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기도입재 법문

2009. 12. 22. 21:36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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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親蘇 의 망령이 언제나 잦아들까 걱정에 밤잠 이루지 못하는 중생들의 번뇌가 시방삼세에 가득합니다. 이 모진 고초의 원인이 어디있을까요?

 

세속의 환경이  부처님 전법에 장애가 되는 이 시점에  불교인들의 자주적인 합심이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  기도하고 봉사하고 함께할 수 있는 불교인으로 거듭나기를 발원하면서 한 여름 장마철이지만 우리절 기도 도량의 정진은 계속됩니다.

오늘은 5차 백일기도 입제일이기 때문에 기도입제에 대한 법문을 해드릴까 합니다.

 

우리는 그나마 다행스럽게 축생이나 미물의 몸이 아닌 사람중생으로 태어나긴 했지만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약육강식이요 적자생존이라는 먹이사슬 구조에서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중생계도 역시나 업보 중생인지라 재물이든 권력이든 기업이든 개인이던 간에 가진 것이 있고 없음에 따라서 약육강식의 업보중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일 것입니다.

 

며칠 전에 거사님들 세 분과 자리를 함께하면서 나온 질문이 “스님 사람에게 진짜 운명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예! 있습니다.”였고 그 다음 질문이 “살아가는데 운명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 것입니까?” 하기에 제가 말하길 “살아가는데 운명은 80%밖에 안 되고 나머지 20%는 인연입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중생이 다겁생을 살아 오가면서 알게 모르게 이익을 취하고 자기 목숨을 연명하고자 나보다 작은 것들의 생명을 업으로 취하고 살았으니 그 인과가 모여 지금 이 순간까지 각자가 살아가는바 삶의 질과 인생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성공과 실패의 온갖 질곡으로 희노애락, 우비고뇌가 벌어지는 현실일 것입니다.

 

중생은 자신의 사업이든 가정의 대소사이던 잘나갈 때는 그리 큰 근심걱정 없기에 교만하지는 않더라도 기도에 별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게 중생심이지만, 만약, 한 가족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다거나 불치의 병으로 판명이 날 경우, 완치가 힘들다는 의사의 판명이 나온다면 가족은 물론이고 당사자 또한 눈앞이 깜깜해지면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순간부터 인간의 의지는 한계를 느끼며 나약하고 약해지는지라 자기가 평소 가까이 했던 종교에 매달리며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크리스챤은 천주님에게, 불자들은 사찰에서 불보살님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고자 간절하게 기도하고 매달리게 되며 종교가 없던 사람도 종교를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이루지 못할 상황에서는 그 어떤 초월적인 대상을 향해 간절히 갈구함으로써 그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우리 중생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어떤 어려움에 빠졌을 때, 불자들은 불보살님을 향해서 지극하고 간절한 기도를 절절한 마음으로 행함으로써 기적과 같은 가피를 입어 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다른 종교인들은 소위 은혜를 받았다고 자신의 기도체험을 주변에게 알려 함께 해보자고 간증하러 다니기 바쁘지만, 우리 불자들은 워낙에 점잖으신지라 불보살님들의 대자대비하신 기도가피를 체험하고도 부처님처럼 눈 딱 내리감고 나만 알면 돼! 하는 식으로 기도가피력을 널리 알려 신심을 북돋아 주는데 인색하기만 합니다.

 

중생은 업보로 살아가는 업보중생인지라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되질 못하고 평상심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기도라도 해서 어찌 해볼까? 하는 생각을 일으키더란 말입니다.

잘나갈 때는 별로 신심도 없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다급한 상황에 처할 경우에 매달리게 되는게 대부분 중생심일 것입니다.

 

어제 오후에 두 부부가 오셨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은 사업이 아주 절박하고 힘든 시기가 너무 오래간다고 하면서도 정작 기도는 얼마나 해보셨냐는 제 질문에 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너무 빠지게 될까봐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데요.

 

기도 정진은 어느 종교에서나 가장 신성한 종교의례 입니다.

물론 이성적인 신앙생활이 아닌 지나친 믿음으로 가정도 팽개치고 오로지 하나에 빠져들면 눈먼 맹신에서 미친 광신에까지 이르고 소망이 지나치면 기복에 빠져들게 되고 사랑이 지나치면 자기들끼리만의 집단적 에고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잘못된 신앙인 것이고 또 기도라는 신비주의에 빠져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새 옷을 사 입고 즐겨 입다가 유행지나고 계절지나 보푸러기 일어나 허접해지면 새 옷일 때 애지중지하던 맘은 간곳없이 미련 없이 버려 버리듯, 유한한 생을 예정하고 있는 이 몸뚱어리를 위해서는 지극정성 온갖 시봉을 다해 좋다는 비싼 수입화장품에 온갖 명품 옷으로 휘두르면서도 정작 이 몸뚱어리의 주인인 내 마음이 주인공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이 주인공을 위해서는 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란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진정한 나, 거울에 비친 이 모습의 내가 아니라 자성이 청정한 주인공을 씻어 주고 닦아주고 꾸며주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를 함으로써 안 되는 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지지리도 공부 못하는 자식이 일류대에 쑥 들어가는 오직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그런 요상한 신행생활은 잘못된 신앙으로 그런 신행생활을 하는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나라는 주인공이 다겁생을 돌고 돌며 알게 모르게 내 마음 밭에, 내 업의 바다에, 내 운명이라는 화선지에 어지럽게 저질러온 온갖 어두운 잡초를 말끔히 제거하고 깨끗이 지우는 정화작업이 바로 기도인 것이고 지극 간절하고 힘들게 기도한 기도의 발원공덕을 일체 중생들에게 회향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선업은 증장되고 공덕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기도를 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하면, 우선 현실에서 자신의 일상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바로 현훈가피와 명훈가피의 힘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거지도 때깔이 깨끗한 거지는 대접도 받지만, 지저분한 거지는 다들 피해버립니다. 불보살님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평소에도 자신의 신구의 삼업을 끊임없이 정화하고기도하는 사람에게 불보살님들의 가피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가피는 불보살님의 서원력을 얻어 내는 것이기에 매일매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보문품에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 천만 억 중생이 여러 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하고 나옵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은 법당에 모셔진 성화나 성상에서 보여지는 금빛 찬란하고 화려한 모습이기 보다는 중생의 근기에 맞게 중생의 가장 가까이에서 중생스스로 깨닫도록 해주기 위해 천수천안에 천백억화신의 여러 백 천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모습은 말 안 듣는 자식의 몸에 실려 나의 교만을 꺽어 주고자 나타날 수도 있으며, 지지리도 속 썩게 만드는 배우자가 되게 만들어 나를 불보살님 앞에 인도해주는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며 아주 편안하고 넉넉한 도반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불법에 인연되도록 해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운명의 20%를 지탱해주는 인연법인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은 그런 관세음보살이 자신의 곁에 와서 깨우침을 주고자 해도 보는 눈이 없고 받아드리는 지혜로운 지극함이 없기에 보이는 모든게 원수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모든 인연과보의 열매는 열매가 맺기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나무 한 그루 심어 놓고 느닷없이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중생들입니다.

 

내가 스님 말 듣고 이 만큼 기도를 했는데 왜 안되냐고, 한다면 얼마나 업이 지중했으면 아직도 안되고 있는가는 깨닫지는 못하고 부처님을 원망하고 주변을 원망해서는 답이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찮은 고추는 봄에 심어 여름에 수확하고 과일 나무는 몇 년을 기다려야 첫 수확이 있게 되듯이 정성스레 가꾸며 결실을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처럼 일상에서 늘 쉬지 않고 기도정신 수행을 하시면 불보살님의 가피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곁에 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성이 청정하고 심외무법이라,”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으니 내가 있음으로 삼라만상이 존재하고 내 안에 팔만사천의 온갖 번뇌와 답이 들어있듯이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계신 불보살님께 가피를 청하는 기도가 어찌 타력이 될 것이며 기도로써 미움도 원망도 질투도 시기심도 일체 부질없는 중생심의 내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비워 버리면, 바로 그 마음속에 자성불은 함께 하시기 시작하는 겁니다.

 

“즉심시불”이라 마음이 부처로다 하듯이 본래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중생심이 오욕락의 훈습에 길들여져 탐 진 치 삼독에 쉽게 빠져 들기에 자성불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은 정화되고 업은 소멸됨과 동시에 기도의 시작과 끝에 일체 중생에게 기도의 공덕을 함께 나누려는 발원을 하는 순간에 소극적인 자기 정화의 기도는 적극적인 대공덕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행자가 되어 일상을 기도하는 마음자세로 생활하게 되면 자신의 내면이 평안해짐은 물론 가족 모두가 삶의 질이 달라져 갈 것이며 자신은 업력으로 인한 온갖 장애를 소멸함과 동시에 일체중생에게 기도의 공덕을 회향하는 발원을 하는 순간 우리는 동체대비의 부처님의 현훈가피와 명훈가피력이 항상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원력은 바로 내 안에 내재된 자성불의 생명력을 일깨우는 소리인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경사스런 터에 세워진 궁궐

경기전

 

 

 

사적 제339호 경기전은

 

 

보물 제931호 태조어진과 보물 1578호 정전이 있는

 

 

경사스러운터로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 실록을 지킨 전주사고와 함께

 

 

태조,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 등

 

 

조선 왕의 영전영인본이 봉안되어 있다.

 

 

 

 

 

 

 

 

전주한옥마을의 중심에 우뚝 자리한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조선 태조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되었다.

 

 

경기전내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 고려사절요 등의

 

 

사서(史書)를 보관하고 있던 전주사고(全州史庫)가 있다.

 

 

경기전의 특징은

 

  

 조선 태조 이성계 왕의 어진 봉안과 함께

 

 

사고(史庫)가 설치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왕조의 창업자인

 

 

 

 이성계 왕의 어진 봉안과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존하는 사고(史庫)의 설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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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영원함을 바라는 점에서,

 

 

풍패지향(豊沛之鄕) 전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경기전 곳곳을 둘러 봅니다.

 

 어정 

 

 

 동재

 

참으로 깨끗하게  

 

좋은 위치에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 백일홍이 경기전을 아름답게

 

빛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베롱나무(목백일홍)는

 

첨 봅니다^^

 

 

 

 

 

 

 

 

 

 

 

 

 

 

 

 

용실 

 

 

 

 

 

 

 

 

 

 

 

 

태조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본전

 

 

 

 

고종

 

 

 

 

정조

 

 

 

 

 

세종

 

 

 

태조

 

 

 

 

영조

 

 

 

 

 

 순종

 

 

 

 

 

철종

 

 

 

 

 

 

 

 

 

 

 

 

 

 

 한옥마을에 온 일본 관광객들

 

 

 

경기전이었습니다

 

 

 

 

 

 

 

 경기전에는 두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요,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다.

 

하마비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 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진전에는 거북이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공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마리의

거북이를 올려 놓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