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야 할 필요와 <나>/만공선사법훈

2009. 12. 3. 19:5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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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공선사(滿空禪師) 법훈(法訓) < 새벽의 소리 >
        
         1. 나를 찾아야 할 필요와 <나>
          사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귀하다는 뜻은 나를 찾아 얻는데 있나니라. <나>라는 의의가 절대 자유로운데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자유가 없고 무엇하나 임의로 되지 않는 것은 거짓된 내가[망아(妄我)] 주인이 되고 참나[진아(眞我)]가 종이 되어 살아나가는 까닭인 것이니라. 거짓된 나는 참나에서 나오는 것인데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은 곧, 사악한 마음이요, 참나는 바른 마음인데 시작도 끝도 없고, 생사도 없고 형상도 없지만은 오히려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나>인 것이다. 사람이 <나>를 잊어버린 바에야 짐승과 같은 무리의 인간이라 아니할 수 없나니 짐승이 본능적으로 먹는 것이나 색에만 팔려서 허둥거리는 것이나 제 참모습[진면목(眞面目)]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현실에만 끌려서 헤매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자기 본모습을 모른다면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에 윤회하는 한 분자(分子)에 지나지 않느니라. 다 같은 업[동업(同業)]에 중생이 사는 이 사바세계에는 너와 내가 다 같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람 사는 것이 그저 그렇거니 하고 무심히 살며 자기들 앞에 가로놓인 무서운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살다가 죽음이 닥치면 앞길이 캄캄하게 되나니라. <나>라고 하는 것은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네」하고 대답하는 바로 그것인데 그것은 생사도 없고 불에 타거나 물에 젖거나 칼에 상하는 것이 아니어서 일체 얽매임을 떠난 독립적인 <나>인 것이니라. 인생은 말꼬리에 매달려 울며 뒹굴려 가는 죄수처럼 업에 사슬에 끌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의 길을 오랜 시간동안 헤매고 있는데 그 쇠사슬은 자기만에 지혜의 칼이라야 능히 끊어버릴 수 있게 되나니라. 사회에서 뛰어난 학식과 인격으로 존경 받는 아무러한 사람이라도 자기 진면목을 알지 못한다면 사람이 정신은 잃어버린 인간이 되나니라. 석가 세존이 탄생 하시면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또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하신 그 아(我)도 <나>를 가리킨 것이니라. 각자가 부처가 될 성품은 지니었건만, 내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이니라. 모든 것이 <나>이기 때문에 극히 작은 하나의 털끝만한 정력이라도 <나>를 찾는 이외에는 어떤 다른 것에 소모하는 것은 나에 손실이 되나니라. 세상에는 누구든지 육신, 업신, 법신의 세 몸을 지녔는데, 세 몸이 일체가 되어 하나로 쓰는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니라. 일체 행동은 법신이 하는 것이나, 육신과 업신을 떠난 법신이 아닌 까닭에 현상(現像) 그대로가 곧 생사 없는 자리이니라. 생사 없는 그 자리는 유정물이나 무정물이 다 지녔기 때문에 한 가닥 풀의 정(精)이라도 전 우주의 무장으로도 해체시킬 수 없나니라. 세상에는 나를 알아보느니 찾아보느니 하는 말과 문구는 있으나 업으로 인식하는 스스로 아는 <나>를 생각할 뿐이요, 정말 나는 어떤 것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나니라. <나>는 무한극수적(無限極數的) 수명을 가진 것으로,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금강불괴신이라, 이 육체의 생사는 나의 옷을 바꾸어 입는 것일 뿐 인간이라면 자신이 소유한 생사의 옷쯤은 자유자재로 벗고 입을 줄 알아야 되나니라. 보고 들어서 얻는 지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나라는 생각만 해도 그것은 벌써 내가 아닌 것이니라. 나는 무념처(無念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무념처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처를 대상으로 하여 이치에 마지막 경지[구경(究竟)]에 이르면 내가 곧 부처인 것이 발견되나니, 결국 내가 내 안에서 나를 발견해야 하나니라.


선악과호불         善惡過虎佛

시경허선사         是鏡虛禪師

천화향심처         遷化向甚處

주취화면와         酒醉花面臥


착하기는 부처님보다 더하고,

사납기는 호랑이 보다 더 했던 분, 경허선사여!

천화하여 어느 곳으로 가셨나이까?

술에 취해 꽃 속에 누워계십니까?


경허선사  천화(遷化)를 듣고 읊은 만공선사 게송


구래시비여여객   舊來是非如如客
난덕산지겁외가   難德山止劫外歌
려마소진시모일   驢馬燒盡是暮日
불식두견한소정   不食杜鵑恨小鼎

예로부터 시비가 여여하신 객이,
난덕산에서 겁 밖의 노래 그치셨네.
나귀와 말 태워 저문 이 날에,
먹지 않는 소쩍새가 솥 적다 한을 하네.


경허선사 다비식 때 만공선사 읊은 게송


어느 날 혜월스님으로부터 스승 경허가 함경도 갑산 웅이방에서

열반(涅槃)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스승의 유품과 무덤을 확인하고

다시 다비를 하여 평소 즐겨 다니시던 산천(山川)에 뿌렸다.


만공스님은 한 가닥 연기와 한 줌 재로 화하여지는

스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지난날 미처 드리지 못했던 한마디 대답을 스승께 바친 것이었다.

경허 큰스님의 다비식을 올리고

스승의 유품을 거두어 덕숭산으로 돌아온

만공스님은 1905년 금강산 유점사 조실로 추대되어

마하연에서 여름을 세 번 이나 지내면서

눈 푸른 납자(衲子)들을 지도하기도 했고 다시 덕숭산 금선대로 돌아와

여러 수좌(首座) 학인들에게 선지를 펼쳐 보이셨다.

스님의 명성(名聲)은 갈수록 높아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