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길을 따르는 자는 눈먼 자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2010. 4. 29. 18:24불교(당신이 주인님입니다)/불교교리·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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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연기의 길을 따르는 자는 눈먼 자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무지를 무명(無明)이라 하며, 무명이란 구름에 시야가 가려진 자를 범부(凡夫)주해1)라고 한다.


범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바로 눈먼 자주해2)와 선한 자이다. 범부의 마음은 항상 들떠 있고 여기저기로 방황한다.

사성제를 모르는 눈먼 범부는 마치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함정을 피할 수가 없다.


내생에서 보다 높은 지위를 얻어 천인이나 범천이 되고 싶어 하는 자는 공덕을 짓는 행[德行]을 한다. 이는 오른쪽 다리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자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온갖 종류의 덕이 없는 부도덕한 행위[非德行]를 저지른다. 이것은 왼쪽 다리로 걷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성제에 대한 무지, 곧 무명으로 인해 이러한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그 행위는 마치 눈먼 자의 걸음걸이와 같다. 눈이 멀었다고 하는 것은 사성제에 대한 무지로 무명을 말하며, 이것은 선한 행을 하는 오른쪽 다리와 선하지 못한 행을 하는 왼쪽 다리로 걷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자가 오온은 괴로움의 진리로서 비참하고 혐오스럽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나서 보시(布施)주해3)를 한다면 이는 바른 보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온이 바로 괴로움이라는 진리를 알고 행하는 보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시가 바로 흑과 백이 뒤섞이지 않은, 윤회를 벗어난 선(善)이다.


어떠한 기대도 없이 또 내생에 보다 나은 지위를 얻고 싶다는 바람이 없이 행하는 보시는 윤회의 힘을 멈추겠다고 하는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다음 생에 어떤 형태로든 오온을 갖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윤회를 벗어난 선업으로 윤회를 가져오는 업의 힘을 깨부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일어날 수 있다. 길고 긴 윤회의 길에서 인간은 열반을 얻기 전까지는 비참한 존재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내생에 보다 높은 천계에서 천신이나 범천의 왕으로 태어나 번영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1)


여기에서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시를 행하는 자는 ‘나’이며, 다음 생에서 보시의 과보를 거두는 것도 같은 ‘나’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 안에는 그릇된 견해인 ‘나’ 혹은 ‘자아’의 개념이 있다. ‘내’가 베푸는 자이고 또 ‘내’가 공덕의 이득을 받는 자라는 견해는 자아가 영원하리라고 믿는 상견이다. 독자들은 이러한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업인 보시 안에 두 가지 불선한 것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다. 즉, 이익을 거두려고 하는 욕망인 갈애와 ‘내’가 그 이익을 받는다고 보는 사견(유신견과 상견의 혼합)이 서로 섞여 있다. 이러한 사견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쉽게 제거할 수 없다.


의심할 여지없이 보시는 유익한 행위인 선업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욕망은 갈애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업은 하얀 업과 검은 업이 뒤섞인 업[合業]주해4)이 된다. 즉, 유익한 행위인 선업은 하얀 업이며, 다음 생에 보다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욕망은 검은 업이기 때문에, 이를 일러 뒤섞인 업이라고 한다.


이처럼 뒤섞인 업으로 인해 얻는 이익은 용왕(龍王)이나 고귀한 흰색 코끼리나 왕족 등으로 태어난다고 전해진다.


그러므로 이제 수행자들은 이렇게 뒤섞인 업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지 못한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눈먼 자의 걸음을 보도록 하자. 눈이 멀었다는 것은 사성제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이다. 오른쪽 다리와 왼쪽 다리로 걷는다는 것은 공덕을 짓는 행과 공덕이 없는 행을 함께 한다는 의미이다. 오른쪽 다리로 걷는 것은 인간이나 천인의 오온(五蘊)을 얻게 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괴로움의 진리일 뿐이다.주해5) 왼쪽 다리로 걷는 것은 비참한 존재계의 오온을 얻게 한다.


그리하여 눈먼 자[凡夫]는 방향도 없이 걸으며 도달하는 곳도 없다. 행하는 모든  일은 무지와 함께 이루어져 연기의 길을 걷게 될 뿐이다.


“행으로 인하여 식이 일어난다.” 여기에서 식은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을 의미한다. 눈먼 자가 걸어갈 때, 그는 태어남이라는 괴로움의 구덩이에 빠져 넘어진다. 태어남을 얻으면 재생 연결로 인하여 온갖 종류의 괴로움도 함께 얻는다.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9개월간 오줌과 똥 사이에 무릎을 구부린 채 팔꿈치 하나 제대로 뻗칠 공간도 없이 온몸이 눌려 고통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으로 인하여 식이 일어난다.” 이것은 현생의 시작이 태어나는 것임을 말한다. “식으로 인하여 명색이 일어난다.” 이는 태어남으로 인하여 정신과 물질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눈먼 자가 굴러 떨어져 상처를 입는 것을 의미한다.


비유하자면 눈먼 사람이 넘어질 때 그저 보통으로 가볍게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곤두박질치듯 넘어져 몸을 다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생성되는 정신도 ‘상처’이며, 물질도 ‘상처’이고, 이것이 바로 괴로움과 불만족이다. “오취온(五取蘊)주해6)은 괴로움이다.” 오온은 그 자체가 괴로움의 진리이다.


“명색으로 인하여 육입이 일어난다.” 위의 상처를 비유로 계속해서 보자면, 그 상처는 전염성이 있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눈이라는 상처, 귀라는 상처, 코라는 상처, 혀라는 상처, 몸이라는 상처와 마음이라는 상처가 된다.


붓다께서는 “오온은 상처이고 병이며 학질이고 따끔거리는 가시와 같은 것이다”라고 단언하셨다.


“육입으로 인하여 촉이 일어난다.” 눈이 있기 때문에 보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 귀가 있기 때문에 듣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 코가 있기 때문에 냄새 맡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 혀가 있기 때문에 맛을 보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 몸이 있기 때문에 닿음을 아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기능을 해야만 한다.


대상과 감각기관의 부딪침이 있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탐심과 성냄, 정신적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덤덤함이 일어난다.


이는 마치 눈먼 자가 길을 걷다가 발을 잘못 내딛어 비틀거리다 넘어지고 다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과 같다. 육입으로 인하여 접촉이 일어난다는 것은 눈먼 자가 다시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고 상태가 더욱 나빠지는 것을 뜻한다.

이때 눈먼 자는 심하게 넘어진다. 고통도 심하다. 괴로움도 심하다. 이러한 심각함이 무명이다.


무명을 우두머리로 하고 갈애를 동반자로 하여 범부는 갈애가 시키는 대로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결국 괴로움의 원인[]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윤회의 과정에는 오로지 불만족과 괴로움의 무더기가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눈먼 자가 가시에 찔리면 그 결과로써 느낌이 나타난다. “촉으로 인하여 수가 일어난다.” 느낌은 대상과 감각기관, 의식이라는 세 가지 현상의 부딪침이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난다. 느낌은 보이는 대상이 있을 때, 소리가 들릴 때, 냄새를 맡을 때, 음식을 먹을 때, 몸에 닿을 때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할 때 항상 일어난다.


우리는 온갖 종류의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또 96가지의 질병에 시달리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도표 부분 2의 전 과정인 오온이 괴로움의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명이 지혜가 될 때만 우리는 괴로움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눈[慧眼]이 일어났다. 지혜가 일어났다. 밝음이 일어났다”라고 말한다.


다시 눈먼 자의 경우를 보자. 눈먼 자는 고통을 덜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약을 찾을 것이다. 약을 찾으려 아무리 애써도 눈먼 자가 적절한 치료약을 찾아내기란 매우 힘들다. 무명에 덮이고 진리에 대해 무지한 자가 적절한 치료약인 진리를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기나긴 윤회의 여정에서 치료약을 찾기 위한 시도는 열매를 맺지 못했고, 과거 생과 마찬가지로 이번 생에서도 실패했다.


우리는 윤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 말한 것들이 과연 윤회의 여로에서 우리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이 맞는지 스스로 살펴보기 바란다.


도표 부분 1의 과거 괴로움의 원인으로 인하여 이 현생의 모든 괴로움이 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연결이다.


즐거운 느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사람이 높은 지위와 많은 수입에 좋은 집과 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러한 현재의 지위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에게는 갈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운 느낌으로 인하여 갈애가 일어난다. 도표를 보면 부분 2와 부분 3이 다시 연결되어 있다.


다시 눈먼 자의 경우를 보자. 치료약을 찾고 있는 눈먼 사람이 적절한 약은 아니더라도 어떤 다른 약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하여도 결국 상처가 낫기보다는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연기로 보면 이는 ‘집착으로 인하여 업의 생성이 일어난다’에 해당한다. 집착으로 인하여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세 가지 업이 일어난다. 보시를 할 때마다 내세에 보다 부유한 이가 되거나 천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더 나아가 아들과 딸, 아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온 가족이 미래 생 내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이것이 사성제에 대하여 무지한 보통 사람들이 행하는 그릇된 행위의 예이다. 이는 넘어져서 상처가 나고 곪은 데다 가시에 찔리기까지 해서 치료약을 구하더라도 결국 잘못된 약을 눈먼 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성제에 대해 알지 못하고 윤회의 여정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연기에 의해 윤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더욱더 휘말려 들어갈 뿐이다. 눈먼 자는 올바른 길에 관한 진리[道締]인 팔정도(八正道)주해7)를 전혀 모른다. 팔정도는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이다.


대장로 모곡 사야도께서 설하신 사성제에 대한 법문을 듣고 책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우리는 이 법문을 통해 연기와 사성제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가 있다.


수행자들은 끝없는 윤회의 연결고리를 바로 이번 생에서 끊겠다고 하는 강한 열망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는 12연기 법문을 듣고 책을 읽어 사성제의 진리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다. 12연기 법문을 도표와 함께 들을 수 있는 것은 미얀마의 만달레이, 모곡, 아마라뿌라 등 여러 지역에서 가능하다.주해8)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고 대장로 모곡 사야도께서 일생 동안 설하신 사성제와 연기법에 관한 법문을 통해 최상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기 바란다.

주해(註解)

<주해 1> 범부(凡夫. Puthujjanna) :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 평균적인 사람, 사성제 진리에 대해 모르는 사람,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을 범부라고 일컫는다.


<주해 2> 눈먼 자(Andha) : 눈을 뜨고도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 어리석은 자 또는 먼지가 묻은 자라고도 한다.


<주해 3> 보시(布施. Dāna) : 자선, 증여, 관대함을 말한다. 보시는 선한 마음으로 하는 행으로 먼저 관용이 생겼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위이다. 보시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재시(財施. āmisadāna)는 재물을 보시하는 것

둘째, 법시(法施. dhammadāna)는 법을 설하는 것


<주해 4> 뒤섞인 업[混合業. missaka kamma] : 보시는 선업이지만 갈애는 꼭 선업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갈애는 무엇을 바라는가에 따라 순수한 선업이 아닐 수 있다. 보시의 업과 무엇인가를 바라는 갈애의 업은 각기 다른 내용이지만 함께 있을 때는 두 가지가 혼재해 있는 것이다. 혼재와 혼합은 다른 것이지만 편의상 혼합이라고 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선업과 불선업은 섞이지 않는다. 선업은 선과보를 받고, 불선업은 불선의 과보를 받는다. 불선업에 의해 불선의 과보를 받았을 때 고통 속에서 계속 비참한 행위를 일으키는 것은 받은 불선의 과보에 새로운 불선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선업에 의한 선과보가 작용하여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수행을 한다든가 다른 선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선한 업을 만들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주해 5> 인간이나 천인으로 태어나게 하는 오른쪽 다리로 걷는 것이나 사악도에 떨어지는 왼쪽 다리로 걷는 것이나 똑같이 윤회의 세계 안에서 생사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두 다리로 걷고 있다는 것은 연기의 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며, 윤회가 계속되는 것을 말한다. 끝없는 고난의 길을 두 다리로 걷지 않는 것이 열반을 의미하며 윤회를 끝내는 것이다.

그러나 윤회를 끝내고자 하는 마음은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통찰했을 때 필요한 지혜이다. 아직 지혜가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윤회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지혜는 수행을 통해서만이 단계적으로 이해될 수 있고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주해 6> 오취온(五取蘊. upādānakkhandha) : 몸과 마음의 다섯 가지 집착의 무더기를 오취온이라고 한다. 이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온이 자아 또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여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오취온은 번뇌에서 오온이라 하는 몸과 마음이 생겨나고, 다시 오온에서 번뇌가 생겨남을 이른다. 생명이 살고 있는 한 집착을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오온(五蘊)은 모두 오취온에 해당된다.


<주해 7> 팔정도(八正道) :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苦)․집(集)․멸(滅)․도(道)의 도에 해당되는 부분이 팔정도이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다. 특히 팔정도는 지성을 나약하게 하는 고행을 하지 않고 정신적 발전을 퇴보시키는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 중도(中道)의 길이다. 팔정도는 사성제 중에서 네 번째 도(道)에 해당되지만, 이러한 도에 의해서 세 번째 멸(滅)에 이른다. 그러므로 팔정도 없이는 도과를 성취할 수가 없다.

위빠사나 수행을 계(戒)․정(定)․혜(慧) 수행이라고 하는데, 이는 여덟 가지 삶의 길인 팔정도를 의미한다.

팔정도는 다음과 같다.

1. 정견(正見) : 사성제를 아는 것.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

2. 정사유(正思惟)

   (1) 이욕(離欲) : 세속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집착, 이기심을 갖지 않고 이타심을 갖는 것

   (2) 무진(無瞋) : 미움, 악의, 혐오와 반대되는 자애, 선의, 상냥함을 갖는 것

   (3) 무해(無害) : 잔인함 또는 무자비함과 반대되는 해를 끼치지 않음. 동정심을 갖는 것

3. 정어(正語) : 거짓말, 비방, 거친 말, 경솔한 말을 삼가는 것

4. 정업(正業) : 올바른 직업을 갖는다. 살생, 도둑질, 간음을 삼가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란 3독(三毒)을 행하지 않는 것

5. 정명(正命) : 금지된 다섯 가지 거래를 삼간다. 무기, 인간, 고기, 도살할 짐승을 기르는 것. 알코올 음료 및 유독성 물질을 사고파는 것

6. 정정진(正精進)

   (1) 이미 일어난 악한 마음을 버리려는 노력

   (2)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노력

   (3)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 노력

   (4) 이미 일어난 선한 마음을 더욱 증진시키려는 노력

7. 정념(正念) : 바른 알아차림을 하는 것. 사념처 신(身)․수(受)․심(心)․법(法)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

8. 정정(正定)

   (1) 근본집중 : 사마타 수행의 집중

   (2) 근접집중 : 초기집중

   (3) 찰나집중 : 위빠사나 수행의 집중


<주해 8> 모곡 사야도의 12연기법을 상좌불교 한국 명상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아내를 죽이는 말! 말! 말!

 
1. 당신 몸매 좀 가꿔.

2. 하루 종일 뭐 했어?

3. 애들이 왜 저 모양이야?

4. 내가 눈이 삐었지.

5. 왜 그리 멍청해?

6. 당신도 돈 벌어 봐.

7. 누가 장모 딸 아니랄까봐.

8. 화장품 발라보면 뭘 해. 그게 그 얼굴이지.

9. 당신 요즘 몸무게가 얼마야?

10. 세수는 했어?

11.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해.

12.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13. 그만둬.(개인적으로 이말에 상처 많이 받았음)

14. 당신 아니라도 돼.

15.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16. 친구들이 당신보고 뭐라고 하는 줄이나 알아?

17. 입 닥치고 밥이나 해.

18. 당신 해준게 뭐가 있어?

19. 제발 주제파악이나 하고 살아.

20. 당신 말할 때 생각이나 하고 말하는 거야?

21. 짜는 소리 좀 하지 마.

22. 백번 말해도 소용없잖아.

23. 또 시작이야?

24. 왜 그렇게 촌스러워?

25. 피곤하게 하지마.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됩니다.

부디 말조심 하여 행복한 가정 만드세요^^※

 

 

 


Amore Mio (죽도록 사랑해서) - Alida Chelli(알리다 겔리)