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8. 23:5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제불조사스님
총림방장 동안거 해제 법어 |
해인총림 해인사를 비롯한 영축총림 통도사, 조계총림 송광사, 고불총림 백양사, 덕숭총림 수덕사 등 전국의 총림 방장스님들이 지난 2월28일 동안거 해제를 맞아 일제히 법어를 발표했다. 전국 97개 선원에서 기축년 동안거 결제에 든 대중은 총 2244명이다. 이들 결제대중을 향한 방장스님들의 법어 전문을 게재한다.
설후시지송백조(雪後始知松栢操)요 어려운 일을 당해봐야 누가 장부인지 알 수 있다.
벌써 구십일의 안거가 지나 해제 날을 맞았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해 결제를 하고 해제를 합니까? 진정으로 마음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대중들이 각자 한 입씩 생철을 씹었습니다. 얼마나 물러졌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입니다. 군자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대중들은 분명 마음속에 설산수도의 자세로 정진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해제하는 대중들은 수행자의 지조를 지녀야 합니다. 순식간에 다시 단단하게 굳어져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일하게 하라는 말을 간곡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제니 해제니 하는 말은 지혜롭게 완급을 잘 조절하라는 뜻이지 놓아 버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는 그 맑은 눈앞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만 그것을 잡으려 하면 멀어져 버리는 그 신통한 물건이 무엇인지, 실체를 찾는 대중들은 각자 대력백우(大力白牛)가 되어서 허수아비에 속지 마십시오. 그 허수아비의 펄럭거림에 속아서 배고픔에 허덕이는 어리석음은 면해야 할 것입니다.
들새 산짐승들이 모두 긴가 민가 하네. 우리 집에 힘세고 눈 밝은 소가 한 마리 있나니 성큼 성큼 밭으로 들어가 허수아비를 먹어버렸도다.
해제하고 나서는 대중들은 당당하게 본분을 향해 나가 보세요. 그랬다가 영축산으로 다시 돌아와 살찌고 맛난 향기로운 풀만 먹는다는 백우처럼 참 선지식이 되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주삼라가 온통 법의 산 일세
출세간의 종지는 금옥(金玉) 소리가 서로 울려 퍼지는 것과 같고 사방으로 통달한 지략은 화살과 칼끝이 서로 버티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큰 세계 어디에서도 감추지 못하고 멀고 가까이에서 일제히 나타나며 고금을 밝게 분별합니다. ‘말해보십시오 이는 어떤 사람의 경계입니까?’ 고불(古佛)과 노주(露柱)가 사이좋게 지내는데 이는 몇 번째 등급입니까? 대중이 말이 없자 스스로 대신하여 말씀하였습니다. “남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 비가 내리도다.” 이 무슨 소식입니까? 산고해심무측량 (山高海深無測量) 고왕금래전청벽 (古往今來轉靑碧) 할(喝)
오늘은 경인년 정월 십오일 동안거 해제일입니다. 결제(結制)에 결제(結制)가 없고 해제(解制)에 해제(解制)가 없어야 진정한 결제요 해제라 했는데, 금일 대중은 어떤 해제를 하였습니까? 해제(解制)란 견성성불(見性成佛)하여 생사영단(生死永斷)하는 대사 (大事)를 마쳐야 하는데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못 마쳤다하면 진정한 해제가 아닙니다. (未來際)가 다하도록 사용하여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향(向)해 감로법우 (甘露法雨)를 뿌려 영원(永遠)이 안락(安樂)케하고 영원(永遠)이 해탈 (解脫)케하는 공덕(功德)을 가지(加持)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염법(染法)입니다 정법(淨法)은 열반적정(涅槃寂靜)의 길이요 염법(染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길입니다 염법(染法)의 길은 어둡고 탁하여 험난하기 말할 수 없는 생사(生死)의 길이요 구속(拘束)의 길인데, 어리석은 중생들이 대부분 정법(淨法)의 길을 가지 아니하고 염법(染法)의 길을 가는 것은 광겁(曠劫)에 익힌 탐업(貪業) 때문입니다. 견성법(見性法)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가장 편하고 좋은 길인데 탁업(濁業)이 많은 까닭에 마음으로 생사고(生死苦)를 싫어하면서도 도리어 생사업(生死業)을 짓고 있으니 참으로 업력(業力)의 무서움이 이토록 심할 수 있을까? 이래서 삼독(三毒)에 중독된 중생이라 했나봅니다. 똥통에 처박혀 그것이 제일인줄 알고 삶을 즐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아무리 불법(佛法)을 만나 중이 되었더라도 정법(淨法)을 익히지 않으면 그대로 속물(俗物)이요, 누구든지 진로(塵勞)에 살더라도 정법(淨法)을 수행(修行)하면 불제자(佛弟子)라 할 것입니다. 밖에도 있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있지 않는데 그러면 자가진보 어디에 있는고?
나름대로 열심(熱心)히 공부(工夫)했다고 산승(山僧)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치는 것이 빠르고 더딘 것은 사람마다 인연(因緣) 시절(時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봉선사(高峰禪師)는 칠일(七日)만에 깨쳤습니다. 영운선사(靈運禪師)의 오도송(悟道頌)을 소개(紹介)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삼십년래심검객(三十年來尋劒客)이여 새싹이 돋는 봄과 낙엽(落葉)이 지는 가을을 몇 번이나 겪었던고. 복숭아꽃이 활짝 핀 것을 한 번 보고 나서 이렇게 모든 의심이 한꺼번에 없어졌네
하였다. 봄은 공부가 잘 될 때요 가을은 공부가 안 될 때를 가르치는 말입니다. 공부(工夫)하는 사람은 화두(話頭)만 열심(熱心)히 할 뿐 빨리 깨치겠다는 욕심(欲心)은 없어야 된다. 속효심(速效心)을 가지고 공부(工夫)하는 병(病)만 생기고 사견(邪見)도 일어나서 바로 깨치기 어렵고 깨친다 하더라도 정력(定力) 없는 건혜(乾慧)일 뿐이니 건혜(乾慧)로써 어찌 생사를 해탈(解脫)하겠는가?
깨치기도 바라지 말고 결제(結制) 해제(解制) 상관 없이 간단(間斷) 없는 화두(話頭)로 끊임없이 공부(工夫)하면 자연(自然)히 시절인연(時節因緣) 이 도래하여 얼음 녹듯 눈 녹듯 의심(疑心)이 사라지고 공안(公案)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불교신문 2602호/ 3월3일자]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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