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노스님 그 다음 이야기/육식의 해로움

2009. 12. 2. 21:5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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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노스님 그 다음 이야기/육식의 해로움


오대산 노스님의 그 다음 이야기
과경 편역/정원규

 

 

육식의 해로움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불교신자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부처님의 계율에는 단지 살생을 하지 말라고 하셨지,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신 적은 없다고 합니다. 거사님은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전편에서 말하기를 고기를 먹으면 장래 원한을 서로 갚게 될 것이며, 아울러 금생에 많은 질병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이 맞습니까?”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는 내가 친히 만났던 무수한 실제의 사례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십수년을 지내오면서 거의 매일 내 눈앞에서 보아 온, 고기를 많이 먹어 나쁜 과보가 나타나 갖가지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실례는 이루 다 이야기할 길이 없다.


소위 삼정육(三淨肉)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일시에 고기를 끊을 수 없는 초심자들을 위한 방편설법이며, 『입능가경(入楞伽經)』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점차로 고기를 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계속하여 염불, 독경하면서 이치를 터득함에 따라 자연히 전부 고기를 끊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매일 담배 두 갑을 피우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기가 힘든 것과 같다. 그러나 결심이 굳고 의지가 강한 사람은 당장에 담배를 끊고, 술을 끊고, 고기를 끊는 사람들도 있다.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에서 이르기를, “보살은 일체 중생을 자비로 생각하기를 마치 자기 몸과 같이 여기는데, 어찌 그를 보고 먹을 생각을 짓겠느냐?”라고 하였다.


중생의 고기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일찍이 세존께서 긍정하신 것이며, 절대로 양무제(梁武帝)가 제창한 것은 아니다. 『능엄경』과 『입능가경』에서 ‘왜 중생의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가’의 문제와 부처님 당시의 제자가 오정육(五淨肉: 죽이는 것을 보지 않고, 죽이는 것을 듣지 않고, 직접 죽이지 않으며, 스스로 죽은 것이며, 새의 잔해)을 먹을 수 있는 도리에 대하여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만약 오늘날 어떤 사람이 부처님은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신 말씀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아마도 불경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지금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능엄경』 가운데의 일부분을 적어본다.


“아난아, 모든 세계의 육도 중생이 그 마음으로부터 살생하지 않으면 생사의 윤회를 따르지 않는다. 네가 삼매를 닦아 생사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살생의 마음을 없애지 못하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비록 많은 지혜가 있고 선정이 현전하더라도 살생을 끊지 못하면 반드시 귀신의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 상품의 사람은 대력귀신이 되며, 중품은 날아다니는 야차와 귀신의 우두머리가 되며, 하품은 땅에 다니는 나찰이 된다.


저 모든 귀신들은 또한 자기들의 무리가 있으며, 각각 무상도를 이루었다고 자칭한다. 내가 멸도 후 말법시대에 그러한 많은 귀신들이 세간에 치성할 것이며, 그들은 고기를 먹으면 보리(菩提)의 도를 얻는다고 말할 것이다.


아난아, 내가 비구들에게 오정육(五淨肉)을 먹게 하는 것은 그 고기 모두 내가 신력(神力)으로 화생(化生)하여 본래 명근(命根, 목숨의 뿌리)이 없느니라. 땅의 기후가 덥고 습하며, 더욱 모래와 돌들이 많아 초목이 자랄 수 없으니, 내가 대비(大悲)의 신통력으로 더하여 대자비로 고기라고 거짓 이름하였기 때문에 너희들은 그 맛을 얻게 된 것이다.


여래(如來)가 멸도(滅度)한 후 중생의 고기를 먹는 사람을 어찌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야 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설령 마음이 열려 삼마지(三摩地, 삼매·선정)를 얻은 것 같아도 모두 큰 나찰이며, 목숨을 마치면 반드시 생사의 고해에 빠질 것이며, 결코 불제자가 아니니라. 이와 같은 사람은 서로 죽이며, 서로 삼키며, 서로 잡아먹기를 그치지 않을 것이니, 어찌 이런 사람이 삼계(三界)를 벗어날 수 있겠느냐?

네가 세상 사람에게 삼마지를 닦으면서 점차 살생을 하지 말 것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여래·불·세존의 두 번째의 청정명해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만약 살생을 끊지 못하면서 선정을 닦는 자는 마치 스스로 귀를 막고 큰 소리로 고함치면서 남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을 ‘감추려고 할수록 더욱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청정비구와 모든 보살은 길을 가면서도 자라나는 풀도 밟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어찌 손으로 뽑을 수 있으며, 대비의 마음으로 어찌 중생의 피와 고기를 취하여 배를 채울 수 있겠는가?


만약 모든 비구가 동방의 비단 옷을 입지 않고, 가죽 털신을 신지 않고, 우유 제호를 먹지 않으면 이와 같은 비구는 세상에서 진정으로 벗어나 묵은 빚을 갚고 삼계에 노닐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몸에 걸치는 것은 모두 그것의 인연이 되기 때문이다. 마치 사람이 땅의 곡식을 먹으면 발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드시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모든 중생의 몸(즉 고기)과 몸의 부분(즉 털, 가죽 등)을 먹지 않고 입지 않으면, 나는 이런 사람은 진정한 해탈자(解脫者)라고 말한다. 나와 같이 이렇게 말하면 부처님의 말씀이며, 이와 같지 않으면 마왕(魔王) 파순(波旬)의 말이다.”


부처님께서 신력으로 화현시킨 명근이 없는 ‘오정육’을 먹게 한 것은, 당시 인도(印度)의 기후가 매우 덥고 땅이 찌고 습하며 모래와 돌이 많아 풀과 채소가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화현한 동물은 명근이 없어도 거짓으로 고기라고 이름하였으나 진짜 고기는 아니다. 이것은 마치 『서유기』 속의 손오공이 털로써 화신을 변화시켜 낸 것과 같이 명근이 있는 육체가 아니다. 『법화경』 속의 화성(化城)은 단지 염하기만 하면 눈앞에 나타나며, 『아미타경』 속에 나오는 극락세계의 여러 새도 부처님께서 화현시킨 것이다.


따라서 먼 고대의 특수한 환경에서 그리고 부처님께서 재세한 때에 승단(僧團)이 출현하여 고기를 금할 수 없는 자연환경에서, 부처님은 부득이 신력으로 명근이 없는 동물을 화현시킨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불교는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되었으며, 그 후 부처님의 신력으로 화현된 동물은 없는데, 어찌하여 부처님 재세 시 비구들의 걸식을 구실 삼아 백성이 무엇을 주면 주는 대로 먹어야 한다면서 불제자로 하여금 부처님의 계율을 파괴하려고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범망경』에서 모든 불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열 가지 중한 바라제목차(계율)가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살생계(殺生戒)이다. 만약 불자(佛子)가 스스로 죽인다든지, 사람을 시켜 죽인다든지, 방편으로 죽인다든지, 죽이는 것을 찬탄한다든지, 보고 기뻐한다든지, 주문을 외워 죽인다든지, 살생의 인연, 살생의 법, 살생의 업으로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고의로 죽이면 안 된다.

보살은 마땅히 자비심과 효순심에 주하여 모든 중생을 방편으로 구호해야 하며, 제멋대로 기뻐하며 살생하는 것은 보살의 바라이죄이다.”


식육계(食肉戒)에 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무릇 고기를 먹는 것은 대자비의 불성(佛性) 종자를 끊는 것이다. 모든 중생은 (고기를) 보면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보살은 중생의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고기를 먹으면 무량의 죄를 얻게 된다.”


또 『지장경』을 보면 광목녀(光目女)의 모친이 악취(惡趣)에 떨어진 원인을, “오직 물고기, 자라의 종류를 먹기 좋아하였으며, 특히 그들의 새끼를 많이 먹었다. 볶아서 혹은 쪄서 마음대로 먹었으며, 그 목숨의 수를 헤아리면 천만의 두 배나 된다.”라고 하였다.


다시 예를 들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설은 완전히 망설(妄說)이다. 역대의 대덕조사들 모두 우리들에게 경장의 길에 들어가 지혜가 바다와 같이 되기를 원하였다.


정토종의 13대 조사이신 인광(印光) 대사는 우리들에게 절대로 고기와 오신채를 끊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날 『능엄경』을 읽어야 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다. 그 중에서 ‘사종청정명해(四種淸淨明海)’와 ‘오십종음마(五十種陰魔)’ 부분은 더욱 중요하고도 중요한 부분이다.


『입능가경』의 ‘차식육품(遮食肉品)’과 『범망경』도 반드시 여러 번 읽어야 할 것이며, 깊이 이해가 되면 우리들은 진짜와 가짜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도 고기를 먹는 사람이라고 선양하는 일부의 사람을 위해서, 『입능가경』의 법문은 다음 장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자료출처 :   불자모임광장

 

한국의 야생화 시집 (4)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으랴]

 

 

 

층층잔대




어쩌면 좋아

끊어내야 할 인연 줄

가닥가닥 얽혔는데,

오늘 또 연을 맺었으니


어쩌면 좋아

해소기침 골골 가래 끓는 세상

답답한 가슴 속

바람 불러 시원하게 씻겨줄 공덕 없으니

더는 연 만들지 말라며

날마다 종을 매달아 층층이 탑 쌓고

고요한 울음으로

후려치는 그대여


어쩌면 좋아

풀어내지 못하는 인연이어도

꽃향 맡으면,
따가운 죽비소리 아스라이 멀어지고

소지공양 밤새운 발원

스르스르 풀리고 마는, 그 쾌감


어쩌면 좋아

언제 어디서나 웃어주는 얼굴

다가가면 꽃송이마다 술잔 되는 것을

인연 끊어내기보다

엎어진 잔대 바로 들어

주거니 받거니 즐기고 싶어지는 것을


어쩌면 좋아

뒤집어진 세상

그리 살다보면, 살아내다 보면,

그윽이 여린 향 품은 꽃

피어나는 것을


어쩌면 좋아

바람 한 점 없어도

너처럼 풍경으로 울게 되는 것을







※ 층층잔대 : 도라지(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특산식물이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지에 자생한다. 줄기는 곧게 서고, 잎은 돌려나는데

긴 타원형 또는 둥근 타원형으로 거친 톱니가 있다.

7~9월에 연보라의 꽃이 종 모양으로 피는데, 줄기의 마디에 층층으로 돌려붙고,

암술대가 화관 밖으로 나온다. 10월에 열매가 익으며,

뿌리는 식용하고 약용(거담, 진해, 강장제)으로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