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복력을 바꿔주는 참다운 보시행

2009. 12. 21. 23: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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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새 사람을 구할 때 까지는 기다려준다든지 하는 한번쯤 생각해보는 처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일건데,  그만두고 나가겠다고 하고선 가버린 후원보살로 인해 후원이 참 걱정입니다.

 

다가오는 4차 백일기도 봉행도 그렇고, 제가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야 이리저리 하면 되겠지만, 사시기도에 부처님 마지를 生米 만으로 올릴 수도 없고 걱정입니다.

아마도, 후원보살이 우리절 신도들에게 보현행원을 할 기회를 주노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법문은 보시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저, 보시라하면 한문으로는 베 布字에 베풀 施字를 쓰는데 읽기는 보시로 읽습니다.

 

하지만, 베 (布)포자는 돈, 화폐 布字도 되고 넓게 깐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베풀 施字도 베풀다, 퍼지다, 널리 전하여지다, 행한다는 뜻이 있으니 보시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넓게 베풀고 전하고 깔아놓는다는 뜻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예전에 노스님께 듣기로 보시는 나눌 分字를 써서 分施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 속담에 콩 한쪽도 열사람이 나눠먹는다는 말이 그런 의미였나 봅니다.

사실, 베푼다는 것은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내포되어있다고 하겠지만, 나눈다는 것은 수평관계 평등관계를 뜻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아니 부처님께서는 이 보시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보시의 종류로는 3시라 해서 財施法施無畏施라고 하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財施란, 재물로써 널리 베푼다는 의미이고, 法施란 오늘 일요법회처럼 인연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들려주어 악업을 깨닫게 해주고 선근을 갖도록 해주며 그 선근이 자라나도록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無畏施란 무엇인가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화하여 평소 생활에 남에게 불편함과 불안함을 주지 않고 마음에 두려움과 번뇌와 공포 따위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재물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남에게 편안함을 주는 업을 길러 인연중생을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해주는 것이기에 보시바라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시와 무외시는 행하기 어렵다고들 하면서 여덟 가지의 재시로 인과관계를 이어가고들 있습니다.

 

그래서 八施라고도하고, 八種施라고도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수지시(隨至施)라 해서, 나와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하고만 재물이든 마음이든 서로 베풀고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포외시(怖畏施)라, 재물이 없어지거나 못쓰게 될 것이 걱정되고 염려해서 차라리 보시나 하자는 생각으로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의 보은시(報恩施)란, 예전에 보시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되돌려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네 번째의 구보시(求報施)란, 지금 저 사람에게 보시하고서 나중엔 더 많은 것이 올 것을 계산하고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의 습선시(習先施)란, 남을 도와주기 좋아하는 집안에서 보고 배운 때문에 별다른 의미 없이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여섯 번째의 희천시(希天施)란, 하늘에 태어나기를 바라고 천국에 가기 위해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일곱 번째의 요명시(要名施)란, 자신이 하는 행위가 주변에 널리 퍼지고 이름이 나기를 바라는 속내로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 번째의 위장엄심등시(爲莊嚴心等施)라고해서, 자신의 마음을 정갈히 하고 장엄하게 하여 아끼는 마음을 없애고 정심(定心)을 길러 열반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생활을 하던 안하던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행을 하면서도 이러한 잠재의식이 깔려진 상황에서 자신의 선행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방등부(方等部)경전에 속하는 큰 법의 보배를 쌓아 두었다는 뜻의 대보적경(大寶積經)은 중국 당나라 때 보리유지(菩提流支)가 많은 대승경전을 집성한 일종의 혼합경으로 49회 77품으로 구성되고 각 회는 각각 별개의 성격을 띤 다른 경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구하는 불퇴전의 법력에 대한 설법이 있는가 하면 초기 경전의 중심사상인 삼법인, 12인연이 설해지고 무량수불의 인위(因位)에 대한 설명과 48원으로 극락세계를 장엄하는 대소승의 법문들이 혼재되어 있는 경입니다만, 대보적경의 12회의 “대승보살장정법경”을 보게 되면 육바라밀의 청정한 보시행에 대해서 열 가지의 보시방법이 나옵니다.

 

잘 들어보시고 법당에 오셔서 부처님 전에 공양물을 올리시거나 집에 가셔서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참다운 신앙인이라면 일상생활에서 실천이 되어야 하고 가족들에게는 분위기만으로도 감화를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행생활을 하시는 삶과 가정 자체가 바로 주처정토인 것입니다.

 

그럼, “대승보살장정법경”에 나오는 육바라밀의 청정한 보시행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업보의 도리에 맞는 보시를 행하라. (형편에 맞는 보시)

두 번째, 삿된 생각을 가지지 말고 보시를 행하라.(팔종시)

세 번째, 신심과 해행(解行)에 입각해서 보시를 행하라.

네 번째, 해태심을 가지는 일이 없이 보시를 행하라.

다섯 번째, 상을 내지 않고 보시를 행하라.

여섯 번째, 항상 용기와 바라밀에 대한 의욕에 차서 보시를 행하라.

일곱 번째, 도중에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보시를 행하라.

여덟 번째, 계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만 편협하게 치우치는 일이 없이 보시를 행하라.

아홉 번째, 계를 벗한 사람에게도 경멸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자비롭게 보시를 행하라.

열 번째, 과보를 바라지 말고 보시를 행하라.

이렇게 열 가지 청정보시를 행하는 것이라고 설합니다.

 

남에게 베푸는 데도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업감연기의 법이 그대로 고리를 물고 이어져 오듯 일체의 만상은 사, 중, 생, 본유라는 4유에 의해 과거 전생의 업력과 인연에 의해 지금 우리의 만남은 고리처럼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겐 자기가 더없이 소중하듯이, 남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그 남도 자기를 소중하게여기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참법에도 내가 큰 몸집의 중생이었을 때, 나보다 못한 작은 것의 생명을 먹이로 삼았던 죄를 참회하는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십악을 짓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선행입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것을 살리고, 두려움과 공포에 떠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분실된 물건을 주인을 찾아 돌려주고 하는 것은 바로 적극적인 선행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보시의 당위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게 넘침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넘치는 것은 남과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적극적인 선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꼭 재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라, 재물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예전에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 해도 나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대육신 멀쩡하고 아직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 만으로도 복 지을 기회는 많고도 많은 것입니다.

 

다만, 자신이 모르고 알려고 들지 않고 무지했기에 다겁생을 돌고 돌며 지금 살아가는 바를 스스로 보고 느끼며 살아가십시다.

이렇게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신앙을 가진 불자로서 지혜롭고 올바른 삶의 철학들이 살아서 숨쉬고 생활화 될 때, 자신이 소속되어진 집단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도 변화되는 자신의 삶을 자신있게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다투지 않고 사는 법.


어느 날 해와 달이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해가 말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달이 말했다. "아니야, 나뭇잎은 은색이야."

달이 또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잠만 자더라."

그러자 해가 반박했다.

"아니야,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여."

달이 말했다. "그럼 왜 땅이 그리 조용해?"

해가 다시 말했다.

"내가 보기엔 언제나 시끄럽던데 뭐가 조용해?"

 

그때 바람이 나타나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하늘에 달이 떠 있을 때나

해가 떠 있을 때나 세상을 다녀봐서 잘 알아

해가 세상을 비추는 낮에는

해가 말한 대로 세상은 시끄럽고,

사람들도 모두 움직이고,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그러나 달이 세상을 비추는 밤이 오면

온 땅이 고요해지며 사람들은 잠을 자고,

나뭇잎은 은색으로 보인단다."

   

 

 

우린 간혹 친구와 충돌할 때가 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말다툼으로 시작해

크게 번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싸움의 원인은

의외로 아주 사소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기에 각자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는데도

그것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우선으로 하고

상대의 말을 무시하기 때문에

마음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해와 달이 본 세상이

둘 다 틀리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각자의 의견은 틀린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존중해 주고

수용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싸움은 커지고 만다.


당신의 이야기는 틀리지 않다.

당신의 의견이 옳다.

그러나 다른 친구의 생각도 옳은 것이다.

서로 한 발짝만 물러선다면,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분쟁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 행복한 동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