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선사를 통해 본 불변초심

2010. 1. 20. 18:32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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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 모두가 중생인지라 자신과 더불어 가족들의 무명을 밝혀 부정한 어둠과 번뇌가 다 물러가고 무자년 한해를 불보살님들의 가피 속에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정초 신중기도 입제 날이자, 4차 1030일 기도기간으로 십악참회 중에 네 번째인 거짓된 망어중죄를 참회하는 사백일기도 입제 날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가 모여 한 인간의 인생을 만들어 왔기에 숙세의 업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에도 온갖 선악의 업력을 만들어 살아온 우리들인지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바로 업연과보로 인한 업보중생의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원하기를 금생에 자비참법 기도를 백 팔번은 해야 할 것이고 기회가 되면 칠 주야를 눈 한번 붙이지 않고 아미타불 정근을 하는 탑돌이 기도를 열 번을 해보는 것이 제가 세운 서원입니다.

 

그러한 발원의 하나로 백일기도 중에 매월 말일 당일철야로 자비참법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미타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여, 작은 선근이나 하찮은 복덕의 인연으로는 저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는 없느니라.

 

사리불이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아미타불 명호를 굳게 수지하여 염불하되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 나흘, 닷새, 엿새 혹은 이레 동안 만이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른다면 그 사람이 목숨을 마치려할 때에는 아미타 부처님께서 여러 성인대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나투시므로 이 사람이 임종 시에 마음이 온갖 삿된 중음의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정토에로 왕생하게 되느니라.

 

사리불이여, 나는 이와 같은 위없는 이익이 되는 도리를 아는 까닭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만약 이 설법을 들은 중생들은 누구라도 마땅히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하는 대목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중생들의 삶은 살아가는 중에 이것에 끄달리고 저것에 매이고, 온갖 것에 시달려 작심삼일이 되어 버리고 말기에 오즉해서 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첫 발심을 일으킨 초심을 변치 말라고 선인들이 그리도 간절하게 당부하질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십악 중에서 네 번째 죄목으로 입으로 짓는 첫 번째 구업인 거짓된 망어를 참회하는 백일기도 입제 날이기에 기도에 입제하신 여러분들은 가족을 대표로 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이기에 기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시거들랑, 오늘을 시작으로 저녁에 가족들을 모아두고 오늘은 우리가족과 가정을 위해서 부처님 앞에서 백일기도를 시작하고 왔는데 오늘부터 시작되는 기도가 거짓된 망어를 참회하는 기도로 과거에 알게 모르게 지었던 죄는 참회하고 앞으로는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될 수 있는 한 거짓된 말은 하지 말자고 가족들에게 당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때, 가족들에게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당위성이 찾아지게 되는 것이고 또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불자인 것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집안이 호박넝쿨에 수박이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짚고 넘어갈 대목이 아함경에 있습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제자들과 함께 전법을 나섰다가 고갯길을 오르는 중에 고갯마루 그늘에서 쉬고 계셨었습니다.

이때, 세존이 계신 숲속에서 사슴이 한 마리가 엉덩이에 화살이 박힌 채, 튀어나와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부처님과 눈을 마주치고 살려달라는 듯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사슴을 당신의 사리가사 안에 숨기고 잠자코 앉자계셨습니다.

 

그 때, 숲 속에서 말을 탄 사냥꾼이 손에 든 활에 화살을 걸고 튀어나오다 부처님의 일행을 보고 묻기를, 방금 화살을 맞은 사슴 한마리가 지나가지 않았냐고 묻자, 세존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그 사냥꾼에게 반대편의 숲속을 가르키며 사슴이 그리로 갔다고 알려줍니다.

사냥꾼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바삐 사라지자 부처님은 그 사슴을 꺼내어 화살을 뽑아주고 가지고 있던 약을 발라 사냥꾼과 반대편으로 놓아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난이 묻기를 스승님께서는 저희에게 이르시기를 열 가지 죄 중에 입으로 짓는 죄가 가장 많고 크다고 하신 것을 저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헌데, 어찌 저희들이 보는 앞에서 스승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때, 세존께서 아난에게 되묻기를 그래 아난아 너의 말이 맞고도 맞다.

하지만, 너희들이 방금 보다시피 내가 거짓 없이 사슴을 숨긴 것을 알려준다면 그 사슴은 사냥꾼의 손에 죽고 말 것이다.

사람은 사슴의 고기를 안 먹어도 죽지를 않건만, 자신의 탐욕으로 살생을 하는 것에 내가 동참하라는 말이냐?

작은 계율을 지키고자 더 큰 계율을 어긴다면 이것을 바로 어리석은 무명이라 하는 것이다.”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그런 경우에 어떡하시겠습니까?

 

여기에서 출세간의 지혜인 개차법(開遮法)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자녀들이 자랄 때, 애들을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엄마는 안 봐도 다 안다고, 니 눈만 봐도 다 안다고 가끔 무르팍도사 흉내들 내셨지 않습니까?

 

그 거짓이 거짓임은 분명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거나 탐욕을 채우는 거짓이 아니라 중생을 위한 거짓일 때는 아함경에 나오는 이같은 대목을 잘 새겨두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대로 아 !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했다가도 여기저기 끄달리고 속 터지는 일들이 생기다 보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 중생들의 속성인지라 이럴 때, 자신의 근기를 들여다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스승께서 솥단지를 걸 아궁이를 만들라 해놓고 다 만들면 아궁이를 잘못 만들었다며 다시 만들라 하기를 아홉 번을 해서 아홉 구자(九)에 솥 정자(鼎)를 써서 구정(九鼎)이라는 법명을 받아 흔들리지 않는 작심을 그대로 실천하셨던 고려시대의 구정선사 이야기를 해드리면서 이번 기도에 뭔가를 발원하시고 이루어지기를 염원하셨지만 성취가 더디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원하는 바에 차지 않았을 때, 중생의 속성은 곧잘 실망하고 기도스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부처님을 향해서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쥐꼬리만한 신심조차 떨어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때, 자신의 숙세의 업력이 얼마나 지중한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어야 하건만, 무식하고 무지하면 용감하더라고 또 다시 깜깜한 업장의 무명 속에 뛰어 들어가는 경우를 종종 봐왔기에 하는 말입니다. 제 자신부터 그런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구정선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구정선사는 출가 전에는 비단장사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비단을 팔아 살아가던 한 청년이 하루는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가다가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됐습니다.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입은 채, 건너편 나무 그늘 밑에서 늙은 스님은 비단장수가 쉬고 있는 동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심코 보였던 스님이 문득 궁금했습니다.

 

“왜 저렇게 서 있지? 다리도 안 아픈가? 참 이상도 하지” 한참을 바라보던 청년은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 “스님! 아까부터 서서 무얼 하고 계시기에 그렇게 선 채, 계십니까?” 하고 묻자, 지그시 눈을 감고 서 있던 스님이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잠시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키고 있는 중이라네.”

아니, 저렇게 꼼짝도 않고 서서 어떤 중생들에게 공양을 시킨다는 걸까?’ 팔도강산을 장사하러 다니면서 주워들은게 많았던 청년은 더욱 궁금해져서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스님 제 눈엔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어떤 중생들에게 무슨 공양을 베풀고 계신단 말입니까?” 하고 묻자, “허허. 젊은이 보기엔 궁금도 하겠지. 내가 움직이면 옷 속에 있는 이가 피를 빨아먹기 불편하지 않겠나. 그래서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네.”

 

노스님의 이 말에 청년은 기가 막히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기도 하고 목숨을 빼앗기도 하는데 이 스님은 하찮은 벌레까지도 자비롭게 생각하다니 감동을 넘어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생인지라 홀연 저 스님의 말이 진짠가?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한동안 서 있던 스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나서자 비단장수인 청년은 소달구지를 재촉해서 스님보다 앞서 몰면서 일부러 삼베나 무명과 비단을 흘리고 갔습니다.

그러면서 안보는 체, 하면서 그 스님을 살펴보자 스님은 떨어진 물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만을 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겪게 된 비단장수 청년은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이 거룩한 스님의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청년은 비단이 실린 소달구지를 팽개치고 산길을 오르는 스님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청년이 따라오는 것을 모르는지 아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하더니, 오대산 동대 관음암에 도착하자 청년은 스님께 스승으로 모실 테니 자기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곡히 청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그 청년에게 “너는 장사치로 세상을 떠돌며 온갖 것을 다 봐왔고, 이문을 남기기 위해서 옷감의 칫수를 속였고, 남에게 너의 물건을 팔기위해 감언이설로 속이지 않았드냐, 그렇기에 너는 도를 공부할 그릇이 아니다.” 하고 청년의 청을 물리쳤습니다.

그래도 청년이 며칠 동안 떠나지 않고 물도 길어오고 땔감도 해오며 떠나지 않고 간청을 하자, 그러면 내가 하란대로 다 할 것이냐고 묻자, 청년이 그러마고 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그러면 부엌에 아궁이를 만들어 솥단지나 하나 걸어두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그까짓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식으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나절 만에 돌을 주어다 흙을 발라 아궁이를 만들어 솥단지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 자랑스럽게 아궁이를 만들어 솥을 걸어두었다고 보시라고 하자, 스님은 부엌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건너다보며 대뜸 말하기를 이래가지고 밥이나 제대로 해 먹겠냐고 다시 만들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이 말짱한 것 같은데도 스님은 다시 고쳐 걸라고 하시기를 아홉 번이나 했고 청년은 스님이 시키는 대로 흙을 퍼 와서 반죽한 후 솥을 새로 걸기를 아홉 번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로지 일념으로 공부를 배우겠다는 마음 하나로 청년은 다음날에도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고 스님이 시키는 대로 솥을 떼어 이 아궁이에서 저 아궁이로 아홉 번을 다른 아궁이로 옮기고 흙을 바른 후 곱게 잔손질을 하고 일을 마쳤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어거지로 퇴짜를 놓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던 화도 없어지고 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없어지고 이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도를 닦아야겠다는 생각마저 쉬어버리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무심하게 아궁이를 만들고 솥단지를 걸게 되자, 솥단지가 잘 걸려있게 되었고 스님은 그걸 보고 “이제야 네가 불법을 배울 만 하구나” 하고 제자로 받아 노스님은 청년의 참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인정하고 진정한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솥을 아홉 번이나 고쳐 걸었다는 뜻으로 구정(九鼎)이란 법명을 주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기도발원을 하고 기도하실 때, 구정선사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십악 중에 입으로 짖는 첫 번째의 구업을 소멸하고자 시작되는 기도에 여러분들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백일기도 중에는 될 수 있는 한, 구업이 될 만한 인연을 짓지를 말고 구업을 짓지 않도록 하는 당부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런 자세가 바로 기도에 제대로 동참하는 것이고 이렇게 될 때,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지은 업력들이 소멸되고 매사에 일들이 막힘없이 잘 풀리고 가정에 밝은 기운이 들어오는 첩경인 것입니다.

 

모쪼록 선근을 쌓고 선업을 짓고자 발원하여 봉행하는 백일기도에 본인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선근공덕을 짓기를 발원하시고 대중동참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선근들에게 들려드리는 아미타경의 이 대목을 잘 들으시고 확신에 찬 기도신행을 실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리불이여, 그대는 무슨 이유로 이 경을 “모든 부처님들께서 보호하시고 항상 염려하시는 경”이라고 하는지 아는가?

사리불이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이 법문을 듣고 받아 지니거나 여러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열심히 염불하는 자 등, 이 모든 선남자 선여인들은 모두 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항상 보호해주시고 염려해 주시므로 모두가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모두 나의 말과 여러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마땅히 잘 믿어야 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어느 누구이든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이미 발원하였거나 지금 발원하거나 혹은 장차 발원한다면 이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위없는 바른 깨달음에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게 되며 저 극락세계에 이미 왕생하였거나 지금 왕생하고 있거나 장차 왕생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나의 가르침을 믿는 신심이 있는 모든 선남자 선여인들은 마땅히 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느니라.” 경전에 남겨두신 이 말씀을 잘 새겨들으시고 모두들 끝없는 윤회를 벗어나는 발원을 하시고 성취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요.







♣ 마음을 비추는 거울은 없다 ♣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은
모두 아는데도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있다







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기를 비평하는데
익숙한 사람만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스스로 묻곤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일정하게 지난 시간과
지금 모습을 비판하면서
성취도와 지성의 강도와
정신력 등을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온전한 시각으로
자신의 인격을 엿볼 수 있고
눈 앞에 놓인
인생의 긴 여로를 위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