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카페로 포교하는 범어사 무비스님

2009. 12. 4. 22:3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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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카페로 포교하는 범어사 무비스님
 

부산 금정산 입구에서 범어사에 이르는 2.5km의 산책로 양편에 오색 연등 꽃이 피어 있다. 부처님 오신 날(24일)이 임박했음을 실감케 한다. 겉으로 보기엔 천년 고찰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렇지만 범어사는 단순히 오래된 사찰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인터넷을 통해 8000명 가까운 네티즌 회원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첨단 ‘포교 발신지’이기도 하다. ‘천년 고찰과 인터넷 매체의 만남’을 주선한 이는 대웅전 옆 염화실을 거처로 인터넷 카페 ‘염화실(http://cafe.daum.net/yumhwasil)’을 운영하는 무비(無比·64) 스님이다. 그는 지난 2003년 척추에 고름이 고이는 증상 때문에 대수술을 하고 하반신이 불편해지면서 바깥 출입이 어려워지자 2004년 11월 ‘염화실’을 열고 인터넷을 통해 대중 포교에 나선 것이다. 그의 거처인 염화실 벽에 걸린 칠판엔 한자로 ‘堪(감·견딤)·忍(인·참음)·待(대·기다림)’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이 좌우명처럼 육체의 고통을 대중포교의 계기로 승화시킨 무비 스님을 만나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 마음가짐을 들어보았다.





―스님의 인터넷 강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회원수가 한 7800명 정도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엔 거품회원이 많다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불교를 배우려는 열기가 높아 큰 다행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바깥 출입이 어렵다 보니 시작한 일입니다. 그런데 컴퓨터에 마이크 하나 놓으면 전 세계 어디서나 자기 방에 앉아서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신통방통합니다.”

―건강이 얼마나 안 좋으셨나요?

“생사를 넘나들었죠. 경전에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 낮과 밤 동안에 만 번 죽고, 만 번 산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아팠습니다. 고통 때문에 기절했다가 아픔 때문에 정신이 들고 또 기절하길 하루에 수십 번 반복했습니다. 그 고통이 오히려 수행엔 큰 보탬이 됐으니 신기한 일이지요?”

―고통과 공부가 하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명색이 출가한 사람으로 오직 공부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고통 역시 정신의 보약(補藥)이 됐습니다. 또 그 덕에 인터넷을 열심히 해 새로운 대중들을 만나게 되지 않았습니까?”

―스님은 대강백(大講伯·경전 강의를 잘 하는 스님)으로 잘 알려져 계신데 출가 초기엔 선방 수행을 오래 하셨다지요? 참선과 경전공부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저는 출가 후 해인사 강원 마치는 날 산문(山門)도 나서지 않고 그 길로 선방을 찾아갔습니다. 그 후 10년간 전국 선원을 다니며 동산(東山) 효봉(曉峰) 춘성(春城) 구산(九山) 성철(性徹) 향곡(香谷)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모시고 한철씩 살았습니다. 또한 운허(耘虛) 탄허(呑虛) 관응(觀應) 스님 등 당대의 대강백을 모시고 공부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전 공부하다가도 선방에 안거(安居) 들어가고, 안거 들어가서도 서장(書狀) 선요(禪要) 임제록(臨濟錄) 등 선(禪)과 관련된 책을 읽었습니다. 고통과 공부도 둘이 아니고, 선과 교도 둘이 아닙니다. 저는 후배 스님들에게도 ‘직구는 치고, 커브는 못 치면 그게 프로야구선수냐?’고 이야기합니다.”

―공부하실 때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그때야 환경은 형편없었지요. 해인사 강원 시절에는 책이 없어서 ‘선요’의 경우는 쉬는 시간 틈틈이 베껴서 필사본으로 공부했어요. 그래도 공부할 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선방에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잠을 자지 않고 일주일 이상 좌선하는 수행방식)한다고 나무 깎아서 명치에 대고 졸다가 몸이 숙여지면 배를 쿡 찌르게 만들고, 앉은 자리 뒷벽에 못 치고 끈을 묶어서 졸면 목을 조르도록 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나라도 그렇고 절 집도 형편이 좋아졌지만 그런 간절함은 줄어든 것 같아요.”

―지금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정직입니다. 저는 우리가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가 정말 정직하게 된다면 지금 벌어놓은 것만으로도 몇 십 년 문제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정직이 뿌리내리지 못하면 아무리 벌어도 늘 모자랄 것입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정치인들이 불교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대표적인 예가 ‘대승(大乘)’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대승’과 ‘화두(話頭)’란 말을 많이 쓰더군요. 불교에서 ‘대승’이란 승속(僧俗)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는 대중을 가리킵니다. 또 문자 그대로 ‘큰 탈 것, 수레’란 뜻도 됩니다. 모든 중생을 태우고 바르고 참된 진리의 길로 가자는 것이지요. 대승은 자기 자신을 철저히 비운 자리에서 가능한 경지입니다. 개인이나 계파, 기득권, 이익을 돌보면 대승이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인들이 ‘대승’이란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 모두 다 태워서 ‘자기 집’으로만 데려가려 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으로는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좋겠습니까?

“한마디로 산중(山中)의 중이 존경할 수 있는 분이었으면 합니다.”

―불교는 ‘탐진치(貪瞋癡·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음)를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주문인 것 같습니다.

“어렵고 큰 것 말고, 쉽고 간단한 것부터 이치(理致)를 살피며 살면 됩니다. 가령 오늘 날씨가 맑고 먼지 하나 없는데 왜 그런가? 어젯밤에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도 이치입니다. 사업이건, 공부건 자기 주변부터 하나하나 살피면 기쁨, 슬픔, 고통, 아픔이 더 이상 없어지는 경지가 옵니다.”

―평생을 경전공부를 통해 명구(名句)들만 뽑은 책도 여러 권 내셨는데요, 올해 부처님 오신 날 선물로 한 구절만 소개해 주십시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주인이 되라’는 뜻으로 당나라 때 임제 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있는 이 곳, 이 순간이 전부이고 모두이다.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도 때론 과거 생각에 매여있고, 때론 미래로 달려가느라 정작 이 순간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 순간의 진정한 가치에 눈 떠야 할 것입니다. 저는 꼭 불교적인 게 아니라 명심보감 한 구절씩이라도 아파트 빈 벽에, 학교 벽에 붙이는 국민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어요. 그런 좋은 문장을 보고 자란 사람들은 정말 달라질 겁니다.”


 

무비 스님은 

1943년 경북 영덕 출생. 초등학생 시절 집 근처의 덕흥사에 놀러 다니며 한 스님으로부터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먼지가 된다(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란 초발심자경문 구절을 듣고 출가를 결심했다. 1959년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如幻)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범어사 강주(講主), 조계종 승가대학원장과 교육원장을 거친 승려 교육의 대가이다.

[조선일보] 2007년 05월 20일(일)

 

‘금강경’ 비롯 각종 경전 직접 동영상 강의

“불교의 진수 배운다”…회원 4천명 넘어서(현재 7900여명) 

무비스님은 지난 5월에는 염화실 카페에 ‘전법운동실’도 마련했다. 스님은 “전법운동 상황이나 여러 가지 사례 등 전법운동에 도움이 될 경험과 자료들을 공유하려고 한다”면서 “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전법운동을 전개해 모든 인류에게 널리 법보시를 하자”고 제안했다. 홍보문안을 직접 만들어 크고 작은 법회와 행사때 회원들과 함께 직접 배포하기도 한다. 또 전국 곳곳에 있는 염화실 회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전법활동을 해줄 것을 간곡하게 당부했다. 스님 뜻에 공감한 회원들 또한 명함, 책갈피, 엽서를 만들어 나눠주고, 다른 사이트에 염화실 카페를 홍보하는 등 법을 전하는 일에 기쁘게 동참하고 있다.

무비스님이 전법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은 것은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이었다. 스님은“범어사를 찾을 외국인에게 보여줄 변변한 안내장이 없어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 스님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모항공사에서 발행하는 기내잡지에 실린 범어사 소개 글을 본 것이다. 영어와 일어로 번역까지 돼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스님은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 A4 용지 4페이지로 편집한 뒤 수천장을 인쇄 했다. 그리고는 선수촌 법당에 비치해 각국 선수와 외국인들이 범어사를 알고 불교와 가까워질수 있도록 했다.

스님의 전법 열정은 계속됐다. 서경수 전 동국대 교수가 집필한 〈법화경〉 관련 해설서에서 영문으로 번역된 부분을 재편집해 외국인들에게 나눠주었다. 또 경전에 있는 좋은 구절을 모아 컴퓨터로 편집한 뒤 인쇄해 범어사를 찾는 시민과 불자들에게 전했다. 이렇게 나눠준 인쇄물에는 이름도 붙였다. 〈일지경(一紙經)〉이었다. ‘종이 한 장에 담긴 경전’이란 뜻이 담겨있다.

“설산동자는 자기 피를 뽑아 부처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보급했다”고 지적한 무비스님은 불자들에게 “첫 부탁은 불법을 공부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 부탁은 다른 사람도 공부하도록 널리 법을 전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범어사=이성수 기자
 

염화실 새소식난 안내

염화실 새소식난을 만들었습니다.

불교계의 소식과 염화실과 문수선원, 수암선원, 문수원 등등의 절과 단체들과 인연을 함께하는

모든 도반님들과 법우님들의 새소식들을 알리고 싶으신 분들은 많이 활용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특히 각종 법회와 행사와 강의 안내를 알리는 난으로도 활용합니다.

다른 카페의 광고와 사찰이나 단체들의 행사안내도 이곳에 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곱고 아름답게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무비스님

http://cafe.daum.net/yumhwa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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