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로부터 벗어나 행복을 누리는 지혜

2010. 1. 22. 20:15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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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빨리 가는 세월을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엊그제 점심공양에 지인의 별청을 받고 서울에 나갔었습니다.


맘먹고 초청을 한, 자리인지라 멋들어진 샹들리에 등불 켜진 커다란 레스토랑에 나가보니 정말 먹을 것도 많고 접시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위기를 깰까봐 조심하면서 혼자 생각에 대한민국은 아직도 불경기는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들 중에는 일 년에 한번 큰 맘 먹고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천차만별의 다양한 사람들이 왔을 것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극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너무 넘치게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게 무슨 넘치게 살고 있냐고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멀리 볼 것도 없이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이나, 가까운 북한의 주민들, 저 아프리카의 내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우리 살아가는 생활수준이 감히 생각조차도 떠오르지 않고 상상조차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점심공양을 간 그곳을 그들이 보게 된다면 아마 말로만 보고 듣던 극락이나 천국으로 여기지 싶었습니다.


중생은 넘치게 살게 되면 타성에 젖게 되어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한국사회의 병들어 가는 과소비문화에 떠밀려서 물고기가 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가고, 우리 모두가 아무런 조건제약 없이 들여마시는 맑은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듯이, 우리는 정작 가장 소중한 자신의 삶의 이유나, 가족들의 존재가치,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세월에 떠밀려 숨 끊어지게 되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생각들을 해 볼 겨를도 없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식사하는 도중에 보이는 손님들의 대부분이 다 아줌마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길, 햐! 아줌마들 천지네, 했더니 동석하신 분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요즘 방콕하고 있는 여자를 뭐라고 하는지를 아냐고 묻기에 현모양처가 아니냐고 했더니, 뭐란 줄 아십니까?

요즘 사람들이 말하길 여자가 대낮에 집에 있으면 어디가 아픈 환자가 아니면, 능력이 없거나 성질 못된 사회부적응자라서 그렇다고 한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가 이렇게 미처 돌아가고 있으니 이 속에서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비정상으로 취급되는 속에서 우리는 서있는 것입니다.


이런 속에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된들, 우리의 미래가 어찌 되겠습니까?

우선 먹기는 곳 감이 달다는 속담처럼, 지금 살기 어려운 경제이기에 경제 대통령을 뽑자고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 올바른 대통령을 뽑긴 뽑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인격자가 누가 있습니까?


거짓말을 밥 먹듯이 예수님 이름을 앞세운 장로 후보에 거기다 장로 대통령 만들어 보겠다고 앞장서는 기독교회 목사님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와 이 시대의 정신가치가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차떼기 부정을 거침없이 한 사람들을 택해야 합니까?


정몽주의 앞 뒤 꽉! 막힌 일편단심민들레가 있다면, 방원이의 “하여가”는 자칫하면 정체성을 소각시키는 위험한 정신세계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유경이라는 재미있는 경전이 있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말씀하신 모든 형태의 가르침들을 살펴보면, 중생의 근기에 맞게, 알기 쉽게, 비유를 들어서, 그리고는 질문에 반문을 하십니다.


가르침의 내용이나 방식에 따라서 아홉 가지(九分敎), 또는 열두 가지로도 분류하는데(十二分敎) 어느쪽에든 포함되는 여러 가지의 비유(avadana譬喩)를 들어 설하신 경에 백유경(百喩經)과 출요경(出曜經)이 있는데, 백유경은 이를 백비경(百譬經)ㆍ백유집(百喩集)ㆍ백구비유경(百句譬喩經),또는 백구비유집경(集經)이라고도 불리는 경전입니다만, 백유경의 저자로는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셨다는 설과 승가사나(僧伽斯那)가 짓고 그의 제자인 구나비지(求那毘地)가 492년에 한역했다는 설 등이 있지만, 승가사나가 지었다고 경전의 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유경이라는 경전에 보면 외눈달린 원숭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잣집에서 애완으로 살던 원숭이 한 마리가 주인의 손에 끌려 배를 타고 먼 여행길을 떠나게 되는데, 여행 도중에 풍랑을 만나 배는 파선되고 주인과 헤어져 겨우 판자조각을 잡고 있던 원숭이는 표류하다 어떤 섬에 다 달았는데, 정신없이 모래사장에 쓰러져 있다가 기력을 찾게 되어 주변을 둘러보니 외딴 섬이었고 멀리서 자신과 같은 원숭이들의 소리가 들리자 살았다는 생각에 원숭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가는 길에 우물에서 물도 마시고 열매도 따먹으며 기력을 회복해서 원숭이 무리들이 있는 곳엘 갔더니 거기에 원숭이들은 죄다 이마 한가운데 눈이 하나만 달린 원숭이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낯선 원숭이가 나타났는데, 이마에 눈이 두개 달린 원숭이가 나타나자, 다들 경계하다가 서로 수군대기를 야! 어디서 두 눈 달린 병신원숭이가 왔다고 서로 수군수군 거리다가 그 중에 대장격인 원숭이가 두 눈 달린 원숭이게 말하기를 야! 너 병신 너는 어디서 왔는데 이렇게 병신이냐? 하고 묻자, 이 두 눈 달린 원숭이가 생각하기를 무슨 소리냐? 내가 알기론 외눈박이들이 병신이지! 하자, 갑자기 외눈달린 원숭이들이 떼거지로 모여들어 두 눈 달린 원숭이를 집단폭행을 해버립니다.

감히, 어디서 굴러들어온 것이 자기들을 병신으로 취급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 날 이후로, 외눈달린 원숭이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고 같이 놀아주기는커녕, 열매도 못 먹게 하고, 온갖 훼방을 놓으며 병신이라 놀리자, 외로움과 따돌림에 못이긴 두 눈 달린 원숭이는 바닷가에 쪼그려 앉아 자신의 삶을 비관하다말고 갑자기 곁에 있던 나뭇가지를 들고 자신의 두 눈을 찔러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서 외눈박이 원숭이들의 무리에 가까이가자 외눈박이 원숭이들이 말하길, 어! 저 병신이 우리와 같아졌네! 하면서 한 무리로 받아들였답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자기 한쪽 눈을 찔러버리는 원숭이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자기 합리화로 말입니다.


하지만, 팔리어로 “경(經)들의 모음”이라는 뜻을 가진 팔리어 경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경전의 하나인 경장의 소부(小部 KhuddakaNikāya)에 실려 있는 “수타니파타”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 세상은 오늘 이 순간이라는 현재가 있으면 어제나 작년이라는 과거가 있고, 내일이나 내년이라는 미래가 있습니다.


금생을 살아가는 것은 전세살이 사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고, 소유하고 있고, 내 것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갈 때는 다 놓아두고 가야할 잠시 임대차한 것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무소의 뿔처럼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에 대해서 취하지도 말고 빠져들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등 돌릴 필요는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눈을 찔러버리는 어리석은 원숭이가 되기보다는 무리 속에 있을 때는 한 쪽 눈을 가리고 홀로 있을 때는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가는 지혜로운 원숭이가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가”의 주인공이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초기의 경전인 “성구경”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구경(聖求經)은 중부경전 26권에 실려 있습니다.


중생들이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번뇌에 시달리는 근본의 원인은 바로 오욕과 칠정에 사로 잡혀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구경”에서 말하는 오욕을 극복하는 가르침을 전해드리겠습니다만, 그것도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욕망의 대상은 다섯 가지(色,聲,香,味,觸)이다. 

이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으로 식별하여 좋아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사랑할 만한 모습을 하고, 애욕을 불러일으키고, 정을 느끼게 하는 색깔(色)과, 로써 식별하여 좋아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사랑할 만한 모습을 하고, 애욕을 불러일으키고 정을 느끼게 하는 음성(聲), 로 식별하여 좋아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사랑할 만한 모습을 하고, 애욕을 불러일으키고 정을 느끼게 하는 향기(香), 로 식별하여 좋아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사랑할 만한 모습을 하고, 애욕을 불러일으키고, 정을 느끼게 하는 맛(味), 으로 식별하여 좋아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사랑할 만한 모습을 하고, 애욕을 불러 일으키고, 정을 느끼게 하는 느낌(觸)이 있다.


비구들이여! 실로 이러한 다섯 가지가 욕망의 대상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을 막론하고 이러한 다섯 가지 욕망에 얽매이고 취해 있고 탐착하며,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지혜도 없이 즐겨 누리는 이들은, 불행과 재앙을 만나고 악마의 포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비구들이여! 예컨대 사슴이 덫에 걸릴 때 불행과 재앙을 당하고, 사냥꾼에게 사로잡힌 채 달아나지 못한다.

그같이 비구들이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이라도 이러한 다섯 가지 욕망에 얽매이고 취하고 탐착하며, 허물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지혜도 없이 즐겨 누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불행과 재앙을 만나고 악마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들이라도 이러한 다섯 가지 욕망에 계박되지 않고 취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으며, 허물을 보고 벗어나는 지혜를 얻어 즐겨 누리는 이들은, 이렇게 불행이나 재앙을 만나지도 않고 악마의 포로가 되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사슴이 덫에 걸리지 않았을 때에는 불행이나 재앙을 당하지도 않고, 사냥꾼이 오더라도 생포되지 않고 달아날 수 있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들이라도 그러한 다섯 가지 욕망에 계박되지 않고 취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으며, 허물을 보고 벗어나는 지혜를 얻어 즐겨 누리는 이들은, 이렇게 불행이나 재앙을 만나지 않고 악마의 포로가 되지도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유컨대 마치 사슴이 마음 놓고 들이나 숲,산을 거닐고 앉고 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사냥꾼이 추격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들이 모든 욕망을 떠나고 악(惡)을 떠나고,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려(思慮)를 떠나게 되면 기쁨과 안락함의 경지, 초선(제1단계의 禪定)에 도달하여 노닐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거친 사유, 미세한 사려를 청정히 하고 마음에 때를 여윈 상태가 되어 거친 사유도, 미세한 사려도 없게 되고, 정신통일에서 얻은 기쁨과 안락함의 경지, 제2선(第二禪)에 도달하여 노닐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고,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기쁨을 떠나 마음을 평정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명확하게 마음을 집중하여 몸에서 즐거움을 느낌으로써 성자들이 마음을 평정하고, 생각을 바로하여 즐겁게 노닐고 있다. 고 하는, 제3선 (第三禪)에 도달하여 노닐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단절하고 이전에 느꼈던 기쁨과 근심도 소멸함으로써,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고 마음의 평정함을 지니도록 생각을 바르게 하는 청정한 경지, 제4선(第四禪)에 도달하여 노닐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관념을 소멸하고 또한 모든 관념을 작용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허공은 끝이 없다고 깨달은 선정의 경지(虛空無邊處)에 도달하였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허공은 끝이 없다고 깨달은 선정의 경지를 초월하여, 인식작용은 무변하다고 깨달은 선정의 경지(識無邊處)에 도달하여 노닐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인식작용은 무변하다고 깨달은 선정의 경지를 두루 초월하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선정의 경지(無所有處)에 도달하여 노닐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선정의 경지를 두루 초월하여,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의 경지(非想非非想處)에 도달하여 노닐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의 눈을 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고 깨달은 선정의 경지를 두루 초월하여, 마음의 작용이 모두 끊어진 선정의 경지(想受滅)에 도달하여 노닐뿐 아니라, 지혜로써 모든 것을 보고 번뇌를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는 악마를 눈멀게 하고 악마의 눈을 흔적도 없이 끊어, 악마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사람, 이 세간에서 집착을 건너 해탈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안심하고 다니며 서 있고 누울 수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악마에게 쫓기지 않는 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설하셨다. 그들 비구들은 환희하고, 세존께서 설하신 바를 찬탄하였다.


이것이 바로 성구경에서 말하는 오욕락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가르침입니다.


물 속의 고기는 물 속의 먹이만 먹어도 평생을 먹을 수 있을 것인데 별식이나 특식을 탐하다가 낚시에 걸려 생명을 버리는 것 처럼, 삼성의 뇌물을 먹은 공무원들의 모습도 이와 똑같을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저지르지 않으면 걸림 없이 편한 것인데, 저부터도 중생인지라 그 경계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모두가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욕구들로 인한 번뇌로 부터 자유로워지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번뇌로부터 벗어나 행복을 누리는 지혜

경허스님의 참선곡을 한번 읽어보면 맨 처음에 나오는 첫 대목에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의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 손가?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또, 우리에게 삼천갑자 동방삭이로 잘 알려진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문인이었던 만천(曼倩)은 기언기행(奇言奇行)으로 무제(武帝)의 총애를 받아 수십 년간 측근으로 있으면서 태중대부급사중까지 올랐던 사람으로 전설에 의하면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를 먹고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만, 원래 삼십갑자(30☓61=1830)를 살게 되어 있던 동방삭의 수명이 다해 데리러온 저승사자에게 동방삭이 이승에서 자신이 해줄 거라곤 이것밖에 없다면서 대접을 융숭하게 해주자 대접을 잘 받은 저승사자는 술기운에 취해서 동방삭의 수명을 삼천갑자로 고쳐주게 됩니다.

그러나, 삼천갑자(3000☓61=183.000)를 살고 난 동방삭이 저승으로 들어올 때가 됐는데도 해동금강산 만물상으로 숨어들어 붙잡히지 않자 저승사자가 마고할미로 변해서 동방삭이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방삭이 지나가다 새까만 숯을 물에 씻고 있는 이유를 묻게 됩니다.

마고할미로 변한 저승사자가 말하길 숯을 씻으면 하얗게 된다 해서 씻는다고 대답하자, 듣던 동방삭은 어처구니 없어하며 자기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처음 듣는 소리라고 말해 버리고 결국 동방삭임이 들어나 잡혀가게 되고 숯을 씻었던 곳이 바로 금싸라기 땅을 끼고 있는 탄천입니다.


이렇게 삼천갑자를 곱하기 일 갑자가 61년이니 한번 곱해보세요. 전자계산기로 계산했더니 183.000년입니다만, 이렇게 오래 살았다는 동방삭이도 결국은 갔고, 왕이라는 칭호가 성에 차지 않아 전설의 삼황오제에서 皇字와 帝字 두 글자를 따서 皇帝라하고 자신이 첫 시작이라 해서 始皇이라해서 천하를 통일했다던 진나라 31대왕으로 불로초를 구하던 영정 진시황도 50세의 나이로 죽어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동방삭이도 못되는 우리네 부질없는 인생사 3만6천5백일 백년도 채 못 살 것이니, 대통령 한번 해보겠다고 애 간장 다 녹아드는 후보들의 모습을 보니 중국 청나라 3대 임금인 세조로, 중국천하를 통일한 후, 한편의 시를 남기고 출가했다던 순치황제의 출가시를 어젯밤 혼자서 무릎장단에 읽었습니다.  들려드리겠습니다.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곳곳이 총림(叢林)이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 대장부 어디가서 밥 세 그릇 걱정하랴.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아지 마소.       

가사 옷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운데, 이내 몸 중원천하 임금노릇 하였건만,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인간의 백년살이 삼만 육천 날이지만 풍진떠난 명산대찰 한나절에 미칠 손가.       

당초에 부질없는 한 생각 잘못으로 가사장삼 여의고서 곤룡포를 감게 됐네.       

이내 몸을 알고 보면 서천국(西天竺인도)의 스님인데 무엇을 반연하여 제왕가(帝王家)에 떨어졌나.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때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런가.       

자라나 사람되어 잠깐 동안 나라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누굴런가.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 만리의 이 강산은 한판 노름바둑이라, 대우씨(大禹氏)가 구주(九州)긋고 탕 임금은 걸(桀)을 치며 진시황이 육국(六國)먹자, 한태조(漢太祖)가 새 터 닦네.       

자손들은 제 스스로 자기 살 복 타고나니 자손들을 위한다고 마소노릇 그만하소.       

수천 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한줌 흙에 불과하네.       

올 때는 기뻐하고 갈 적엔 슬퍼하니 공연히 인간세상 한 바퀴를 돌았구나.       

애당초 오잖으면 갈 일조차 없으리니, 기쁨이 없었는데 슬픔인들 있을손가.       

나날이 한가로움 내 스스로 알 것이니 풍진에 있더라도 온갖 고통 여위리라.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요, 몸 위에 입는 것은 누더기 옷뿐이라,  오호(五湖)와 사해(四海)에서 자유로운 손님되어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세속 떠나 출가하니 쉬웁다고 하지 마소.       

숙세(宿世)에 쌓아놓은 선근(善根)없인 아니 되네.

十八年 지내도록 자유라곤 없었으니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더냐. 내 이제 손을 털고 산으로 돌아가니 천만 가지 근심 걱정, 마음 쓸 것 하나 없네.)


순치황제의 출가시를 혼자서 무릎장단에 읽으며 대선에 나온 후보들을 바라보노라니 혼자서 쓴 웃음만 나오데요.

그래, 저리 살다 당선된 사람은 부와 명예를 한몫 잡고 낙선된 사람은 그 엄청난 스트레스에 없던 병도 생길 것이라 생각하니 가련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진 사람은 근심걱정이 하나도 없을 것 같지만, 가진 만큼 번뇌와 고뇌 또한 비례하는 것이고, 안 가진 게 아니라 못 가진 사람에게도 못 가진 만큼의 괴로움과 번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업보중생인지라 지금 내 자신이 살아가는 삶은 내가 지은바 공덕과 내가 뿌린바 인연과보에 의한 것임을 자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업보차별경”에도 나오지 않습니까?


업보차별경의 맨 처음이 어떻게 나옵니까?

“이와 같음을 내가 듣사오니 한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기수급고독원에 계시더니, 도제야의 아들 수가장자(首迦長者)에게 말씀하시되 내 오늘은 너를 위하여 일체 중생의 선악 업보가 각각 다른 이유를 말하리니 잘 들어 보라 하신대, 장자 즐거이 법설 듣기를 원하거늘,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상 일체 중생들은 항상 그 짓는바 업에 얽매이고 그 업에 의지하며 또한 그 업력을 따라 이리저리 윤회하여 상 . 중 . 하의 천만 차별이 생기게 되나니 내 이제 일체 중생들의 업력을 따라 천만 차별로 과보 받는 내역을 말하리라.” 하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어떤 삶의 자세로 살아 가야하는지를 말씀드리고 자신의 삶이 이생에서 끝난 다음에 제가 49제를 지내드릴 때, 그 다음 아홉 세계가 열리는 구품세계를 말씀드리고자합니다.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잃고 난 후에 그 소중함을 깨닫지만 이미 때는 늦은게 된다고 합니다.


호랑이 같은 마누라도 돈 집어먹는 귀신같은 자식들도 내가 있기에 의미가 있고 존재가치가 있듯이 자신의 건강이나, 가족의 소중함, 가장 중요한 자신의 삶과 같은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새김 해보시길 바랍니다.

열손가락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행복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불행을 헤아리는 데만 손가락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많은 행복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말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천불지”라 해서 예수 믿으면 천국이고 불신이면 지옥이라고 자기들도 안다녀오고서는 공갈협박을 해대지만, 일요법회에 오신 분들이나 부처님의 품안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임종 후, 49일 간의 중음세계를 벗어나 극락세계에 가시게 될지, 못가시게 될지는 모르지만 가신다고 가정을 하고 정토에 들어서게 되는 아홉가지의 극락세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극락이라고 해서 다 같은 극락이 아닙니다.


살아생전 자기의 기도수행의 정도에 따라 아홉가지의 극락세계로 나눠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의 회상을 말해주는 대경과 소경이라는 무량수경과 아미타경, 그리고 관경으로 불리는 관무량수경, 이 세 가지 경전을 “정토삼부경”이라 하는데 그 중의 하나인 “관무량수경”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무량수경은 三福을 짓고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음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극락정토의 장엄을 마음의 대상으로서 관찰하는 방법을 모두 16관(觀)으로 정리해 구체적으로 설해지고 왕사성의 비극을 주제로 왕비 위제희 부인이 고뇌를 떨치고 서방정토로 구제되어 가는 순서를 관불(觀佛) 관상(觀想)의 설법으로 명백히 밝혀, 무량수경의 타력구제의 진실성을 중생들에게 알려주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16관이란 정선(定善) 13관산선(散善)3관으로, 정선은 산란한 생각을 쉬고 마음을 고요히 하여 극락세계와 아미타불과 관음세지 보살들을 점차로 보게 됨을 말하며, 산선 산란한 마음이 끊어지지 않은 채 악을 범하지 않고 선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산선 3관은 다시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9품으로 구분됩니다.


상배관의 상품 상, 중, 하생 3품과 중배관의 중품 상, 중, 하생의 3품, 하배관의 하품 상, 중, 하생의 3품해서 모두가 상중하 각각 3품씩 해서 9품이 되는 것인데 살아생전 기도 원력의 힘으로 세간의 선을 닦아 극락에 왕생함을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무량수경의 내용은 세존께서 만년에 기사굴산(영취산)에 계실 때 왕사성에서 태자인 아자세가 조달의 꾐에 빠져 부왕인 빈비사라 왕을 유폐하고 굶겨죽이려 하자, 이것을 안 왕비 위제희 부인이 온 몸에 꿀을 바르고 들어가 굶어죽지 않게 한 일을 안 아자세는 크게 화를 내며 모친까지도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위제희 부인은 슬퍼하며 기사굴산을 향해 예배하고 부처님께 이러한 어려움을 발원하자, 세존께서는 위제희부인의 소원에 따라 아난존자와 목련존자와 함께 신통력으로 부인의 처소에 나타나 광명을 발하여 시방세계의 정토를 보여주었는데, 위제부인은 그중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태어날 것을 원하고 그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간청하자, 부처님께서는 부인을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세가지 福을 짓는 삼복(三福)과 극락정토에 왕생할 수 있는 정선13관과 산선3관의 16가지 관법을 설해주게 되고, 위제희 부인은 설법을 듣고 진리의 실상을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닫게 되었으며, 500명의 시녀들도 무상보리심을 일으켜 극락왕생을 발원했다고 하는 내용이 관 무량수경의 내용입니다.


말씀드린 대로 9품으로 가는 염불기도는 매일매일의 수행력이 아홉 가지로 나눠지기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의 상품상생은 매일 아미타경 열 번 독송에 아미타불 칭명염불을 6만 번, 절은 49번입니다. 두 번째, 상품중생은 역시나 매일 아미타경 독송 5번에 칭명염불 5만 번, 절은 48번이고, 세 번째 상품하생은 독경은 3번에 염불은 3만 번, 절은 47번입니다.


다음으로 중품상생은 독경은 두 번에 염불은 2만 번, 절은 46번이고 중품중생은 독경한번에 염불은 1만 번, 절은 45번이고, 중품하생은 독경한번에 염불은 9천 번, 절은 44번입니다.

하품상생은 독경한번에 8천 번에 절은 43번. 하품중생독경한번에 염불은 4천 번이고 절은 42번, 하품하생은 독경 한 번에 염불은 2천 번, 절은 41번, 이렇게 하게 되면 임종 할 때, 미타세계 성중들의 마중을 받아 그들이 가지고 온 연화대를 타고 구품왕생을 하게 되는데, 상상품은 금강대, 상중품은 자금대, 상하품은 금련대를 타게 되고,중상품은 연화대, 중중품은 칠보연화대, 중하품은 경에 밝혀져 있지를 않고, 하상품은 보련화대, 하중품은 연화대, 하 하품은 금련화유여일륜대에 앉아 왕생정토를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위제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상품 상생자란 저 불국토에 가서 나고자 하는 중생들이 세 가지 마음을 내어 왕생하는 이를 말한다.

세 가지란, 첫째는 진실한 마음이고, 둘째는 깊이 믿는 마음이며, 셋째는 회향하여 발원하는 마음이다.

이 세 가지 마음을 갖춘 사람은 반드시 저 불국토에 가서 나게 된다.


또 세 가지 중생이 저 불국토에 가서 나게 되는데, 첫째자비한 마음으로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 모든 계행을 갖춘 사람이고, 둘째는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사람이며, 셋째불· 법· 승· 계(戒)·사(捨). 천(天)의 여섯 가지를 닦는 사람이다. 

이들이 원을 세우고 하루에서 이레까지 이와 같은 공덕을 닦으면 곧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다.

정토에 태어날 때에 수행자가 용맹스럽게 정진하기 때문에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무수한 백 천 비구들과 한량없는 천인과 함께 칠보로 된 궁전을 가지고 그의 앞에 나타나고, 관세음보살은 금강대를 가지고 대세지 보살과 함께 그의 앞에 가고, 아미타불은 큰 광명을 놓아 행자 몸을 비추면서 여러 보살들과 함께 손을 내밀어 영접한다.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수많은 보살들과 함께 행자를 칭찬하고 그 마음을 격려해주고, 행자는 환희에 넘쳐 자기 몸을 살펴보자, 아미타불의 뒤를 따라 잠깐 사이에 금강대를 타고 저 불국토에 왕생한 것이니, 그 나라에 태어나면 부처님 몸과 보살들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을 보게 되고 찬란한 보석의 숲에서 설하는 미묘한 법을 듣고 무생법인을 깨닫게 된다.


잠깐 사이에 시방세계를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을 섬기고 각기 부처님 앞에서 마다 수기(授記)를 받고 다시 극락세계로 돌아와 한량없는 백 천의 신비스런 힘[陀羅尼門]을 얻게 되니, 이것을 상품 상생자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자작자수라 스스로 닦아서 자기 힘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왕생정토인 것이고, 여기에는 윤회가 없으나, 화보와 과보로 가서는 아니 되고 일념정진으로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 노 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에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애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행복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