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4. 20:03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광명열반(光明涅槃)
청화 큰스님 |
참다운 광명 이것은 세간적인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광명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후불 탱화를 보시면 부처님 정수리에서 빛이 나와서 그 빛이 어디로 가는가 하면 무량무변의 우주를 다 비춘단 말입니다. 후불 탱화에 나와 있는 부처님 정수리의 광명이란 것은 그냥 광명이 아닙니다. 청정한 광명이기 때문에 그 광명은 바로 우주를 다 비추는 것입니다. 우주를 비췄다가 다시 부처님에게로 돌아오는 그런 상직인 것입니다. 부처님만 그럴 것인가. 우리 중생도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도 부처님 차원에서 볼 때는 똑같은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도 자기 광명이 우주를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단 우리 스스로가 어두워서 못 볼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금바라화 꽃을 들고 대중에게 보이니 그 많은 대중이 아무도 그 뜻을 몰랐단 말입니다. 오직 공부를 많이 한 마하가섭 존자만이 그것을 보고 빙긋이 미소를 띄웠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심심미묘한 열반법을 그대에게 전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열반이란, 진여불성을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했다 하더라도 참다운 성자가 미처 못되었기 때문에 결국은 부처님께서 금바라화 꽃을 들고 계셨지만은 손만 보았지 꽃은 안보였던 것입니다. 마하가섭만이 ‘아 부처님께서 진리의 상징으로 저 꽃을 들어 보이시는구나.’ 이렇게 알고 미소를 지으니까. ‘심심미묘한 열반법을 그대한테 전하노라.’ 이렇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째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보였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보이니까 좋다, 궂다, 말을 못하고 모두가 다 벙어리 같았단 말입니다. 그 꽃은 범천왕이 부처님께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범천이 보입니까. 눈에 보이는 세계만 따지는 분들은 범천이나 천상같은 말을 하면 부처님께서 방편으로 말한 것이지 천상이 어디 있는 것인가 이렇게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은 거짓말이 없습니다. 우리 눈이 까막눈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중생 눈은 탐욕심이나 어리석은 마음이나 또는 분노하는 그런 삼독심에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순간 그만치 우리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욕심을 내면 그 순간 그만치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금생에도 우리는 나라는, 자기 몸뚱이가 소중하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는 자기 가족이겠지요. 자기 몸뚱이라는 생각 또는 자기 가족이라는 생각 때문에 금생 내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우리 눈이 어두워졌다 말입니다. 시력이 2.0이요 1.5요 하지만 그런 것은 물리적으로 눈을 잰 것이지 본래 눈의 시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본래 눈은 석가모니나 예수같이 되어야 본래 눈이란 말입니다. 그런 눈을 본래는 다 타고 나는 것입니다. 다만 번뇌에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범천왕이 와서 부처님께 금색 바라화 꽃을 드렸지만은 일반 대중들은 보면서도 안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하가섭은 범천도 보이고 꽃도 보였기 때문에 범천이 ‘부처님께 진리의 상징으로 꽃을 드려서 들고 계시는구나.’ 하고 부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미소를 지은 것입니다. 열반이라.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열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열반이라 하면 보통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것을 열반이라고 생각들을 하는데, 그러나 죽음만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번뇌가 다 녹아버리고 나쁜 마음이 다 죽어버린 상태를 뜻합니다. 나쁜 마음이 다 없어져 버리면 성자가 되겠지요. 본래가 다 부처인지라, 그래서 적멸이라. 번뇌가 다 녹아버려서 조금도 나쁜 흔적이 없는 조금도 번뇌의 움직임이 없는 아주 맑고 참다운 진리의 경계를 적멸이라 합니다. 우리가 금생에 죽으면 금생의 업장을 짊어지고 업장대로 태어나겠지요. 그러나 업장을 녹여버리면 다시 태어나지 않습니다. 영생불멸하는 극락세계에서 영생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 해탈이라. 번뇌의 허물을 다 벗어버렸다는 얘기입니다. 요새 우리가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하지 않습니까. 민주화도 자유를 위해서 부르짖지만 참다운 민주화, 참다운 자유는 자기의 번뇌를 다 해탈해 버려야 참다운 자유인 것입니다. 가사 우리가 감옥에 갇혀 있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번뇌가 조금도 없다고 할 때는 바로 자유란 말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어서 웬만한 것은 자기 멋대로 다 한다 하더라도 역시 그런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중생은 번뇌가 있는 한 어느 누구나가 참다운 자유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번뇌를 벗어버려야 참다운 자유인입니다. 번뇌를 벗어나려면 자기라는 생각, 자기라는 아상을 떠나야 합니다. 아상을 떠나야 욕심을 버리고 진심을 버리는 것인데, 자기라는 생각을 못 떠나면 나한테 좋은 것은 욕심부리고, 자기한테 싫은 것에는 분노심을 낸다 말입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 마음이 더욱 더 어두워집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번뇌를 벗어버리면 바로 거기가 극락인 것입니다. 위없는 행복이 극락 아니겠습니까. 그 자리는 죽지 않는 영생의 자리입니다. 우리 중생은 과거업으로 금생에 태어나고 금생의 업으로 다시 내생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영생이 아닙니다. 항시 죽었다 살았다, 나고 죽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뇌를 벗어버리면, 아까 말씀대로 중생이 불쌍해서 일부러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몸을 받아 올망정, 우리가 업장에 묶여서 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대체로 과거 전생에 잘 닦아서 금생에 중생이 불쌍하니까 오신 그런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앞으로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평화스럽게 못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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