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제행이 무상이니 시생법멸이요 생멸이 멸이하니 적멸위락

2009. 11. 26. 21: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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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 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날이자 엊그제까지 살아생전에 웃고 떠들며 이야기 하다, 화내고 서운하다 삐지고, 살갑게 지내시던 지월광 보살님께서 이승을 하직하시고 중음의 몸으로 49일 동안을 지내시다, 생전의 생각과 말과 행위들로 인해 다음 생의 새로운 몸을 받게 되실 과보가 결정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쉽게 말해서 제가 가족들을 대표로 의뢰인이 되어 불보 살님들을 변호사로 모셔다가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열시왕의 판관들에게 가신 날로부터 7일 되는 날마다 변호를 의뢰하고 무상도리를 일러드려 이생에 대한 애착과 집착의 업력을 소멸시켜드렸으나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신다면 무슨 날인지 아실 것입니다.

모두 합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극한 마음으로 제 게송이 끝나면 지월광 보살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다 생각하시고 “나무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금일에 이르러 천혼의 기도를 받아들이시는 연일유인 정운영 영가는 삼가 사문 광현법사가 영가를 위하여 엄숙히 일러드리는 법문을 낱낱이 새겨들으시어 무명의 세계에서 등불로 삼으시기를 전하나이다.”

 

“제행이 무상이니 시생멸법이요, 생멸이 멸이하니 적멸위락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합장을 풀으시고,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사생으로 태어나 존재하게 되나 영원한 현상과 존재란 언젠가는 멸해져 사라지게 되는 존재와 현상이니 이를 무상이라하고, 무아라 하는 것입니다.

(제행무상 : 모든 현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한다는 뜻이고,)

(제법무아 : 모든 현상적 존재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

 

이렇게 존재와 현상이 생멸을 하는 것을 생멸의 법이라 하는 것이니, 여기에 무상의 도리를 알고 사는 사람과 모르고 사는 사람의 차이는 불법을 알고 살아가는 것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와 같으며, 이 차이는 마치 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 찾아가는 사람과 생판 모르는 길을 찾아가는 사람과의 차이라 할 것입니다.


방금 말한 49일 동안의 중음이라는 것은 중유라고도 하는데 사람이든 축생이든 4생이라 (어미의 몸안에서 사지가 갖추어져서 태어나는 사람이나 소,말, 개의 축생들)(알로 태어나는 것들)(모기,귀뚜라미,쥐며느리,나비)(자체가 없이 의탁하지도 않고 홀로 홀연히 생겨나는 천상, 지옥에 태어나는 것들)로 태어나는 중생들이 생명 있는 몸을 받아, 살다, 죽는 윤회생을 1기로 하여 이를 사유(四有)라 하여 네 가지 현상으로 분류해 놓은 것을 말하는데 잘 들어보십시오.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니 첫째, 이를 생유(生有)라 하여 금생에 입태하여 탁태하는 동안 어머니 뱃속의 맨 처음의 몸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 본유(本有)는 출태하여 죽을 때까지의 지금의 이 몸을 말하는 것이며, 째, 사유(死有)는 금생의 맨 나중 몸이니 목숨이 끊어지는 1 찰나에서 한 줌 재가 되든  땅 속에 들어가던 그 때까지의 몸을 말하는 것이고, 넷째의 중유(中有)는 전생과 금생, 또는 금생과 내생의 중간에 있는 몸 아닌 몸, 소위 중음신을 말하는 것으로 다음 생을 받아 날 때까지의 칠칠일 까지를 중음이라하는 것입니다.


허나, 사람이 살면서 지극한 선을 행했거나, 극한 악을 범했을 때는 그 사람은 죽자마자 중음이 생략되어버리고 곧 바로 다음 생을 받게 되지만, 보통으로 살아간 사람은 이 중음으로 있는 동안에 생전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인연과보로 다음 생의 과보가 결정지어져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바로 오늘이 故 정운영 지월광 보살님에게는 그렇게도 중요한 날인 것입니다.

어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수니파인지라 반대파인 시아파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던 마지막 가는 후세인은 손에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을 손에 들고 사형장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것입니다.

가보지도 못한 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이승에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아쉬움과 서운함의 애착과 집착들이 죽음이라는 과정을 대하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두려움의 분별지들로 인해 우리는 신을 만들었고 신에 나약한 자신을 의지하여 편안함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십니다. 진리를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바로 전에 제가 해드렸던 게송은 부처님께서 과거생에 선혜라는 이름의 수행자로 사실 때의 일입니다.


선혜수행자는 홀로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수하암상에 깨달음을 참구하던 중, 어느 여름날 밤 갑자기 숲속에서 청아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위 게송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제행이 무상이니 시 생멸법이요, 생멸이 멸위하면 적멸위락이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음이니 이를 일러 생멸의 법이라 하나니 나고 죽는 것들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없어지면 곧바로 적멸의 즐거움이로다. 하는 게송이었습니다.

헌데, 선혜 수행자는 앞의 두 구절의 가락은 알아들었으나 뒤의 구절들이 잘 들리지 않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한 밤중에 우거진 숲을 헤치고 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다 보니, 고목나무 가지 위에서 소리가 난 것을 확인하고 소리쳐 묻기를 “방금 그 노래는 그대가 낸 것입니까?” 하고 묻자 그 그림자는 그렇다고 말하자 선혜수행자는 나는 그 노래를 듣고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나머지 구절도 들려줄 수 없느냐고 부탁을 합니다. 


그러자, 그 그림자는 모습을 드러내는데 흉측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귀인 나찰로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그 노래를 들려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공짜로는 안 된다”고 하자 선혜수행자가 말하기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드리겠다고 하자, 나찰은 “좋다, 나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으로 사람의 고기와 피를 좋아하니 너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나서 너를 잡아 먹어도 되겠느냐” 하자, 선혜수행자는 생각하기를 “내가 진리를 깨닫기 위해 무엇인들 못하리오, 무명의 중생으로 이 목숨을 연명해 가느니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목숨을 버리더라도 진리를 깨달고 죽음이 더욱 값진 것 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흔쾌히 승낙하고 나찰이 들려주는 나머지 게송을 듣고는 곧바로 환희작약하며 나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높은 나무를 기어 올라가 나찰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 밑으로 떨어지면 나의 몸을 먹이로 삼으십시오.” 하고는 몸을 내던져버립니다.

그때 나찰의 몸으로 있던 그 나찰은 선혜동자가 높은 데서 떨어지는 순간에 제석천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선혜수행자의 몸을 가볍게 받아 공손히 내려놓고 말하기를 “나는 천상의 제석천으로 그대의 수행의 깊이를 시험해보기 위하여 이리한 것이다”라고 하며 선혜수행자에게 예배하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과 오늘의 주인공이신 지월광 영가와 법회 동참제자들의 모든 선망조상의 제청영가들 또한 이제 이 도리를 낱낱이 새겨들으시어 이생에 대한 일체의 애착과 집착과 서운함과 아쉬움과 일말의 티끌일지라도 착심을 내던지고 인로왕보살님의 인도로 극락세계에 화생하시어 윤회로부터 영원히 연을 끊고 대 자유 해탈의 세계를 맛보시기를 삼가 법사는 일러 드립니다.


“생종하처래에 사향하처거라, 생야일편부운기며 사야일편부운멸이라 -  “나무아미타불”--

부운자체 본무실이니 생사거래 역여연이라 독유일물 상독로이니 담연불수 어생사라, - “나무아미타불”


맹구우목이라, 불법 만나기가 힘들다는 말을 절에 와서 많이 듣습니다.

지구는 태양계에 있고 태양계는 은하계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끝을 빛의 속도로 가면 약, 천억 광년을 가야한다고 합니다.

눈 깜짝하면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가는 빛의 속도로도 엄청난 세월을 가야 은하계 끝을 갑니다.

그러니 우주세계에서 보면 지구는 먼지 티끌만한 작은 것입니다. 

심지어 미국의 물리학자인 스티븐호킹은 우리가 아는 은하계 말고도 또 다른 은하계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지구는 45억 년쯤 되었다고 하는데, 우주의 시간은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무량수입니다.

무시무종이라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에서 우주적 개념에서 곤지암 상림리 우리절을 떠올리신다면 아마, 태평양에서 바늘침하나 딱 떨어지는 지점보다도 작은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는 지금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나는 것은 절대로 작은 인연이 아닙니다. 


이 넓은 우주 공간의 가운데 이 엄청난 긴 시간 속에 우리는 만난 것인데,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만난 가까운 주변의 인연들을 자신의 어리석은 분별과 이기심과 욕구들로 인해 이 소중한 인연들을 과소평가하고 홀대하고 무시하고 미워하고들 지냅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한번 뿐인 이생의 아까운 세월을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훨씬 더 귀하고 아름다운 선업과 선연을 짓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오늘의 이차인연공덕으로 성불하십시오.

 

☆  누군가와 함께라면  ☆

누군가와 함께라면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눈이 오고 바람 불고
날이 어두워도 갈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도 지날 수 있고
위험한 강도 건널 수 있으며,
높은 산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라면 갈 수 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손 내밀어 건져 주고,
몸으로 막아주고, 마음으로 사랑하면
나의 갈 길 끝까지 잘 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입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단 한사람의 손이라도 잡아야 합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야 하며
단 한사람에게라도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동행의 기쁨이 있습니다. 동행의 위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누군가의 동행에 감사하면서
눈을 감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험난한 인생길
누군가와 손잡고 걸어갑시다.

우리의 위험한 날들도 서로 손잡고 건너갑시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따뜻해집니다.

 

 



 월간 좋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