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2. 21:1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추석에는 우리절에 모셔진 만년위패의 주인공들을 위해 합동차례(다례)를 지내드리게 됩니다.
차례는 원래 다례(茶禮)라 해서 예전에는 차 값이 금값보다 비싸고 귀해서 비싼 차를 우려 매월 음력 초하루나 보름, 조상의 생신일이나, 명절 등에 자신을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신 조상님들께 후손으로써 예의를 표해드리는 조상에 대한 지극한 예의였던 것입니다.
조상에게 드리는 연시제(年始祭)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 세배로 하되 봉공의 대상은 제주로부터 2대 봉공으로 하고 지방은 합사하는 경우에는 나란히 쓰고 예전에는 차를 올렸으나 해방 이후부터는 술을 따라 올리게 됐기에 헌작은 한번하고 축문은 생략하는 것입니다.
한식 차례는 청명 다음날이고, 추석 차례는 1년 농사에 거두어들인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드리고, 한식이나 추석 차례 역시 봉공의 대상과 제수 절차도 다른 명절 차례와 같습니다. 추석 차례에는 효심을 가지고 여름철 장마에 자란 풀들 벌초를 하고 장마로 인해 훼손된 묘소를 보수하는 것이 우리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미풍 양속이자 자신과 자식에게 가문이나 집안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진정한 교육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후레상놈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 되다보니 자식이 부모에게 폭행을 하고 부모가 자식을 내다 버리는 가족 간에 벌어지는 짐승보다도 못한 일들이 비일비재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본디, 상례(喪禮)는 사람이 죽었을 때 장사를 지내는 의식 절차를 말하고 제례(祭禮)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지내드리는 주자가례에 따른 의식절차의 예절을 제사(祭祀)라고 합니다만, 제사는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에 대한 애정과 추모, 부모조상님들에 대한 넓고 깊은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기리는 후손들의 효심의 표시인 것입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는 의의는 이러한 효성스러운 효심 외에도, 그 날을 기점으로 흩어져 사는 한 핏줄들이 모여 서로 단합을 하고 우애를 다지는 의미가 더 큰 것이며, 자식들에게는 우리는 청계천 다리 밑에서 살아온 족보가 아니라 버젓하게 배산임수한 마을에 뿌리를 둔 집안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육의 현장인 것입니다.
한식이나 추석에는 한잔의 정성으로 끝나지만, 제사를 지내면서 초헌, 아헌, 종헌이라는 술 석 잔을 올리면서 첫 잔에는 부모조상님들의 함자에 이웃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도록 잘 살아온 “보고의 의미”가 있는 것이며 둘째 잔인 아헌에는 제 자식들도 그렇게 교육을 시키겠다는 “다짐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셋째 잔에는 잘 살아갈 것이니 부모와 조상님들께서는 질 지켜봐 달라는 “염원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허례에 가까울 정도의 지나치게 많은 제삿날도 문제이긴 하나, 이것이 바로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깊은 뜻이 있는 것인데도 요즘은 마누라 잘못 얻어선지 제수 준비에 며느리 병 생긴다고 예수교 믿으면 제사 안 지내도 된다고 서양 종교로 바꿔버린 채, 제 자식들 비싼 학원 보내기 위해서는 별 짓을 다하면서도 정작 소중한 자식들의 인성교육은 깡그리 버려버린지라, 그렇게 키운 자식들은 결국에는 역시나 자기 어미가 그랬듯이 제 마누라 하자는 대로 동남아 관광시켜드린다고 제 부모 내다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식의 인성교육이나 정체성을 우습게 안 콩가루 집안 가정교육의 인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차례나 제사를 집안에서 지내드리기 보다 부처님의 도량에서 지내드리게 되면 부모조상님들에게는 두 가지의 공덕이 더 생겨나는 것입니다.
첫째는 살아생전에 가족들을 돌보느라 부처님 전은 고사하고 이웃들에게 변변한 공덕한번 못했던 박복생의 조상님들을 대신해서 종종진수로 여러 영가님들을 초청해서 대접을 해드리고 음복에 남은 음식은 사찰 주변의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공덕을 짓게 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살아생전에 경전 한번 제대로 읽어 보는 인연이 없었던 부모 조상님들께 경전을 독경해드려 어둡던 영혼의 귀를 열어드리고 이생에 대한 착심으로 무겁던 영혼에게 무상의 도리를 깨우쳐 드려 윤회를 벗어나게 해드리는 영원한 효도를 하게 되는 두 가지의 의미가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명절에 차례를 지내드리고 제사를 지내드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니 어찌 보면 바로 자기 자신과 그토록 소중한 자식들을 위한 인성교육의 현장인 것입니다.
아시겠지요?
그제 오후, 인지당이라는 ID를 쓰시는 김동섭 거사님께서 방문을 하셨습니다.
마침 제가 쉬고 있는 중에 오셨기에 다담을 나누던 중, 본인이 기도의 명훈가피를 입고 있음을 제게 말씀하면서 누누이 감사함을 표하고 계셨습니다.
언젠가 제가 법회 때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십만 독을 하시면서 가피를 입으셨다는 거사님 말씀을 드렸던 걸로 아는데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다라니 주력을 하고 계시는데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지셔서 주변사람들이 자기를 보더라도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입술도 안 움직이면서 다라니 주력을 하고 계신다며 현재 19만 2천송을 하셨다면서 기도 중에 당신이 얻은 명훈가피에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주신 스님께 일차로 이 기쁨을 말씀을 드리고자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가거나 방생을 갈 때 버스에서 기사님들이 틀어주는 모든 독경테이프가 바로 이 거사님의 회사에서 나온다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제가 묻기를 어떤 일이 있었냐고 묻자, 신묘장구 대다라니 19만송을 끝내는 날 새벽에 비몽사몽에 어떤 노스님이 가까이 오시기에 큰스님을 뵙는 것만 같아 서 자신이 하고 있는 다라니 주력을 자랑스럽게 노스님께 들려드렸더니 “그만하면 잘한다!” 하시면서 사라진 후, 거사님의 조부님께서 산에서 잡아왔다면서 산짐승 두 마리를 마당에 내려놓고 먹으라는 몸짓을 하고는 사라지시더란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서 깨고 나서도 참 이상하다? 하고 있었는데, 함께 사업하던 사람이 경쟁하는 사람을 견제하고자 거사님에게 증인을 서달라고 해서 서준 적이 있었는데 그 증거가 그 사람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증거로 서로 감정이 안 좋았을 거라고 여겼던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하는 말이 “지금 당신 법인 등록 상표가 재등록 신청을 하지 않아서 말소되어 있는데 그 상표를 당신이 절친하게 여기는 동업자가 당신도 모르게 자신이 상표등록을 하려고 한다면서 관계되는 모든 서류를 보내 줄 터이니 조사해보라며” 귀띔을 해주더란 것입니다.
설마? 하면서 관계기관에 문의해봤더니 그 모든 일들이 사실이었다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장과 회사가 하마트면 문을 닫게 될 뻔 했고, 심지어 사업을 계속하려면 자신의 로고를 자기도 모르게 재등록한 동료였던 사람에게 사용료를 지불해가면서 하게 되는 아찔한 상황이었다면서 단단히 버릇을 고쳐주고 모든 일을 정상화 시켜 자신의 권리를 다 찾았다는 것입니다.
절친했던 친구의 빚보증을 서주고 부도 처리되어 생전에 알지도 못하는 음반사업에 뛰어들게 되어 집도 날리게 되고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절박한 상황에서 저를 만나 제가 시키는 대로 죽기를 각오하고 다라니를 염송하던 중 갈마터널을 지나는 순간에 십만 송을 마무리 하자 분당에 집이 시세보다도 더 많이 받으면서 매매가 이루어지고 아들은 고려대에 편입을 하더니 그토록 입사가 어렵다는 기숙사에 입사하고 알오티시 훈련에 5등으로 마치고 딸은 교육대학에 재입학해서 입학 장학금을 받더니 이번에는 성적으로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스님 덕분이라서 제게 젤 먼저 인사를 하러 왔다기에 제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기도하는 신심을 심어주시는 것이 부처님께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들 같으면 아마 간증하러 다닌다고 난리를 피웠을 것입니다.
거사님은 자신의 사무실에 제가 관을 해주었던 불상을 모시고 출퇴근 시마다 지극하게 발원을 하고 길거리를 지나다 차에 깔려 죽은 축생들이 있으면 혼자서 염불을 하면서 치워주고 가기를 여러 번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상표를 훔쳐가려던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포용하려 애쓰고 원칙을 지키며 서로 잘 살아보자고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찌 생각하십니까?
지극하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두려울 것이 없고 언젠가는 발원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곳 주지 임기가 내년 3월에 끝나게 됩니다만, 이젠 저도 당간을 걸어둘 회상을 마련하려는데도 아직은 인연이 닿질 않고 있으나 조급하거나 답답한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습니다. 왜냐?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지극하게 하고, 부처님 밥값을 하고 있는 저에게 아직까지 인연도량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분명히 제가 가야할 인연처가 있음을 암시 하는 것만 같고 제가 할 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저와 인연된 여러분들께서는 새로운 불교를 접하셨으리라 스스로 자위를 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저만의 생각입니까?
이곳에서 저와의 인연이 아직은 남아있으니 부처님께서 2552년이 지난 후대의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셨던 “일체가 마음 한 번, 생각 한 번에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지고 내 마음 안에서 내가 끝없는 윤회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깨달아 스스로가 윤회를 벗어나고 행복의 주인이 되는 지혜로운 방법을 함께 공부해 나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요즘,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하고 있습니다.
촛불시위 때, 불신으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로 시민들에게 사정없이 물대포를 쏘는 경찰차 앞에서 만에 하나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기에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젖먹이 자식을 유모차에 태워 시위 현장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얘 엄마들을 입건해서 수사한다는 한심한 정권에 춤을 추고 있는 경찰들의 작태가 한심스럽기까지 한, 어지러움에다 세계적 대공황을 가져 올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금융부도 직전의 미국경제가 우리 사회에 어떤 태풍으로 다가올지 걱정스러운 총체적 난국에 지극히 미미한 소시민에 불과한 우리는 어찌 살아야만 할 것이고 어찌해야 지혜롭게 이 어려움을 피해갈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 가진 것 없는 사람은 지성이면 감천이라, 오직 간절한 기도밖에 없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했듯이 6월에백일기도 입제 법문에 말씀드렸던 “자성이 청정하면 심외무법이라,”는 말은 내 마음을 벗어난 밖에서는 다른 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내가 살아있음으로 삼라만상이 존재하고 내 안에 팔만사천의 온갖 번뇌와 답이 들어 있고 내가 살아 있어야 부모형제와 처자식이 내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듯,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 있는 내 안에 나의 자성불과 함께 존재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내가 살아 있기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존재의미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지만 이리도 점점 어려워지는 이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어차피 살아가야 하는 이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를 통해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마음마저도 혼탁해지고 어지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혜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TV 동행이라는 프로에서 한 때는 집도 몇 채씩 소유하고 잘 나가던 사람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하면서 빚더미에 올라 앉아 지금은 단칸 월세 방에 어린 자식들 데리고 살면서 부인은 길거리에 옷가지 늘어놓고 팔다가 단속반이 오면 도망쳐야하고 옆집 가게 앞으로 이동이라도 할라치면 그 가게 주인은 치워달라고 온갖 불평을 해대고 남편은 겨우겨우 돈 백 받는 직장에 다니면서 번 돈으로 나머지 빚 갚는데 다 털어 넣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한 때, 잘나가던 때에 이런 시련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이나 해보았겠습니까?
한 치 앞도 모른 채, 살아가는 중생들인지라 중산층이 무너져 버린 지금 현실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있고 이런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린 자식들을 차에 태운 채, 저수지로 들어가 버리고, 자식을 안고 지하철에 뛰어드는 뉴스들을 자주로 보고 들으실 것입니다.
우리 곁에 다가오는 이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이겨내 보고자 전력이 지저분하고 썩은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의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뽑아준 이명박 대통령은 빈부의 격차를 해소시키고 경제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지는 못할망정, 공직사회는 물론 곳곳에서 들어날 정도로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종교차별로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이 어지럽혀져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은 세계적인 상황인지라 서로 격려하고 다독이며 함께 이겨나가기 위해 국민화합의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새마을 운동을 일으키거나 어릴 적, 시골마을 입구에서 눈에 자주 띄던 4-H운동이라던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을 의미한 지(智) 덕(德) 노(勞) 체(體)의 농촌지도자 육성운동을 새롭게 일으켜도 부족한 판에 장로가 대통령이 됐다고 헌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이 나라를 기독교 공화국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작태는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국가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일치단결을 이끌어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맨 날 앞에 정치한 사람들이 잘못해서 지금 이렇다는 식의 변명이나 해대면서 사회는 점점 어지러워지고 살기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의 법문은 예수님이 이 순간에 계신다면 한국의 기독교 장로대통령에게 뭐라 하실 것인가도 궁금하지만. 부처님도 지금 이 자리에 계신다면 이 어려운 난국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다고 해도 이미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동업으로 대다수가 찍어서 당선된 선거결과의 공업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해주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법화경 보문품에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 천만 억의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하는 대목이 나오듯이, 지금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는 것은 동업중생으로써 공업의 결과라 할지라도 겪어내는 각자의 마음만큼은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이 결여된 믿음이 지나쳐 광신에 빠져들어도 안 되는 것이고, 소망이 지나쳐 자기만의 기복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될 것이며, 반쪽 사랑이나 지들끼리 만의 위선적인 사랑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현 이명박 정권에서는 이런 비이성적인 기독교 신앙인들이 저지르는 광신적인 행위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 현실에서 우리 불자들은 그래도 부처님 법을 알기에 단 한 가지,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자성불의 생명력이 눈을 뜰 수 있도록 시방세계에 가득하신 불보살님께 가피를 청하는 기도행자가 되어 일상을 기도하는 마음자세로 생활하게 된다면 자신의 내면이 평안해짐은 물론 가족 모두가 삶의 질이 달라져 갈 것이며 자신은 업력으로 인한 온갖 장애를 소멸함과 동시에 일체중생에게 기도의 공덕을 회향하는 발원을 하는 순간 우리는 동체대비의 부처님의 세 가지의 삼종가피가 함께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지극하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실 때, 얻어지고 증득할 수 있는 세 가지의 가피력은 현실에서 바로 가피를 입어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현증가피(顯證加被)가 있고 비몽사몽의 예시적인 꿈을 통하여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 예시해주는 몽중가피(夢中加被)도 있고,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언제나 항상 은근하게 보호를 받으며 달라지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명훈가피(冥熏加被)의 세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삼종가피(三種加被)중에 화급하고 절박한 경우에 처한 사람이 간절하게 온 몸을 바쳐 기도를 할 때, 불보살님께서 현실에서 바로 자비를 나타내어 가피력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바로 현증가피인 것입니다.
또, 젊어서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부처님 법을 알고 온갖 기도처에서 기도 정진하셨던 보살님들은 가끔은 경험해보셨을 것입니다.
지극하게 기도를 하다보면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왠, 노스님이 나타나서 뭔가를 주거나 무슨 말을 하거나 하는 꿈을 꾼 적 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자기의 원이 그대로 성취되는데, 이를 일러 불보살님의 몽중가피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발등에 불이 덜어진 다급한 일을 당한 불자라면 제가 하라고 안 해도 하시겠지만, 현증가피나 몽중가피를 입을 때까지 일심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염불기도는 꼭 소리를 내어서 해야만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염불은 “생각 念자, 부처 佛자, 염불(念佛).” 꼭 입으로 소리를 내어 부르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일념으로 부처님을 열심히 간절히 생각하면 참된 염불인 것이고, 생각하고 매달리는 마음이 간절하면 부처님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가피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현증가피나 몽중가피를 받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기도를 생활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활하는 가운데 근심걱정 없고 큰 질병 없이 안락과 행복의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러한 경우가 바로 어두울 冥자에 쐬일 熏자를 쓰는 명훈가피에 속한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시기도 예불문 끝에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차공양 명훈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唯願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此供養 冥熏加被力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하는 대목을 했잖습니까?
풀어서 말씀드리면 “오직 원하옵건대 다함없는 삼보께서는 대자대비로써 저의 정성스런 이 공양을 받아들여 은근한 가피력을 내려 주옵소서. 원하오니 법계의 모든 중생들이 자타가 없이 한꺼번에 부처를 이루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대목입니다.
한 가지 덧 붙여 말씀드리자면 법당에서 사시기도 때가 아니라 조석예불을 올릴 때는 수차공양(受此供養)이 수아정례(受我頂禮)로 바뀝니다. “수아정례”의 뜻은 “정성스런 저의 절을 받아주시어 은근한 가피력을 내려 주옵소서.”하는 뜻인 것입니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가거나 오거나 설거지를 하던, 청소를 하던, 화장실에 앉아있던, 무슨 일을 하든지 불보살님 한 분의 명호를 정해서 염염이관세음(念念而觀世音),생각 생각을 불보살님과 함께하게 된다면 자신이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머무르는 곳곳마다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명훈가피를 받게 되는 지름길이자 이 험한 난세를 원만하게 벗어나가고 이겨나가는 지혜인(智慧人)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었을 때, 생활실천 불교인이 되는 것이고 이렇게 될 때 언제나 자신과 더불어 가족 모두가 불보살님의 가피력이라는 보호를 받고 살게 되어 집안에 어려운 환난은 저절로 피해 가고 기도하는 당사자는 항상 기쁘고 편안하고 즐거움의 일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기도가 나와 내 가족과 더불어 생명이 있는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회향되기를 발원했을 때, 이기적인 자기들만의 기도가 아닌 진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입적하신 광덕스님께서는 불교의 가피는 현실에서바로 발복을 얻는 현증가피도 있지만 대개는 명훈가피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업장은 태산만한데 쥐꼬리만큼 기도를 하고선 가피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쉬지 않고 순간순간 처처에 念念이 기도를 하다보면 은연 중 가피가 쌓여 자기도 모르게 고비를 넘기게 되는 것이니 기도 가피가 없다고 조급해 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이루어짐이 더딜 때는 자신의 업장이 두터움만을 탓하고 일념으로 오로지 서원을 세우고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쉬지 말고 꾸준히 염불수행을 해나갈 때 어느듯 알게 모르게 다가온 불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우리는 이러한 총체적 경제난을 피하고 이겨나가게 될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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