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살아가는 행복의 열쇠

2009. 12. 29. 21:31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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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일어나는 새벽녘이면 습관적으로 “시방삼세 제불보살님께 발원하오니 오늘 하루 저의 일상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비롯되는 모든 희노애락과 우비 고뇌를 삼보 전에 공양 올립니다.”하고 시작하는 아침입니다만, 보게 되고 귀에 들리는 밤사이 일어난 뉴스들을 접하다보면 내가 왜 사나? 왜 이렇게 점점 각박해지고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요즘 세상은 정말로 변화가 극심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이 불확실하기만 한데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생활은 욕구와 번뇌로 가득 차버린 사회 속에서 점점 빈곤해지는 중산층의 해법은 정말 없는 것인가? 하는 걱정 속에서 과연 불교는 어떤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혼자서 고민을 많이 해봅니다.

 

헌데, 행복학을 연구한다는 학자들이 국민의 행복도를 조사한다는 이상한 조사에서는 아프리카 빈민국이나 세계 빈민국 선언을 했던 미얀마의 국민소득 백 불짜리 미만의 국가와 ECD국가 국민들의 행복도 순위가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풍요로운 사회라고 불리는 소위 선진국 국민들은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고 남들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에 더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현실, 수백만의 비정규직,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격차, 이 모든 사회적인 문제들을 결코 경제성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는데도 2008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HSI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 키워드 첫 번째는 “돈”이나 돈과 관련된 것이라고 합니다.

 

행복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행복키워드의 1위는 “경제력과 풍요”가 첫 번째였고 그 다음이 건강, 세 번째가 가족과 가정(15.1%)이었고 네 번째는 친구나 대인관계였으며, 맨 꼬래비가 신앙이나 마음가짐의 순서였다고 합니다.

 

직장이나 일, 성공이나 자아실현 등의 명예라는 전통적인 가치보다는 경제력이나 인간관계 등 실리적인 가치를 더욱 중요시 하게 되고 소득불평등을 알아보는 지니계수는 더욱 나빠졌다고 합니다.

 

소득분배가 나빠지면서 행복의 양극화가 심해져 가는 이런 사회적인 현상들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질러버리는 일들로 아침뉴스마다 터져 나오는 인성이 마비되어버린 인면수심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고시원 방화와 같은 “묻지 마” 식의 사건사고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시대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언제든 내 주위의 사람들이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윤 고암 노스님께서 조계종 종정으로 계실 때, 옛날 동양방송이라고 했던 TBC-TV의 박종세 방송주간과 당시 부처님 오신 날에 나눴던 특별대담의 내용을 들려 드리고자합니다.

본관이 파주 파평윤씨였던 노스님 당신이 한문서당을 다니던 열일곱 나이에 신학문을 공부하러 서울로 오다 배고파 도봉산 망월사를 가게 됐는데 그 곳에 계신 스님들 말씀이 신학문보다 부처님 곁에 있으면서 좋은 말씀도 듣고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말에 마음이 끌려 행자생활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백용성 큰스님이 사동이라는 데서 법문을 하신다고 해서 가서 법문을 들었는데, “탐진치에 얽매여서 죄만 짓고 사는 것보다 본래의 마음을 찾아서 깨치게 되면 영원히 행복할 수가 있으며 또한 모든 것을 다 성취할 수가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발심해서 해인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셨다고 합니다.

 

박종세 주간이 묻기를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탐진치고 하는 것은 독사와 같아서 물리기만 하면 해로움이 너무 커서 삼독심이라고도 하는데 중생은 이 삼독심으로 인하여 온갖 죄악을 짓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계정혜를 잘 닦으라고 하셨으며 삼독심 가운데 성질내는 것이 죄가 가장 크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성질이 나게 되면 그 동안 쌓은 모든 공덕을 일거에 쓸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부간에, 주변 동료 간에도 서로 잘 해주고 잘 나가다가도 자기의 의도한바와 달라지면 금새 입에선 신경 건드리는 말들이 오고가며 끝내는 언성이 높아지며 험한 말들이 오고가 서로 간에 상처를 입게 되지 않습니까?

그리되면 그 동안 잘해주었던 공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 바로 노스님의 말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불교가 해야 할 일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비구는 비구로서 수행을 잘 닦아 자신의 도가 원만히 찬 뒤에는 세상에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펴는 것이 마땅히 할 일이며 신도는 불교를 생활화하면서 외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 부처가 되신 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대도시로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가까이서 호흡을 하시면서 그들로 하여금 고뇌를 여의고 해탈의 길을 가도록 가르침을 폈습니다.

 

불교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오면서도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차차로 내려오면서 아마도 사람들의 근기가 약해져서 도시 가까운 절에서는 수도하기가 어렵게 생각되는 경향인데다 이조에 와서 조선왕조의 불교탄압으로 박해를 피해 산중으로 들어간 후 오늘날 까지 이런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요새로 치면 산중불교라고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산중에서 근 오백년이나 승려와 일반인들과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에 얼른 합이 안 되고 그래서 동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그대로 불교이며 불교가 그대로 인간입니다.

 

불교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되는데 혹, 병든 자는 병에서 나았으면 하는 바램과 또 어려운 사람은 어서 이어려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여 목적한 바를 성취했으면 하는, 각자 자기의 요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을 성취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부처님과 불보살님을 생각하고 그 명호를 부르거나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러는 동안 자연히 마음이 깨끗해져서 스스로 행복의 길을 여는 방편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모아놓고서 단번에 내 마음을 깨쳐서 나처럼 부처가 되라고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면 그들의 귀에 이 말이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유를 들어 그대가 일을 잘하면 일을 잘 한만큼 내가 그 대가를 줄 것이다. 일하는 대로 거름을 치는 대로 네게 하루 얼마씩 줄 테니 해라 한다면 거기에 재미를 붙여 일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오래하여 익숙해지면 출입이 무애라 서로 차별이 없음을 인식할 즈음에 반야영지를 일러주어 자기 마음, 슬기로운 지혜를 알게 해 주고 마침내는 아주 모든 것을 다 전해주어 그대와 내가 함께 가진 이 마음자리는 조금도 틀리지 않고 같은 것이다. 나의 깨친 대로 그대도 깨쳤으니 이제 그대도 부처가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언제든지 중생을 교화해감에 이러한 방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고 노스님의 말씀은 끝을 맺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행복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는 행복키워드라는 질문의 첫 번째는 “경제력과 풍요”가 첫 번째였고 그 다음이 건강, 세 번째가 가족과 가정(15.1%)이었고 네 번째는 친구나 대인관계였으며, 맨 끝이 신앙이나 마음가짐의 순서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나의 현실은 눈에 보이는 것이 그대로 현실이지만, 우리 불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과 연의 결합으로 생겨나는 과와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행복키워드의 첫 번째가 돈이라고 했지만, “풍요로운 사회라고 불리는 소위 선진국 국민들은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고 남들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에 더 괴로워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찌 보면 현대인들은 그야말로 전도몽상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저의 답이었습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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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기차 여행/김영래*

 

새벽 첫차는 

긴 여운의 기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철커덩 철커덩거 리며  

 규칙적인 금속성 소리로

 

자장가가 되어

아련한 꿈속으로 빠져든다

 

놓치지 않으려 는 듯

안도의 두 손을 꼭 잡고

넒은 바다로 떠나간다

 

설레 이며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내가 있고

내 마음속에 펄펄 끓 는 사랑이 담겨있다

 

푸른 파도 속에 꿈이 있고

그 부서지는 물보라 속엔

 

오색 무지개가 숨어 있고

나는 모래 위 에 사랑의 언약을 쓴다

 

아~찬란한 바다여

붉은 노을 속 의 황홀한 꿈이여

춤추는 저 갈매기 여 이날을 기억하라~~~

 

- 음악이좋아님이 올린 그림


* 겨울 바다가 있는 동해안 기차여행이 하고 싶어집니다

                         

해와 같이...

해가 지는지요.

해가 지지요.

해가 지고 있지요.

 

해가 가는지요

해가 가지요.

해가 가고 있지요.

 

해가 뜨는지요

해가 뜨지요.

해가 뜨고 있지요.

 

해가 오는지요.

해가 오지요.

해가 오고있지요.

 

해가 뜨고 지고

해가 오고 가도

해와 같이 해처럼 그렇게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