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의 자살과 팔정도의 지혜

2009. 12. 27. 20: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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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스님 08년 10월05일 법문

반갑습니다.

벌써 10월 첫 주입니다.

지난 2일 새벽에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최 진실 씨에 대한 세간의 온갖 말들이 무성했습니다만, 결국 나이 40에 한 인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던 사람이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곳곳의 병원에서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면서도 기를 쓰고 살아보고자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에서는 아무런 죄도 없이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절대적인 전능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하나님이라는 신은 참 나쁜 신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이혼 후에 우울증에 시달려온 한 여자에게 그토록 의지할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선 자살로 마무리된 인생에 믿음이 약해서였다는 말로 합리화 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제 오후에 이천에서 두 분 보살님들의 예고 없는 방문으로 잠시 다담을 나누던 중에 제게 좀 봐달라고 하길래 보살님은 밥술도 넉넉하고 살만 하신데 어딜 봐 달라고 하시냐고, 차 마시면서 서로 마주보는데 볼게 뭐 있냐고 했더니 애들 아빠 때문에 너무나 마음 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한테 이리도 잘 해주는데 남편이 쬐끔만, 십 분지 일만 해줘도 맘 상하지 않을 건데 그걸 못해준다고 속상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뭔가를 해보겠다고 하는데 자기 생각엔 아닌 것만 같고 잘못될 것만 같아 말을 해도 도무지 화만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해드리길, 보살님이 과거 생에 지금의 남편에게 엄청 힘들게 했기에 한을 품고 금생에 부부 인연으로 와서 그리도 앙갚음을 하나보다고 여기시고 힘들게 할 때 마다 나는 당신에게 얼마나 잘해주는데 당신은 나에게 왜 이렇게 밖에 못해? 하는 보상심리를 버리시고 속상할 때 마다 그저 빚 갚는다는 마음으로 마음을 가볍게 갖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삶이 편안해지실거라고 해드렸더니 여기서 스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집안에 돌아가면 그게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주로 절에 오시고 법회에도 참석하셔서 법문을 들으시면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면 마음도 따라서 열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가졌다는 것은 편리할 뿐이지 행복은 아닙니다. 하지만, 못 가진 것은 불편함이 지나치면 불행까지 가게 됩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가진 게 없어 먼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을 지갑이 두툼하다면 버스 탈걸 택시 타고 택시탈걸 자가용 타는 것이 가진 것의 효용가치일 것입니다만, 그러나 행복까지는 함께 못갑니다.

 

반대로 가진 게 없다면 자가용은 못 타더라도 택시는 타야하는데 버스 마저도 못타고 가게 될 때, 혼자 몸이라면 그나마 혼자서 겪고 말 일이지만, 딸린 식구라도 있다면 불편도 하루 이틀이지 성인군자 가족이 아닌 한에는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부처님 법이 그래서 수승한 것입니다.

비구(比丘: Bhikkhu)라는 수행자는 걸사(乞士)라 이것은 빌어먹는 선비라는 유교적인 표현이 있습니다만, 불교에서 말하는 걸사는 항상 탁발을 하며 중생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느껴 위로는 법을 빌어 지혜의 목숨을 돕고, 아래로는 중생들에게 탁발로 밥을 빌어 몸을 기른다는 뜻입니다.

또, 비구를 포마(怖魔)라고도 하는데 응당 비구는 온갖 수행을 다 마쳐 마왕과 마군들을 두렵게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또, 파악(破惡)으로도 불리는데 계정혜 삼학을 잘 닦아서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끊고 남들도 끊어준다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비구라는 의미 속에는 자신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내면의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혜로운 방편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가졌던 못 가졌던 있고 없음의 차이일 뿐인 것이지 행불행은 아닌데도 우리는 있고 없음으로 인해 서로 사랑한다고 해놓고도 사니 못사니 해대다 이혼해버리고 안 입고, 안 먹고 아껴가며 뒷바라지 했던 자식들에게 늙어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게 되는 21세기의 혼탁한 물질만능의 사회가 잘못됐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로부터 자유롭지를 못하고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나 친척이나 형제간에 상대적인 있고 없음의 비교가치로 인해 스스로 만들어낸 갈등과 번뇌로부터 벗어나질 못하기 때문에 젊은 연예인들의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반자살 사이트란 요상한 만남까지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급박하게 변질되어 가는 이러한 물질 사회에서 뒤따르지 못하는 정신가치를 종교는 다르다 해도 모든 종교가 심어주어야 하고 우리 불자들은 자녀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팔정도라는 여덟 가지의 지혜를 자녀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법륜경을 보게 되면 부처님께서 대각을 이루신 후, 맨 처음 법을 전하셨던 사자후가 고집멸도(苦集滅道)라는 성스러운 네 가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중생들의 괴로워하는 괴로움에 대한 말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말씀, 그 고통을 없애는 것에 관한 말씀,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수행에 관한 지혜의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중생들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조건들인 인(因)과 연(緣)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원인과 조건들을 소멸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 반대로 행복을 가져오는 원인과 조건들의 인과 연을 알아내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인과 연을 스스로 실천한다면 우리는 괴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맨 처음 설법하시면서 즐거움과 고행의 두 극단을 여읜 중도의 수행법을 말씀 하셨는데 신성한 여덟 가지의 바른 길이라는 뜻의 팔정도가 그 핵심인 것입니다.

 

첫째는 세상과 현상을 바로 보고 유와 무라는 분별의 편견을 벗어버리고 올바른 견해나 사상으로 좌우를 다 감싸 안을 수 있는 폭 넓은 마음세계를 갖도록 해주는 정견(正見)을 말합니다.

둘째: 정사(正思) 정지(正志)라고도 하는데 매사에 생각을 바르게 갖는 것을 정사유(正思惟)라고 합니다.

 

셋째: 정어(正語)라 천수경에 나오는 구업의 네 가지를 경계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넷째: 정업(正業)으로 살생과 투도(偸盜), 사음(邪淫)등의 부정한 행위를 하지 않고 올바른 신업의 행을 바르게 하는 것으로, 정사유 뒤에 생기는 신체적 바른 행위를 말합니다.

 

다섯째: 정명(正命)은 바른 직업과 규칙적인 생활에 의한 바른 생활방법을 말합니다.

여섯째: 정정진(正精進), 정방편(正方便)이라하는 중도에 그만두는 포기가 아니라 끈기와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으로, 이런 노력은 선을 증대시키고 악을 제거하게 해주는 선근선업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철야로 자비참법을 완주하시는 용맹정진수행이나, 천일기도를 끝까지 밀어붙여 성취하신 고보살님의 기도 원력이 이에 해당된다 할 것입니다.

 

일곱째: 정념(正念)으로 언제나 정견이라는 바른 목표와 바른 의식, 바른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여덟째는 정정(正定)이라 해서 바른 선정(禪定)의 생활을 말하는데 칠불통계에서 말하는 자정기심과 같은 입니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잘 살펴 마음 안에서 일어나고 생겨나는 온갖 욕구를 알아차려 조절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모든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최진실이라는 여배우도 일찌감치 부처님 법과 인연을 지어 이러한 네 가지의 괴로운 고통의 원인과 그 원인의 치료법이 되는 여덟 가지의 지혜를 귀동냥이라도 했더라면 안타까운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되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리도 화려하게만 보였다던 유명배우가 40의 나이에 겨우 2시간 만에 한 줌 재로 변해져 버린 중생살이에 화무십일홍이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화무십일홍만이 아니라 권불십년도 있습니다.

 

사십이장경 제 24장에서 세간에서 이름과 명예를 구하는 일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헛된 일인가를 부처님께서는 욕망의 끝이라 해서 말씀하십니다.

 

짐승은 배만 채우면 만족하지만, 사람은 이익과 더불어 명예까지 취하려들면서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욕망을 따라 이름과 명예를 구하지만 이름이 드러날때는 이미 몸은 죽고 만다. 세상에서 이름과 명예만을 탐하고 도를 배우지 않는다면 헛되이 몸만 피로하게 될 뿐이듯, 마치 향을 태우면 처음에는 향내를 맡고 좋아하지만 향이 다 타고 나면 위태로운 불씨만 남아 있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 부처님께서는 설법을 하실 때, 상대방의 수준과 근기에 따라 설법의 방법과 내용을 달리하셨던 근기설법인지라, 정견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도 재가자에게 대한 정견과 출가자에게 대한 정견의 설명이 달랐다고 합니다.

재가자에게 있어 정견이란 선함과 악함이라는 인과(因果)도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삶의 윤리규범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인과를 부정하는 것은 도덕과 윤리를 부정하는 삿된 사견(邪見)이 되어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범죄와 비윤리적 행동을 하고도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단군상이나 불상에 못된 짓을 하는 이교도들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인기라는 뜬 구름위에 살다가 추락하게 되면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어쩌지 못해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인기인들이 돈과 결부됐다는 헛된 명예로 인해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연예인들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수승한 부처님 법과 인연이 되어 자기를 스스로 다스리고 조절하는 팔정도의 지혜를 배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화려한 인생의 연예인이어서가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인 한 여자의 40살을 갓 넘긴 인생이 겨우 두 시간 만에 한 줌 재로 변해져버리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삶입니다.

 

성불하십시요.

 




 ‘신비의 혀’로 영혼 달랜 ‘페르시아 이태백’
정수일의 실크로드 재발견 <31> 이란의 시성, 하피즈
이란 최고의 시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하피즈의 영묘. 공원처럼 개방돼 있어 밤에도 참배객들이 몰린다.
“시를 읊었더냐, 진주를 꿰었더냐, 하피즈여, 그대의 시, 하늘의 별 목걸이를 쏟아 붓는다.”

이란의 옛 시성 하피즈가 자신의 시에 내린 자평이다. 그의 시야말로 당대 언어의 고갱이를 알알이 주워담고 샛별처럼 어둠을 비춰준다는 뜻이리라. 자화자찬 같지만, 시성다운 호기이자 자신감의 표현 같기도 하다. 이제 그의 호기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이란 사람들이 시라즈에서 우선 찾는 곳은 왕릉, 사원, 박물관이 아니라 위대한 두 시인의 영묘다. 현인을 추념하는 참배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인의 묘, 시비 앞에서 시인의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하면서 삶의 길을 찾고 축복을 기원한다. 그 두 시인은 바로 이곳 출신의 사디와 하피즈다. 특히 하피즈는 뭇별 같은 이란 시인들 가운데 최고로 추앙받는다. 집집마다 경전과 하피즈 시집만큼은 으레 갖췄다고 할 정도로 성인에 버금가는 시인이다.

호슈크강 북안에 자리잡은 서정시인 사디(1207께~1291, 본명 무슬리프 븐 압둘라)의 영묘부터 찾았다. 돔형 입구를 지나 대리석관이 놓인 묘실에 들어섰다. 벽은 모자이크 타일 장식이 화려하다. 장미 무늬를 두른 쪽빛 타일 판에 9행시 ‘과수원’(부스탄, 1257)을 비롯한 몇몇 시편이 오롯이 새겨졌다. 사디는 30년 동안 방랑한 수피즘 탁발 시인이다. 만년 ‘과수원’ 등의 운율시와 산문·운문을 섞은 〈장미정원〉(굴리스탄, 1258) 등의 명작을 남겼다.

여기서 차로 15분 거리에 시성 하피즈(1324께~1389, 본명은 샴숫 딘)의 영묘가 있다. ‘하피즈’는 이슬람에서 ‘경전을 암송한 사람’이란 뜻의 존칭이다. 정문에 들어서니 뜰 한가운데에 여덟 개 원주가 떠받치는 돔형 팔각정이 보인다. 그 바닥에 놓인 대리석관에 참배객들이 너나없이 살포시 손을 대고 쓰다듬곤 한다. 어떤 이는 시인의 시집을 들고 와서 관을 마주한 채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기도 했다. 그들의 얼굴에 죽은 자와의 어떤 교감이 서려 있는 듯싶다. 역대 많은 시인들도 이 묘당 곁에 묻히고 싶어했으나 지금까지 10여명만이 그 행운을 잡았다고 한다.

하피즈의 영혼과 교감하듯 영묘의 대리석관을 쓰다듬는 참배객들

“장미는 내 가슴에, 술은 내 손에, 연인은 내 곁에…군주도 노예일뿐”
술과 사랑으로 빚어낸 서정연시로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 구현
집마다 시집·영묘엔 참배 행렬 괴테도 흠모할 만큼 서구에 영향

하피즈는 몽골제국의 일부인 일한국 시대(1258~1353) 말기에 태어나 15세기 초 티무르제국 지배기까지 약 50년 동안의 난세에 시를 썼다. 그의 삶과 활동을 지탱케 한 이념적 바탕은 당대를 풍미한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이다. 수피즘은 신비 체험을 통해 자기를 소멸(파나)함으로써 ‘신과의 합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사상이다. 그 과정은 회개와 참회로 시작해 단념, 포기, 금욕, 절제, 청빈, 신탁, 사랑, 만족 등 연쇄적 상승단계(마깜)를 거쳐 최종적인 ‘신과의 합일’ 단계에 이른다. 수피즘은 13세기 이론적으로 체계화해 활발한 종교사회 운동으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그 중심 무대는 시종 이란이었다.

신학과 문학에 소질이 남달랐던 교사 출신의 하피즈가 시성의 자리를 굳히게 된데는 ‘가잘’이란 서정 연시(연애시) 갈래에 수피즘을 완벽하게 구현한 데서 비롯한다. 그의 시는 한 편이 7~14행인 가잘 569편과 루바이아(4행시) 42편, 카시다(애도시) 몇 편이 전하는데, 전통 운율을 따라 시의 ‘음악성’을 살리면서도 꾸밈없는 표현으로 심오한 사상을 주입해 심금을 울린다. 한 시편 속에서 주제의 일치보다 사상의 연속성을 관철시킨다. 흔히들 ‘신비의 혀’니 ‘언어에 관한 최고의 음악가’니 하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그의 가잘은 사랑과 술이 불가분의 모티브다. “하피즈여, 그대 눈에서 눈물의 씨가 철철 뿌려지니, 아마 이 새 같은 연인은 나의 덫 속에 있을지어다”, “그대 사랑의 외침이 간밤에 내 마음을 울리나니, 하피즈 가슴속의 공간은 그 메아리로 가득하다”고 절절한 사랑을 고백한다. 사랑의 꺼짐을 염려해 “오, 불 밝히는 궁정처럼 연인의 애정이 스며 있는 집, 신이여, 시대의 재난으로 그 집 폐허로 만들지 마소서”라고 애절하게 기도한다. 이런 시인의 연모는 인간에 대한 감성적 연모라기보다, 신(알라)에 대한 이성적 연모라는 평가가 더 적절하다. 특히 수피인 시인에게 술은 ‘자기소멸’, ‘신과의 합일’에 이르게 하는 무아지경의 상징이자 영적인 촉발제였다.

인근 찻집 ‘차이하네’에서 참배 온 가족들이 쉬고 있다.

시인은 “장미는 내 가슴에, 술은 내 손에, 연인도 내 곁에 있으니, 그런 날엔 세상의 군주도 나에겐 한낱 노예일 뿐”, “나의 종단(수피즘)에선 술이 허용되거늘, 장미 같은 몸매 당신 얼굴 없이 술 마시는 건 금기라네”라고 노래한다. “신은 창세기 때부터 술 이외의 선물은 주지 않았고”, “내 존재의 토대는 취하면서 쌓여 갔으며”, “슬픔의 약은 술”이며, 또한 잠시드(페르시아 전설의 왕)처럼 술잔을 통해 세상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피즈의 가잘에서 술은 차원 높은 은유를 바닥에 깔곤 한다.

시인은 술을 ‘신의 이슬’로, ‘빛’으로, ‘불타는 루비’로, ‘이성의 집’으로 여기면서 취함에서 깨달음을 얻고, 술잔에서 연인의 얼굴을 보며, 취한 눈에서 기쁨을 찾는다. 시에 자주 등장하는 싸끼(술 따라주는 자)는 신의 뜻을 전달하는 자로 둔갑하며 그와 교감한다. 요컨대, 하피즈에게 술은 저질스런 주색, 주벽 개념이 아니다. 중국의 시선 이태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사실 이태백의 조상은 페르시아어권 안의 쇄엽(碎葉: 오늘날 키르기스스탄 토크막)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600여년 시차를 뒀음에도 두 시인은 경력이나 영적 경지에서 동병상련, 막상막하, 피장파장이다. 그렇게도 닮은꼴일 수 없다. 술 한 말 시 백 편의 주선들이니까.

시성의 큰 그릇에는 심원한 인생관과 세계관도 나타난다. “인생의 역(수피즘의 상승단계)에서 기쁨과 평안은 순간, 낙타 방울은 가마 문을 닫으라 하네, 또 다른 역을 향해”라고 끊임없는 수양을 독려한다. 한편으로는 “이기심 때문에 모든 일 구경에 오명만 남기니”라고 이기심을 꾸짖는다. “하피즈여, 세상의 정원에서 가을바람에 괴로워 마라, 이성적으로 따져 가시 없는 장미가 어디 있더냐”고 고진감래의 인생철학을 설교하기도 한다. “난 가난을 존경하며 재물의 만족을 원치 않나니, 왕께 여쭈어라, 하루 세끼는 신이 주신다고”라며 시인은 청빈을 떳떳해한다. 한편으로는 “무덤 속의 한줌 흙, 고대광실이 하늘을 찌른들 무슨 소용인가”, “정신이 온전하든 취했든, 모든 이는 연인의 추종자, 모든 곳은 사랑의 집, 이슬람 사원이든 유대교회든 신은 어디에나 있다”며 수피즘의 이념, 만민평등과 무차별의 정신을 역설한다.

하피즈의 시는 아랍 세계와 서구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독일 문호 괴테는 그를 ‘대적할 자가 없는 시인’이라고 극찬하면서 은유나 상징어 등 시적 소재들을 본받아 서정 연시집 〈서동시집〉(1818)을 펴냈다. 이 시집에는 괴테와 연인 마리아네 사이에 오간 편지가 실렸는데, 그중에는 하피즈 시집 〈디반〉의 장과 페이지, 시행의 숫자를 언급한 암호편지도 들어 있어 그 감응력을 짐작하게 한다. 철학자 니체도 ‘하피즈에게’란 송시를 썼다. 그의 시집은 300여년 전 서구에서 처음 번역한 이래 지금까지 수십 종의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유엔도 그의 가잘 50편을 엄선해 책으로 펴낸 바 있다.

묘당에 곁달린 차이하네(찻집)에 들렀다. 참배객들은 삼삼오오 차를 마시고 물담배도 피우며 다리쉼을 한다. 가끔 시낭송모임이나 추념식 등도 열린다고 한다. 한마디로, 역사 속에 사라진 망자의 으쓱한 무덤이 아니라, 지금 산 사람과 대화하고 교유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위인은 육체적으로 한번 죽을 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또 한번의 죽음을 당하지는 않는 법이다.

글·사진 정수일 문명사연구가


‘3천년 전 조로아스터’에 뿌리둔 이슬람문학 대산맥

시라즈에 있는 이란의 대표적 서정시인 사디 영묘의 전경.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자리해 위대한 시성을 추앙하고 그의 영혼과 대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란 문학은 이란 문학은 아랍, 인도, 터키 등을 아우르는 이슬람 문학사의 거대한 산맥이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월등한 유산과 실크로드 문화 산물을 이어받은 이란인들은 글짓기에 탁월해 오마르 하이얌, 하피즈, 피르다우시 등의 세계적 시인들을 배출했다. 7세기 아랍인의 정복 뒤 아랍 글자와 어휘들이 이란어에 스며들었지만, 그들은 아랍문학까지 포용하면서 이슬람 문학사의 주류를 형성했다. 튀르크 제국을 비롯해 중근세 이슬람 세계의 궁정 문인들은 이란어 작품을 짓는 것이 필수였다.

이란 문학의 뿌리는 3천여년 전 조로아스터 경전 등의 고대 페르시아 운문, 문헌집 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뒤이어 4~5세기 사산조 이란에서 창조된 여러 기록물들은 이슬람문화가 태동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 유명한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는 바로 사산조 문학이 낳은 산물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시를 바탕으로 한 이란 문학사의 본류는 9세기 중앙아시아 부하라에서 일어난 사만왕조 때를 기점으로 본다. 수피즘 교단의 신비적 영향을 받은 이 왕조 치하의 이란 동부에서는 10세기 루다키와 아브 슈크르 등의 서정시 선구자들이 나왔다. 11세기엔 지금도 애송되는 4행 시집 〈루바이야트〉의 지은이 오마르 하이얌이, 13세기엔 신비시의 대가 루미가 나타났다.

몽골 침입으로 이란 북동부가 쑥대밭이 되자 13세기부터 문학의 새 중심으로 떠오른 곳이 남부 시라즈다. 사랑의 시 ‘가잘’과 2행 대구체의 낭만시 ‘마스나위’는 시라즈 출신 사디와 하피즈를 통해 여문 이란의 독창적 장르다. 하지만 시라즈에서 꽃피운 이란문학의 본거지는 16~17세기 동쪽의 인도로 옮겨간다. 궁정에서 터키어를 주로 썼던 사파비 왕조가 종교시 외의 문학 후원을 외면하자 우르피, 칼림, 사이브 등 많은 이란 시인들이 조국을 등진 채 인도 무굴제국의 궁정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세기까지 가잘, 마스나위 같은 이란 특유의 장르는 오히려 인도에서 애송되며 명맥을 잇게 되었다.

 
 
  
생명의 마음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산 사람들과 대화를 교유하는 <히피즈>와 <사디> 그들이 부럽다

그들의 연모하는 신과의 合一에 이르는 그 無我之境 그 영적인 축제에 함께 하고 싶어라-이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