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겪게 될 임종에 대한 마음공부의 마무리

2009. 12. 21. 23:3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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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벌써 5월 첫 주입니다.

요즘 세상은 참 재밌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저런게 바로 인과로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 정권 때에 반대를 위한 반대들을 하던 한나라당에서 자기들이 노무현 정권을 향해 FTA협정과 수입소고기에 문제 있다고 했던 내질렀던 지적들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이 내뱉은 오물들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이 하늘을 향해 침을 뱉으면 도로 자기 얼굴로 돌아오게 되고, 남에게 욕을 하게 되면 그 욕의 더러움은 자신의 입이 먼저 더러워진다고 하셨던 말씀을 요즘 집권 여당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4월이 가는 마지막 주에는 현실적으로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광우병에 대한 경각심을 말씀드렸지만 오늘 법문은 당사자인 우리가 광우병에 걸려 죽게 되던 세월이 흘러 죽음을 맞이하게 됐던 12연기법에 의해서有의 과정을 바로 지나 中有에 들어가는 순간까지와 中有에 들어가서 다시 그 어떤 모습으로 환생을 하여 生有의 순간을 맞이하던 간에 겪게 될 과정으로 쉽게 말해서 사람이 죽어서 다시 환생할 때까지의 중간 사이에서 영혼이 겪게 될 상황들을 티벳의 고전인 "사자의 서"에 나오는 내용을 예를 들어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뒤덮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고 무의식이 된다고 했는데, 의식을 잃어버린 채, 중유에 머무르는 기간이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49일로 알려져 있어 우리가 49재를 지내는 것은 잘들 아실 것입니다.

 

이 기간을 “바르도의 기간”이라고 부르는 것이고, 듣는 것을 통해 영원한 해탈을 얻도록 해준다는 것이 “쉐돌”라 한다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도 쉐돌”이란 죽음의 순간이나 49일 동안에 오직 한번 듣는 것만으로도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영원한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죽은 자에게 들려주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티벳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거나 육체적인 죽음 후에도 한 동안 스님들이나 영적인 스승이 그와 함께 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가 49재를 지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죽은 자의 유체가 의식적으로 남아있기에 죽은 자의 아뢰야식이 더 낮은 단계의 통로에 이끌리지 않고 본듸 청정한 자성이라는 존재의 밝고 투명한 빛을 향하여 갈 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 들어온 이 가르침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준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가 영가의 위패를 모셔두고 조석으로 영가축원을 해드리고 7일 마다 시식 재를 지내드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체는 사자(死者)가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3일 반이나 4일 동안 나라는 의식체가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기절 혹은 수면상태에 빠진다고 합니다.

 

이 기간을 “차카이 바르도”, 즉 “첫 번째 죽음의 순간의 바르도”라고 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이 차카이 바르도의 기간 동안에 망자가 자성이라는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최초의 투명한 빛과 두 번째의 투명한 빛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망자는 세 번째 빛의 단계인 “초에니 바르도”, 즉 “두 번째 존재의 본래 모습을 체험하는 바르도”에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이때서야 잃어버린 의식이 돌아와 기절상태에서 깨어날 때는 망자는 살아있을 때, 행한 신구의 삼업의 행위에 따른 잠재의식보다도 더 깊은 아뢰야식 속의 카르마의 환영들이 망자의 눈앞에서 상징적인 빛들과 소리와 환영들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망자는 자기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과 뼈가 있는 육체를 갖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망자는 살아생전의 신구의 삼업의 카르마를 벗어나질 못하고 자신의 업에 따른 지향성에 끌려 그런 육체를 찾아 환생의 길로 향하는 “시드파 바르도”, 즉 “세 번째 환생으로 향하는 바르도”로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살아생전의 카르마의 지향성에 따라 이 세상이나 다른 어떤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바르도의 상태는 말 그대로 바르도로써, 망자의 의식체인 혼백이 머무르는 중간단계의 상태이기 때문에 실재로는 살아생전의 꿈과 같지만 망자의 의식체는 현실로 인식하듯 겪게되는 상태로 망자는 이것이 꿈의 상태인 것을 모르고 실재하는 체험이라고 믿는 것인데 이러바르도의 과정에서 깨어난 망자의 의식에 보여지는 모든 빛과 색채, 소리와 환영들은 모두 망자의 살아생전의 자신의 업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법사나 조념염불자들은 망자가 살아생전의 업력에 집착하거나 애착하지 못하도록 업력을 끊어주고 망자가 존재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경전을 들려주고 무상을 인식시켜주어 생전의 일체의 업식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어 영원한 해탈에 이르게 해주는 것이 바로 망자의 업식이 머무르는 49일 동안의 바르도 기간이 49재 천도재인 것입니다.

 

그동안 제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49일이라는 바르도의 기간일지라도 살아생전에 불법을 알고 애착과 집착의 무서움을 항상 생각하며 일상을 살아온 망자는 법사가 무상게 한 편만을 독경해주어도 바로 착심을 끊고 단 며칠 만에도 쉐돌의 해탈세계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영가들은 살아생전에 온갖 것에 끄달리고 집착하고 애착했던 의업이 끈질기게 남아있어 일체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무상법문을 여러 번 해주어도 악업의 영향 때문에 알아차리거나 착심으로 부터 벗어나질 못하는 어려운 영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티벳에서는 다시 여러 차례 반복해서 임종자나 망자의 이름을 부르고 망자를 향해 다음의 말을 해준다고 합니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만일 당신에게 지금까지 말해 준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제 당신이 과거의 삶에서 가졌던 몸은 점점 희미해지고 미래의 몸은 더욱 선명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슬픔에 잠겨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이처럼 고통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어떤 종류의 몸이라도 나타난다면 찾아가리라.

그리고 당신 영혼은 어떤 것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을 향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닐 것입니다.

 

이때, 존재의 여섯 세계로부터 여섯 개의 빛이 비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업에 의해 당신이 태어날 예정인 세계의 빛이 가장 밝게 비칠 것입니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잘 들으십시오.

만일 당신이 여섯 세계의 빛에 대해서 묻는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상 세계로부터는 흐릿한 하얀빛이 비칠 것입니다.

아수라 세계로부터는 흐릿한 붉은빛이 비칠 것입니다.

인간 세계로부터는 흐릿한 푸른빛이 비칠 것입니다.

축생 세계로부터는 흐릿한 초록빛이 비칠 것입니다.

아귀 세계로부터는 흐릿한 노란빛이 비칠 것입니다.

또, 지옥세계로부터는 흐릿한 회색빛이 비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여섯 세계의 빛입니다.

그 순간 당신의 몸 또한 당신이 태어날 예정인 세계의 빛깔을 띨 것입니다.

 

저번 4월 법문에 임종시의 마지막 온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길, 대집경(大集經)의 임종징험게(臨終徵驗偈)에를 보게 되면, “頂聖眼天生, 人心餓鬼腹, 畜生膝蓋離, 地獄脚板出”라, “정수리는 성인에 눈은 천상에 생겨나고 사람은 심장에 아귀는 배에 모여들고 축생은 무릎을 통해 떠나가고 지옥은 발바닥으로 빠져나간다.”고 말씀드렸지만, 여기서는 이미 바르도의 상태인 중유에 들어가 다음 생의 환생을 겪게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임종자에게 전해주는 가르침의 본질적인 요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오! 고귀한 집안의 사람이여,

어떠한 빛이 비치더라도 대비주 관세음보살님으로 여기고 그것에 대해 떠올리며 생각을 집중하여 명상하십시오.

어떠한 빛이 나타나던 간에 그것이 대비주 관세음보살님이라는 생각으로 여기고 명상하십시오.

이것이 가장 심오하고 본질적인 요점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중요하며 당신이 악도에 태어남을 막아줍니다.

당신의 원불이 그 어떤 불보살님이던지 간에 그 자신의 실체가 없는 환상과 같은 환영으로 여기고 오래 명상하십시오. 이것을 “순수한 환영의 몸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 명상하는 원불을 가장자리로부터 안쪽을 향하여 사라지게 하고, 비어있음과 빛이 나는 광휘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잠시 머무십시오.

이 상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입니다.라고 말해주고, 다시 임종자가 원불에 대해 명상을 하고 그 다음에 다시 광휘에 대해 명상하도록 해주고 이와 같이 교대로 명상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임종자의 마음 또한 가장자리로부터 안쪽으로 사라지게 하십시오.

 

“공간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은 어느 곳이든 “다르마 카야(법신)”는 존재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해주어 다르마 카야를 향한 단순하고 무아의 상태에 임종자의 업식이 청정자성에 머무르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과 관련되거나 관계되는 것을 다들 싫어합니다.

죽는다는 것은 두려움과 이생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 가족들마저도 아무도 죽어가는 사람이 일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마지막 마음상태를 도와주려 하지는 않고 망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착심만을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움만으로 표현하고 마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혼수상태이거나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본인에게 이생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이 있음을 전해주고 지금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가를 알려주어 서방정토를 향하는 마음을 갖도록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념염불을 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나 실제로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오늘 이 법문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항상 마음에 새기셔야 합니다.

 

그래서 죽음을 목전에 둔 가족이나 도반이 있다면 이렇게 말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름을 불러주며 “당신에게 죽음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가족(친구)이고 우리는 당신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당신도 자신이 죽어 가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 순간 진정으로 함께 만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임종자에게 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고, 이 말은 우정과 의사 전달의 가장 좋은 최상의 표현이며,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풍족한 영감을 일으켜준다고 합니다.

 

또, 조념염불을 하는 사람은 임종자의 신체적 감각, 의사 전달 감각, 청각, 얼굴 표정 등, 미묘하게 악화되는 상황을 감지해서 서방정토를 향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념염불을 한다고 단순하게 독경만을 해주는 것으로는 교감이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단순히 독경만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독경 도중에도 임종자의 미묘한 상황변화를 관찰하며 자주로 대화를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화의 내용은 “당신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주위환경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우리에게서 떠날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곳에는 연속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과 가르침과의 긍정적인 관계에 따른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근본적인 연속성에 매이지 마시고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인 “아미타불”만을 소리를 낼 수 없거들랑, 마음만이거나, 생각만이라도 집중하시고 들려오는 염불소리에 귀를 기우리셔야합니다.

이것은 에고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임종자도 목숨을 마칠 때, 그는 육체를 떠나는 모든 종류의 외부상처의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임종자의 오래된 기억들은 임종자에게 환각으로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환영과 환각이 어떻게 나타나든 매이거나 도망가려 하지 말고 들려오는 염불소리에 오로지 집중하십시요.”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조념염불자가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는 동안 죽어 가는 사람의 지성과 의식은 점점 약해지지만, 동시에 임종자는 주위의 느낌에 대한 더 높은 의식 또한 발달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념염불자가 임종자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 위해서 말을 해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따스함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진실이라면 임종자에게는 더없이 큰 힘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임종자에게 12인연연기의 무상의 이치를 설명해주며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은 당신이 죽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여기에 있으며 당신에게 당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감추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고 이생에 대한 모든 것들에 대한 안도와 안심을 줄 수 있을 때 임종자는 편안함을 가지고 조념염불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와 두뇌는 분해되지만 그 순간 그곳에는 몸과 마음 사이의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조념염불자는 임종자의 마지막 의식에 절대적인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견고한 바탕을 제공하며 그 상황과 일치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생전에 온갖 것에 일으켰던 진심과 사랑 등으로 평화와 분노의 환영에 매여진 일체의 업식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념염불자와 임종자가 서로 편안하게 일체의 애, 집착심을 끊을 수 있도록 교감을 갖기 위해서는 조념염불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임종자의 마음과 일치시켜 서로가 마음을 열고 두 마음의 만남을 지극하게 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념염불자가 심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바르도 상태의 임종자도 조념염불자의 진심어린 안정에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임종을 맞이하지 못하고 살아생전에 온갖 것에 끄달리며 진심과 착심으로 뭉쳐진 채, 떠나가는 임종자는 삼악도에 휘둘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법문을 인연삼아 부디 부디 성불하십시요.







그대 떠난 후 - 김동규, Baritone

 
박소연 작사
JOURDAN, NOVKOVIC 작곡
김건영, 이혜린 편곡

아~ 그저 그렇게 기다리면 되나 
그대 떠난 그 길 위에
더 그릴 수 없는 그대 떠올리며 
오늘도 난 그대를 기다리네
다정하게 항상 내게 들려주던 
그 노래는 들리는데
어디에도 당신 보이지가 않아
그리움 눈물로 채웁니다

편합니다 이젠 누굴 통해서든 
그대 소식 듣고 나니
예전과 똑같이 혼자라고 해도
그대를 걱정할 필요 없네
그대가 나를 떠난 후 
변한 건 하나 없지만 
그대 없는 내 사랑은 
소중함을 잃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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