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한 마음 공부

2010. 1. 7. 21:13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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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면 가 닿으리
너는 내 생각의 끝에 아슬아슬 서 있으니
열렬한 것들은 다 꽃이 되리
이 세상을 다 삼키고
이 세상  끝에 새로 핀 꽃 한 송이
 꽃 한 송이- 김용택 
 

한 해를 보내면서 참으로 긴요한 자등명 법등명의 참 주인공이 되는 방법을 법문으로 삼고자 합니다.

 

동안거 포살계를 받아야 한다기에  조계사에 가서 포살계를 받고 왔습니다만, 포살계하는 동안 분위기는 자못 부처님 입멸 후 우바리 존자가 계율을 낭송했던 첫 결집 때의 분위기가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범망경 안의 포살계목차를 낭독하시는 교육원장 스님의 정성에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졸고 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옆 자리에 대중스님 가운데 한 비구니 스님이 저를 콕 찌르면서 “스님 그만 졸으시고 이제 좀 읽으세요” 하면서 계본을 건네주기에 제가 하는 말이 “세존께서 열반하실 때, “소소한 계는 버려도 좋다”고 하셨는데 요즘 같은 망년회철에 술을 마시지 말라 하는 계목이 나오면 어떡하라고? 곡차라서 괜찮은가? 하면서 웃고 말았습니다만, 부처님 열반하시고 나서 결집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는 나이 들어 늦게 출가한 “수바드라”라는 늙은 비구가 슬퍼하는 스님들 사이에서 하는 말이 “형제들이여! 슬퍼하지 말고 이제 그만 눈물을 그치게. 이제서야 우리들은 그 위대한 수행자로부터 해방이 된 것이네, 그 분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 된다며 항상 참견을 하지 않으셨는가?

이제부터 우리는 자유로운 몸이 되었으니 아무 것이나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편히 살아갈 수 있게 됐다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슬퍼서 울고 있는가? 형제들이여!” 하는 말이 씨가 되어 대가섭 존자가 결집을 하게 된 동기가 됐습니다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아난존자가 부처님께 묻기를 우리는 “이제 누구에 의지하고 살아가야합니까?” 하고 슬퍼하자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난아! 너는 지금껏 내 곁에서 이 순간까지 지내오면서도 아직도 그것을 몰랐더냐?” 하시면서 말씀이 “자등명(自燈明)하고 법등명(法燈明)하라,” 하셨으니 이 말은 너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그동안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으라. 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하거나 독경하다보면 수시로 발견되는 대목이 “여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럼 합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으로 존재하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뭐가 되며, 그 많은 대승의 방등경전은 뭐가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온갖 중생들이 욕구와 번뇌에 사로잡혀 제 뜻대로 안 되는 삶에서 부처님께 하소연하자 그들이 온갖 번뇌와 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지혜의 말씀을 남겨 주셨기에 아난존자께서 부처님 입멸 후, 500명의 장로 아라한들 앞에서 세 번을 낭송을 하고 이의 없음을 인정을 받아 결집된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들인데, 정작 부처님께서는 여래무소설이라 여래는 한 법도 설한바가 없다고 하셨으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루는 원효대사가 대안대사의 토굴을 갔는데, 대안대사가 “스님 마침 잘 왔소, 이놈들이 어미를 잃어 젖을 못 먹고 있으니 젖동냥 해올 때까지 이놈들 어미 좀 되여 주시요” 하고는 나가버렸는데, 원효대사가 어두컴컴한 방을 살펴보니 너구리 새끼 세 마리가 눈에 보였는데 젖동냥을 떠난 대안대사가 금방 돌아오지를 않는 차에 너구리새끼 한마리가 그만 죽어 버렸습니다.

 

자비심이 발동한 원효대사가 안타까워 죽은 새끼 너구리 앞에서 염불을 해주고 있었더니, 젖을 구해온 대안대사가 염불하는 원효대사에게 무슨 염불이냐고 묻자 원효대사가 “이놈이 죽은지라 왕생극락하라고 염불하고 있습니다.”하자, 대안대사가 “그놈이 그 염불을 알아듣겠습니까?”하고 놀려대자, 원효대사가 “그럼 이놈들이 알아듣는 염불이라도 있단 말입니까?”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반문하자 대안대사는 웃으면서 “있다 마다요” 하면서 동냥해온 젖을 남아있는 너구리새끼들에게 먹이면서 “이놈들이 알아듣는 염불은 바로 이것이외다.”했다고 합니다.

 

돼지에게 금목걸이하고 구정물사료 한바가지를 던져주면 돼지는 금목걸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구정물 바가지로 덤벼드는 것이고, 키우는 개에게 돼지족발을 백만원권 수표에 싸서 주면 개는 수표는 주둥이와 앞발로 찢어버리고 속에 족발만 챙겨가는 것이듯, 중생에게는 구정물 바가지보다, 족발보다 더 좋은 것이 금목걸이와 돈인지라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중생의 업이고 근기일 것입니다.

 

원효대사가 동두천 자재암에서 혼자 정진하고 있을 때, 관음보살이 여자로 변해서 갖은 애교를 떨다가 원효대사가 흔들리는 마음을 떨치고자 떨어지는 폭포 웅덩이에 들어가 몸을 담그는 순간 그 여자가 거기까지 쫓아와 저도 목욕을 하겠다며 옷을 다 벗어 제끼자 원효스님이 화를 내면서 나무라자 그 여자가 하는 말이 “제가 왜 스님을 유혹합니까? 되려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저한테 나무라십니까?”하는 말에 원효스님은 "삼계가 오직 한 마음으로 분별되고 만물이 오직 인식되어지는 것이다" 라는 일체유심조의 도리를 터득했던 원효스님이었지만, 관세음 보살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분별경계 까지는 벗어나지 못한 원효스님의 마지막 남은 중생심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밝음도 존재하고 어둠도 존재하고, 부정도 있고 긍정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다 제 스스로 만들어내는 한 생각일 뿐입니다.

 

삼계가 유일심이라 중생에게는 그 업에 맞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바로 자기 주변을 어둡게도 하고 밝게도 변화시킬 뿐인 것이듯, 스스로가 주인 된 마당에 눈에보여지는 모든 사물과 현상을 색안으로 볼 것인가? 육안으로 머물러 살 것인가, 또 일상의 모든 일들을 중생심으로 헤아릴 것인가 혜안으로 헤아릴 것인가도 자기 스스로에게 달린 것입니다. 삼계유일심이란 말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결국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 받아들이는 세계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다가오는 2010년에는 모두 자기가 자기 자신의 주인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