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악세를 살아가는 법

2009. 12. 14. 20:4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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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나이면 종착역에 40km로 달리고 있고 50대는 50km, 60대는 60km의 속도로 가고 있다고들 합니다.


이렇게 내 뜻과는 달리 하염없이 가고만 있는 세월 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위해서, 잘 살아보기 위해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지만, 전번 말씀드린 대로 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덜 잘못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모두가 종교라는 정신세계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정신세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행하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유한한 삶을, 보다 진지하게 살아가고자 중생인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를 하고 수행자들은 수행을 하고 성직자들은 각자 종교의 교조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요즘,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조계종단의 돌아가는 꼴들이나 아프칸에서 돌아온 인질들의 가족들과 그 교회 성직자들이 보여주는 이중적인 작태들을 보게 되면 과연 신이 존재한다고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당신 사후 말법시대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에 가서는 당신의 성품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표현하기에 입에 담기가 어려워 아! 슬프다. 하시면서 말할 수 없음을 괴롭게 한탄하시며 입을 다물어버리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세존께서 도저히 말로써 해줄 수 없어  입을 다무셨던 시대를 우리는 지금 당사자가 되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바로 오탁악세입니다.


자신들의 분식집을 차린다는 목적으로 애꿎은 처자들을 돈 몇 푼에 강도질하여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이런 시대가 우리의 현주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존께서 그토록 걱정하셨던 오탁악세란 과연 어떤 세상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탁악세란 세상이 끝나가는 말세에 일어나는 좋지 않은 일들을 말하는데, 인간들이 지식만 늘어나고 지혜가 엷어지면서 온갖 이기심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사회적, 정신적인 탁한 다섯가지 업력이 난무하는 혼돈의 세계를 말합니다.


첫째는 겁탁(劫濁)이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이 악해지고 전쟁으로 인한 악성전염병 등으로 한시도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지 못하는 사회악이 범람하는 시대로 기근·질병·전쟁·천재지변 등이 수시로 일어나는 시대를 말합니다. 

오늘날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별의 별 꺼리를 만들어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있고, 아프리카의 수단이라는 나라에서는 같은 나라 안에서 물 부족으로 인한 부족전쟁으로 20만이라는 사람들이 애 어른 남녀 할것 없이 살육되고 있어 엊그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그곳을 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듯이 한 곳에서는 물자가 풍부한데, 한 곳에서는 굶어 죽는 기아현상이 생기며, 예전엔 이름도 모르던 무서운 병이 나타나고, 오존층 파괴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화산이 폭발하거나 지진이 일어나거나 해일과 홍수가 일어나는 현상을 겁탁이라 부릅니다.


두 번째의 견탁(見濁)은 사악한 사상과 견해를 가진 자들이 선한 탈을 쓰고 온갖 달콤한 말로 내면이 나약한 이들을 꾀어내어 무리를 지어 세력을 얻고 올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힘을 잃어가는 시대로 사악한 견해가 범람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음란물이 태연히 청소년 인터넷 사이트에서 나돌고, 남녀 구별 없이 참된 인간성을 버리는가 하면, 돈을 위해선 어떤 악행과 음행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번뇌탁(煩腦濁)이라 해서 자기만 옳다는 견해에 떨어져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나와 남을 끝없이 고통과 공포에 떨게 하고 자신의 것은 아끼고 남의 것은 탐내는 등, 권세와 명예만을 탐내는 무리들이 우글대는 세상으로 대권을 잡아보겠다고 온갖 짓을 다하는 이 시대 여야의 대권 주자들과 하등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네 번째는 중생탁(衆生濁)으로 사람들의 심성과 자질이 극도로 저하되어 견탁과 번뇌탁에 물들고 길들여져 몸과 마음의 자질이 천박해지고 스스로 천박한 업을 부끄러워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연예인을 동경하여 온갖 꾐에 빠져들고 동네에 슈퍼가 신장개업을 해도 옷을 걸친 건지만지 하는 아가씨들이 배꼽 다 들어 내놓고 춤을 추고 호객행위를 하는 것이 결코 좋은 업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의 다섯 번째는 명탁(命濁)으로 수탁(壽濁)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점점 짧아지고 불의의 사고와 천재지변에 의한 죽음이 많아지는 시대를 말합니다.

수시로 일어나는 대형 교통사고와 비행기 사고 천재지변들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오탁악세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다섯가지의 혼탁한 세상이 되는 원인과 결과는 이 모두가 우리의 잘못된 마음과 업력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알려고 하고 배우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불자들이라면 이 모든 오탁악세의 고통과 번뇌가 다름 아닌 중생들 각자 자신들의 그릇된 행위와 마음의 업 때문에 벌어지는 업력에 불과하다는 것을 깊이 반성하여, 스스로 이 오탁악세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가까운 가족들부터라도 오탁악세를 벗어나는 인연을 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증일아함경 제25권 오왕품(五王品)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 고독원에 계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APEC회담을 치르는 노무현대통령처럼 파세나디 왕을 비롯한 다섯 나라의 국왕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그 때 한 왕이 말하기를 “여래께서 는 눈으로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으며,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는 것에 대해 ‘다섯 가지 욕망(五欲)’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같은 다섯 가지 욕망을 사랑하고 서로 갖고 싶어하고 이루고 싶어하며, 동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바라고 원합니다. 그렇다면 이 다섯 가지 욕망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즐거운 것일까요?”하고 다른 왕들에게 물었습니다.


서로 갑론을박을 하던 왕들은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찾지 못하자 가까운 곳에 계시는 부처님을 찾아가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제왕들의 주장은 때에 따라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왜냐 하면 대개 사람의 성행(性行)이 빛깔에 깊이 집착하면, 아무리 그것을 보아도 싫증을 내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빛깔이 가장 묘하고 가장 즐거운 것이므로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습니다.


빛깔에 집착할 때, 그는 소리나 냄새나 맛과 감촉에는 집착하지 않으므로 다섯 가지 즐거움 중에서 빛깔이 가장 즐겁다고 말할 것입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각자가 자기 입맛에 맞고 자기의 기호에 따라 평가를 내리게 되듯이 감각적 욕망에 대해서는 성적 욕망이 가장 무섭다거나, 식욕이 가장 무섭다는 식으로 대부분 자기 견해만으로 차별적 대상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생각들마저도 세월에 따라 무상하게 변하고 바꿔져가는 것일 뿐이기에, 증일아함경 25권 오왕품(五王品)에 나오는 이상의 내용에 관해서 부처님께서는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은 평등하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감이라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에 대해 어떤 것이건 탐착하게 되면 그것이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적인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감촉의 욕망이 가장 무서운 것이며, 식욕에 탐착하는 사람에게는 음식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갖가지 욕망의 대상은 대상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것에 탐착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은 ‘감각적 욕망은 물질을 탐착하는 행동을 통해 해소될 수 있는가’입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욕구가 왕성할 때는 기어코 욕망을 이루고자 하며, 그것을 체험하고 성취한 뒤에는 더욱 즐거움에 빠져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의심이 없다. 그는 욕망을 이루지만 탐하는 마음을 해소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경계(境界)를 탐착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아 그것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고 덧붙이십니다.


욕구를 충족하고 난 후,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욕구를 충족하고자 끄달려 가는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감각기관의 욕망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빛깔과 모양을 보고, 그 욕망의 대상을 소유한다고 해서 욕망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감각적 욕망의 실현은 이 같은 욕망을 더욱 부추겨서 끝없이 대상을 향해 질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욕망이 물질을 통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면 대상을 향한 욕구 충족을 위한 인간의 질주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욕망하는 것은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결핍이므로 우리가 다스려야 할 것은 그 같은 근원인 내면적 결핍을 해소하는 것일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대상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빛깔에는 빛깔의 맛이 있고, 빛깔로 인한 과실(過失)이 있고, 빛깔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빛깔의 맛에 탐착하고 빛깔의 허물에 속박 당합니다. 그러나 빛깔에는 유혹하는 맛과 허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깔에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감각적 욕망을 따라 경계에 이끌려 다니면 빛깔은 중생을 속박하는 허물이 되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따라 갖가지 경계로부터 벗어날 때, 그 길은 열반의 저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섯 가지 감각적 욕구로부터 초연해 질 때, 우리는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열반을 체험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 경전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바새경의 “업품”에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중생은 괴로운 인연 때문에 신심을 내게 되고 이미 신심을 얻으면 능히 선과 악을 관찰하게 된다.

이것은 지금 우리의 세상이 혼미하고 탁할지라도 우리가 세상을 정화하고 맑게 하려는 의지로 수행하면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부처고 예수고 다 거추장스럽고 제 잘난 맛에 살아 가는게 대부분의 중생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 일요법회에 참석하여 그동안 알게 모르게 뿌린 신구의 삼업의 씨앗들을 정화하고 맑혀 남은 삶일지라도 밝고 긍정적인 든든한 의업을 지어 일상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오탁악세를 지혜롭게 잘살아가는 방법은 다름이 아니라 다섯 가지 감각적 욕구로부터 초연해 질 때, 우리는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열반을 체험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 경전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번 피납사태의 주역인 분당의 샘물교회 담임목사인 박은조 목사님의 자기만이 옳다는, 자신의 견해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착각하는 생각이 바로 견탁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견탁으로 인해 인질들과 그동안 온 나라가 번뇌탁과 중생탁과 명탁이 고리를 이은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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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님(이홍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