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8. 19:57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선불교이야기
[無門關] 7. 구지의 손가락
- “손가락 너머 소식을 붙잡아라” -
祗俱祗和尙, 凡有詰問, 唯擧一指. 後有童子,
因外人問, 和尙說何法要, 童子亦竪指頭.
祗聞, 遂以刀斷其指. 童子負痛號哭而去.
祗復召之. 童子廻首, 祗却竪起指.
童子忽然領悟. 祗將順世, 謂衆曰,
吾得天龍一指頭禪, 一生受用不盡. 言訖示滅.
無門曰, 俱祗幷童子, 悟處不在指頭上.
若向者裏見得, 天龍同俱祗幷童子,
與自己一串穿却.
頌曰, 俱祗鈍置老天龍, 利刀單提勘小童.
巨靈擡手無多子, 分破華山千萬重.
* 구지화상은 학인들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날, 외지 손님 하나가 절의 동자(童子)에게,
“스님께서 무슨 설법을 하시더냐”고 물었다.
동자는 늘 보던 대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구지가 이를 전해 듣고,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는 아픈 손을 움켜쥐고 울면서 달아났다.
구지가 다시 "동자야" 하고 그를 불렀을 때, 동자가 고개를 돌려 쳐다 보았다.
구지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 순간 동자는 깨달았다.
구지가 세상을 뜨며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천룡(天龍)의 ‘손가락 선’을 얻어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했다.”
말을 마치자 곧 입적했다.
* 나 혜개가 말한다. “구지와 동자의 깨달음은 손가락 끝에 있지 않다.
여기서 그 소식을 얻는다면, 천룡과 구지와 동자를 그대와 한 꼬챙이에 꿰어 찬다.”
* 송하여 가로되,
“구지는 천룡을 바보로 만들고,
예리한 칼을 들어 동자를 시험했네.
그 옛날 거령신이 성큼 손을 들어,
화산의 천만겹을 둘로 갈라 버렸듯이.”
<오등회원(五燈會元)> 권4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처음 무주(무州)의 금화산(金華山)에 머물고 있던 구지(850-?)에게 한 여승이 찾아왔다.
삿갓도 벗지 않고 성큼 들어와서 방안을 세바퀴 돌고 이렇게 물었다.
“한 말씀을 해 주시면 삿갓을 벗지요.”
세번이나 물었지만 구지는 진땀을 흘리며 아무말도 못했다.
그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감연히 분발, 제방(諸方)의 선지식을 찾아
진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산신이 나타나,
곧 육신 보살이 찾아올 것이니 다른 데로 갈 필요가 없다고 일러준다.
며칠 후 천룡이 구지의 우거(寓居)를 방문한다.
구지가 전에 있었던 일을 고하자, 천룡이 문득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구지는 이 대답에 일대사를 마쳤다.
그는 천룡으로부터 얻은 이 손가락을 평생을 써도 못 다 쓰고 갔다.
그런데 한 동자가 구지의 흉내를 냈다. 구지를 찾아온 손님이 동자에게 묻는다.
“네 스승이 평소 뭘 가르치시더냐.”
어려운 걸음에 대덕(大德)을 만나지 못하고 가야하는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아이는 늘 보던 대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인다. 손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산을 내려간다. 밖에서 돌아온 구지가 그 사실을 알았다.
냉큼 칼을 들어 그 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극심한 고통에 울부짖으며 방을 나가던 아이를 구지가 다시 불러 세운다.
아이가 돌아본다. 그때 구지의 손가락이 다시 세워진다.
아이는 홀연 구지의 손가락에 가리운 비밀을 깨닫는다.
참으로 극적인 드라마이다.
그런데 <오등회원>이나 <선문염송(禪門拈頌)>은 좀 더 치밀한 플롯을 갖고 있다.
아이가 손가락을 부둥켜 안고 방을 뛰쳐나가고 그를 구지가 불러 세우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아이가 돌아볼 때,
구지는 자신의 손가락을 세워 보이는 대신, 아이에게 묻는다.
“부처의 진리가 무엇이냐?” 극심한 통증 가운데서도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를 어쩌나, 아이의 손가락은 거기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의 빈 자리, 아이는 할연대오했다.
대체 구지와 동자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여기가 화두의 눈이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벽암록>에도 실려 있다.
혜개는 말한다.
“손가락 끝에다 시선을 고정시키지 말라.
손가락을 통해 그 너머의 소식을 당하(當下)에 붙잡으라.
그리하면 손가락을 전한 천룡과 그것을 전해받아 쓴 구지와, 손가락을 잘린
동자와 그리고 지금 그 소식을 ‘읽는’ 네가, 한 줄에 꿴 듯 동일한 눈으로 보고,
동일한 귀로 들으며, 동일한 공간에 참예할 것이다.”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혜개는 앞의 제1칙 조주무자에서와는 달리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 않는다.
한번이면 됐다고 여겼을 것이다. 선은 중언 부언을 싫어한다.
송(頌)이라는 형식이 선호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혜개의 송을 보자.
“구지는 천룡을 바보로 만들었다” 그렇지, 천룡의 뜻이 어찌 손가락에 있겠는가.
구지는 평생을 천룡의 뜻을 왜곡하고 기망했다.
그래서 현사(玄沙師備 835~908)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놈의 손가락을 분질러 버렸을텐데.”
이 비난을 들었던지 구지는 과연 동자의 손가락을 자르고 말았다.
그 호쾌함이라니, 긴 말이 필요없는 그 단순성과 직접성.
그것은 거령신(巨靈神)이 첩첩 구만겹인 화산(華山)을 한 손에 쪼개버린 것과 같다.
짤린 동자의 손가락 사이로 지금도 누런 황하가 유유히 웅혼하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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