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15. 21:09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오늘 법문은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불자들도 막상 이런 경우에 닥쳐 혼란해 하는 경우들이 많을 것이라 여겨져 이것을 주제로 법문을 하고자 합니다.
법문에 앞서 오늘 오신 박거사님을 오늘 법문의 실재 사례로 들어도 된다는 허락을 얻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법회에 나오신 박거사님은 지천명이라 세상살이 흐름을 알만한 연세가 되신 분이십니다만, 이런 분이 직접 겪으신 일이기에 법문의 소재로 삼아 모두에게 타산지석이나 반면교사로 여기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 동안 부처님 법을 배워 신행생활을 해 오신 선업의 씨앗들을 지니고 계신 여러분들이시기에 어떤 상황에서 만나는 중생일지라도 우리는 자타가 이롭게 될 수 있는 지혜로운 처신의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드리는 박거사님과 보살님은 엊그제 저를 찾아온 인연으로 그 동안 그토록 힘들게 했던 모든 업을 다 벗어버리시고 전번 주부터 법회에 참석하시게 되셨는데, 박거사님은 상갓집만 다녀오시면 그 날부터 괜시리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겪으시는지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지내시던 중, 얼마 전 친구의 아버님이 작고하셔서 장례식장엘 다녀오고 나서부터 또다시 예전처럼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산란하고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으시다가 문득 우리절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오셨는데 그 때 저는 외출해서 이미 양지 IC 쯤을 다가고 있었는데 후원보살님이 전화로 젊은 부부가 오셨는데 너무 힘들게 우리절을 찾아오신 분들이라고 하는지라 나중에 다시 오시라고 하고 제 할 일을 하러 가려다 다시 차를 돌려 절에 왔더니 만나 뵙게 된 분이 바로 박거사님 내외이셨습니다.
그래서 쭉〜 이야기를 들었더니 거사님께서 빙의가 되신 상황이더란 말입니다.
빙의(憑依)란 기댈 빙자에 의지할 의자를 쓰는데 죽은 영가가 자신을 어떻게 해줄 인연을 찾아 그 인연에 의지해서 자기의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들러붙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처한 박거사님의 상황인지라 보살님께 묻기를 천도재는 해드렸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동안 어디 가서 물어보면 귀신이 붙었다고도 하고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고들 해서 그걸 벗어나려고 천도제 잘 지낸다는 유명하다는 데는 다 찾아가 없는 돈에 수없이 천도제를 지냈는데도 그때 잠시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빙의된 영가는 상갓집에 갔던 친구 아버진데 자기 자식들이 한 놈도 자기를 위해 제를 지내 줄 자식이 없으니 박거사님께 빙의되어 자기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는 거라고 했더니, 그 친구의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교회를 다녔고 자식들도 교회를 다니는데 유산은 자식들에게 엄청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막상 죽고 보니 자기를 어찌 해줄 사람은 자식의 친구인 것 같아 살아생전에 아들처럼 서로 아꼈던 인연으로 아들의 친구인 박거사님에게 의지해서 자기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다보니 그리 힘든 거라고 그 분들을 위해서 천도제를 해 주셨냐고 물었더니 보살님 말이 자기집안 조상천도만 열심히 했다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는 막 살아가는 인생살이 아닌 담에야 체면도 있고 사회적인 자기 처신도 있어야 하기에 본심이나 온갖 욕심은 숨겨둔 채, 적당히 이중인격으로 살다갈 수는 있지만, 죽은 다음에는 그런 온갖 체면굴레가 다 벗겨져 본능만 남아 감춰져 있던 잠재의식과 말라식에 의해 욕구로 가득해져 마치 노망난 노인처럼 살아생전의 체면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어둡고 음한 기운이 된지도 모르고 생전의 업식에 끄달려 가족이랍시고 가까이 오게 되면 양의 기운을 침범하게 되어 이승 사람의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이 바로 빙의 현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천도제를 하기 좋은 길일을 찾아 엊그제 그 친구 아버님 영가의 천도제와 박거사 집안의 여러 영가들의 제를 지내드리고 당일 밤에 구병시식을 해드렸더니 어제 오전에 박거사님이 인사하러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전에 천도제를 많이 지내봤지만 이렇게 개운해보기는 처음이라면서 어제 새벽 비몽사몽에 꿈을 꾸는데 방안의 이불 속에서 하얀 개 두 마리가 밖으로 나가더니 잠시 후에 서너 명의 남자들까지 밖으로 다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를 돌아다보니 화장실 변기의 하수구가 막혔는지 오물이 넘쳐서 질펀한데 그걸 다 치우고 이불 수십 채에 오물이 묻어 있어 그걸 다 빨아서 깨끗이 해두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법문은 실재사례를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박거사님께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질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아함경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하게 되면 저한테도 별로 안 좋고 듣는 여러분들께서도 전설 따라 삼천리로 듣는 수준이 되기에 삼가야 하나 오늘 오신 박거사님은 자신이 직접 겪으신 체험인지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병증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사상체질이라는 체질감별법이 있듯이, 전생에 식이 맑은 공부를 했던 사람이나, 기도 생활을 많이 했던 사람들, 또는 선천적으로 뇌파가 예민해서 영계와 교감이 잘되는 오컬리스트적인 영매체질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바로 제사장을 뜻했던 단군이 의성이 되어 당골, 당골래라 부르는 요즘 말로 샤먼이라고 하고 무속인이라고들 합니다만, 이런 사람들은 남의 굿하는데 곁에만 가도 바로 반응이 와서 신 내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하는 가운데 집안에 길흉사가 있는데 가까운 이웃들의 장례에 조문하러 안 가볼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참 난감한 경우가 될 것이기에 오늘 법문은 조문객으로 조문을 할 때, 불자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와 조문을 마치고 나오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씀드릴 것이니 귀담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엔 상갓집에 문상을 가더라도 종교가 달라 곤혹스러울 경우가 있는데 어디까지나 고인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고인을 위주로 조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나 천주교 집안에 조문을 갔을 경우엔 입례라해서 선 절로 재배를 합니다.
남녀가 다 영정에 국화꽃을 놓되 줄기가 영정 쪽을 향하도록 놓고 한걸음 물러서 고개를 45도 정도 깊숙이 숙이고 10초 정도 머무는 조상을 한 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문상객의 우측 편에 있는 상주들에게 문상 맞절을 하게 됩니다.
이 때 고인에게 절을 하는 것은 조상이라 하고 상주들에게 하는 절을 하는 것은 문상이라고 하는데 고인에게 남자는 재배라 해서 2배, 여자는 4배를 했으나 요즘은 재배로 끝나는 시대가 됐습니다.
고인에게 조상의 예를 다했다면 문상이라 해서 상주와 맞절을 한 번 하고 애도의 뜻을 나눕니다.
(고인이 편하게 떠났거나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호상이라 다행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삼갈 일입니다.)
고인에게 재배를 하는 이유는 고인은 음이고 문상객은 양이기에 절을 두 번 하는 것이고 상주를 향해 문상 절을 하는 이유는 상주의 조상들에게 상주를 잘 보살펴달라는 의미로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당에서 영단에 절을 할 때는 세번 하는 절도 있고 두번하라는 절도 있습니다.
두번 재배하는 것은 일반적인 유교의 법도이고 세번을 하는 것은 법당의 영단을 보게되면 아미타부처님의 탱화가 있거나 인로왕보살의 번이 있는 경우들이 있으므로 굳이 두번과 세번의 절 횟 수에 개의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자, 이렇게 문상을 법도에 맞게 행하고 왔는데 박거사님처럼 영가가 주착이 되어 빙의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 불자들은 안 가자니 그렇고 가자니 찝집하고 불편한 경우에 문상을 갈 때, 지혜롭게 문상을 마치는 방법을 일러드리겠습니다.
먼저, 고인의 영정 앞에 가서 국화꽃을 올리고 문상을 할 때나 절을 할 때, 마음 속으로 고인에게 고하길 “부디 생전의 업으로 인해 선도의 길에 드시길 바랍니다.” 하고서 종교를 초월해서 고인께서 악취에 드시는 일이없도록 “멸악취진언(滅惡趣眞言): 옴 아모카 미로자나 마하 모나라 마니바나마 아바라바라 밋다야 훔”이나 "왕생정토진언(往生淨土眞言):나무 아미다바야 다타아다야 다지야타 아미리 도바비 아미리다 싣담바비 아미리다 비가란제 아미리다 비가란다 가미니 가가나 기다가례 사바하"를 세 번 정도 해주고 상주 쪽을 향해 맞절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문상을 마치고 식장을 빠져 나올 때, 상주의 배웅은 없는 것이므로 식장 입구에 뒤돌아서 고인을 향해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 타야 훔”을 세 번 해주시고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인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드리면 됩니다.
이렇게만 하신다면 생전의 절친한 인연이 있었다 해도 본인의 상문으로 인하여 빙의되는 일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피치 못해 가야할 문상에 꺼림칙하게 가는 문상일지라도 불자로서 떠나시는 고인을 위해 서로 좋은 선업을 짓는 인연을 지어 자리이타의 길로 선업을 쌓으시도록 하시고 만일에 산소에 까지 가야할 상황일 때는 원효대사께서 했던 방법대로 고운 모래나 흙을 한 바가지 퍼 놓고 그 속에 양 손을 넣고 눈을 감은 채, 광명진언을 백팔 번을 외우고선 그 모래나 흙을 산소에 뿌려 주면 될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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