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신앙을 주는 염불과 서원

2009. 12. 18. 20:0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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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살을 산다한들 헤매면 무엇하리 깨달아 살아가는 하루만 못한것을....-법구경-

2008년 11월 광현스님 법문 

반갑습니다. 

이제 11월도 셋째 주에 접어들고 날씨도 초겨울 날씨답습니다.


날은 추운데 대선정국은 점점 뜨거워지지만, 누가 당선되든 말든 국민들 사는데 세금 좀 내려주고, 물가 좀 안정을 시켜주면 좋겠는데, 이 명박 씨는 비리공화국을 만들어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할 것이고, 정 동영 씨는 세금 공화국을 만든 정권의 연장이 계속될 것만 같고, 이회창씨 또한 앞뒤가 틀려져있으니 민초들의 앞날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지난 16일에 마부노호 선원들이 납치억류에서 풀려나 인천공항에 도착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국민들 덕분에 풀려나게 됐다고 땅바닥에 대고 국민들을 향해 큰 절을 올렸습니다.

이것이 사람으로서 도리인 것입니다.


마부노호 선원들은 선교도 거짓봉사도 아닌 생업에 종사하다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납치됐지만 마치 죄지은 사람들처럼 죄스러운 모습으로 나라 땅을 밟았고, 아프칸의 인질들은 선교와 봉사라는 깃발을 치켜들고 종교탄압이라고 일 저지르더니 비싼 세금으로 풀려나서도 하나님 일을 했다고 떳떳하다고 고개 숙이지 말라던 인두껍들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오후, 갑작스레 방문하신 처사님의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해드리다가 이번 법문에 이 질문을 주제로 삼아 꼭 우리 불자들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작년 여름부터 두 부부가 더위도 마다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절을 하고 온갖 기도문을 지극하게 하시던 분들인지라 내심 장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였는데, 차 한 잔 대접하면서 듣게 된 질문에 이거 큰일이다! 싶어 질문을 주제로 이런 말씀을 법문에 해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처사님의 질문인 즉, 집안에 불상이나 불화(탱화)를 모시고 기도를 하고 싶은데 어떤 사람이 말하길, 그리되면 집에 모셔둔 불상들 잡귀가 들러붙어 도리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정말이냐? 고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여러분들도 그러한 말들은 어디선가 들으셨던 기억들이 날 것입니다.

이름난 기도처나 큰절에 가거나, 절에 좀 다녔고 아는 소리께나 하시는 보살님들이 집에서는 지장기도는 하면 안된다는 둥, 신중기도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둥, 이런 말들을 자랑스럽게 내뱉는 경우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일과 그의 수난과 죽음이 가져다주었다는 구원의 은총과 그리스도교도의 신앙을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물이듯, 서양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대문 앞에 붙여두고 심지어 안방에도 걸어둡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에도 잡귀가 들러붙어야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태어나서 자란 집안도 4대가 천주교 집안인지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속죄하신다고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채, 매달린 형상을 방안에서 쉽게 보고 자랐습니다만, 서양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그런 형상들을 걸어두면서도 피한방울 안 흘리시고 여법하게 계시는 남의 종교의 불상은 우상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웃기는 중생심에 불과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마음 법문으로 그런 예수님의 십자가상을 바라보게 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마음이 일체를 만들어내는 요술단지이듯,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명의 이기들도 다 이 한마음이 동해서 생각으로 나타나 지금의 문화와 문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중생은 마음 안에 팔만사천 가지의 고를 가지고 있기에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가지의 고와 번뇌에 답을 해주다보니 팔만장경이 존재하게 됐듯, 팔만사천가지의 고와 번뇌도 다 이 마음이 삐딱하게 동해서 만든 원인이요 결과인 것이며, 여기에 해결책을 제시하신 부처님의 팔만사천“지혜답”도 다 불심에서 나왔듯, 결국 이 한마음 안에 문제와 답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어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카필라성의 모든 왕족과 백성들을 불교에 귀의시켰으나 당신을 출산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붓다를 이루기 전에 돌아가셨는지라 제도할 길이 없어 천안으로 마야부인영혼이 가신 곳을 살피다 보니 도리천에 계신지라 어머니를 제도시켜드리고자 보신으로 화현하시어 욕계 6천의 두 번째인 도리천에 올라가 계시는 동안 매일 아침 부처님을 뵙고 담소를 나누며 가르침을 받던 우전국왕이 부처님을 뵙지 못하는 아쉬움이 지나쳐 병으로 몸져눕게 되자, 그 나라의 가장 유능한 조각가를 불러 부처님과 똑같은 형상을 만들라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왕의 병은 더욱 깊어져 갔고 이때, 도리천에서 욕계를 살피시던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제석천을 시켜 조각가로 내려가 전단향 나무로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해주자 왕은 그리움이 사무친 상사병이 다 나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도리천에서 석 달 동안 마야부인에게 천상의 경이자 윤회를 벗어나는 효도의 경인 지장보살 본원경을 설해드리고 보계를 타고 욕계에 내려오시는데 이때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했던 불상이 하늘로 치솟아 욕계로 내려오는 부처님께로 다가가 합쳐지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부러 중생의 몸으로 태어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중생인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자 마야부인의 태중을 빌어 오셨던 것이고, 생사육신의 유한함을 그대로 나타내셔야 함에 따라 도리천의 3천년, 인간세계의 56억 7천만년이 지나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의 “무불시대”를 걱정하시고 불멸 후, 무불시대엔 이와 같이 나의 형상을 조성하여 의지하라는 유훈에 따라 부처님상은 조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부처님 상을 집에 모셔두면 귀신이 붙는다는 둥, 한다면 이것은 입으로 짓는 악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형상을 조성하는 조각가를 불교에서는 불모(佛母)라 부릅니다만, 이런 불모가 부처님의 상을 조성해두기만 했다면 이것은 종교적인 성물이나 조각품, 예술품에 불과할 것입니다만, 그 불상의 내부에 사람의 오장육부와 같은 복장물이 모셔지고, 점안의식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부처님께서 남기신 유훈에 따라 무불시대를 지켜주는 부처님을 대신하는 부처님의 성상인 것입니다.


이런 성상에 어찌 삿된 기운이 침범한다는 삿된 악구에 놀아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불자들이 이젠 좀 깨어야 합니다. 제대로 알고 알려고 들어야 하고 알았으면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전왕처럼 집에서 부처님 상을 모시고 싶다면 얼마든지 모시십시오.

절대로 그런 삿된 이들의 악구에 휘둘리지 마십시오.

다만, 무불시대에 부처님을 대신해주는 부처님의 성상을 집안에 모셔두겠다면 마음자세부터 달라져야 하고 일상의 생활이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성상을 모셔둔 집안에서 음주가무에 불고기에 복날이라고 삼계탕에 갈비찜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댄다면 이것은 부처님을 모욕하는 것밖엔 되질 않을 것입니다.

또, 부처님의 성상을 모셔두고 부부싸움을 한다든가 이웃이나 형제간의 험담을 한다든가 온갖 중생의 모습을 그 앞에서 해댄다면 이 또한 모시지 않음만도 못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더구나, 중생의 욕심에 점안까지 해서 모셔두고 싶어 하는 마음에 점안까지 해서 부처님의 성상을 모시게 된다면 그 얼마나 정성이 깃들어야 하겠습니까?

작은 방에 기도실이라도 꾸며서 가족들 마다 집 밖을 나설 때나, 명절에 큰일이 있을 때나 각자가 마음에 힘든 일들이 있을 때, 부처님이 모셔진 방에 들어가 삼배라도 하고 집을 나선다면 어쩐지 든든할 것이고, 또 자식들에게 줄 용돈도 그냥주질 말고 집에 모셔진 부처님의 성상에 공양을 올리고 발원을 하십시오.

“이 공양물을 제 자식이 거두어 보람된 곳에 쓰이도록 해주십시오.” 하는 발원을 하고 자녀들은 역시나 절을 올리고 그 용돈을 가지고 나간다고 해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교육인 것입니다.

적어도 종교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지혜가 넘쳐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종교요, 신앙인 것입니다.

불법은 바로 이렇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법”을 창고에 처박아두고 써먹을 줄을 몰라서 문제인 것입니다.


또, 관광지에서 사온 불상을 집에 모셔두자니 껄끄럽고 점안을 하자니 부담스럽다면 이런 방법도 있는 것입니다.

제 어릴 적, 기억으로는 천주교는 묵주를 사거나 십자가를 사게 되면 신부님에게 가지고가 소위 “방사”라는 것을 하게 됩니다.

신부님은 성물을 두 손에 들고 약간의 기도문을 하신 뒤, 성물 위에 한 손으로 십자가를 긋고 돌려주게 됩니다.

그러면 어쩐지 믿음직스러워진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탱화나 성상을 모셔두고 싶으시다면 가져오십시오.

굳이 점안이라는 거창한 의식을 하지 않고도 제가 광명진언과 다라니를 관해 염불해드리고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집안에 어른이 없는 덩치 큰 올챙이들이나 우물 안의 개구리들끼리 모여 사는 가정마다 집안에 부처님의 성상을 모셔두고 산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고려불교를 지나서 유교가 이 땅을 지배하게 되면서 지배계급으로 서야하는데 “불법은 사성평등사상”이라 귀천이 없는 가르침이었으니 불교사상을 백성들에게서 배척시켜야 했기에, 교묘하게도 집안에 불상이 있으면 귀신 붙는다더라, 애 못 낳는 여자가 석불의 코를 떼어다가 갈아서 미역국에 넣어 먹으면 잉태한다더라 하는 말로 일반 민중들

에게 불교를 배척시키다 보니 그 당시에 불교가 지금의 기독교처럼 집집마다 불상을 모셔두고 있었고 한집 건너 사찰이었던 불교가 민중에게서 멀어져가게 됐던 것입니다.


경주 남산엘 가보시면 지금도 콧등이 날아가 석불들이 많습니다.

아시겠지요? 이제 제대로 아시고 신행생활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또다시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염불참회수행을 생활화하자는 것입니다.

염불을 하게 되면 어딜 나가든지 항상 든든한 마음으로 누군가가 지켜주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이 안정되어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과거생의 악연도 인과도 두려울 것이 없어지게 되고 과거생 만이 아니라 금생에 지은 죄업도 능히 참회시킬 수 있고 소멸할 수 있다고 전번에 말씀드렸듯이, 이 오탁악세의 무불시대에 법당에서 “법당불”을 친견하고 염불을 통하여 자신의 본성이 부처임을 믿고 자기 마음 가운데서 “자성불”을 찾는 것입니다.


각자가 이 “자성불”을 찾아내서 돌고도는 윤회의 천상(天上)에 나기를 바라기보다 정토(淨土)에 왕생하여 윤회로부터 해탈하고 부처를 이루기를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난득이요, 불법은 난봉이라 하지만 우리가 불자가 됐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완성을 위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러한 완성의 지름길이 염불수행인 것이고, 염불수행을 통해 자성불의 광명이 빛을 발하게 되면 아무리 두터운 무명업장도 무너져 내리고 앞길에 장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번 법회 때, 이렇게 좋은 염불을 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말씀드렸듯이, 염불수행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했지요?


세 가지 신(信), 원(願), 행(行) 3자량(自量)이라 하는데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실존을 믿는 믿음과, 그곳에 가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실천으로 염불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기도를 하실 때는 먼저 발원과 서원을 하십시오.

발원이란 여러분들이 천수경을 하실 때 “여래십대발원”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적인 발원인 것입니다.

또, 천수경 안에 “발 사홍서원”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절에만 가면 죽어라 하고 중생들의 소원과 같은 발원만 해대지 정작 서원은 없단 말입니다.

이것도 해주십시오, 이것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발원들만 하지, 정작 부처님을 위하고 자신의 업장소멸을 위해서 행해야 할 서원들은 없단 말입니다.

절은 소원을 들어주는 곳만이 아니라 중생들의 업장을 녹여주고 소멸시켜주는 곳이란 말입니다.


서원을 사홍서원처럼 크게 생각하고 부담스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래께서는 중생들이 헤아릴 수 없는 일체중생들을 위한 마하의 발원을 하시지만, 우리 중생들의 발원은 그저 가족들의 안녕과 화목과 행복일 것입니다.


허나, 이런 모든 발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서원을 한가지씩은 실천해야합니다.


서원이라 해서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 안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람에게 생겨나는 미운 마음을 갖지 않겠다는 것이 서원인 것이며, 내 주변의 가족들에게 올바른 불법을 몸소 실천에 옮겨 보여주겠다는 것들이 서원인 것입니다.


작은 서원이라도 세워 실천해 갈 때, 우리 안에서 불법은 살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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