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주처정토와 왕생정토

2009. 11. 24. 19:5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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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크리스마스! 유대민족의 원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예수성인이 오신 날입니다.


유대인들의 조상인 예수님께서 서구인들의 전도로 저 멀리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곳곳에 전도되어 세계적인 성인이 되셨습니다만,

가만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발상이 일어납니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일이자 그리스도교의 축일이라는 12월 25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동시에 대중적인 공휴일이기도한 이날이 정해진 유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런 유래는 교양정도로 알고는 있어야할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 역서(曆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336년경 로마에서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동방지역에서는 하느님이 1월 6일에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났다고 하여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탄생만 기념했다고 합니다.

4세기에는 동방교회 대부분이 점차 12월 25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했는데, 예루살렘에서는 오랫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 됐고, ‘노아의 방주’가 물위를 떠돌다 도착했다는 아라라트 산이 있고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것이 로마보다 더 빨랐다는( 301년) 아르메니아 지역의 교회에서는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했지만, 동방교회가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하고, 1월 6일은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공현대축일”로 정하자 서방에서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주의공현대축일”로 삼아 기념하는 축일이 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해진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는 로마의 이교(異敎)축제와 같은 날에 기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이교축제는 농경사회였기에 바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절기를 기념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전통 관습들은 이교도들이 한겨울에 벌이던 농사 및 태양 의식들과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기념이 합쳐져서 생겨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로마에서는 농경신 사투르누스를 기념하는 축일인 “사투르날리아”(12.17)에 흥겹게 지내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고, 아브라함의 서자손인 이슬람교의 이란 사람들은 12월 25일을 신비로운 신, 미트라(정의의 태양)의 탄생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로마력 설날(1월1일)에 사람들은 자기 집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했고, 자녀들과 가난한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이교든 그리스도교든 겨울 축일은 언제나 따뜻함과 꺼지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불과 연관을 지어 중세부터는 생존의 상징으로 상록수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여담삼아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은 계절은 춥고 마구간의 구유를 배경으로 삼아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대신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헌데, 싯달타 태자의 탄신일은 꽃피는 4월에 탄생의 배경은 부족함이 없는 왕족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탄생과 성장의 배경과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의 배경은 참으로 역설적으로 다릅니다만,


두 분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불가사의하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 두 분이 다시 현신하신다면 아마, 지구촌의 중생 모두를 지구에서 떠나도록 하실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든 진리추구의 방법이나, 나 아닌 다른 중생들을 위해 사랑을 헌신하든 보살행을 구현하든 이 땅에 성인들이 보여주셨고 남겨주신 가르침은 위대했건만, 지금의 우리는 그 분들의 가르치심과는 전혀 다르게 십만팔천리로 멀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궁극적 진리는 하나인 것이고,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상의 인간들은 궁극적 진리에 대해 서로 네 종교보다 내 종교가 우월하다거나 자기 종교의 교세확장을 지상과제로 삼아 정작 참다운 가르침은 뒷전이고 지구상의 모든 종교들 간에 아직도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하고 서로를 위해 어떻게 상생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종교들의 현주소입니다.

인간세상은 종교의 종류도 많고 미신도 많으며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종교백서에 신도 수를 기준으로 세계 1위는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스정교를 한데 묶어서 그리스도교가 차지하고 있고, 2위는 이슬람교, 3위는 힌두교, 불교는 세계 4위순입니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으시고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가르치시다가 열반하신지,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처님의 가르침이 궁극적 진리로서 지구촌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을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지구상에는 종교적·이념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요즘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다 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정토에 대해서입니다.


우리가 정토라고 하면 대부분 죽어서 극락세계로 가는 왕생정토(往生淨土), 갈왕(往), 날생(生), 깨끗할 정(淨), 땅 토(土)라는 죽어서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만으로 이해하고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극락은 서양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죽어 살아생전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씨를 뿌려 인과로 인하여 새로 태어나게 되는 세상이 여섯세계라 돌고도는 윤회의 세계가 있어 세 곳의 좋은 곳이 있어 이를 삼선도라 하여 천상과 인간과 수라(신들의 세계)세계가 있고, 삼악도라 하여 지옥과 아귀세계와 축생세계의 세계를 합하여 육도라 하는데 서양종교에서 말하는 소위 천국은 삼선도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천상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그 자체가 바로 인과의 증명인 것입니다.

원인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이기에 말입니다.


하지만 정토는 영원히 윤회가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정토는 꼭 죽어서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생전에는 망나니짓만 하고 살다가 생전에 돈이 많아 그 가족들이 큰 절에서 스님들 모셔다가 크게 재를 올리고 천도기도를 한다고 생전에 악행만을 하던 그가 그 기도의 힘으로 극락에 태어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중세시대에 사람들을 핍박하고 살던 제후들이 마지막 죽을 때 사제를 불러 임종을 위한 종부성사를 하면 천국에 간다는 중세의 종교관이나 현실세계에 힘 있는 변호사를 의뢰해 “유전무죄”를 만드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살아생전에 생각과 말과 행동을 어찌하고 살아 갈 것인가 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천수경을 독송하면서 열가지의 죄를 참회하는 기도문이 나옵니다만, 참회는 당연한 것이고 열가지의 악업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소극적인 선행인 것이고 적극적인 선업은 죽어가는 것을 살리고 나보다 못한 이를 궁휼히 여기며 서로 돕고 살아가는 보다 적극적인 보살행을 실천해갈 때 우리는 죽어서 가는 극락왕생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 속에서 바로 주처정토(住處淨土)를 누릴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경이나 관무량수경을 보면 극락은 서쪽으로 십만억 국토를 지나면 있다하였는데 바로 이 “십만억”이라는 거리의 개념은 바로 열가지의 십악을 의미한다 할 것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짓는 세 가지의 죄업과 입으로 짓는 네 가지의 죄업과 생각으로 짓는 세가지의 죄업들이 바로 열가지가 되는데 한 가지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극락과는 일만억씩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몸이나 생각으로 짓는 죄업은 각기 세 가지인데, 입으로 짓는 죄업은 네 가지나 되니 예로부터 사람의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하여 그토록 입조심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나 행동은 모두가 생각의 지배를 받아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한 생각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완전한 인격자가 되도록 해주는 도구이자 수단인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어야하듯,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도, 부처님의 말씀도, 공자님의 가르침도 모든 성인의 가르침들은 한 인격체가 이 세상에 나와 모든 이들에게 이로운 삶을 살다가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교과서이자 영양소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에 빠져 허우적거려야한다는 말입니까?

불가에 “살불살조(殺佛殺祖)”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보다 더 뛰어나야하고 조사스님들보다도 더 뛰어나야한다는 말입니다.


유교에서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하여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식이 자신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한세상을 살면서 부처님보다 더 뛰어나야 하고 예수님보다도 더 뛰어나야 하건만, 중생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 분들은 우리처럼 과학이 발달하지도 못했던 시대에 살았었고, 공부하는 자료도 없던 고리타분한 시절에 살았던 분들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발달한 과학만능이라고들 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고리타분한 구시대에 살았던 분들보다 뛰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단 말입니까?

그 이유는 스스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정토회의 법륜스님의 글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리면 서 오늘 법문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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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합니다.

또한 이것을 위한 재화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누구나 다 재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함께 모여 살아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혼자 사는 것보다는 모여 사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을 누군가 알아주면 좋습니다.

그래서 재물이 많고 주위에 따르는 사람이 많고 다른 사람이 많이 알아주면 잘 사는 것이라는 관념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부귀요 명예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부귀와 명예를 구하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일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농사꾼은 농사지으면서 괴로워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면서 괴로워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 다니면서 괴로워합니다.

또 모여 살아야 유리한데 모여 살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부부간에, 부모자식 간에, 형제간에, 그리고 직장동료 간에 일어나는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저마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니 온갖 경쟁에 시달립니다. 

일을 해야 살 수 있는데 일을 하니 괴롭고, 함께 살아야 유리한데 함께 사는 데서 갈등이 생겨 괴롭고, 남이 알아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이 생기고 괴롭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괴로움을 주는 일로부터 벗어나고 가족관계에서 벗어나고 경쟁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새로이 다른 일을 찾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다시 또 새로운 경쟁을 합니다.

이렇듯 문제의 원인을 계속 밖에서 찾고 밖을 고치려 하지만 또다시 괴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안으로 돌려보면 어떨까요?

갈등과 괴로움이 생길 때 괴로움의 원인을 안에서 찾는 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이렇게 자기 내면을 살펴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보면 괴로움은 다름 아닌 자기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화두선이든 관법이든 염불이든 수행법의 핵심을 잘 살펴보면 시야를 자기 내부로 돌림을 알 수 있습니다.

앉아서 안으로 보나, 소리 내면서 안으로 보나, 괭이를 들고 일하면서 안으로 보나, 운전하면서 안으로 보나, 안으로 살펴보는 원칙만 알면 됩니다.

일을 더 열심히 하고, 더 잘 하려고 하면 인간관계가 많아집니다. 

인간관계가 많아지면 갈등의 요소도 많아집니다.

일을 잘 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갈등도 커집니다.

갈등이 커지고 일이 잘 안 되면 다른 사람 때문이라는 시비분별이 일어납니다.

시비분별이 커지면 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효율도 떨어집니다.

관계 맺고 협동하면 일이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갈등이 생기니 관계를 끊으면 일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이렇게 분별심과 갈등이 커질 때 자신의 내면을 관찰해보면 그 갈등이 사라지고 일은 잘 됩니다.


그래서 일을 최대로 열심히 하는 것과 수행이 최대로 잘 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부지런해야 수행정진이 됩니다.

최대한 열심히 일을 할 때 갈등과 모순 역시 최대가 되고 마침내 바늘 끝만 갖다대도 터질 듯 팽팽한 상황에서 한 생각 돌리면 정확하게 보입니다.


갈등과 모순, 괴로움이 최대가 되고 그 원인이 절대적으로 바깥에 있다고 생각할 때 눈을 안으로 돌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장 어려운 때 눈을 한번 안으로 돌려보면 괴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수행에 대한 확신이 듭니다. 

이 수행법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일을 잘 하려고 하면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내면을 돌아볼 때는 일을 안 하고 돌아보는 데만 열중합니다.

자신을 살펴보는 것을 일로 삼든 아니면 일만 하고 돌아보지 않는 것, 즉 전문수행인이 되든 세속적인 삶을 살던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길은 사실 하나의 길입니다.

수행한다고 일을 못하거나 일한다고 수행을 못한다는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과 수행은 어떤 모순도 없습니다.

그것은 일과 수행이라는 별개의 것을 통합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그대로 수행이고 생활이 그대로 수행이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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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습니다.

자신의 일상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갈 수만 있다면 일상의 그 자리가 바로 머무르는데서 누리게 되는 주처정토인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바르셀로나 (Barcelona)

스페인 제2의 도시 이며  피카소가우디의 성지

스페인 바르셀로나는프랑스 국경에서 남쪽으로

150㎞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로서지중해에 면한

스페인의 주요항구이며 상업 중심지로

독특한 특성, 문화사업,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항은 17세기에 건설되었으며

1992년 제25회 올림픽 대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수도보다도 인기있는 스페인의 관광도시인 바르셀로나는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를 배출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면적 : 시 91㎢,   도시권 477㎢,

인구 : 시  1,578,546 ,  도시권  3,765,994

 

바르셀로나 시전경

 

 

 

바르셀로나 시전경

 

 

 

 

 

 

 

 Ciutadella 공원

 

 

 

 Triumphal  Arch

 

 

 

 콜롬버스 탑

 

 무역센터

 

 스페인광장

 

 스페인광장에서의 나체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족 성당)

바르셀로나의 상징인 가우디의 미완성 대작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한 옥수수 모양의 탑 8개가 유명하다.

 

1882년 3월 19일(성 요셉 축일) 공사를 시작해서

1926년 6월 죽을 때까지 교회의 일부만 완성하였다

교회 전체가 완성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다.

Antoni Gaudi cornet 

1852년 6월 25일 - 1926년 6월 10일

 

 

 

 

 

  파밀리아 성당은보는 곳마다 조각이고 예술이다

 

 

 

Gaudi가 만든 쿠엘공원

 

쿠엘공원

 

 

 

 

 

 

 

 

 

 

 

 

 

 Antoni Gaudi’s Casa Mila apartment 

 

 Gaudi 작품

 

 Gaudi 작품

 

 

 

 Torre Agbar는  Jean Nouvel 이 건축한  멋지고 근사한 21세기 건축물

높이146미터에  지상 34층, 지하 4층

 

 멋진 가로등

 

멋진 가로등

 

 지하철

 

 FC바르셀로나구단 구장

 

 

 

 

 

 

몬 쥬익 언덕

 

몬은 여기 말로 산이란 뜻이고

쥬익은 유대인의 신이라는 뜻이며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이 있는 곳인데.

몬쥬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우승의 영광을 안았던 곳이다

 

 

 

 

 

 

 구시가지

 

 

 

 Monastery of Montserrat, Barcelona

 

 Monastery of Montserrat, Barcelona

 

 

 

 

 

 바르셀로나 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