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8. 23:51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발심수행장·수행법
종교지도자의 도덕성 회복을 논한다.
안심정사 백상선원 법안 스님
( 2007. 09. 06 )
사회가 점점 혼란하여지고 살아가기 힘들어진다고들 말한다. 누구 하나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책임일 것이다. 마치 대선 투표결과를 정치인들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그 결과에 따라 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회구성원의 공업(共業)으로 되기 때문에 모든 이들 자신이 책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찰과 교회 등 종교시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대학 등 교육기관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인성(人性)은 오히려 퇴보하였음을 통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구촌이 된 오늘날의 무한경쟁 세계에 사는 우리들은 각 종교 간에, 종교 안에서의 종파 간에 유형무형의 경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이라크와 탈레반과의 전쟁일 것이다. 이러한 업들도 또한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의 공업이 되어 돌아오게 되고, 세상 자체가 그 전쟁에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 오늘날 지구촌 시민들의 걱정거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날 불교계는 어떠한가? 여기서 공자시대의 한 이야기를 인용해보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의 선후를 물었을 때 공자는 첫째 ‘족식’(足食), 둘째 ‘족병’(足兵), 셋째 ‘민신’(民信)이라고 했다. 국가경영의 요체는 경제적 번영과 자주국방 그리고 국민의 신뢰라는 것이다.
子貢(자공)이 말하기를 반듯이 부득이해서 버린다면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먼저 하오리까? 공자 답하시길 兵士(병사)의 調練(조련)하는 일 버릴 것이 나니라.
子貢(자공)이 말하되 필히 부득이 하여선 이남은 두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를 버려야 할 형세라면 어느 것을 먼저 하오리까?
공자 답하시기를 먹는 것을 버릴 것이 나니라. 예로부터 다들[누구에게나] 죽음이 닥치거늘 백성들 간에 信義(신의)로움이 깨진다면 自立(자립) 하게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 불교는 고려시대의 국교였고, 통치이념이었다. 그런 불교가 하루아침에 성리학에게 그 통치이념의 자리를 내어주고 불교승려는 한양의 사대문 안에 조차 출입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조선시대의 사정이었다. 그것은 어떤 업이었는가? 고려 귀족불교가 국가 경제를 장악하고, 몰지각한 승려들이 정치세력과 야합하여 백성들의 등을 따갑게 하고, 배를 고프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오늘, 일부 불교지도자들의 도덕성 해이는 심각한 정도를 넘어서는 것 아닌가 사료된다. 오늘날 매스컴에서 불거져 나오는 승가의 자금횡령을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의 사회적 이권다툼 등의 문제점 돌출은 수행자로서, 성직자로서의 시대 사명을 망각하고 있음이 자명한 것으로 사료된다. 단지 매스컴에서 나오는 내용만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사실의 여부를 떠나서 불교는 타종교의 탄압에 의하여 멸망하지 않는다. 『열반경』에 말씀하시는 대로 ‘사자 몸의 병균’과 같은 것이다. 사자는 백수의 제왕이어서 외부 짐승의 공격에 의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속에서 발생한 병균에 의하여 죽는 것이다. 자신의 종단, 자신의 사찰,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하여 타종단을 폄훼하고, 타사찰을 헐뜯고, 타스님들이나 타인들을 욕하면서 자신만의 가르침을 선양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자 몸의 병균이 되는 것이다.
모든 승가가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정치승 내지 유한 귀족승가들은 고급외제차를 타고 배에 기름이 낀 이들이 고급음식점에서 음주와 식육을 공공연히 하면서 거들먹거린다면 그것은 불교의 말세이고 천한 사람이다. 무슨 돈으로 노동하지도 않고, 특별한 벌이가 없는 종교지도자들이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인가? 모두 신도들의 그 소중한 소원이 담긴 시주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재물복은 한정된 것이다. 유한한 재화(財貨)를 공양 받은 스님들은 그 재화를 이용하여 세상을 이롭게 할 의무와 책임을 지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고구정녕 시주물의 인과가 무서움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시주물을 써서 남도 이롭고, 자신도 보살도를 실천하여 자신을 이롭게 해야 할 책무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 소중한 시주물을 어찌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자신의 몸뚱이의 즐거움을 위하여 소모해버린다는 말인가?
오늘날 대장경의 총정리판인 일본에서 정리한 대정신수대장경을 인터넷에 전자판으로 올린 것은 타이완의 스님들이었다. 시줏돈으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대장경을 전산 입력하여 세상 사람들이 접근하기 용이하게 만든 것이다. 오늘날 한국 불교계의 인프라 구축은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포교현장에서 보면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지도자들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본래 출가의 목적을 망각한다면 바로 불교를 망치는 ‘사자 몸의 병균’이 아니겠는가?
불교가 지도자나 스님들과 신도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살 수 있지 않으면 불교의 기반이 약화되고 마침내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민무신이면 불립(不立)이라고 하셨다. 국민 서로가, 지도자와 따르는 이들이, 종교지도자와 그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서로 믿지 못한다면 마침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불교라는 위대한 가르침도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어찌 불교계가 서둘러 서로의 믿음을 회복하지 아니 할 수 있겠는가? 급하고 급한 일이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신을 추켜세워 크게 칭찬하면서
타인은 낮게 떨어뜨려 욕하고
교만 때문에 마음이 비루해지는 자
이와 같은 자를 천한 자로 알면 된다.
진정으로 성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성자인 것처럼 공언하는 자는
모든 하늘과 사람의 도적이다.
이와 같은 자는 가장 천한 사람이다.
사람은 그 출생에 따라 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출생에 따라 성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 행위에 의해서 천한 사람이 된다.
또한 그 행위에 의해서 성자가 된다.
햇살 한 줌이 소담합니다
그대 두고간 마음이 반짝입니다
바람 한 결에도 상큼합니다
살아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당신도 내게 축복입니다
나도 당신에게 축복이 되고 싶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는
이런 느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좋은 느낌을 마음에 그려보십시오
푸른 하늘, 맑은 바람, 행복한 미소 등등
그러면 당신은 어느 새
그것들과 하나가 되어 있을 겁니다
마음에 그리고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당신의 모습입니다
만일 마음에 어둠이 있다면
당신은 어두운 표정이 되는 것이고
마음에 성냄이 있다면
당신은 성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빈 광주리와도 같습니다
빈 바구니를 채우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당신의 마음 바구니에는
무엇이 담겨 있습니까 ?
푸른 하늘 맑은 바람 예쁜 꽃 넓은 바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 찬
당신의 마음
바구니를 모두에게 내보여 주십시오.
그순간 세상은 온통 축복으로
당신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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