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8. 19:22ㆍ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제10장
연기의 수레바퀴를 이루는 것들을 분해하고 부수는 방법
수레바퀴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레의 한가운데에 바퀴살이 모인 중심부분인 바퀴통이 있다. 이것은 무명과 갈애를 상징한다. 네 개의 바퀴살주해1)이 있는데, 이것은 네 가지 종류의 태어남을 말한다.
첫째, 욕계 공덕행[欲德行]
둘째, 색계 공덕행[色德行]
셋째, 공덕이 없는 행[非德行]
넷째, 부동행(不動行)
바퀴의 테두리는 노사(老死)를 의미한다. 바퀴를 튼튼하고 내구성 있게 만들려면 바퀴살 한쪽은 테두리에 맞추고 다른 쪽은 바퀴통에 잘 맞추어 바퀴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부러지거나 흩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바퀴통, 바퀴대, 축, 살과 테두리라는 다섯 부분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바퀴를 구성한다.
어떤 사람이 다음 생에 천상의 왕과 같은 지위를 가진 보다 높은 존재로 태어나고 싶은 의도를 가지고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킨다면, 이는 연기에 따라 욕계 공덕행이 된다. 반면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온갖 종류의 악한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 경우는 공덕이 없는 행으로서, 반드시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계의 사악도에 태어나는 원인이 된다.
또 어떤 사람이 색계 범천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의도로 사마타 선정 수행을 하는 경우는 색계를 향한 공덕을 짓는 색계 공덕행에 해당된다. 또 어떤 색계의 수행자가 물질을 싫어하여 무색계 범천의 지위를 얻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무색계 선정 수행을 하는 경우, 이를 움직임이 없는 행 또는 부동행이라고 한다.
이들 네 가지 행(行) 중 하나를 통해 높은 존재로 올라가거나 낮은 존재로 내려가더라도 이 여정은 결국 늙음과 죽음의 틀 안에 갇혀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들 행위들은 제한되고 조건 지어진 31개의 세간주해2)의 영역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색계의 존재로 올라간 자라 할지라도 노사의 테두리 바깥으로 벗어날 수는 없다. 사마타 수행의 공덕에 의해 무색계 선정에 이른 자의 경우에도 최종적으로 닿는 곳은 같은 테두리인 늙어서 죽는 노사(老死)이다.
조건 지어진 세간(원인과 결과에 의한 세계)에서 행해지는 그 어떤 행위도 노사의 수중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떤 세계, 어떤 영역에 다시 태어난다 할지라도 늙음과 죽음은 면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다음 생에서 보다 나은 지위를 얻기 위해 행하는 선한 행위는 결국 노사의 문턱에 도달하게 할 뿐이다. 여기에 노사로부터 벗어날 출구는 없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짓는 부도덕하거나 건전하지 못한 불선한 행위 또한 이 바퀴살 중의 하나를 이룬다.
색계나 무색계가 열반이라고 잘못 믿고 있는 이들은 선정과 신통력을 집중적으로 닦는다. 선정을 닦는 수행자가 괴로움의 근원인 물질에 대해 집중하여 무색계선정을 이룰 때 이 또한 바퀴살 중 하나를 이룬다.
도표를 살펴보면 번뇌를 상징하는 바퀴대가 남아 있다.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 이 번뇌의 바퀴대는 이미 바퀴에 맞춰져 있는 네 개의 바퀴살과 함께 바퀴통에 고정되어 있다. 이제 수레바퀴는 돌 수가 있다. 바퀴가 돌면 하나의 바퀴살은 왼편으로, 또 하나는 밑으로 내려가고, 또 하나는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주해3)
어디를 가든 이제 바퀴살들은 테두리 바깥으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범천의 세계나 천계 혹은 인간계 어디에 있든 이 길에서 범부가 윤회로부터 벗어날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윤회의 바퀴는 오온을 끌고 제 갈 길을 따라 끊임없이 돌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오온이 어디에 닿든 정해진 종착지는 늙음과 죽음뿐이다.주해4)
이제 다시 성제(聖諦)의 관점으로 살펴보자.
괴로움의 원인[集諦]인 무명과 갈애는 괴로움[苦諦]인 오온을 조건 짓는 주범들이다. 윤회의 전체 과정에서 볼 때 집제와 고제는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만 도제(道諦)와 멸제(滅諦)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괴로움의 원인인 집(集)과 괴로움인 고(苦)의 영역 바깥으로 벗어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도(道)와 멸(滅)의 길을 피해 왔으며, 귀중한 시간을 바쳐 연기가 도는 시간을 늘려 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로 고통의 기간을 연장시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도표를 보기 바란다.
무명․갈애․집착은 번뇌의 굴레이다.주해5)
범부가 짓는 모든 업의 생성의 결과로 과보의 굴레인 오온이 일어난다. 즉, 업의 굴레로 인하여 다시 과보의 굴레가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끝없는 윤회의 순환 과정이 다시 시작되는 모습이다.
성제의 관점에서는 집제와 고제의 순환이 있다.
굴레의 관점에서 볼 때는 번뇌의 굴레와 업의 굴레 그리고 과보의 굴레의 순환이 있을 뿐이다.
공간과 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반복이 있다.
이제 우리는 연기의 고리가 깨어질 때만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연기의 고리가 재연결되는 한 고통의 기간은 연장될 뿐이다.
윤회하는 기간을 짧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세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을 극복해야 한다.
수행자가 이번 생에서 법문을 듣거나 책을 읽어 연기와 사성제에 대한 큰 지혜를 얻을 기회를 얻었다면 반드시 연기의 수레바퀴를 이루는 테두리와 바퀴통, 축, 막대와 바퀴살을 부서뜨리려는 결심을 해야만 한다.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수행자일지라도 단순한 바람만으로 도와 과를 얻을 수는 없다. 위빠사나 수행[八正道]을 통해서만 무명을 밝은 지혜로, 갈애를 바라지 않음으로 바꾸어 해탈이라는 마지막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다음 장부터는 해탈의 길에 대해서 다룬다.
<주해 1> 네 개의 바퀴살은 윤회하는 세계에서 네 가지 종류의 태어남을 말한다.
첫째, 욕계 공덕행[欲德行. kāma puññābhisaṅkhāra] :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욕계 천인으로 태어난다.
둘째, 색계 공덕행[色德行. rūpa puññābhisaṅkhāra] : 천상의 색계 천인으로 태어난다.
셋째, 공덕이 없는 행[非德行. apuññābhisaṅkhāra] : 사악도의 지옥, 아귀, 아수라로 태어난다.
넷째, 부동행(不動行. ānañjābhisaṅkhāra) : 부동행은 무색계 공덕행이다. 그래서 천상의 무색계 천인으로 태어난다. 무색계는 몸은 존재하지 않고 네 가지 정신현상만 존재한다. 이 세계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움직임이 없는 행이라서 부동행이라고 한다.
이상 네 개의 바퀴살로 태어나는 것은 12연기 안에서 윤회를 거듭하며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외에 다른 태어남은 없다.
<주해 2> 31개의 세간[三十一天] : 살아 있는 생명[有情]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하는 미망의 세계를 세 단계로 나누는데, 욕계(欲界. kāmavacara), 색계(色界. rūpāvacara), 무색계(無色界. Arūpāvacara)의 3계가 있다. 유정(有情)들이 윤회하면서 존재하는 세계이므로 3유(三有)라고 하고, 괴로운 곳이므로 고계(苦界)라고도 하며, 괴로움이 바다처럼 끝이 없기에 고해(苦海)라고도 한다.
(1) 욕계 : 3계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으며 성욕․식욕․수면욕 등의 세 가지 욕망을 가진 생명들이 사는 곳이다. 윤회 가운데 있는 여섯 가지 존재 모습 중 지옥(地獄)․축생(畜生)․아귀(餓鬼)․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 등 다섯 가지와 사천왕천(四天王天)․도리천(忉利天, 三十三天)․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의 6욕천(六欲天)이 여기에 속한다.
(2) 색계 : 욕계 위에 있는 세계로서 천인(天人)이 거주하는 곳을 말한다. 이 세계에 거주하는 생명들은 음욕을 떠나 더럽고 거친 색법에는 집착하지 않으나 청정하고 미세한 색법에 묶여 있으므로 색계라 한다. 즉, 물질적인 것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한 세계로 남녀의 구별이 없다. 사선천(四禪天)․사정려처(四定慮處)라 한다.
(3) 무색계 : 물질세계를 초월한 세계로서 물질을 싫어하며 벗어나고자 하여 사무색정(四無色定)을 닦은 사람이 죽은 뒤에 태어나는 천계(天界)를 말한다. 물질적 존재나 처소가 없기 때문에 공간적 개념을 초월한다. 그러나 과보(果報)의 우열에 따라서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네 가지로 나뉜다. 네 개의 무색계 세계를 사무색천(四無色天) 또는 사무색처(四無色處)라고 한다.
중생들의 세계를 총칭하는 3계는 여러 세계로 분류되고, 각각의 세계에 따라 수명이나 고통의 정도가 다르나 모두 윤회의 과정에 있는 고해라는 점에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주해 3> 네 개의 바퀴살은 각기 다른 세계에서 태어남을 말하며, 이 하나의 바퀴살의 태어남이 회전하는 것은 다른 바퀴살의 태어남도 함께 회전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자신만 윤회하는 것이 아니다.
<주해 4> 하나의 바퀴살로 태어나서 생명이 진행되다 마지막에 다다르는 곳은 바퀴 테의 노사(老死)이다. 31천(天)에 사는 모든 생명들은 바퀴살로 태어나서 바퀴 테에 이르러 늙어서 죽게 되고 다시 바퀴살로 태어나는 것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것이 윤회이다. 이와 같은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출구를 찾는 것은 붓다가 스스로 체험한 뒤에 밝힌 위빠사나 수행으로만 가능하다.
<주해 5> 도표 부분 1의 무명이 부분 3의 갈애와 집착으로 선이 연결되어 있다. 이는 무명과 갈애와 집착이 하나의 조건을 형성하여 번뇌의 굴레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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