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청화큰스님

2010. 3. 4. 21:4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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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

청화 큰스님

 

수행의 위차(位次)인 해탈 십육지(解脫十六地)가 있습니다. 수행을 하려면 어떤 과정을 밟아서 해야 할 것인가 하는 위차이기 때문에 실수(實修)하는 수행자로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위차를 모름으로서는 암중모색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한 동시에 아만심이 있는 사람들은 증상만(增上慢)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위차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옛부터 번쇄하게 논의가 많이 되어 왔습니다.


밀교(密敎)에서는 십지(十地)를 말하고 유가(瑜伽)는 십칠지(十七地)를 말하며 또는 성문승(聲聞乘)도 나름대로 십지(十地)를 말하고, 연각승(緣覺乘)도 역시 십지(十地)를 말하고 또는 보살승도 역시 화엄경에서 십지(十地)를 말하고 또한 그와 동시에 오십오위(五十五位), 오십일위(五十一位), 오십육위(五十六位)…… 등등의 여러 가진 수행론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가운데서 어떻게 서로 연관이 될 것인가?


달마(達磨) 대사께서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傅)을 말씀한 것도 무엇인고 하면, 복잡한 문제들을 따지다 보면 소중한 마음도 못 닦고 말아 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큰스님들이 ‘분별시비하지 말라, 경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지극히 노파심절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위차 문제만 해결하려고 해도 오랜 시일과 정력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금타 스님께 대해서 감사를 느끼는 것이 이런 성문십지, 연각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나 오십육위나 그런 여러가지 위차에 관해서 대비(對比)시켜 가지고 회통(會通)하여 하나의 체계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석존(釋尊) 이후에 그렇게 하신 분이 현대에까지 아직은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저도 사실 젊어서는 상당히 교만한 편이었습니다마는 이런 공부를 할 기회가 없었다면 엉뚱하게도 ‘공부가 다 되었다’고 아만심에 젖어서 무거운 죄를 범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승려가 된 뒤 법화경(法華經)을 보고서 ‘내 공부가 이제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학 공부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불교라는 것이 상대와 절대와 성상체용(性相體用)이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본래 둘이 아닌 법을 알고 우주법계 그대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도리를 알았으면 앞으로 인연 따라 증오(證悟)를 위하여 닦아나가면 되는 것이지 무엇이 더 필요한 것인가?’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런 수도의 위차(位次) 법문을 보고서 ‘우리 범부가 공부해 간다는 것이 지극히 멀고도 먼 길을 가야 하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해탈십육지(解脫十六地)는 금타 스님께서 성문십지, 연각십지, 보살십지 또는 오십오위라든가 여러 가지 밀교의 계위를 합해서 비교해 가면서 보살 10지를 근간으로 하여 회통을 시킨 수행 체계입니다. 물론 이 작업이 완전무결한 것인지 아닌지는 제가 그 경계가 못되기는 하나,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내용이 확실한 전거(典據)를 인용(引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수행자나 선지식들이 연구하고 검토할 소중한 문제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행복의 첫걸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어렵고 힘든일을 여러 번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됐다고 해서 
      무조건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행복이라는 것은 
      어떠한 생각을 갖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남들이 겉으로 보기에 무척 행복해 보인다거나, 
      또는 몹시 불행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별로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겉에서 보기에 불행해 보이더라도 
      사실은 행복한 사람일 수 있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더라도 
      사실은 남모르는 
      불행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라도 사는 동안 
      내내 행복하거나 불행해질 수는 없다. 
      행복이라는 상태는 생각하기에 따라 
      누리게 될 수도 
      그 반대로 불행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렵고 힘든 문제가 
      당신 앞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어차피 당신 앞의 문제는 
      당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든 
      상관없이 그렇게 놓여있다. 
      당신이 그 문제를 
      어떠한 감정 상태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당신은 그 어려움을 빨리 극복하고 
      행복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기도하고, 
      그 문제에 발목이 잡혀 
      불행하게 허우적거릴 수도 있는 것이다
      -좋은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