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을..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높으신 고승이 혼자 대부분 포교를 한다.
기독교의 경우에는 물량공세로 하거나 또는 폭력?으로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조선자치구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워주거나
또는 단군상 파괴나 불상파괴와 같은 폭력적 방법등 배타적으로 전도한다.
최근에는 취직을 제한하는 그런 집단이기주의적으로도 포교한다.
예를 들어 자기 종교 아닌 사람은 취직을 시키지 않는 방법등이다.
많은 채플대학의 직원이나 교수 채용도 그 종교 아니면 아예 서류조차 제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불공정 채용사례중 최악의 것이다.
한국에 세워진 수많은 채플 대학이 그런 물량공세로 이루어진 전도현장이다.
E 여대, Y 대학, S 대 등등. 물론 우리나라에 기독교 지식인 양산에 매우 성공한 케이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불교는 그런 물량공세로 전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가르침으로만 전해진다.
그래서 스님의 지혜의 가르침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에 숭산스님은 영어 한마디 못하시면서도 미국에 가서 수많은 제자들을 하바드 학생으로 채우셨다.
처음 도착하여 막노동일로 시작하신 분이다.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방법이다.
절대 물량공세도 없었다. 그저 몸 한몸 가셔서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지혜의 가르침으로 이루셨다.
그래서 불교 포교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혜를 정말 깨닫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 불교를 전달한 틱낫한 스님도 정확한 불교의 지혜의 가르침으로
프랑스의 인텔리층을 잡으셨다.
달라이라마님도 마찬가지.
그 분들이 무슨 물량공세를 폈는가 ? 대학을 세웠는가 ? 아니면 배타적 폭력을 휘둘렀는가 ?
오직 부처님의 지혜의 말씀을 전달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것 뿐이다......
결국 불교의 포교는 모든 것이 지혜의 말씀 전달이고 그것을 배우는 것이기에
포교자의 품성 그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특히 포교는 지식층을 파고 들어야 하는데, 현재의 불교는 그러하지 못하다.
지식층은 기독교의 교회가 다 잡고 있어 보인다.
그건 과거 강 목사가 운영했던 우이동의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거의 기폭적 역할을 했다.
당시 불교가 한문 경전을 가지고 염불만 하고 있을 때, 강 목사는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교수들과 학자들을 끌어 모아 기독교 가치관을 교육시켰다.
당시 불교계는 70 년대라서 거의 아무일도 하지 못하던 시대이다. 한글 경전도 없었다.
그런 시대에 강목사는 대학의 지식인들에게 과감하게 접근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강 목사는 그 후 전대통령 시절에 방송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면서
방송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다.
최근에도 방송법을 개정할 때 강 목사는 개정위원장을 맡아 방송법 개정을 했던 사람이다.
즉 정치적으로 연결이 강하였다는 의미이고 그 이면에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나는 본다.
결국 포교란 강목사의 케이스에 보다 시피 그 사회의 지도층이 될 사람들을 잡는 일이다.
강목사도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젊은 교수들을 교육시키고 서로 만나 인연을 맺게 했던 것으로 안다.
그 인맥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다. 정치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숭산스님이 미국의 최 우수 대학인 하바드 대학과 MIT 를 잡지 않았더라면
아마 숭산스님이 미국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도층 한 사람이 불자가 되는 일이 불교의 포교에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불교의 포교는 대학을 중심으로 퍼져야 할 것이다.
숭산스님이 하신 일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현각스님 같은 하바드 신학대학원 생도 부처님 제자가 되신 것 아닌가.
증산도의 경우, 내가 볼 때 대학에 많은 서클 활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건 아주 나쁜 경우에 해당하지만, JMS 도 대학을 파고 들어 그렇게 신문에
나게 된 것이다.
나는 불교의 경우
대학의 대불련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하는 정책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경우, 캠퍼스 복음화 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한국의 모든 비 채플 대학을
각각의 지역의 교회가 하나씩 맡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대학교별로 맡은 교회가 있는데, 내가 아는 지역의 한 대학은 완전히 목사 한사람이 책임지고
전일 근무를 한다.
그 대학을 맡은 교회에는 목사가 수십명 있는 대형 교회인데, 그 중 한 목사가 그 대학을 일년 열두달
매일 맡고 있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면 개강예배, 끝나면 종강예배등을 주도한다.
그런데 불교계에서 스님이나 법사님이 대학의 개강 법문이나 종강 법문을 하신 일이 있으신가 ?
없을거다.
불교계는 현재 대학캠퍼스 포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앞으로 대학캠퍼스에 불교 포교를 하려면, 각 대학에 포교사 한분씩을 배치하고
그들의 월급을 담당 사찰에서 주는 것으로 해야 한다.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그렇다.
전국에 대학이 200 개 정도이고 전문대까지 합치면 숫자가 더 많다.
즉 수백명의 포교사의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대학생과 교수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불교의 정수의 지혜를 전달해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숭산스님이 미국의 핵심 캠퍼스 도시인 캠브릿지로 가신 이유를 이제 이해하실 것이다.
한국의 포교도 대학 캠퍼스가 그 제일 목표이다.
그래야 젊은 사람을 포섭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대학 캠퍼스를 다른 종교에 다 빼앗길 경우,
불교계의 미래의 젊은 층은 아마 사라질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포교가 이루어 져야 그 사람들이 직장으로 가고 결혼한 후에
근처의 사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캠퍼스에서 이루어져야 젊은이들이 결혼도 할 수 있고, 연애도 할 수 있고 그렇다.
깉은 불자끼리 말이다.
살펴보면 기독교계에서 배울 것은 많다.
허나 글 제목에서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의 지혜의 향기가 자기에게서 나야 한다.
그게 불교의 포교의 제일 첫번째 사항이다.
모든 고승들께서 혈혈 단신 포교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캠퍼스에서 진리의 지혜 말씀을 항상 전달하는 분이 항상 상주해야 한다.
맡은 사찰에서 책임지고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과 교수들을 이어 주어야 한다.
그게 미래의 젊은 불자들을 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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