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마음 다스리고 복 짓는 윤달의 행사/무공스님

2009. 12. 7. 20:38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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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마음 다스리고 복 짓는 윤달의 행사


불자 여러분!

무더운 삼복 더위 속에 어떻게들 지내셨습니까?


올해는 윤달이 든 해로서 음력이 한달 늘어난 해입니다.

기도야 따로 때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올해는 7월 윤달이 있어 기도에 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동참하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자작자수(自作自修),


즉 자신이 지은 업은 자신이 닦는다는 의미로

윤달이 들면 여러가지 행사를 치릅니다.


살아 있을 때 선연을 닦아 내생에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선연은 없지 않겠습니까?


윤달은 4년에 한번씩 드는데

이것은 달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으로

계절의 추이를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맞출 수도 없어서,

농사에 지장이 크기 때문에 그것을 조절하기 위하여 고안된

치윤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1년 12개월 외에 몇 년만에 한번씩 윤달이 들기 때문에

‘여벌달’‘공벌달’‘공달’또는‘덤달’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래서 보통 달과는 달리 걸릴 것이 없는 달이고,

탈도 없는 달이라고 합니다.


속담에 윤달에는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을 만큼 무탈한 달이며,

집수리이나 이사를 해도 가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나이 많은 노인이 있는 집에서는 수의(壽衣)를 준비하기도 하며,

산소를 손질하거나 이장하는 일도 흔히 윤달에 합니다.


동국세시기”에 이와 같은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풍속에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를 만드는데 좋다.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


광주 봉은사에서는 매양 윤달을 만나면

서울 장안의 여인들이 다투어와서 불공을 드리며,

돈을 자리 위에 놓는다.

그리하여 윤달이 다 가도록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극락간다 하여 사방의 노인들이 분주히 달려오고

다투어 모인다.

서울과 외도의 여러 절에서도 대개 이러한 풍속이 있다”


절에서도 매년 윤달이 들면, 공달(윤월)

즉 ‘공으로 얻은 달’이라 하여

‘빈 마음을 다스리고 복을 짓는 달’로 여겨

예수재를 지내거나 영산재와 수륙재를 봉행하며,

가사불사와 삼사순례 등

여러가지 불교행사에 참여하는 인연 공덕을 쌓도록 하였습니다.


오늘 설법에서는 이들 행사가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와 더불어 의식의 내용

그리고 널리 행해진 연유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재(豫修齋)


예수재란 ‘미리 닦는 재’라는 뜻입니다.

죽은 다음 자손들이 지내 줄 49재를 살아서

그 자신이 손수 자신의 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자손들이 지내주는 재는 죄를 받느라

정신이 혼몽한 영혼이 밥 한 때도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내 재는 내가 지내려는 것이며,


가고 난 뒤에 지내는 재는

자손들을 위해서 복을 짓게 하는 재’라 하여 많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는 그 의식을 바로 알아

법답게 지내야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것이기에

꽃과 번, 음식 따위를 깨끗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준비합니다.


명도전(冥道傳)에 보면


“유사대국의 왕, 빔비사라 왕이 15세에 등극하여

25년 동안 예수시왕칠칠재를 49회나 지냈는데

갑자년 12월 8일 경신 야밤에 갑자기 명부의 사자가 와서

따라 갔는데 가는 도중 풀과 나무가 없는 하얀 산이 있어 물으니

‘이는 남염부제 중생들이 법답게 은전을 받들지 못하고

정성이 부족한 파전들을 버려 산을 이루었다” 하므로

왕이 돌아와 정성껏 금 은전을 조성하고 점안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전생의 빛을 갚음으로서 125세까지 장수하였다“하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예수재는

매회 윤년에나 지내는 행사이니 돈만 내고 동참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이제 버려야 할 때입니다.

 

진실로 이 기회에 내가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하고

상세 선망부모를 천도하고 나아가서는

시방의 중승(衆僧)들에게 공양하여 한량없는 공덕을 짓는 재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더 많은 복덕과 공덕이 형성될 것입니다.



영산재(靈山齋)


영산재란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 계실 때

“법화경”을 설하시는 장면을 재현하는 의식으로,


주로 영가 천도재인 49재중에 장엄하게 치러지는데

의식의 순서는 예수재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성도 하시고

45년 동안 설법포교를 하셨는 바,

 

설법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얕은 근기의 중생들을 위하여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는 인천법문(人天法門)을 주로 하셨고,


다음에는 고통을 싫어하는 중생들을 위하여

사성제와 12인연, 열반과 해탈법문을 설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세상을 이끌어 갈 만한 지도자들을 위하여

바라밀을 가르쳐 보살이 되게 하는 보살법문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70세가 넘어서

모든 중생을 한꺼번에 거두어들이는 회향법문을 하셨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제법실상의 법화경 법문인 것입니다.



수륙재


수륙재는 물에서나 육지에서 비명횡사하여 간

모든 중생들의 혼령을 천도하는 재공의식을 말합니다.


수륙재의 연기는 아난존자로부터 비롯됩니다.

어느 날 아난존자가 밤에 길을 가다 보니

갠지스 강가에서 수많은 아귀들이 불에 타서 죽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난존자는 그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그들은 다 전생에 부모님을 박대하고 선영들을 소홀히한

과보로 아귀라는 귀신이 되어 있는데 음식을 보면

모두가 똥물로 보이고 물을 마시면 철환이 되어

하루에도 만 번 죽었다가 만 번씩 살아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아난존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 다라니를 가지고 가서 평등한 마음으로 법석(法席)을 베풀라.”


이 말씀을 듣고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밥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가서

변식진언, 시감로수진언, 일자수륜관진언, 유해진언를 외우니

그 물이 그대로 감로수가 되어 모두 마시고 해탈하였습니다.


이렇게 4 다라니를 외워 갠지스강의 아귀들을 구원하였고,

그 뒤 인도에서는 매년 이들 아귀들을 위해

특별법회를 시행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수륙재는

고려 광종 21년 수원 갈양사에서 국재(國齋)를 베푼 것이 시초가 되어,

그 후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가사불사


가사는 불교 법복의 하나로서

스님들의 장삼 위에 왼쪽 어깨로부터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것으로 의식 때 예의를 갖추고자 두르는 것입니다.


흔히 법의, 공덕의, 복전의라고도 합니다.


출가 사문의 법의인 가사의 시초를 살펴보면,

부처님께서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할 당시 자신의 비단옷을

사냥꾼의 남루한 옷과 바꿔 입은 때부터 비롯됩니다.


부처님은 의식주 중에서 가장 집착하기 쉬운 의복에 대하여

엄하게 단속하여 평상복을 분소의로 정하셨습니다.


육바라밀의 으뜸인 보시에는


부처님 법을 전하는 법보시,

재물로 하는 재보시,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두려움이 없이 편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무외시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사불사는 무외시에 속합니다.

가사의 한 올이라도 몸에 지니면 능히 맹수들이 침범치 못한다 했으며,

밤에 잠을 못 이루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이 가사를 덮고 자면

재앙이 소멸하고 편안히 잠들 수 있다하여 가사를 무외의 법의라고도 합니다.


또 가사는 인간의 모든 번뇌를 깨뜨리는 해탈의 옷이므로

가사불사를 해서 스님께 공양 올려 해탈케 하면 인연 있는

모든 불제자들도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무한한 공덕이 있는 가사불사를 위해 윤달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절에 머물면서

손수 스님들을 위한 가사를 깁습니다.



삼사순례- 성지순례


옛말에 세 절을 거치면 염라국에 가서도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특별한 근거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의미를 생각해 보면,

한 사찰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 사찰의 체취에만 머물게 되어

자유로운 마음을 잃기 쉽고 혹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부처님의 자취가 서려 있고, 불심이 가득 배어 있는 성지를 찾아

자기 성찰의 기회로써 신심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윤달에 행하는 여러 가지 불교행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4년만에 한 번씩 오는 윤달

즉 공달이 왜 마음을 다스리고 공덕을 닦는 달인지 아셨을 것입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天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로다.


삼일 동안이라도 마음을 닦으면 하늘에 쌓는 보배가 되지만,

백년 동안 재물을 탐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티끌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백년 동안 재물을 탐하면서

이 몸 하나 먹여 살리고 입히기를 힘썼더니

마지막엔 이 몸까지도 버리고 가야하니

 

살아있을 때 공덕으로써

노자를 단단히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노력하여 얻어 가진 복덕으로 부처님 법 널리 펴서

모든 중생을 깨닫도록 하는데

큰 자량(資糧)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불기 2550년 8월 24일(윤 칠월 초하루)


                            보현사 무공 합장



        길 떠나는 인생 

        언제 떠나는지 서로 몰라도 가다보면 서로 만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애절한 사연 서로 나누다 갈랫길 돌아서면, 어차피 헤어질 사람들... 더 사랑해 줄 걸 후회 할 것인데 왜 그리 못난 자존심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미워했는지... 사랑하며 살아도 너무 짧은 시간 베풀어 주고 또 줘도 남는 것들인데 웬 욕심으로 무거운 짐만 지고 가는 고달픈 나그네 신세인가? ... 그 날이 오면 다 벗고 갈텐데 ...무거운 물질의 옷도, 화려한 명예의 옷도, 자랑스런 고운 모습도... 더 그리워하면 더 만나고 싶고, 더 주고 싶고, 보고 또 보고 따뜻이 위로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그리 마음에 문만 닫아걸고 더 사랑하지 않았는지, 아니 더 베풀지 못했는지.. 천년을 살면 그리할까? 만년을 살면 그러리요.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도와준 만큼 도움 받는데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만 몸부림쳤던 부끄러운 나날들... 우리가 서로 아끼고 사랑해도 허망한 세월인 것을 어차피 저 인생의 언덕만 넘으면 헤어질 것을 미워하고 싸워 봐야 상처난 흔적만 훈장처럼 달고 갈텐데... 이제 살아 있다는것 만으로 감사하고 이제 함께 있다는것 만으로 사랑해야지. 우리는 다 길 떠날 나그네들 이라네..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