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불법 5. 불교/만공선사

2009. 12. 28. 20:2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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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선사(滿空禪師) 법훈(法訓) < 새벽의 소리 >



4. 불법(佛法)


    불법이라고 할 때,
    벌써 불법은 아니니라.
    일체의 것이 그대로 불법인지라
    불법이라고 따로 내세울 때에 벌써 잃어버리는 말이니라.

    물질은 쓰는 것이요 정신은 바탕인데,
    물질과 정신의 둘이 아닌 도리를 불법이라 하나니라.

    불법엔 완전을 이루지 못하면
    인생의 영원한 앞일을 벗어날 길이 없나니라.

    불법은 어느 시대,
    어떤 인간의 호흡에도 맞는 것이니라.
    불법을 듣고 생명의 중심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인간의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이니라.

    불(佛)이라는 것은 마음이요 법(法)이라는 것은 물질인데,
    불법이라는 명상(名相)이 생기지 전에,
    부처가 출현하기 전에,
    <나>는 이미 존재한 것이니라.
    질그릇 같은 <나>를 버리면 칠보의 그릇인 '법신'을 얻나니라.

    입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요,
    손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니,
    말하고 일하는 그 정체를 알아야
    참된 말과 일을 하는 정작, 인간이 되나니라.

    불법은 육체나 영혼의 책임자이다.
    책임자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그 얼마나 불안한가.
    이것을 알면, 곧 불법에 돌아오게 될 것이니라.

    세간법(世間法)과 불법이 둘이 아니요
    부처와 중생이 하나니,
    이 불이법(不二法)을 증득해야 참 인간이 되나니라.

    불법을 알면 속인이라도 스님이요,
    스님이라도 불법을 모르면 이는 곧 속인이니라.

    여러 가지의 자물쇠를 열려면
    여러 가지 열쇠가 필요한 것 같이
    백 천 삼매의 무량(無量)한 묘리(妙理)를 해득하려면
    백 천만의 지혜의 열쇠를 얻어야 하나니라.

    불법을 부인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요,
    불법을 배척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배척하는 것이니,
    이는 곧 자기가 부처이기 때문이니라.

    소리소리가 다 법문이요,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진신(眞身)이건만,
    불법 만나기는 백천만겁에 어렵다고 하니,
    그 무슨 불가사의한 도리인지 좀 알아 볼 일이니라.


5. 불교(佛敎)


    불교라 주장할 때 벌써 불교 교리와는 어긋난 것이니,
    불교교리는 아집(我執)을 떠난 교리이기 때문이니라.
    불교의 종지(宗旨)가 악을 징계하고 선을 장려하는 종교가 아니니,
    선악이 다 불법인 까닭에 천당, 극락의 즐거움이나
    반대로 지옥의 극고(極苦)한 세계가 다 나의 창조물인 까닭이다.
    먼저 대가(代價) 없이는 얻어지지 않고,
    노력 없이는 성공이 오지 않는 것이 우주의 원리이니라.

    일체는 그대로 불(佛)이기 때문에
    일정한 규칙이나 조직을 세워서 가르치지 않고,
    근기에 맞게 단계적으로 가르칠 뿐이니라.

    불교의 '유심'이란 유물과 상대가 되는 유심이 아니요,
    물심(物心)이 둘이 아닌 절대적인 유심(唯心)임을 말하는 것이니라.

    허공[自性]은 마음을 낳고,
    마음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행동을 낳나니라.
    세상에는 '물심양면'이라면 우주의 총칭인 줄 알지만,
    우주의 정체(正體)는 따로 있나니라.

    불교에서는 신(神)을 초월하여 법신이 있고,
    영혼 위에 진인(眞人)이 있음을 알아,
    그것을 증득하는 것으로 구경을 삼는데,
    육신과 신과 영혼의 근본이 법신이요,
    그 근본을 잃어버린 육신과 신과 영혼이
    서로 교환 이동하는 생활이 사바세계의 인간이니라.

    불교는 전 인류의 자아(自我)를 완성시키는 교육 기관이니,
    여러 많은 종교가 다 진아완성(眞我完成)의 가교요 과정이니라.
    불교 교리의 오의(奧義)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이지만,
    각자가 다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응할 수 있고,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없으되 주고받을 수 없는 그 법을
    전생에 부처님이나 미륵부처님이 상속하여 가나니라.

    수행인인 스님은
    부모처자와 일체 소유를 다 버림은 물론
    자신까지도 버려야 하나니라.

    스님은 운명의 지배도 아니 받고,
    염라국에도 상관이 없어야 하며,
    남이 주는 행(幸), 불행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나니라.

    수도생활을 하는 것은 성품이 흰 연꽃 같이 되어
    세속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니라.
    짧은 인생을 위하여 하는 세속 학문도
    반평생을 허비해야 하거든
    하물며 미래세가 다함이 없는 앞길을 개척하려는 그 공부를
    어찌 천년을 멀다 하며, 만년을 지루하다 할 것인가?

    생사윤회에 소극적인 학교교육도 필요함를 느끼거든,
    하물며 생사윤회를 중단하고
    참된 인간을 완성시키는 참선교육은
    참으로 필요한 것이다.
    전 인류에게 시급히 알려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니라.

    세상 사람은 유위(有爲)로 법을 삼지만
    스님은 무위(無爲)로 법을 삼나니라.
    세상 사람은 무엇이든지 애착심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스님은 무엇이든지 애착심을 끊고 일을 하나니,
    부처님이나 조사에게까지도 애착심을 가지지 말 것이니라.

    세상에서는 혈통으로 대를 이어가지만
    스님은 자기를 깨달은 정신 곧, 도(道)로 대를 이어 가는데,
    세상에서도 조상의 제사를 끊게 되면
    그에서 더 큰 죄가 없다는데,
    불자(佛子)가 되어 스님으로 부처님 법을
    자기 대에 와서 끊는다면
    그 죄를 어디에 비할 것인가.

    예전에는 항간의 부녀자 중에도
    불법을 아는 이가 있어
    종종 스님을 저울질하는 일이 있었건만
    지금은 민중을 교화할 책임이 있는 스님이 도리어 불법을 모르니,
    어찌 암흑시대라 하지 않을 것이며,
    시대가 이토록 캄캄한데 민중이 어찌 도탄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불교의 흥망이 곧 인류의 행(幸), 불행인 것이니라.
    언제나 불교의 행운과 함께
    세상에 평화가 동행해 오게 되는 것이니라.

    공부하는 스님의 누더기는
    임금의 용포(龍袍)로도 능히 미칠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니,
    임금의 용포 밑에서는 갖은 업을 짓게 되지만
    스님의 누더기 밑에서는 업이 녹아지고 지혜가 밝아 지나니라.

    스님으로서 속인의 부귀를
    부러워하거나 외로워하거나 설움과 한이 남았다면
    게서 더 부끄러운 일이 없나니라.

    잘 익고 요리가 잘된 음식을 얻어 먹고
    맛있는 쌀밥에 입다시며 먹는 자는
    비린 것을 먹는 것이나
    생물을 죽이고 때리며 자르고 결박하는 것이나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것이나
    잘못된 것을 배우고 남의 아내를 가까이하는 것이
    다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이다.

    언제나 우정이 깨어질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아첨하면서 항상 친구에 결점만을 보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자식이 어머니 품에 의지 하듯이 그 사람에게 의지하며
    다른 이로 의하여 그 사이가 벌어지는 일이 없는 사람이
    참 친구이다.

    탐욕과 혐오는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즐거움과 고통과 소름 끼치는 일들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며
    갖가지 망상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나
    마음을 방황케 하는 것이니
    어서 참나를 찾아야 하느니라.

    마음이 깨끗하고 남을 해치지 않고
    때 묻지 않은 자를 미워하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악이 되 돌아오는 것이다.
    이는 바람이 불어 먼지를 날리는 거와 같은 것이다.

 

 

꿈이란 허망한 것

 

 

어느 나라에 꿈을 풀이해 주고 살아가는 이가 있었다.

그의 용함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그 나라 임금까지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꿈이란 허망한 것이거늘,

그것을 풀이해 주며 살아가다니,

이는 분명 돈을 벌기 위해 백성들을 속이는 짓이리라.'

 

임금은 해몽가를 대궐로 불러 거짓으로 꿈 이야기를 하였다.

 

"짐이 간밤에 대궐의 기왓장 하나가

비둘기로 변해 날아가는 꿈을 꾸었느니라. 

이를 해몽해 보도록 하라." 

 

예, 그것은 대궐 안에 있는 이들 중에서 한 사람이 죽을

징조입니다" "여봐라! 저놈을 다장 가두어라."

 

그런데 한나절이 지나자 궁녀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고,

넘어진 궁녀 하나가 머리를 부딪혀 죽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기이하게 생각한 왕이 해몽가를 불렀다.

 

"꿈이란 본래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

네가 그것을 해몽해 주며 살아간다기에 사람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느니라. 

 

그래서 너를 가두려고 일부러 꾸지도 않은 꿈을 말한 것인데,

네가 해몽한 대로 정말 사람이 죽었으니 어찌된 일이냐?" 

 

"그러하옵니다.  꿈이란 실로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주무실 때 꾸는 꿈만이 꿈이 아니라,

눈을 뜨고서도 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곧 꿈이옵니다.

저는 그 꿈을 풀이한 것이옵니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 단속을 잘해야 합니다.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