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30. 23:0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반갑습니다.
어제 밤 우연히 SBS- TV에서 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라는 프로를 보게 됐는데, 보면서도 참 우스운 생각이 들고 결국에는 자기들도 결론을 내지도 못하면서 왜? 저런 방송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소위 “빙의”라는 것을 이용해 치부하는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프로 같기도 해서 그냥 지나쳤지만, 무슨 대학의 정신과 교수라는 분의 말씀이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경제적으로 살기 힘들어지고, 정치적으로 억압을 받게 되거나 개인적으로 살기 힘들어지면 사람들이 그런 곳을 통해 탈출구를 찾게 되고, 그런 영적인 세계에 더 쉽게 빠져드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인터뷰를 하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질수록 더 지혜로워져야할 것입니다만, 부처님께선 지혜보다 더 강조하신 것이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복혜구족하고 복덕원만” 이라 해서 지혜의 앞에 복을 먼저 두었던 것이고, 사종자량(四種資糧)이라 해서 네 가지의 밑천이 되는 양식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 첫째가 복덕자량(福德資糧)이라 과거세에 복덕을 쌓았으므로 금생에 재물이 넉넉하여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을 말하고, 둘째는 지혜자량(智慧資糧)이라 과거세에 지혜를 닦은 인연으로 금생에 아무리 어려운 법문이나 학문일지라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로 선세자량(先世資糧)이라 과거세에 쌓은 선근(善根)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완전하고 재물이 부족함이 없는 것을 말하며 네 번째의 현법자량(現法資糧)은 금생에 선법(善法)을 닦은 인연으로 선근이 익숙해져서 부처님의 계(戒)를 받게 되는 인연 짓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종인(四種人)이라 해서 소위 네 가지의 부류들이 있으니 첫째, 상몰(常沒)하는 부류라 해서 죽을 때 갖고도 못가는 세속의 유한한 즐거움에 탐닉해서 생사윤회의 고통을 벗어나려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잠출환몰(暫出還沒)부류라 끝없는 생사윤회의 원인종자가 되는 세속의 탐욕과 번뇌로부터 잠깐은 벗어났으나 도심(道心)이 굳건하질 못해서 다시 탐욕번뇌의 세속에 빠져 들어가는 부류들도 있고 세 번째, 출관인(出觀人)이라 세간에 있으면서도 출세간법을 닦아 생사윤회를 벗어나기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 번째로는 득도인(得度人)이라 세간에 있으면서도 세간의 탐욕과 번뇌로부터 매이지 않는 마음법을 닦아 일체의 착심을 여의고 생사윤회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 열반적정에 들어가는 네 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 네 가지 큰 은혜가 있으니 나를 낳아 준, 이 세상에 존재케 해주신 아버님의 은혜와 어머님의 은혜, 그리고 과거 세세생생의 착심의 숙업으로 인해 탐욕과 번뇌를 바로 보지 못하는 중생들에게 일체의 번뇌 망상을 여의도록 해주신 부처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법사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일대사인연으로 금생에 불법과 인연이 되신 여러분들께서는 네 가지의 부류 중에서 어디에 해당된다고 여기십니까?
또, 부처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불언(佛言)하사 대, 인유이십난(人有二十難)이라, 빈궁보시난(貧窮布施難), 호귀학도난(豪貴學道難), 기명필사난(棄命必死難), 득도불경난(得覩佛經難), 생치불세난(生値佛世難), 인색인욕난(忍色人欲難), 견호불구난(見好不求難), 피욕부진난(被辱不瞋難), 유세불림난(有勢不臨難), 촉사무심난(觸事無心難), 광학박구난(廣學博究難), 제멸아만난(除滅我慢難), 불경미학난(不輕未學難), 심행평등난(心行平等難), 불설시비난(不說是非難), 회선지식난(會善知識難), 견성학도난(見性學道難), 수화도인난(隨化度人難), 도경부동난(覩境不動難), 선해방편난(善解方便難),이라 했습니다.
풀어서 말씀드리자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스무 가지나 되는 행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니 그 첫 번째가 가난하면 보시하기 어렵고, 두 번째는 부귀하면 도를 배우고 익히기 어렵고, 세 번째는 목숨을 버려 죽기도 어렵고 네 번째는 부처님의 경전을 인연지어 얻어 보기 어려우며, 다섯 번째는 부처님 계신 세상에 태어나기도 어려우며 여섯 번째는 색심(色心)과 욕심을 참기 어렵고 일곱 번째는 좋은 것을 보고도 탐심을 내지 않기 어려우며 여덟 번째는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고도 화내지 않기 어렵고 아홉 번째는 힘이 있고 세력이 있는 사람이 그 세력을 써먹지 않기도 어렵고 열 번째는 매사 벌어지는 마음 상하는 일에 무심하기 어려우며 열한 번째는 널리 배우려 들거나 진리를 탐구하기 어렵고 열두 번째 스스로 교만해진 아만심을 없애기 어렵고, 열세 번째는 무식하고 못 배운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기 어려우며, 열네 번째는 매사에 평등한 마음을 내기 어렵고, 열다섯 번째는 매사에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기 어려우며, 열여섯 번째는 선지식을 만나기 어렵고 열일곱 번째는 제대로 도를 배워서 견성하기 어려우며, 열여덟 번째는 온갖 방편을 편다 해도 중생을 제도하기 어렵고, 열아홉 번째는 경계를 보거나 경계에 부딪쳤을 때 마음이 동요되지 않기 어려우며, 스무 번째로 온갖 방편을 잘 알아서 사용하는 것 또한 어렵다” 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행하기 어려운 스무 가지의 난행은 어찌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세세생생에 익혀온 훈습된 숙업으로 인해 밝아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행하기 어려운 스무가지의 난행에 대해서 조목조목 플어드리는 것은 다음 법회 때에 주제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부터 제 6차 백일기도에 들어가면서 다겁생에 알게 모르게 이곳저곳에 두 가지 말로 화합을 깨트렸던 양설중죄를 참회하는 업장소멸의 기도입제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어제 인터넷을 보니 80년대에 민주화를 위해서 앞장 섰던 분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고문했던 고문기술자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목사 임직(任職)예배에서 다른 전도사 40여명과 함께 안수를 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정말 하나님이 이 땅에 계시기는 한 걸까? 한국의 기독교는 정말 편리한 종교라는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인과법이 이렇게도 흐트러진 세상인가 싶은 혼자만의 생각을 했던 어제였습니다.
참회와 회개는 차원이 다른것입니다.
스스로 범한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참회인 것이지 혼자 마음 속으로 주님에게 회개했다고 해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인과가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시작하는 양설중죄를 참회하는 기도기간에 우리는 더욱더 조심하고 근신하는 지혜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복은 심고 가꾸는데서 얻어지지만, 지혜가 없이는 허공에 손을 휘젓는 거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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