梵水스님 의 업, 윤회,등 개념 정리

2009. 12. 14. 21:0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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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윤회,등 개념 정리-
반딧불
-梵水스님-


서론

불교에서는 이 세계를 우리들의 업력(業力)에 의해 끊임 없이 윤회하는 고난(苦難)의 세계라고 간주하여 이것에서 벗어나는 해탈법(解脫法)을 가르친다. 그러면 고통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윤회전생(輪廻轉生)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데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상황과 순차적인 문제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자아(自我)라고 하더라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자아 즉 자아의식으로부터 온갖 업(業)을 지어 고통의 세계에 윤회전생하게 되는데, 여래(如來)께서는 일찍이 무아(無我)에 의한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세계로 나아가는 해탈도(解脫道)를 보여 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먼저 자아(自我)와 무아(無我)에 대하여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 소고에서는 우선 자아의식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업(業)과 이런 업력(業力)에 의해 육도(六道)에 전생(轉生) 하는 윤회(輪廻)의 개념과, 업과 윤회를 벗어난 해탈(解脫) 열반(涅槃)의 개념만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교리(佛敎敎理)는 너무나 잘 짜여져 있기 때문에 그물에 비유하여 교망(敎網)이라고도 하는데, 업과 윤회는 필연적으로 해탈과 열반의 문제로 나아가게 된다.

 

그것은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소고에서는 필자가 관견(管見)이라 업과 윤회, 해탈과 열반에 대하여 개념(槪念) 정리 차원에서 사전적(辭典的)인 의미와 간단한 관계만을 밝히고자 한다.

1 업

업은 범어 Karma의 번역으로서 갈마( 磨)라고 음역한다. 업에는 업의 체성(體性), 업의 작용(作用), 업의 종류(種類) 등 분류가 많지만,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개념 정도만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업은 행위(行爲), 조작(造作), 작용(作用), 소작(所作) 등을 뜻하는데, 인과(因果)의 법칙은 어김 없기 때문에, 모든 업은 과보(果報)를 낳게 되며,

선업(善業)에는 낙과(樂果)가, 악업에는 고과(苦果)가 따르는 이치를 밝히는 것이 업 사상의 구조이다. 이와 같이 조작, 행위, 소작, 의지에 의한 심신(心身)의 활동 내지는, 생활을 의미하는 업에 대하여 중요한 것 몇 가지를 불교사전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1) 삼업(三業)
업을 세 가지로 나눈 것으로써 그 내용은 분류 기준에 따라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다.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과, 입, 즉 말로써 짓는 구업(口業)과, 뜻, 즉 생각으로써 짓는 의업(意業) 등 세 가지의 업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그 가운데 의업을 제일 중요시한다. 의지가 있어야 업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2) 사업(思業) 사이업(思已業)
업을 의지의 활동인 사업(思業)과 사업이 끝나고 나서 행하는 사이업(思已業)으로 나누는 경우, 사업은 의업에 해당하고, 사이업은 신, 구 이업에 해당한다.

3) 표업(表業) 무표업(無表業)

표업(表業)이란 밖으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으로 마치 신체적 행동이나 언어적 표현들이고 무표업(無表業)은 타인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으로 마치 정성이나 공과 같은 것이다.

4) 업인(業因) 업과(業果)
업이 원인(原因)으로 작용할 때는 업과(業果)를 받게 되는데, 선, 악업에 상응하는 고락의 갚음을 받는다. 만약 업이 현재에 있을 때는 이것이 원인이 되어 미래에 어떤 과보를 받을 것인가가 결정되는데 이를 취과(取果)라 하고, 업이 지나감으로부터 결과에 영향을 미치어 결과를 현재에 나타나게 하는데 이를 여과(與果)라 한다.

5) 인업(引業) 만업(滿業)
인간계라든가 축생계등에 태어나게 하는 인업(引業)과 인간계등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 개개의 구별을 주어 개체를 완성시키는 것을 만업(滿業)이라고 한다. 인업의 갚음을 총보(總報)라 하고, 만업(滿業)의 갚음을 별보(別報)라고 하여, 이 이업(二業)을 총별이업(總別二業)이라고 한다.

6) 공업(共業) 불공업(不共業)
업에는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같은, 많은 생물에 공통되는 과보를 일으키는 공업(共業)과, 개개의 신체와 같은, 고유한 과보를 이끄는 불공업(不共業)이 있다.

7) 삼성업(三性業)
선심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악심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과, 선악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8) 정업(定業) 불정업(不定業)
업은 그 갚음을 받는 시기가 각각 다른데, 이 세상에서 지은 업을 기준으로 해서, 이 세상에서 바로 받는 것을 순현업(順現業), 다음 태어날 세상에서 받는 것을 순생업(順生業), 제 3생 이후에 받는 것을 순후업(順後業)으로 하여 삼시업(三時業)의 구분이 있다. 이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불정업(不定業)을 더하여 사업(四業)이라고 한다.

9) 업도(業道)
업이 작용할 곳, 또는 의지할 곳이 되며, 유정(有情)을 고락의 과보(갚음)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업도(業道)라 하는데, 여기에 십선업도(十善業道)와 십악업도(十惡業道)가 있다. 이외에도 업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에서 업의 주체에 대한 이론(異論)이 있었다.

삼업(三業)의 작용 즉 본체에 대한 문제에서 사업과 사이업에서 사업만 의업(意業=의지)이고 신, 구업은 색법(色法)이라 한데 대하여 대승에서는 모두 사(思=의지)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인과법을 설명하는데 이와 같은 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업은 업과를 초래하는데 이를 업력(業力)이라 한다. 그리고 악업(惡業) 때문에 생기는 장애(障碍) 또는 장해(障害)를 업장(業障)이라 하며, 숙업(宿業)에 의하여 벗어버릴 수 없는 중한 병을 업병(業病)이라고도 한다.

이상 위에서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차별의 세계에 태어나며, 생을 받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자신의 운명은 자신에 의해서 창조되어지는 것으로서 그 사이에는 어떤 신과 같은 존재는 없다. 또한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자신이 돌려 받게 되는데 이를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한다.

2 윤회(輪廻)

윤회는 범어 samsara의 번역으로써 승사락(僧娑洛)이라 음역하고, 윤회(淪廻)라고도 쓴다. 또 생사(生死)라고 번역하고 생사윤회(生死輪廻), 윤회전생(輪廻轉生)이라고도 하는데 마치 수레바퀴가 굴러서 끝이 없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따라서 삼계육도(三界六道) 생사의 세계를 거듭하면서 돌고 돌아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업력(業力)에 의해 윤회하는 세계에는 육도(六道)가 있으며, 태어나는 형태로써는 사생, 그리고 생존의 형태로써 사유가 있다.

① 육도(六道)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天)의 육도(六道)로써 유정이 업력에 이끌려 생사윤회하는 세계이다.

② 사생(四生)
유정이 자신의 업력에 따라 태어나는 형태로서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의 사생(四生)이 있다.

③ 사유(四有)
유정이 태어나는 순간을 생유(生有), 그로부터 죽음까지의 사이를 본유(本有), 죽음의 순간을 사유(死有), 사유로부터 다음 생유까지를 중유(中有)라고 한다. 6도 가운데 어느 세계에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인 총체적인 업(業)에 의하는 것으로서, 선업에 의하여 선의 세계에, 악업에 의하여 악의 세계에 태어나는 것이다.

3 해탈(解脫)

해탈(解脫) 범어 vimoksa 로써 毘木叉 ·毘目叉라 음역하며, 또 vimukti 毘木底라 음역하기도 한다. 해탈은 풀려오다. 또는 번뇌에 묶인 것에서 풀려, 미혹의 고(苦)로부터 풀려 나오는 의미이며, 혹은 미혹의 세계를 넘는다는 뜻으로 도탈(度脫)이라고도 한다.

해탈은 원래 열반과 같이 실천도의 구극(究極) 경지(境地)를 나타내는 말 이였다. 그리고 해탈의 경지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으므로 일미(一味)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해탈의 의미는 교리의 발전으로 인해 후세에 와서는 여러 가지로 분류되어 고찰하게 되어졌는데, 불교사전에서 소개된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위해탈(有爲解脫): 완전히 요달하여 인정하는 마음 작용, 곧 승해(勝解).
무위해탈(無爲解脫): 열반.
성정해탈(性淨解脫): 중생 본래의 모습으로 번뇌의 오염에서 벗어난 청정한 것.
장진해탈(障盡解脫): 번뇌 때문에 오염되어 있어 번뇌를 끊고 해탈할 수 있는 것.
심해탈(心解脫): 마음에 탐애(貪愛)를 없애는 것.
혜해탈(慧解脫): 지혜에 의하여 무명 즉 무지에 벗어나는 것.
혜해탈(慧解脫): 아라한이나 아직도 멸진정(滅盡定)이 아닌 것.
구해탈(俱解脫): 아라한이 멸진정(滅盡定)을 얻는 것.

이외에도 시해탈(時解脫), 불시해탈(不時解脫), 의 이 해탈(二解脫)과 번뇌해탈(煩惱解脫), 사견해탈(邪見解脫) 등의 십 해탈(十解脫)등이 있는데, 이 모두는 인간의 근본적 아집(我執)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종교와 인생의 궁극 목적으로 해탈을 생각하였다. 즉 범부는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의 번뇌 또는 과거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이로부터의 해방이 곧 구원(해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구원은 타율적으로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혜, 즉 반야(般若)를 증득(證得)함으로써 스스로 이루는 것이라고 하는 데 특징이 있다. 결국 번뇌의 속박을 떠나 삼계(三界: 欲界, 色界, 無色界)를 탈각(脫却)하여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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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건풍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