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오시는 부처님

2010. 3. 3. 21:27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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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오시는 부처님]



따뜻한 햇볕 속에 고운 이슬 머금고 곳곳에 피어나는 봄꽃들처럼,
환한 미소 머금어시고  환희와 축복 가득 안고 곳곳에 오시는 부처님들!
온 누리에 봄 노래 가득 넘치고,
녹은 눈 흘러 내리는 저 산과 들에는
기쁨과 희망으로 오시는 부처님 소리, 우렁찹니다.




무진의 보살은 부처님께 여쭙니다.
부처님, 관세음 보살은 어떻게 중생을 구제하십니까?
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진의야,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부처님 모습으로 오고,
수행자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수행자 모습으로 온단다.
높은 임금이나 권력가의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그렇게 오고,
상인이나 거사의 모습으로 제도될 것 같으면 또 그렇게 오신단다...



부처님 말씀은 계속 이어지지만,
결국은 일체 중생의 제도 인연에 따라 그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우리가 우리 눈으로(肉眼)만 볼 때는 단지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이나 무심히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보일지 모르나,
부처님의 눈(佛眼)으로 보면 이 세상 그 어느 인연, 그 어느 중생의 모습도
대자대비하신 관세음과 부처님 모습 아닌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깨치지 못하고 어리석은 삶을 사는 한
아무리 옆에 보살이 현전하셔도 보살인 줄 알지 못하고,
수기를 받은 부처님이 현전하신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발심하셔서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치기 전에는,
그저 조그만 왕국의 번뇌많은 태자인줄로만 아시고 35년을 그렇게 속아서 사셨습니다.
아득한 겁 이전에 이미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너는 나중에 석가모니부처님이 될 것이다!'라는 장엄한 수기를
한두 번도 아니고 수없이 받으셨는데도 말입니다.



청나라 순치황제도 발심하여 출가하기 이전까지는,
자신이 본래는 수없이 많은 생을 닦던 수행자였던 것을 모르고
그저 한 나라의 임금인줄만 알고
18년 동안을  전쟁터에서 그렇게 고달프게 보내셨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도 그러 하시고 순치 황제도 그러하셨거늘
하물며 저희같은 번뇌 중생은 오죽 하겠습니까!




그러나 부처님의 법문에서 보면 이 세상의 원래 모습은 확연히 들어 납니다.


내 앞에서 하나라도 더 팔려고 목놓아 소리치는 저 시장거리의 이름없는 상인이
알고보면 바로 나를 상인의 모습으로 구제하려 오신 관세음보살인지도 모르며,
저 무대에서 노래 부르시는 저 이름없는 무명 가수님도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노래 공양하러 오신
겁 이전의 부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내가 반야의 눈을 뜨지 못해 내 수준으로만 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오신 보살님, 부처님이 보이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모두가 할 일은 자명합니다.

첫째는 제게 다가 오시는 모든 인연, 모든 분들을
겁 이전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이 똑같이 모시는 일이며,
둘째는 내 스스로 겁 이전의 발심하신,
그리고 수기 받으신 부처님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復活)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은 보잘 것 없는 이 모양 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못나고 멸시받을 그런 '비천한 내(我)'가 아니라,
겁 이전에 성불의 수기를 받았으며
금생에는 기어코 성불하여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그런 부처님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아,
실지로 그렇게 여법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나면 우리에게 오는 그 어떠한 고난도 축복 아님이 없고,
우리에게 오시는 그 어떠한 분도 부처님 아닌 분이 없습니다.




지금껏 불어 왔던 몹쓸 비바람도 언제부터인가 푸르른 하늘로 바뀌고,  
화사한 부처님들은 곳곳에 오시기 시작합니다.
나를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착한(?) 부처님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히고 윽박지르는 자비(?)하신 부처님도 오시기 시작합니다.
곳곳에는 봄날이요, 곳곳에는 온 누리 가득 현전하시는 부처님들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제는 부처님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맨날 삶에 짓눌려 남의 탓이나 하고 한숨과 원망 속에 살아 갈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겁 이전에 수기 받은 부처님 되실 분들인 것을 알아
남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며 환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수기 받은 자의 의무요 불자들의 책임입니다.




곳곳에 오시는 부처님들, 어서 오십시오!
거리에서, 고통 받는 그 곳에서, 그대로 성불하십시오!



번뇌가 변해서 보리가 아니라,
번뇌 그대로가 보리인 줄 그 자리에서 아셔서 바로 그 곳에서 부처님 되시옵소서!




출가하신 스님 부처님은 용맹정진으로 부처님 되시고,
노래하시는 가수 부처님은  노래로써 부처님 되시옵소서!



혜능은 방아찧다 깨달으시고 바보 주리반특은 청소하다 깨달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비록 번뇌 많은 사바 중생이긴 하지만,
우리 삶의 도구 하나 하나가 바로 그대로 성불의 도구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오시는 분이 부처님 되시고,
저를 만나시는 분에게 저희가 부처님이 되어 드릴 때,
세상은 평화롭고 온 누리 곳곳에

부처님 나투시는 소리 아니 울려 퍼지는 곳 없을 것이니,





불자님들이시여!
우리 모두 희망과 기쁨으로 오시는 이 많은 부처님들을
환희와 찬탄으로 맞이 하시옵기 발원 드리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


                        普賢 合掌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남이 보기 부러워 할 정도의 여유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일 듯 하나 실제로는 마음이 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행복에 조건을 알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은 만족을 모를 터이니 마음은 추운 겨울일지도 모르겠네요. 몸이 추운 것은 옷으로 감쌀 수 있지만 마음이 추운 것은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사는 기준이 다 같을 수는 없지요 행복에 조건이 하나 일 수는 없답니다. 생긴 모양새가 다르면 성격도 다른 법 가진 것은 적지만 행복을 아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비록 부유하지는 않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행복에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집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행복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월간 불광 2000년 5월호에 실린 글로
해마다 봄이 되면 불자님들께 꼭 공양올리고 싶은 글이라
매년 5월이면 말씀 올립
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