지를 써서 대신하라
글로 쓰다보면 미안하고 감사했던 마음들이 정리되어
그 편지 한통이 큰 감동을 가져다 줄 것이다.

♥집안일을 함께하라.

집안일을 부부가 역할을 분담하여 정해진 날에
함께 하면 부부가 함께한 일의 보람을 곳곳에서
드러날 때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

♥부부만의 공간을 만들어라.

집안 식탁이나 거실이라도 좋고
동네의 찻집에도 좋은 곳을 골라 부부만이
오붓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가짐으로
중요한 일을 상의 할 때나 화해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라.

♥지난 앨범을 함께 보라.

함께 살아온 시간이 묻어나는 앨범을 꺼내서 보면
젊은 시절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여
부부의 사랑이 더욱 돈돈해질 것이다.

♥둘만의 여행지를 만들어라.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조용히 쉬고 싶을 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둘만의 여행지를 만들어 일상의 생활을 벗어나서 찾아가자.
새로운 환경이 되면 대화의 내용과 깊이가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모셔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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