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관(逆觀)으로 본 연기법

2010. 4. 30. 21:29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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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역관(逆觀)으로 본 연기법

위빠시(Vipassi) 붓다께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 보살주해1)이었을 때, 인류의 커다란 고통에 대해 깊이 염려하셨다. 그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가 영원토록 겪고 있는 생로병사주해2)라는 끝없는 고통의 근본 원인에 대해 명상하셨다. 그리고 이 고통의 과정으로부터 모든 존재들을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지혜를 찾기 위해 깊은 명상에 잠기셨다.

보살께서는 끝없이 지속되는 윤회의 사슬을 보고 인류가 겪는 끊임없는 생로병사의 윤회 과정을 연결하는 고리를 부술 수 있는 꿰뚫는 지혜를 얻기를 고대하셨다.


그분은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생과 노사가 계속해서 일어나는지를 체계적으로 숙고하셨다.

순서를 거슬러 올라가는 숙고를 거쳐 명상은 조금씩 더욱더 깊어져 갔으며, 결국 모든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되는 범인은 바로 무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셨다. 보살께서는 여러 번에 걸쳐 생과 노사로부터 시작하는 역순(逆順)으로 연기를 깊게 관찰하셨고, 다시 무명으로부터 시작하는 일반적인 순서로도 관찰하셨다. 마침내 위빠시 보살은 모든 번뇌를 부수고 번뇌의 흐름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꿰뚫는 지혜의 빛을 밝혀 연기의 연결고리를 끊고 궁극의 깨달음을 얻으셨다.


위빠시 보살과 마찬가지로 고타마 붓다께서도 깨달음을 얻기 전 보살이었을 때 생과 노사로부터 일어나는 인류의 끝없는 고통에 대해 염려하셨다. 그분 역시 인류가 겪는 고통인 생로병사의 과정이 끝없이 계속되는 근본 원인에 대해 깊이 명상하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꿰뚫는 지혜를 얻어 연기의 전 과정을 밝히고 모든 번뇌의 흐름주해3)과 잠재적 성향 그리고 속박주해4)을 종식시켜 마침내 최고의 지위인 부처의 반열에 오르셨다.


붓다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의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는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오로지 붓다께서 출현하신 시대에만 ‘생과 노사는 이러이러하며, 또 업의 생성, 집착, 갈애, 수, 촉 등은 이러이러하다’는 설명과 가르침을 듣는 것이 가능하다.

붓다께서 설하신 연기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것이 존재함으로 저것이 존재하며,

이것의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 또한 사라진다.”


도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부분 4에서 생과 노사를 볼 수 있다. 노사는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태어남을 원인으로 노사가 일어난다. 태어남은 몹시 혐오스러운 것이다.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은 태어난 날부터 우리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년, 매달 그리고 매일 늙어가고 있다.


늙음이란 활력과 젊은 외모, 젊은 기질을 잃고 흰머리와 난청, 노안, 기억의 상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또 이빨이 없어져서 딱딱한 음식을 씹기 힘들어지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나쁜 상황은 늙을수록 더욱 힘이 없어져 결국 소변과 대변을 가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피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늙음과 질병, 노쇠와 죽음은 단지 이번 생뿐만이 아니라 윤회가 시작된 이래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어온 동반자였다. 그러니 이제 생과 노사를 잇는 연결을 끊는 길을 찾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과 같은 지긋 지긋하게 혐오스러운 것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결심을 해야만 한다.


이 점을 생각해 보자. 나이를 먹으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매순간, 매분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죽음은 고통의 진리이다.” 이 말은 죽음이 바로 고통이라는 의미이다. 죽음만큼 커다란 고통도 없다. 상상해 보라. 우리는 늙음과 마주해 있고 빠르든 늦든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의 어느 시간에 죽음과 마주치게끔 되어 있다. 우리는 죽음이 어디에서 와서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중 어느 누가 죽음으로부터 숨을 곳을 찾아내었던가? 어느 누가 죽음의 신을 매수해서 죽지 않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껏 살 수 있는가? 과연 죽음의 날짜를 원하는 대로 뒤로 미루는 것이 가능한가? 어째서 우리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이토록 휘둘리는 것인가? 이제 우리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할 시간이다.


모든 인간은 네 명의 잔인한 살인자[四大]주해5)와 함께 살고 있다. 땅의 요소[地大]주해6)라는 살인자는 우리를 죽이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넘치거나 과도하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 다른 살인자인 물의 요소[水大]주해7)는 우리에게 손을 뻗칠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이것이 과도해지면 대변과 오줌을 가릴 수 없게 되어 결국 죽음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또 우리에게 덤벼들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불의 요소[火大]주해8)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비정상적으로 몸에 열이 올라 정신착란에 빠지면 가족들이 크게 걱정하고 결국 이 사람은 죽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살인자는 바람의 요소[風大]주해9)이다. 몸의 진동과 호흡도 바람의 요소이다.


이들 네 명의 살인자 외에도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가 있으니 이들 또한 살인자들이다. 어느 날 라다(Rādha)라는 이름의 비구가 붓다께 죽음(māra)주해10)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붓다께서 답하셨다.


“물질 현상[]이 살인자다.

느낌[]이 살인자다.

지각[]이, 

형성 작용[]이,

그리고 마음[]이 살인자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을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살인자들과 함께 살고 있다.


처음 네 가지 지풍이란 살인자에게 희생되거나 혹은 다음 다섯 가지 오온이란 살인자에게 희생되거나 간에 우리는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친척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이들 살인자에게 굴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도표를 다시 보자.

“생으로 인하여 노사가 일어난다.” 태어남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태어남이란 매우 두려운 것이다. 태어남이란 사람이든 천인이든 혹은 범천이든 어떤 지각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법륜경(轉法輪經)������에는 “태어남은 고통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든, 천인이든, 범천이든 태어남은 고통이며 괴로움의 진리라는 것이다.


연기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은 일상적인 오류를 범해 소위 우주의 지배자, 천계의 왕이라는 피상적이고 헛된 영예와 매력에 속고 만다. 또 무지한 범부인 우리들은 보시를 할 때마다 계속해서 천인이나 범천의 왕이 누리는 영예라는 헛된 것을 갈망하고 기원한다.


연기에 따르자면 이들 천상의 존재들 또한 괴로움의 진리에 묶여 있으며 감금된 것과 같다.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감옥과 같은 존재이다.”주해11)


이것은 사람이든, 천인이든, 범천이든 그들은 감옥 속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천인이 되는 혜택을 바라는 자는 자신이 갇히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이른바 사람, 천인이나 범천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영예라는 것은 위조된 가공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태어남이라고 할지라도 태어남을 기원하는 자는 천길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높다란 절벽에 서 있기를 기원하는 것과 같다.


태어남은 재생(再生)을 의미한다.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 있는 것처럼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대소변 사이의 극히 좁고 답답한 곳에서 보낸 9개월간의 말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기억력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주의 제왕, 천계의 왕으로 태어난다 하여도 그 시작점은 반드시 태어남이다. 이처럼 모든 새로운 태어남을 기원하는 것은 괴로움을 얻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대장로 모곡 사야도께서는 보시 공덕이 되는 행위를 할 때는 첫째로, 오온이라는 짐을 몹시 혐오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둘째로, 생과 노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연기의 윤회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1)


붓다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모든 잘못된 것 가운데에서 가장 큰 잘못은

낡은 오온을 버리고 새로운 오온을 얻는 것이다.”


새로운 오온은 새로운 태어남을 얻는 것을 뜻하고, 태어남을 얻는 것은 바로 괴로움을 얻는 것이다. 어떠한 오온이든지 간에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을 바라는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태어남이든지 간에 반드시 늙음과 죽음에 직면해야만 한다. 어떤 이는 더 나아가 우주의 제왕과 천계의 왕으로서의 높은 지위를 누리기를 계속해서 기원한다. 그것은 늙음과 질병, 죽음의 고통이 지속되기를 계속해서 기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연기법에 무지하고 익숙하지 못한 자들이 따르는 길이다.


우리는 태어남이 저절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 근본 원인이 있는지를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 태어남보다 더 무서운 업의 생성이라는 근본 원인이 있다. 근본 원인이 되는 업의 생성은 부분 3의 미래의 원인으로 이것은 부분 4의 미래의 결과로 연결된다. 그래서 업의 생성은 태어남보다 더욱더 두려운 대상이다. 달리 말하자면 업의 생성은 괴로움의 시작인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업의 생성은 연기의 고리를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 신구의 3업 혹은 공덕행, 공덕이 없는 행, 부동행을 말한다.


연기에 따르면 과거에 행해진 행위는 업의 형성[]이라 불리고, 현재의 행위는 업의 생성[]이라고 불린다. 이 둘은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동일하다.

이 시점에서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하루 동안, 즉 해가 뜰 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얼마만큼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업을 짓고 있을까?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존재로 이끄는 모든 행위는 업의 생성이다.”


이 생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그것이 선한 일이든 불선한 일이든 간에 다음 생에서 결과를 만들어낸다. 즉, 우리는 미래라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업의 생성이 스스로 일어나는 것인지 혹은 거기에도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집착으로 인하여 업의 생성이 일어난다.” 집착 또는 과도한 욕망으로 인하여 업의 생성, 즉 신업과 구업, 의업이 일어난다. 12연기법과 빠띠삼비다막가(Paisambhidāmagga)주해12)에 의하면 집착과 업의 생성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진리[集諦]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시 뒤로 한 발자국 더 물러나 집착의 원인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집착의 범인인 갈애가 나온다. “갈애로 인하여 집착이 일어난다.” 갈애가 강해지면 집착의 형태가 된다. 갈애가 집착의 원인이기 때문에 갈애는 집착보다 더욱더 두렵고 위험한 것이다.


해가 뜰 때부터 한밤중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동서남북 이곳저곳,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 이 대륙과 저 대륙 간을 자동차, 비행기 등 온갖 종류의 탈 것들을 이용해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여행과 여정들은 갈애로 인해 또는 갈애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다. 갈애의 노예가 된 인간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요구를 하며 거래를 위해 여기저기로 이끌려 다닌다.


갈애로 인해 집착이 유발되기만 하면 한밤중이든 빗속이든 폭풍우 속이든 가리지 않고 강도가 들끓는 지역이나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는다. 갈애의 노예들은 어떤 위험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달려간다. 노예가 그 주인인 갈애의 명령을 거절할 수 있을까? 결코 없다. 갈애는 너무도 강력하고 영향력이 크며 충동적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기라도 작은 몸을 굴려서 장난감을 집어 들게 하며, 나이 든 어른까지도 지배하여 굴복시킨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현재 자기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보기를 바란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갈애가 스스로 일어나는지, 아니면 어떤 원인으로 인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자.


“수(受)로 인하여 갈애가 일어난다.” 느낌이 갈애의 원인이다. 그래서 느낌은 더욱더 불쾌한 것이다.


도표를 살펴보기 바란다.

부분 2와 부분 3은 느낌과 갈애로 연결된다. 여기에서 바로 수행자는 느낌이 갈애로 연결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즉, 느낌과 갈애 사이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게 하는 정견, 정사유, 정정진, 정념, 정정이라는 다섯 가지 도지(道支)가 필요하다. 이 말은 반드시 이 시점에서 수행을 통해 무명을 지혜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음 장부터는 ‘수로 인하여 갈애가 일어난다’를 ‘수로 인하여 지혜가 일어난다’로 바꾸는 방법들을 다루기로 한다.

주해(註解)

<주해 1> 보살(菩薩. Bodhisatta) : 보살을 빨리어로 보디사따(Bodhisatta)라고 한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을 의미하고 사따(satta)는 구하는, 매달리는, 헌신하는, 열중하는 등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자라는 뜻으로 구도자라고 한다.

여기서 깨달음은 최고의 깨달음을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부처가 되기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를 이른다. 역대의 모든 붓다는 무수한 세월 동안 보살로서 바라밀 공덕을 쌓은 결과로 부처가 된다.

상좌 불교에서 보살을 뜻하는 보디사따는 부처의 전생을 말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부처가 되기를 서원을 세운 구도자일 뿐이지 초월적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보살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1. 지성적인 보살 : 외적 대상에 대해서 숭배하지 않고 지혜를 계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2. 헌신적인 보살 : 믿음과 신앙심이 깊은 보살이다. 그러나 지나친 믿음은 맹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3. 활동적 보살 : 언제나 남을 위해 활동적으로 봉사를 한다. 명예나 평판을 얻기 위해서 일하지 않고 봉사정신으로 열심히 남을 돕는다.


<주해 2> 생로병사(生老病死) : 12연기 도표에서 부분 4에 해당되는 것은 생(生)과 노사(老死) 두 가지이다. 태어남을 의미하는 생을 원인으로 하여 늙어서 죽는 노사가 있다. 이때 병(病)은 12연기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주석서에서는 병을 포함하여 생로병사라고 말한다.

(病)은 태어남과 늙음에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이지만 개인에 따라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몸은 병의 먹이이기 때문에 병은 생과 노사에 수반되는 것이다.


<주해 3> 흐름(āsava) : 탐진치의 번뇌가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유루(流漏) 또는 새는 것으로 말하기도 하며, 상속 또는 윤회라는 뜻으로도 쓴다.


<주해 4> 속박[結. Saṁyojana] : 족쇄. 결(結)로써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를 말한다.

속박은 열 가지가 있다.

1. 5하분결(五下分結) : 욕계(欲界)에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

  (1) 유신견(有身見)

  (2) 회의적 의심

  (3) 계율이나 금지 조항에 대한 집착[戒禁取見]

  (4) 감각적 욕망[愛慾]

  (5) 악의(惡意)

2. 5상분결(五上分結) : 색계와 무색계에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

  (6) 색계에 대한 욕망

  (7) 무색계에 대한 욕망

  (8) 아만

  (9) 들뜸

  (10) 어리석음[無明]

이상 열 가지 족쇄는 다음과 같은 도과의 단계에 의해 소멸된다.

  수다원 (1)~(3)의 소멸

  사다함 (1)~(3)의 소멸, (4)~(5)의 약화

  아나함 (1)~(5)의 소멸

  아라한 (1)~(10)의 소멸


<주해 5> 네 명의 살인자[四大. Mahābhūta] : 네 명의 살인자라 일컫는 사대는 몸의 성분인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를 말한다. 이들 사대의 불균형이 병을 일으키고 결국은 죽음으로 이끌기 때문에 살인자라고 한다.

사대를 빨리어로 마하부따(Mahābhūta)라고 한다. 마하(mahā)는 크다는 접두사이며, 부따(bhūta)는 생성된, 태어난, 요소, 일어난 일 등을 말한다. 그래서 마하부따는 물질의 큰 요소를 말한다. 물질은 있지만 물질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인식을 통해서다. 이렇게 우리가 안다는 것은 물질 안에 있는 성품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것을 물질의 실재하는 사대 요소로 본다.


<주해 6> 땅의 요소[地大] : 몸은 흙의 본성이 있는데 단단함과 부드러움의 특성이 있다. 그러나 단단함이나 부드러움이 반대로 부드럽거나 단단해지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병이 생긴다. 이를 일러 살인자라고 한다.


<주해 7> 물의 요소[水大] : 몸은 물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몸의 2/3는 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을 지탱하는 것은 물의 성분 중에 응집성이 있어 엉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이 부족하거나 물의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병을 얻어 죽음에 이른다.


<주해 8> 불의 요소[火大] : 몸은 불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불의 본성은 성숙과 쇠퇴를 촉진한다. 소화를 돕는 열도 불의 성품이다. 화대는 따뜻함과 차가움을 함께 가지고 있는데 고열이 되면 뇌사상태에 빠지고, 차가우면 감기에 걸리거나 체온저하증으로 죽는다. 또 우리 몸이 병균과 싸울 때도 열을 낸다. 이처럼 불의 요소의 불균형으로 인해 병들어 죽는다.


<주해 9> 바람의 요소[風大] : 몸은 바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바람의 요소는 몸을 움직이며 에너지, 운동, 긴장, 지탱의 요소가 있다. 상승하는 바람의 요소는 재채기, 트림, 하품, 구토, 딸꾹질, 기침 등이 있다. 하강하는 바람의 요소는 배에서 부는 바람, 창자에서 부는 바람, 팔과 다리에서 부는 바람이 있으며, 코의 호흡의 들숨과 날숨도 바람의 요소이다. 이러한 풍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른다.


<주해 10> 죽음(māra) : 죽음, 악마, 유혹자, 사신(死神), 마라(摩羅), 마왕(魔王), 마군(魔軍) 등이 모두 동일어로 쓰인다. 죽음의 신이나 죽음의 왕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주해 11>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태어나고 죽는 것을 거듭한다. 이를 감옥에 갇힌 것으로 비유한다.


<주해 12> 빠띠삼비다막가(Paṭisambhidāmagga) : 짧은 경문의 모음집인 ������쿳다까니까야(Khuddaka- Nīkāya)������ 열다섯 경전 중에 열두 번째 경전이다. 빠띠삼비다막가의 뜻은 ‘분석적 통찰’로 번역된다. 이 경전의 제목을 일본 학자들은 ‘무애해도(無碍解道)’라고 한다.

 

우포의 새벽/명품님 작품
 

 

 

 

 

 

 

 

 

 

 

 

 

 

 

 

 

 

 

 

 
어서 말을 해

너는 바보야 그를잡고 말을 못하면 너는 바보야
사랑한단 한마디 그를 잡고 말을 못하면
떠나 갈거야  어서 말을해

흔적없는 거리 거리마다 말 못하는 사람들 뿐이야
정만주면 무슨소용 있나 가고나면 울고 말것을
미워하면 무슨소용 있나 가고나면 후회 할것을


너는 바보야 그를 잡고 말을 못하면 너는 바보야
사랑한단 한마디 그를 잡고 말을 못하면
떠나 갈거야  어서 말을해

흔적없는 거리 거리마다 말 못하는 사람들 뿐이야
정만주면 무슨소용 있나 가고나면 울고 말것을

미워하면 무슨소용 있나 가고나면 후회 할것을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    어서 말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