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을..

2010. 3. 7. 20:1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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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을..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높으신 고승이 혼자 대부분  포교를 한다.

 

기독교의 경우에는 물량공세로 하거나 또는 폭력?으로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조선자치구에 과학기술대학을 세워주거나

또는 단군상 파괴나 불상파괴와 같은 폭력적 방법등 배타적으로 전도한다.

 

최근에는 취직을 제한하는 그런 집단이기주의적으로도 포교한다.

예를 들어 자기 종교 아닌 사람은 취직을 시키지 않는 방법등이다.

많은 채플대학의 직원이나 교수 채용도 그 종교 아니면 아예 서류조차 제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불공정 채용사례중 최악의 것이다.

 

한국에 세워진 수많은 채플 대학이 그런 물량공세로 이루어진 전도현장이다.

E 여대, Y 대학, S 대 등등. 물론 우리나라에 기독교 지식인 양산에 매우 성공한 케이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불교는 그런 물량공세로 전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가르침으로만 전해진다.

그래서 스님의 지혜의 가르침이 대단히 중요하다.

 

미국에 숭산스님은 영어 한마디 못하시면서도 미국에 가서 수많은 제자들을 하바드 학생으로 채우셨다.

처음 도착하여 막노동일로 시작하신 분이다.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방법이다.

절대 물량공세도 없었다. 그저 몸 한몸 가셔서 그 모든 것을 조용히 지혜의 가르침으로 이루셨다.

그래서 불교 포교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혜를 정말 깨닫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 불교를 전달한 틱낫한 스님도 정확한 불교의 지혜의 가르침으로

프랑스의 인텔리층을 잡으셨다.

 

달라이라마님도 마찬가지.

그 분들이 무슨 물량공세를 폈는가 ? 대학을 세웠는가 ? 아니면 배타적 폭력을 휘둘렀는가 ?

오직 부처님의 지혜의 말씀을 전달하기만 했을 뿐이다.

그것 뿐이다......

 

결국 불교의 포교는 모든 것이 지혜의 말씀 전달이고 그것을 배우는 것이기에

포교자의 품성 그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특히 포교는 지식층을 파고 들어야 하는데, 현재의 불교는 그러하지 못하다.

지식층은 기독교의 교회가 다 잡고 있어 보인다.

그건 과거 강 목사가 운영했던 우이동의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거의 기폭적 역할을 했다.

당시 불교가 한문 경전을 가지고 염불만 하고 있을 때, 강 목사는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교수들과 학자들을 끌어 모아  기독교 가치관을 교육시켰다.

당시 불교계는 70 년대라서 거의 아무일도 하지 못하던 시대이다. 한글 경전도 없었다.

 

그런 시대에 강목사는 대학의  지식인들에게 과감하게  접근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강 목사는 그 후 전대통령 시절에 방송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면서

방송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이다.

최근에도 방송법을 개정할 때 강 목사는 개정위원장을 맡아 방송법 개정을 했던 사람이다.

즉 정치적으로 연결이 강하였다는 의미이고 그 이면에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나는 본다.

 

결국 포교란 강목사의 케이스에 보다 시피 그 사회의 지도층이 될 사람들을 잡는 일이다.

강목사도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젊은 교수들을 교육시키고 서로 만나 인연을 맺게 했던 것으로 안다.

그 인맥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다.  정치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숭산스님이 미국의 최 우수 대학인 하바드 대학과 MIT  를 잡지 않았더라면

아마 숭산스님이 미국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도층 한 사람이 불자가 되는 일이 불교의 포교에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불교의 포교는 대학을 중심으로 퍼져야 할 것이다.

숭산스님이 하신 일이시기도 하다.

그래서 현각스님 같은 하바드 신학대학원 생도 부처님 제자가 되신 것 아닌가.

 

증산도의 경우,  내가 볼 때 대학에 많은 서클 활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건 아주 나쁜 경우에 해당하지만, JMS 도 대학을 파고 들어 그렇게 신문에

나게 된 것이다.

 

나는 불교의 경우  

대학의 대불련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하는 정책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경우, 캠퍼스 복음화 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한국의 모든 비 채플 대학을

각각의 지역의 교회가 하나씩 맡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다.

 

대학교별로 맡은 교회가 있는데, 내가 아는 지역의 한 대학은 완전히 목사 한사람이 책임지고

전일 근무를 한다.

그 대학을 맡은 교회에는 목사가 수십명 있는 대형 교회인데, 그 중 한 목사가 그 대학을 일년 열두달

매일 맡고 있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면 개강예배, 끝나면 종강예배등을 주도한다.

 

그런데 불교계에서 스님이나 법사님이 대학의 개강 법문이나 종강 법문을 하신 일이 있으신가 ?

없을거다.

불교계는 현재 대학캠퍼스 포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앞으로 대학캠퍼스에 불교 포교를 하려면, 각 대학에 포교사 한분씩을 배치하고

그들의 월급을 담당 사찰에서 주는 것으로 해야 한다.

기독교식으로 하자면 그렇다.

 

전국에 대학이 200 개 정도이고 전문대까지 합치면 숫자가 더 많다.

즉 수백명의 포교사의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대학생과 교수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불교의 정수의 지혜를 전달해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숭산스님이 미국의 핵심 캠퍼스 도시인 캠브릿지로 가신 이유를 이제 이해하실 것이다.

 

한국의 포교도 대학 캠퍼스가 그 제일 목표이다.

그래야 젊은 사람을 포섭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대학 캠퍼스를 다른 종교에  다 빼앗길 경우,

불교계의 미래의 젊은 층은 아마 사라질 것이다.

 

대학 캠퍼스에서 포교가 이루어 져야 그 사람들이 직장으로 가고 결혼한 후에

근처의 사찰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캠퍼스에서 이루어져야 젊은이들이 결혼도 할 수 있고, 연애도 할 수 있고 그렇다.

깉은 불자끼리 말이다.

 

살펴보면 기독교계에서 배울 것은 많다.

허나 글 제목에서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의 지혜의 향기가 자기에게서 나야 한다.

 

그게 불교의 포교의 제일 첫번째 사항이다.

모든 고승들께서 혈혈 단신  포교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캠퍼스에서 진리의 지혜 말씀을 항상 전달하는 분이 항상 상주해야 한다.

맡은 사찰에서 책임지고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과 교수들을 이어 주어야 한다.

그게 미래의 젊은 불자들을 잡는 일이다.

 

불교발전의 대안으로 새로운 신도운동을 제창합니다.

 

이 의견은 본란에 쓴 "출세간 불교에만 바라지 말라"와 관련해서 보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 한국불교발전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되기를 바란다

부처님의 진의는 모든 사람이 다 본래는 부처다, 이것인데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이 무엇인가 그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연기법이다
연기법은 본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있는 법인데 부처님이 발견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법을 보면
나를 보는 것이다

이 썩어질 몸을 봐서 무얼 하겠느냐고 분명히 말씀했다.
그리고 그 법을 실천하는 길도 분명히 제시하고 계신다.
그것은 중도행인 팔정도의 길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법은 여기 다 드러나 있다.
승속 간에 이걸 누가 제대로 깨닫고 실천하면 되는가에 달린 것이다.
설사 불교 전통이 어떻다 하드라도 그걸 극복하면서 이 길로 가면된다

출세간에 계신 스님들은 교학을 철저히 마스터 했으면 그 신념이 맞는지
세간으로 나와서 생활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증득 했어야 옳은 방향이다
(신도들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렇다)

종단에서는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고 스님들은 신앙공동체를 개척하며
목우행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신도들에 대한 자비행과 인욕정진이
완성되는 날이 깨닫는 날 이어야한다 (자비심이부처)

이렇게 되야 출세간과 세간이 한판 잘 어울리는 불국정토가 될 것이다.
스님들은 흔히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선이 아닌 것이 없다 하시면서도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생활현장의 수행인 생활 선은 찾아 볼 수 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지금 우리의 현실은 스님 중심의 불교요 스님들은
아예 깨달아 부처가 되기로 작정을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면서도 종단은 스님들이 사법 입법 행정 삼권을 다 쥐고 있다.
신도들은 따라 가기만하면 된다. 신도들은 종속변수일 뿐이다

스님들이 신도들의 생활중심에 와서 신도들의 잘못된 삶을 진리의 삶으로
변혁시키는 현대적 포교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불자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있고, 한국불교의 공백이 있으며,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해 나타내는 불교의 사회적 역량이 분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타종교가 신도 중심으로 내려와서 열심히 신도들의 생활을 이끌고 있는데 비하면 ,
우리는 산에나 종단에 있는 스님들만을 찾아나서야 한다. 몇몇 사찰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그러한 경향이다

따라서 불교는 신도들과 함께 가꿔가는 불국정토를 향한 강력한 사회적 연대도,
힘찬 사회적 동력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불자들이 활동공간을 찾고, 발언권을 높이고, 역사 현실을 진리로

바꾸는 동력을 나타내고, 이러한 생활불교를 끌어갈 자체인재를 육성하고,
스님들이 큰 깨달음을 얻고 하산할 때까지의 수행을 보살피고,

무엇보다 신도들이 우선 생활현장에서 합심해서 한마음으로 사는 법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각자 자기의 타고난 능력을 창조적으로

발산해 내야하는, 이러한 모든 과제를 풀어가야 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신도들의

당면과제인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이런 업보를 기존종단에서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사정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하는데 그 대안이 새로운 생활불교운동이라고 본다.

그래서 여기에 생활불교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은지 그 모델을 의견으로 제시하니
좋은 지도가 있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카페활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안이다

생활불교는 자생조직이 독자적으로 불교 수행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스님들이 지원 해주면 좋지만 그것이 안 되는 현실을 우리는 전제하고
이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자생조직이 제일 어려운 것은 자체적으로 어떻게 법회를 이끌어 갈 것인가가
제일 어렵다. 이 문제를 카페운영에서 풀자는 것이다.

카페를 법당으로 하고 법문 실을 따로 개설해서 매주 돌아가면서
신도들의 체계 있는 교리공부가 되도록 법문을 소개하는 것이다

법문을 영상으로 들려주기에 앞서 법사님의 약력과 교리체계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는 법문요약문 그리고 법문에 나오는 교리 용어 해설정도를
미리 소개하면 더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영상법회를 가지면서 교리 공부도 카페에서 체계적으로 해서
신도들이 불교가 무엇인지 언제 어디서나 자신 있게, 그 우월성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 시키자는 것이다.

다음은 신도들의 조직화다 이것도 현재 모든 카페별로 이용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희망 지원을 받아서 지역별 직장별 기타 생활권으로 나누어
조직화 하자는 것이다.


조직화가 되면 신행단체별로 운영규정을 만들고 여러 가지 신행단체가

해야 할 부서, 회장선출방법, 봉사활동범위, 봉사활동방식, 회비 등

재원확보 방안을 세우게 될 것이다

이 때 각 단위 조직별로 꼭 유의해야할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인재를 발굴해서
자체적으로 양성한다는 차원에서 조직 내의 유능한 인제를 회장으로 뽑는 일이다.

회장은 그 자생조직을 개척불사로 생각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할 사람이다
이 회장을 정점으로 뭉치고 단합하려면 회장을 활용하는 한편 신도들은
그 대가를 회장에게 지급 하는 유급간부화 제도를 초창기부터 정착시켜
가자는 것이다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서로 어색하고 또 처음부터
이 제도를 바로 시행하기는 재원 상 어렵다

그렇지만 방향을 그렇게 잡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활권 마다
불법을 지도 해가는 지도자를 우리가 육성해 간다는 목적을 달성 할 수 있고
앞으로 이모임이 연대해 조직화 되면 유급법사들이 발령받고 직업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 활동을 시작하는 단위조직은 카페내의 다른 조직과 연대하고 정보도
교환 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본제도의 정착을 모색해야 한다.
첫술에 배부르지는 않지만 카페별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세간에
새로운 차원의 생활불교 운동이 꽃피리라 확신한다.

이미 자생 카페법당을 통해서 선지식의 법문으로 공부 해가면서
자체적으로 친목회를 만들어 상당한 자금도 확보하고 생활불교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고 듣고 있다.
해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확신한다.

단지 여기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할 사항은 세간에서의 생활불교는
어느 차원의 수행에다가 목표를 두고 하느냐의 문제다
이것도 출세간 불교의 수행에 의존해서 스님들이 제시 하고 있는
그런 수준의 공부를 따라 가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혼란이 없다.
간화선만을 고집한다든지 성불만을 목적으로 수행에 전념할 사람은
예외적으로 나가면 된다.

여기서는 교리위주의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부처님 말씀의 진의를 파악해
깨달아 확신을 갖는데 까지가 목표가 되면 된다 그리고는 그것을 현실 속에서
성실히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지행일치다 불교에서의 지행일치는 교리적으로 연기중도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인 팔정도 수행임은 말할 것이 없다 세상을 헤쳐 가되 탐진치로
서로 대립하고 다투지만 말고 서로가 합심하고 단합해서 부처님 말씀대로
서로 서로가 즐겁게 잘살자는 것이니까 사실은 생활불교가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

회장을 중심으로 가정법회를 가질 수 있으면 되고 (법문은 컴 법당 법문을 듣고)
회원가정의 애 경 사에는 전회원이 나서서 자기 일처럼 돕고,
병문안 등에 소홀하지 않고, 외로운 회원은 자주 가정 방문하여 위로하고 ,
즐거운 일 슬픈 일 회원 대소사를 항상 한 집일처럼 거드는 등 이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우리 조상들이 이미 오랜 세월 해 왔던 전통이다

그것을 더 여법하게 해가자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자생조직의 발전 속도에 맞춰
법당도 마련하고 노인들의 장지까지도 준비 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이다

그리고 회장은 이런 활동을 하면서 굳이 복식이나 의례에 구애 받지 않았으면 한다.
잘못하면 망건 쓰다 장파하는 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도 과감히 탈피하고
현재 우리가 평소 생활에서 하고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현장에서 새로운 의제가 정착되어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어려운 입장에 있는 신도나 신도 가정에는 불보살을 믿고 가피를 비는
기도를 올려주고 본인에게는 법대로 살겠다는 발원을 하도록 하고 좋은 일은
모두에게 회향하는 나눔의 잔치를 만들고 축원을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생활불교는 사실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 하면 된다.

불교는 신을 중심으로 믿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법을 믿는 종교다(법보)
그리고 그 법을 깨달아 지금 법계에서 자유자재 하게 활동하시는 불보살의
가피를 믿는 종교다(불보) 그리고 아직은 미망에 빠져있지만 미래 부처가 될
사람들의 단합된 모임을 믿는 종교다(승보)

어디다 내놔도 하나도 꿀릴게 없는 삼보로 무장된 강력한 불교다.
이것이 불교의 힘이다 생활불교가 이 땅에 정착되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빌며
더 좋은 대안이 있으면 내놓고 서로 결속 해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일 이 의견이 성안된다면 시작부터 카페산하의 모든 신행단체를
종합관리 할 책무가 있는 카페 운영자님들께서도 이런 어설픈 대안이지만
한번 잘 검토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상
글쓴이 : 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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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자양님이 어느 카페에 올려주신 글입니다.(원 출처는 모름)
참 좋은 대안이라 적극 활용하고자 합니다.
타종교는 교회만 나가면 얼마후 전도를 하는데 불자는 인연법을 따라서인지
10년 20년이 가도 전법할 생각을 안한답니다.

법을 상속하지 않으면 불자도 없을 것이며 불자가 없는 불교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불자가 없으면 절도, 불교카페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이버 카페들은 사이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전법을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