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 28. 20:58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입양의 날은 2006년 5월 11일부터 처음 시작된 날입니다.
현대인들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직업과 환경으로 가정은 어른이라는 구심점이 없이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고, 사람들에게는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경기침체로 생활 경제가 팍팍해지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혼자 사는 1인 가족이 317만 가구(2005년 기준)를 넘어 섰고, 다섯 집 당 한 집 꼴로 독신가구라고 하는데, 하루 평균 320여 쌍의 부부가 갈라서고, 연간 2만여 명이 넘는 기러기 아빠가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이혼이 급증하면서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이른바 싱글대디 가정이 전국적으로 28만 가구가 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이 어디에 있을까요.
소위 사회지도층들이라는 분들이나,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좋은 말씀은 수시로 하고들 계시고 이렇게 우리절에도 일요 가족법회를 보기위해 오셨듯이, 오늘도 일요예배를 보고자 유명교회에는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을 것이고, 밤이면 시뻘건 십자가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한집 건너에 한 곳씩, 어떤 빌딩에는 교회간판이 두세 개씩 걸려있고 눈여겨보면 사찰의 포교원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건만, 우리 사는 세상은 어찌 이리 흉악해지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혼은 급증하고 기러기 아빠니, 독신자 아파트니 원룸이니 하는 말들이 이리도 많이 생겨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번 주 법회 때 제가 읽어드렸던 글이 새삼 떠오릅니다.
“옛날에는 없이도 살았는데, 집 없이도 살았고, 돈 없이도 살았으며, 자존심 없이도 살았고, 명예 없이도 살았지요.다 없어도 본전인데, 무슨 걱정들이 있을까요.” 하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남과 자기를, 이웃집과 자기네를 견주어가며 상대적인 분별심으로 미래의 만족을 위해 현재의 불만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남의 주머니에 천만금보다도 내 주머니의 김밥 한줄 사먹을 돈이 더 소중한 것에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만족해한다면 우리는 항상 행복할 수가 있을 것이건만, 거기서 그 행복한 마음에서 내일을 즐겁게 맞이하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항상 매일 즐겁고 감사하고 가족 간에 서로의 존재가치를 누리고 살아갈 것이건만, 미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게 지나쳐 가족간에 대화는 점점 없어지고 각자의 삶에 바쁘다는 핑계로 현재의 불행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미래의 낙원을 위한다고 여가도 없이 일에 급급해 현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뜬구름을 위해 현재의 소중한 삶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통찰 해보는 가족 간에 대화의 시간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과 가정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일어나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게 된다면 자신과 자기의 가정이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고 세상에서 자기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이 가장 귀하고,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을 뒤에 모시고 이런 말하기가 그렇습니다만,
부부와 자식은 원수끼리 만난다고들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곰곰 새겨보시면 참 타당한 느낌이 들 것입니다.
지난 18일에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같은 노숙자들에게 집단으로 매를 맞고 죽은지 5일 만에 발견된 가출소녀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행려자처리로 화장을 하게 된다는 뉴스를 말입니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런 부모와 그런 가정에 태어나게 된 그 박복함을 굳이 전생을 들먹일 필요 없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우리집 담장너머에 이웃들의 가정이 해체되어가며 생겨나고 있는 사회의 천태만상의 한 단면들일 것입니다.
사람중생은 대부분 스스로의 무지와 교만으로 온갖 불행과 번뇌를 만들어 그 안에서 스스로의 마음에 불을 질러 애간장을 태우고들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겁생래에 맺어진 원결과 악연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라도 간절하게 이참 사참의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며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지어온 온갖 업들을 일요일 하루 한나절 동안 부처님을 뵙고 자신과 더불어 가족 모두에게 닥쳐오는 행, 불행들을 행복은 더욱 커지고 불행은 작아지고 소멸되도록 지극하게 기도하는 이 한나절이야말로 잠깐의 수고로움으로 가족 개개인들이 살아생전에 닥쳐올 지옥고를 벗어나도록 해주는 참으로 지혜로운 수행방편이자 참회와 발원의 시간들인 것입니다.
모두들 오늘의 이차인연공덕으로 모든 죄업들이 가벼워지시고 업장은 녹아내려 동성불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이렇게 속절없이 가는 세월 앞에 삼천갑자 동방삭이도, 진시황도 초패왕도, 박정희 대통령도, 모두가 속절없이 무너져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말로는 인생무상이라고들 하면서도 매일매일 가는 세월들을 목전에서 보내면서 잠시 잠깐은 진지한 생각도 일으켜보지만, 곧 바로 산다는 물결에 떠밀려 까맣게 잊어버리고 쳇바퀴 일상에 하루를 내던지고 살아온 이 순간일 것입니다.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만, 요즘, 하루 벌어 일년 먹고 산다는 초파일 대목이 다가오니 길을 가다보면 절이 있는 길목마다 비닐 연등과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현수막의 글귀들을 보면, “부처님 품안, 편안한 가정” “우리도 부처님 같이”뭐 등등의 글귀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현수막을 보면서 문득 제 생각에는 정말 불자들은 생활 속에서 순간순간, 고비 고비 마다 견디기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억지로 안 되는 일들이 닥쳐올 때, 그 순간에 자기의 안에, 그리고 뒤에, 자기의 바로 옆에 불보살님 들이 항상 함께 계신다는 생각들을 과연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항상 부처님과 함께하고 계십니까?
아침에 눈을 뜨면서 누운 채로도 좋고 앉은 채로도 좋고 두 손을 합장한 채로 “오늘 하루의 궂은일, 기쁜 일, 힘들고 괴로운 모든 일상을 공양을 올립니다.” 하고 합장발원을 하신다면 그 날 하루는 여러분의 일상이 아니라 이미 불보살님 전에 공양 올려드린 하루이기에 자신의 일상은 매일 것도 없고 힘들 것은 더욱 없어질 것이며 나쁘게 큰 일은 작아져 다가올 것이고, 기쁜 일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인 것이고 이것이 바로 “참다운 부처님 품안”일 것이고, 내가 판단하기 힘들고 견디기 어려울 때. 그런 순간에 지금 부처님이 내 옆에 계신다면 부처님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 하셨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 대상과 상황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의 일상은 바로 “부처님 같이”가 될 것입니다.
보복폭행이라고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한화그룹의 김회장도 그 순간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어지럽지 않고 조용히 지낼 수 있었을 것을 하는 아쉬움으로 뉴스를 바라보곤 합니다.
인간사 백년, 불과 삼만 육천오백일을 채 채우지도 못하고 온갖 시비곡절과 별의 별 팔만사천가지가 넘는 번뇌 속에서 칠팔십도 채, 못되는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이렇게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두운 바다에서 등대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기에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법등명’으로 알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만이라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래도 웬만큼 성공한 것입니다.
어린이날이었습니다.
경기가 예전만큼 호시절이 아닌지라 사는게 팍팍하지만 그래도 고속도로는 체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수시로 일어나는 군대 안에서의 자살과 늘어만 가는 청소년들의 범죄는 도대체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가끔 들리는 사이트에 갔더니 이런 글이 있어 소개를 합니다.
“옛날에는 없이도 살았는데, 집 없이도 살았고, 돈 없이도 살았으며, 자존심 없이도 살았고, 명예 없이도 살았지요.
내 연인이 없이도 살았고, 내 처자식이 없어도 살았으며 내 남편이 없어도 살았고, 내 부모가 없어도 살았어요.
내 몸 없이도 살았는데, 나 없이도 살았는데, 다 없어도 본전인데, 무슨 걱정들이 있을까요.” 하는 내용의 글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남과 자기를, 이웃과 자기네를 견주어가며 미래의 만족을 위해 현재의 불만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합니다.
남의 주머니에 천만금보다도 내 주머니의 김밥 한줄 사먹을 돈이 더 소중한 것을 그것마저도 만족해한다면 우리는 항상 행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는게 지나쳐 현재의 불행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미래의 낙원을 위한다고 현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뜬구름을 위해 현재의 소중한 삶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깊이 통찰 해볼 줄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과 가정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일어나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게 된다면 자신과 자기의 가정이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곳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고 세상에서 자기 남편과 아내와 자식들이 가장 귀하고,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모의 권리와 의무란 다름이 아닙니다.
내 부모는 배우지 못해 알지 못해 나에게 그리 못 해주었다 해도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고 익혀가기에 우리는 자식들에게 부모로서 올바른 의무와 권리를 보여주고 남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의무란, 다른게 아닙니다.
악착같이 돈 많이 벌어 학원 여러군데 보내고 학교 성적 좋기만 하기를 바라는 그런게 부모의 의무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을 알고부터 윤회를 알고 인과를 알았다면 자식의 전생이나 전전생에 했던 훈습을 알아 금생에도 할 수 있게 해준다면 하나를 들어 열을 깨치게 될 것이니 이런 눈을 가지고 자식을 바라보며 뒷바라지를 해준다면 뒷바라지 하는 자신도 힘들지 않고 자식도 세계적인 인물이 될 것이건만, 대부분이 그와는 반대로 자식의 전세의 업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자기가 젊어서 해보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해주기를 바라고 어거지로 밀어붙이기를 하니 자식도 힘들고 자신도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부모의 권리란 무엇인가? 그건 별게 아닙니다.
내 자식이 보여주는 알콩달콩한 온갖 재롱을 한 지붕 밑에서 오순도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권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키운 자식들이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냉장고에 구멍 뚫어 그 안에 넣고 내다 버리지를 않는가, 이제는 제주도로 가면 찾아온다고 저 동남아에 여행가자고 하구선 놔두고 와버리는 세상이 됐으니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지식만을 넣어주고 인성을 넣어주는데는 게을리한 과보를 스스로 받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 것입니다.
인성을 채워주지 않은 과보로 그 자식은 커서도 이기심으로 가득한 채, 남과 이웃의 공동체를 모르고 살아가게 만든 죄로 그 부모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모여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고 익혀 생활 속에서 응용하다보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니 그것이 바로 저녁이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해주고 대화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작은 행복을 누릴 복덕이 되는 것입니다.
저번 주에는 자비 참법을 일박으로 삼천배를 하다보니 다리에 알이 배인 것이 일주일을 가더니 이제 조금 풀어집니다.
전번 주에 말씀드린대로 승찬스님의 신심명을 전해드리고자 그리도 했건만 다들 바쁘셔서 동영상으로 찍어야 하기에 못해드리고 소참 법문만으로 지내다 오늘은 되겠지 싶습니다만, 법회시간이 되어봐야 알 것입니다.
왜냐? 그래도 법사가 법문을 해드리고자 한다면 대중이 좀 모여들어야 법회의 법열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춘망사(春望詞)/설도(薛濤) - 봄날의 바램을 노래하다
花開不同賞 화개불동상: 꽃이 피어도 함께 감상할 수 없고
花落不同悲 화락불동비: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구나
欲問相思處 욕문상사처: 그리워하는 곳을 묻고 싶어도
花開花落時 화개화락시: 꽃 피고 꽃이 지는 때가 있어
攬草結同心 남초결동심: 풀 뜯어 동심결 매듭을 지어
將以遺知音 장이유지음: 임에게 보내려 생각하노라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 봄날 수심에 애 끊는 마음인데
春鳥復哀吟 춘조부애음: 봄날에 새는 다시 와 애달피 운다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어가고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아름다운 기약 아직도 아득하다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한마음인 그대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공연히 동심초만 묶고 있네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어찌할꺼나, 꽃 가득한 저 가지를
飜作兩相思 번작량상사: 뒤치어 두 사람에게 그리움 되는 것을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거울에 떨어지는 옥통의 눈물방울
春風知不知 춘풍지불지: 봄바람아, 너는 정녕 아는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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